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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82화 (82/201)

제082화 고인물은다툰다.

"10은화 더."

NPC들의 반응에 촉이 왔다. 10은화를 더 내놓자 구경꾼들이 더 큰 반응을 보였다.

"오오! 저 인간 진짜잖아!"

"질 수 없지. 오크쪽 1은화 더!"

"나도 오크 3은화!"

오크 불량배 쪽으로 돈이 차곡차곡 쌓였다.

"자아! 날마다 오는 날이 아닙니다. 뉴 알론의 살인마! 빈약한 인간 대 우리의 오크 불량배의 싸움입니다!"

주동자는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앞에 판돈이 쌓이고 내 배당률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인간이 미쳤구나. 네놈이 감히 우리를 이긴다고 돈을 걸어?"

"팬티까지 벗겨서 팔아먹어주마. 인간을 좋아하는 괴짜도 있거든."

오크 불량배들은 음침한 말에 인신매매까지 이어지는 것이구나 싶었다. 이런 곳을 오크답다고 표현하는 요한이라는 NPC에 대한 재고가 필요할 것 같다.

"죽여도 되지? 너네들."

오크펠슨도 도시인지라 일단은 연미복을 입은 상태였다. 이걸 해제할까 싶었지만 상대를 보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어 보였다.

"응? 이봐! 우리도 인간을 죽이지는 않는다고! 이종족을 노예로 파는 것까지는 합법이니까 죽이지는 말라고!"

주동자는 내가 아닌 오크 불량배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우리가 이 짓 처음이오?"

"우린 꾼이라고. 꾼!"

오크 불량배들이 두 팔을 걷으며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은 단순하고 느려서 피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회피기인 백스텝이나 구르기 따위도 쓸 이유도 없이 거리만 유지해도 될 정도였다.

패턴의 다양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뒷짐만 지고 있지 않았다.

오크펠슨이 돌아가는 꼴을 보건데 불량배 뒤에는 무조건 조직이 있을 터였다.

검을 뽑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뒤탈이 날까봐 빠르게 주먹을 휘둘렀다.

"커허억! 뼈 부러져!"

"악! 존나 아파!"

겨우 한 대씩만 맞았음에도 오크 불량배들은 볼썽사납게 나가떨어졌다. 가볍게 치는 것만으로도 눈물콧물 질질 짜며 바닥을 뒹굴었다. 혹시 보험이라도 타기 위해 과장되게 아파하는가 싶을 정도였다.

[도전과제, 이세계 파이터를 달성하였습니다.]

[도전과제, 비겁하지 않은 이대일을 달성하였습니다.]

알림을 보니 아무래도 이벤트인지라 공격만 하면 되는 것 같았다.

"두고 보자! 가만두지 않겠어!"

"밤길 조심해라! 인간 놈아!"

오크 불량배들은 녹색 피부를 붉게 물들이며 도주를 쳤다.

"와! 인간이 저렇게 강해!"

"우리보다 센 것 같은데?"

"살인마가 괜히 살인마가 아냐!"

"비리비리한 몸으로 잘 꽂네."

구경꾼들은 내가 보인 성과에 놀란 듯했다.

"판돈이나 줘."

주변 배경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내가 건 판돈으로 불어난 수익이 얼마인지가 더 궁금했다.

주동자에게 손을 내미니 그는 2금화를 주었다. 무려 10배나 번 것이다.

"한 달 동안 풀만 처먹게 생겼네!"

주동자는 울분을 토하더니 수중의 돈을 바닥에 던지고 돌아갔다.

"그래도 너무 빨리 끝났네."

"조직애들 아니었나 봐."

"풀만 먹은 것 같아. 재미없다고."

구경꾼들은 알아서 돈을 배분하며 투덜거렸다.

나로 인해 잃어버린 수중의 돈보다 격렬한 싸움을 원했다는 반응이 흥미로웠다.

그들이 떠나고 난 빈자리에는 문양이 특이한 동전 하나가 있었다.

[흑전갈 조직의 증표.]

-종류 : 퀘스트 아이템.

-설명 : 오크펠슨의 암흑가 팔대조직 중 하나인 흑전갈 조직의 증표다.

다른 것보다 퀘스트 아이템이라는 사실이 내 흥미를 끌었다.

겉에서 보이는 것처럼 오크펠슨은 뉴 알론과 확연이 다른 컨셉의 도시인 것 같았다.

도시의 골목을 전전하면 무언가 걸리겠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일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

먼저 안면이 있는 카쿤 시장을 찾아갔다. 벌건 대낮임에도 시청에 없고 근처 식당에서 고기를 뜯고 있었다.

"식사 중에 또 뭐냐."

"뭐하나만 묻죠."

"뭔데?"

"이거 알아요?"

인벤토리에서 흑전갈 조직의 증표를 꺼냈다. 보통의 도시라면 시의 최종명령권자인 시장에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오크펠슨은 무법도시에 가깝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애네 팔대조직이잖아. 자아알 알지."

"팔대조직 설명 좀 해 주시죠."

"뒤에서 주먹질 하는 놈들이지. 자기들끼리 협객이니 뭐니 지껄이고 놀더라고."

"호오."

뉴 알론에서 몬스터 헌터와 죄수병의 구도에서 의외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은 죄수병이었다.

실제 군대 느낌이 난다고 정평이 나는 퀘스트들이 군부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컨셉러들이 그곳을 장악하기도 했는데 자신들끼리 기수를 정해서 약하면 기수열외니 강하면 조기진급이니 하는 사회에서 굳이 할 필요 없는 식으로 즐겼다고 한다.

이 퀘스트 아이템이 주어진 것으로 추론하건데 오크펠슨에서는 팔대조직에 들어가서 주먹질 컨셉도 가능할 것 같다.

옛날에 유행했던 드라마도 있으니 바람처럼 스쳐가는 BGM하나 틀고 컨셉질할 유저도 있으리라.

"개네들이 사고를 치면 시에서는 어떤 조치를 하죠?"

"왜 조치를 해? 싸우면 그걸로 끝인데."

"역시 오크펠슨이네요."

"궁금하면 가 보든가. 어린 애들이라 때려도 덜 다쳐."

카쿤은 친절하게도 암흑가 팔대조직의 위치를 하나하니 짚어줬다. 내가 제법 깡이 있으니 어딜 가도 환영을 받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여 줬다.

어디를 봐도 정상적인 시장의 모습은 아니다.

"그래도 주먹질 말고 돈이나 벌라고. 용병 길드가서 칼질이나 하든지 아니면 팔대조직 애들이 자주 가는 투사 길드도 좋고."

카쿤은 오크펠슨에서 세 개의 길드를 추천했다.

첫 번째는 뉴 알론의 몬스터 헌터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용병길드다. 여기는 단순히 몬스터 사냥만이 아니라 전쟁에 지원을 가는 유사 죄수병과 같은 임무도 주어진다고 한다.

두 번째는 정보길드인데 이쪽은 말 그대로 정보의 취득이 주였다. 팔대조직과도 연계가 되어 있는 곳 중 하나라고 했다.

세 번째는 투사 길드로 이곳은 투기장을 운영한다고 한다. 일대일에서 일대다수는 물론 몬스터 레이드도 진행하며 높은 난이도를 기록할수록 높은 보수를 준다고 했다.

"그거 궁미가 당기네."

뉴 알론의 단점은 몬스터 헌터 혹은 죄수병 한쪽으로 간다면 필연적으로 진영싸움에 휘말린다는 것과 한정된 퀘스트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몬스터 헌터를 하면서도 죄수병의 퀘스트에 흥미가 동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으니까.

오크펠슨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길드는 복수가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본인의 필요나 구미가 당기는 곳에서 치중하면 될 뿐이다. 어차피 오크가 아니면 다 배척을 받는 상황이라 차별만 받으면 되니까.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기왕이면 팔대조직 한 번씩 들리라고. 우리 오크펠슨의 명물인 사나이의 길이니까."

자리에 일어나자마자 카쿤은 또다시 퀘스트를 줬다.

[사나이의 길.]

-오크펠슨은 그야말로 무법자의 도시며 강자의 도시이다. 젊은 사내들의 협과 의를 외치며 저지르는 패악을 두 주먹으로 깨부수자.

-완료 조건 : 팔대조직 제패.

-실패 조건 : 패배.

오크 불량배를 생각하면 그렇게 어려운 퀘스트는 아닌 것 같았다.

"하면 뭐가 좋죠?"

"사나이의 인정?"

"제가 그게 필요할까요?"

"내가 전수하는 스킬도 있지. 팔대조직 애들 내가 키웠거든."

"……."

칼날어금니 멧돼지와의 싸움을 생각하면 카쿤에게 스킬을 받아도 썩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좋아. 하죠."

이 퀘스트는 난이도를 떠나 공략하면 꽤나 잘 팔릴 것 같았다.

[빨간약파란약 : 썩이나감님. 정보 하나 검토해주실 수 있습니까?]

[썩이나감 : 누가 제 정보에 클레임을 걸었나요?]

[빨간약파란약 : 클레임까지는 아닙니다. 교차검증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팔대조직을 깨부술 동선을 짜던 찰나에 들어온 귓말이 시선을 끌었다.

[썩이나감 : 어떤 교차검증이죠? 국내에서요?]

과연 한국서버에서 나 말고 제2의 도시에 진출한 유저가 있을까? 아니면 나와 접촉했었던 해외유저 중의 하나가 히든레코드에 정보를 판매하려는 것일까?

[빨간약파란약 : 해외입니다.]

[썩이나감 : 누구죠?]

Emgacian? 기린아? 아니면 오니기리?

누구일지라도 흥미가 동했다.

[빨간약파란약 : 개인정보를 공개가 불가능합니다.]

[썩이나감: 애석하군요.]

[빨간약파란약 : 지킬 것은 지켜야해서요.]

[썩이나감 : 어떤 내용에 대한 거죠?]

어차피 해외유저면 나와 마주칠 일은 없다. 그랬기에 그 의문의 유저는 물론 빨간약파란약도 내게 문의를 한 거다.

[빨간약파란약 : 해당 정보 링크 보내겠습니다.]

잠시 후에 빨간약파란약이 링크를 보내줬다. 거기를 누르니 보이는 것은 오크펠슨이 아닌 다른 도시였다.

아웃사이드 시티. 이곳은 오크펠슨처럼 인간의 도시였다. 다만, 이곳처럼 완전한 무정부가 아니라 세 개의 왕국이 분할해서 지배하고 있었다.

[썩이나감 : 저와 다른 도시네요.]

[빨간약파란약 : 진출 조건에 의문이 든다고 합니다.]

[썩이나감 :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교차검증이 될 것 같은데요.]

[빨간약파란약 : 공개한 조건은 자닐 진영의 승리. 록과의 친분이라고 합니다.]

직업을 감춘 것은 영리하다. 누가 진출했는지 모를 수밖에 없으니까.

[썩이나감 : 전 록 진영의 승리, 록과의 친분입니다. 서로 다른 조건의 진출은 확실하군요. 겨우 이걸 물어보려고요?]

겨우 저걸 물어보려는 것이라면 실망이 컸다.

[빨간약파란약 : 10분 전부터 해외 커뮤니티에서 다른 도시에 진출한 이들이 인증샷을 하나씩 올리고 있습니다.]

[썩이나감 : 오크펠슨은 그중에 없나보네요.]

[빨간약파란약 : 지금 문의를 한 고객 이외에도 다른 이들이 왜 자신들은 오크펠슨이 아닌지에 대한 답글이 달리고 있습니다.]

빨간약파란약이 이렇게 나올 정도면 꽤나 많은 이들이 안달이 난 모양이었다.

지금 입안에서 멤도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무시다. 난 추가적인 정보를 공개할 필요도 의무도 없다.

두 번째는 그럴 듯한 조건으로 둘러대는 거다. 다만, 추후에 아니라고 밝혀지면 내 기량에 의구심이 붙는다.

세 번째는 내가 짐작하고 있는 조건들을 그대로 공개하는 거다.

[썩이나감 : 난처하네요. 저도 교차검증을 정확하게 할 수는 없으니.]

[빨간약파란약 : 고객님이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추가정보를 구매하고 싶습니다.]

[썩이나감 : 그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예전이라면 첫 번째를 선택했을 것이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오크펠슨은 유니크한 도시고 이곳은 다른 도시보다 유저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나만 있는 도시보다는 적당한 유입이 있어야 한다. 수요와 공급이 적당해야 내가 파는 정보가 가치를 인정을 받게 되는 거니까.

[빨간약파란약 : 오크펠슨 관련 정보의 경우 정산비율을 0.5 올려드리겠습니다.]

빨간약파란약이 내거는 조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오크펠슨의 정보가 팔릴수록 내가 확실히 이득을 볼 수밖에 없었다.

[썩이나감 : 게뉴 알론 입성 당시 록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알다시피 딜이 좋게 나와서 일반적인 유저들과 반응이 다릅니다.]

[빨간약파란약 : 아! 맞아요. 록의 인정을 받을 때 데미지가 높을수록 호감이 쌓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썩이나감 : 오크펠슨에서 저를 대하는 NPC들의 반응을 보면 흔히 카오가 쌓이는 부정적인 행위에 대해 상당히 좋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빨간약파란약 : 해당 반응들에 대해서 자료 첨부를 부탁드려도 될 까요?]

오크펠슨의 특징에 대한 정보를 받았음에도 의외였던 것 같다.

플레이 영상에서 오크들이 날 부르던 반응 및 지금 받은 퀘스트들에 대해 짧게나마 보내줬다.

[빨간약파란약 : 다른 도시보다 굉장히 자유롭군요.]

[썩이나감 : 그렇죠. PK를 유도하고 싶지는 않지만, 굉장히 유효한 반응입니다.]

[빨간약파란약 : PK붐이 좀 일겠습니다.]

[썩이나감 : 물론 방금 전에 보낸 정보는 비매용입니다. 아시죠?]

[빨간약파란약 : 알겠습니다. 그러면 필요조건은 록의 인정, PK를 통한 카오 수치. 록 진영에 합류 및 승리로군요.]

[썩이나감 : 저를 기준으로는 그렇습니다. 해외 커뮤랑 비교하시고 있을 것이 더 확실하시겠죠.]

이걸로 귓속말을 끊었다. 영리한 사람이니 알아서 잘 팔아넘기겠지.

한국서버는 록 진영의 승리다. 눈치가 빠른 자들은 해외 반응을 취합해 자신에게 더 유리한 도시를 정해 올 것이다.

특히 내가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잘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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