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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83화 (83/201)

제083화 고인물은브로커다.

암흑가의 팔대조직 중에서 먼저 들린 곳은 역시나 증표를 손에 쥐게 만들어 준 흑전갈파였다.

좁은 골목에는 각기 얼굴에 흑전갈 문신을 새긴 오크들이 내 앞을 가로 막았다.

흑전갈파 조직원. 레벨은 황야의 늑대보다 조금 높은 59이었다.

"인간이 왜 여길 오지?"

"여긴 흑전갈파 구역이야."

"꺼져. 뒤지기 전에."

다들 목소리를 착 깔고 나를 위협했다. 이미 손도끼를 들고 다가오는 것이 위협이 아니라 곧바로 공격할 태세였다.

[창공의 독수리를 사용합니다.]

일단 적의 숫자를 파악해야만 한다.

건물 안의 적은 몰라도 길거리의 흑전갈 조직은 스무 명으로 파악이 되었다.

"손목 하나만 잘라!"

"흑전갈의 먹이가 되어라!"

"죽여버려!"

그 사이에 흑전갈파 조직이 공격을 개시했다. 도끼를 던지는 공격을 제일 우려했는데 가까이 다가와 도끼를 휘두르는 것이 끝이었다. 특히 길이 좁아 한 마리씩 일렬로 다가오니 상대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었다.

한 명씩 도끼를 튕겨내기를 쓴 후에 치명적인 터트리기를 터트리는 평캔을 쓰면 그걸로 끝이었다.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전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레벨차이가 있으니 조금의 여백이 있던 경험치 바가 모두 채워졌다.

능력치는 근력에 다 올인하고 나아갔다.

"적의 습격이다!

"조직원이 죽었다아!"

"저놈을 죽여!"

"흑전갈의 복수다!"

거미줄처럼 여러 갈래로 뻗은 미로와 같은 골목길에서 사방으로 적들이 쏟아졌다.

미니맵에서 보이지 않았던 적들이니 건물에서 나타난 것이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적들을 이자리에서 상대하라면 결사항전의 영역이 필요하지만, 겨우 여기에서 꺼내기는 너무 아까웠다.

퀘스트야 실패해도 다시 받으면 상관없으니 일단 결사항전의 방패로 막다른 골목으로 도망칠 생각이었다. 단순조작이라 다소 귀찮지만 한 명씩 상대하기에는 그게 좋다.

퍼버버벅!

"죽어라! 죽어!"

"흑전갈의 힘이다!"

미니맵을 열어 7시 방향으로 달렸다. 내 옆구리와 등을 적들이 쉴 새 없이 두들겼다.

흑전갈파 조직원들의 기본 공격력이 높은지 몇 대를 맞았음에도 체력이 눈에 띄게 빠지기 시작했다.

"미친 놈이구나. 막다른 골목으로 가다니."

"거기가 네 제삿날이다."

"인간 따위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나?"

벽에 등을 대고 숨을 몰아쉬었다. 체력보다는 스태미나를 조금이라도 채우는 것이 중요했다.

적들 중에는 흑전갈파 조직원 말고는 없었다.

하나씩 침착하게 수를 줄였다.

튕겨내기 후의 찌르기는 기계적으로 반복하다보니 흑전갈파 조직원의 명치 부분에 붉은 반점이 보였다.

"저거다."

뉴 알론을 떠날 때 받은 약점파악이 발동한 것이 분명하다. 스킬 설명에는 몬스터가 대상이라고 되어있었다.

소울리스답게 스킬판정이 잘못된 것인지 스킬설명이 잘못된 것인지 고민했지만, 적이 되는 순간 몬스터로 판정되는 걸로 이해했다.

스킬판정범위가 넓으면 나에게는 이로울 뿐이니까.

콰르르르릉!

"그마아아아아안!"

흑전갈파 조직원 절반을 죽여 나갈 때, 옆의 건물 벽이 무너지며 적이 추가로 나타났다.

흑전갈파 보스, 쿤타타.

오크치고는 조금 작은 키였으나 떡 벌어진 어깨에 근육질이 인상적이었다. 적어도 자신의 손으로 등을 못 긁을 것은 확실할 팔뚝이었다.

"겨우 한 놈에게 이런 추태를 당하다니!"

"보스! 보통 놈이 아닙니다!"

"뉴 알론에서 온 살인마랍니다!"

나에게 다가오던 조직원들이 겁에 질려 주춤주춤 물러났다.

"인간! 누가 보냈냐!"

"팔대조직이라며. 카쿤이 소개해주던데."

"대주먹께서?"

쿤타타는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으나 곧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하! 드디어 다음 대주먹을 위한 시험이구나!"

"대주먹이 카쿤 시장이지?"

"시장 따위란 이름으로 그분을 부르지 마라. 이 암흑가의 대주먹이시니!"

쿤타타가 분개하며 그 바위 같은 몸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순간 몸에 보인 임펙트가 스킬임을 알려줬다.

좁은 골목에서 저 돌진기는 확정된 죽음이었다. 돌진기에 맞고 벽에 부딪히면 그대로 기절까지 따라오니 결사항전의 영역을 시전하고 평타 한 대 때리지 못하고 죽을 공산이 컸다.

[벽타기를 사용합니다.]

[헤이스트를 사용합니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회피뿐이었다. 스킬을 다급히 사용하며 그대로 건물 벽을 타고 올랐다.

콰아아아앙!

내가 등을 대고 있던 벽을 쿤타타가 들이 박았다. 벽에 금이 간 정도가 아니라 아예 허물어지는 것을 보며 혀를 찼다. 아예 회피를 한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잡몹들은 이미 물러난 것 같으니 아까 전의 그 갈림길 쪽으로 움직였다.

"어디를 가느냐! 이노옴!"

쿤타타는 그런 나를 쫓아왔다. 그 와중에 본 공격패턴은 바위를 던지는 것 말고는 없었다.

돌진기. 원거리 패턴. 나머지는 가까이 다가가야 확인 가능하다.

"속전속결이지."

오크펠슨의 정보는 그 어떤 것보다 내가 많은 이득을 줄 테다. 그러면 이런 스토리 퀘스트는 속전속결이다.

"도망가지 마라아!"

갈림길에 도착하고 등을 돌리자 쿤타타가 그 돌진기를 사용했다.

이번에는 피할 공간이 넉넉해 구르기로 멀직이 피했다.

콰아아앙!

쿤타타의 몸이 벽에 처박혔다. 그 뒤로 다가감과 동시에 스킬들을 사용했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이 30초를 퀘스트의 중간보스가 감당할 수는 없다.

퍼억! 촤악!

쿤타타의 두꺼운 주먹이 날 후려침과 동시에 내 검이 놈의 쇄골을 찔렀다.

뒤이어 발차기에 맞은 다리가 순간 꺾였고 무너지는 그대로 놈의 발등을 찍었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골절을 당합니다.]

체력회복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다리가 부러져 균형이 맞지 않았다.

"제길."

상태이상을 불러일으키는 저 발차기는 유의해야만 한다.

"졌다. 이제는 네가 흑전갈의 주먹이다."

네 번째 공방 끝에 쿤타타가 피를 토하며 무너졌다.

[도전과제, 쿤타타의 패배를 달성하였습니다.]

[도전과제, 팔분의 일을 달성하였습니다.]

첫 번째 보상은 약간의 경험치와 은화 10개. 두 번째 보상은 골절을 치료하는 아이템인 부목이었다.

부목으로 골절을 치료한 뒤, 두 번째 조직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도전과제, 으앗타의 패배를 달성하였습니다.]

[도전과제, 팔분의 칠을 달성하였습니다.]

퀘스트 진행은 순조로웠다. 각 구역의 몬스터와 지형의 구성은 유사했기에 스킬 쿨타임만 지키면 금방 정리가 가능했다.

"레벨 쭉쭉 오르네."

내 레벨도 벌써 46이 되었다.

300번째 랭커와 레벨 차이가 고작 2라는 것을 생각하면 벌써 발밑까지 온 셈이다.

뉴 알론보다도 몬스터의 레벨이 높은 것도 있지만, 이 퀘스트 라인 자체가 난이도이 베해서 경험치를 후하게 주는 것 같았다.

[흑군 : 거기 다른 곳보다 좋아?]

한참 진행 중일 때 귀중한 고객 하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썩이나감 : 어디 말이죠?]

[흑군 : 오크펠슨 말이야. 히든레코드에 올린 정보 너잖아.]

[썩이나감 : 다른 곳은 모르죠. 왜 그러시죠?]

흑군은 왜 나에게 귓말을 했는지를 설명했다. 처음에 드워프쪽 도시를 배정받았는데 여기저기를 찾아본 결과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흑군 : 솔직히 넌 확실한 편이고.]

나에게 신뢰를 보내 주는 것은 그간의 호감작보다는 다크게이머로서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차피 오래갈 사람이니 개인적인 소견을 곁들였다.

[흑군 : 차라리 거기가 낫겠다. 인간쪽은 너무 세력에 얽매이고 드워프는 너무 답답해.]

각 도시마다 컨셉이 있는데 다른 것보다 힘에 충실한 오크펠슨이 기존의 랭커들에게는 매력적인 것이다.

[흑군 : 참고로 골드캐시 애들은 드워프도시로 갔다.]

[썩이나감 : 역시군요.]

예상은 했지만 흑군이 준 정보는 나에게는 중요했다.

히든레코드에도 실시간 업데이트가 된 정보로 시가전은 어느 진영의 승리에 관계없이 드워프의 도시는 열린다고 한다.

오크와 인간의 도시는 각 진영의 승리 및 호감도를 포함한 여러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가능한 셈이다.

모든 유저들이 그 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으니 그냥 드워프의 도시로 가는 경우가 많을 거다.

골드캐시는 수많은 고객을 택했다. 적어도 당분간은 놈들과 부딪힐 일이 없다는 것이니 나쁠 일은 없었다.

그놈과 달리 나는 정보에도 기꺼이 돈을 쓰는 VIP와 접선을 늘릴 테니까.

[썩이나감 : 독고무적님은요?]

[흑군 : 나랑 같이 넘어갈 거야. 거기서는 진영 싸움할 필요가 없어서 합치기 더 좋지.]

그들에게 적대적인 이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겠지만, 나에게는 천군만마와 같았다.

[썩이나감 : 여기서 봬요. 비매용 정보도 찔러 드릴테니까.]

[흑군 : 네 캐릭터 능력은 아니까 레이드도 같이 뛰자고.]

[썩이나감 : 좋죠. 저야.]

독고무적이나 흑군은 불사자의 비밀 일부를 알고 있으니 같이 레이드를 뛰어도 아무런 부담이 없다.

내 발목을 절대 붙잡지도 않을 것이고, 공략시간도 대폭 줄일 수 있을 터였다.

"이제는 마지막인가."

암흑가 팔대조직의 마지막.

땅벌조직의 구역의 조직원들은 양손에 송곳을 들고 있었다. 벌침 대신이라고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칠대조직을 무너트린 놈이다!"

"물러나! 우리로는 안 된다!"

"보스를 불러! 주먹간의 대결이야!"

주먹들을 쓰러트릴수록 퀘스트 진행속도가 빨라지는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암흑가에서 명성이 높아져서 잡몹들이 줄행랑을 친다. 그래도 지금처럼 내가 나타나자마자 보스를 부르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저벅. 저벅.

잡몹들이 사라진 골목에서 오크치고는 보기 드물게 말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팔자걸음으로 걸어오는데 삐딱하게 쓴 양절모로 인해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땅벌조직의 보스, 비비쿤. 레벨은 무려 60이었다.

이번 퀘스트의 최종보스인 것을 생각하면 쉽지 않을 상대일 것이다.

어쩌면 패배해서 처음부터 퀘스트를 진행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때가 되면 남은 칠죄종 스킬을 때려 부어서 빨리 끝내버릴 거다.

후발주자들이 오기 전에 스토리를 더 밀어서 우위를 취해야만 한다.

정보제공의 속도가 늦어진다면 애써 차지한 독점적 지위가 무색해지니까.

툭.

비비쿤은 이쑤시개처럼 물고 있던 동물 뼈를 뱉었다. 그러고는 허리를 젖히고 고개를 추켜올려 나를 내려다봤다.

"이 몸이 바로 팔대조직의 최강자, 오크펠슨의 진정한 힘을 가진 의리의 주먹. 비비쿤님이시다."

온몸에서 쓸데없는 오만함이 물씬 풍겨 왔다. 어릴 적에 보던 드라마에서 피부 색깔만 바뀐 느낌이다.

"네가 이 고요한 밤거리를 더럽히는 이방인인가."

"썩이나감이다."

"카쿤 대주먹께서 네놈을 보내셨다고 들었다. 같은 팔대조직이라 하더라도 나와 다른 놈들을 이겼다고 자만하지 말아라."

비비쿤은 쓰고 있던 양절모를 벗더니 그걸 나에게 집어 던졌다.

휘리리릭!

"웃!"

모자치고는 그 속도가 남다르다. 깜짝 놀라 고개를 숙이니 내 뒤의 건물에 모자가 박혔다.

모자챙에 칼날을 박아둔 것이었다.

"인간이라 예의가 바르군. 초면에 바로 고개부터 숙이다니. 으하하하!"

기세를 제압한 비비쿤은 안주머니에서 새하얀 가죽장갑을 꺼냈다. 유치한 장난에 속은 것 같아 살짝 짜증이 났다.

"이 장갑에 네놈의 피로 붉게 물들어질 때까지, 이 거리의 밤은 네가 잠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

나도 슬슬 항마력이 부족해지는 것만 같았지만, 상대는 최종보스였다. 저 컨셉에 긴장을 푸는 멍청한 짓을 할 수는 없다.

쿵! 쿵! 쿵!

비비쿤은 곧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자신의 두 주먹을 부딪치며 전의를 돋았다. 강화스킬을 쓴 것인지 두 주먹에서는 은은한 수중기가 피어올랐다.

"이 열혈의 바람에 무너져라!"

나와 비비쿤의 거리는 10m에 달한다. 일반적이라면 닿지 않을 거리에서 그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공격 모션이 분명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결사항전의 방패를 사용합니다.]

반사적으로 위협을 느껴 방어스킬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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