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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80화 (80/201)

제080화 고인물은앞서간다.

"썩님은 뉴 알론의 새로운 시장인 록 시장님에게 시민증을 받았습니다."

불편해졌던 분위기에 요한은 애써 웃으며 그 사실을 끄집어냈다.

"오오! 그게 정말이야?"

"우리 오크가 시장이라고!"

오크 경비병들은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시장이면 그 록인가?"

"개는 제법 오크다웠지."

"힘도 제법 쏐는데."

"어릴 때 여기서 질질 짰잖아."

오크들은 의외로 수다스럽게 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단번에 록이 시장이 된 것을 알 정도면 그가 제법 유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록이 시장이 되는 것에 일조를 했기에 오크펠슨에 온 것이 아닐까. 자닐이 시장이 되었으면 인간의 도시로 가는 것이고 제3의 선택지로 스톤크가 아닌 드워프가 시장이 되면 그들의 도시로 가는 것일 수 있다.

개인의 선택지가 아니라 집단의 선택지도 내 스토리에 영향을 준다는 부분은 중요하다.

"그보다 썩이나감이면 그 새끼 아니야? 낙오된 화전민 마을의 살인마."

"아! 그 잔혹무도한 놈! 뉴 알론에서도 대낮에 사람 하나 담궜다지!"

"……."

오크들이 저 내용으로 환대를 하는 것을 보니 오크펠슨의 도덕적 관념이 내 플레이에 아주 우호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크펠슨은 설명대로 네크로폴리스와 같은 외관과 달리 전형적인 오크들의 도시가 맞다. 이곳에 오게 된 것이 록과의 인연만이 아니라 그간에 쌓은 내 카르마 때문이라는 것에 무게가 실렸다.

"어서 들어가라. 전사는 환영이지!"

"약자는 다 뒤지라고!"

전혀 곱지 않은 말로 파이팅을 해 주는 오크 경비병들에게 적당하게 대꾸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도시 맞지?"

오크펠슨의 내부는 외부보다는 훨씬 나았다.

건물들은 오래되었다지만 정상적인 목재와 석재로 지어진 정상적인 건물들이었다. 다만, 예상을 전부 저버리지 않았다.

길거리를 밝히는 등은 모두 몬스터의 뼈를 이용한 것이었다.

할로윈데이 이벤트면 저 등이 호박으로 바뀌지 않을까. 그러면 이 도시가 주목을 받지 않을까 싶다.

"그보다 어디에 가야하지?"

"오크펠슨의 시장님에게 가시죠."

"가면 만나주나?"

"예. 그럴 겁니다."

요한은 두 장의 서신을 꺼냈다. 하나는 데스티아 여신교의 인장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록의 뉴 알론의 인장이었다.

뤼움과 록의 소개장으로 보였다.

"도시를 천천히 돌아보자고."

한국서버에서야 내가 최초로 뉴 알론 이외의 도시에 나선 것이다.

문제는 정보를 판매할 때는 독점이야만 가치가 높다.

경쟁상대는 게임의 정보를 무료로 풀어버리는 미국서버의 Emagician 같은 유저다.

"그러시죠."

요한도 곧바로 시청에 가지 않고 내 보폭에 맞춰 도시를 천천히 거닐었다.

오크펠슨은 뉴 알론보다는 면적이 작았다. 다만, 내부의 성벽으로 구역이 나눠지지 않아서 오히려 더 넓어 보였다.

와장창창!

"씨바아아알! 먹고 튀지 마. 개새끼야!"

"이걸 음식이라고 내놓은 네놈 잘못이지!"

또한 NPC들간의 화목한 이벤트도 잦다.

음식점에서 오크 두 명이 테이블을 뒤집으며 싸우고 있었다. 바람에 떨어져 흩날리는 꽃잎처럼 너덜거리는 스파게티와 토마호크가 아련하다.

"보시다시피 오크들은 비교적 꾸밈없이 주어진 그대로 살아갑니다."

"포크나 나이프를 버리고 주먹으로 패는 것 보고 말하는 거지?"

식당에서의 싸움은 격렬해졌다. 손님이나 주인장이나 각자 들고 있던 포크와 나이프 혹은 식칼을 버려두고 멱살을 움켜쥐고 주먹질을 하고 있었으니까.

"신사적이네요."

"저게?"

"오크방식으로요."

"그렇군."

요한은 환경변화에 굉장히 빠른 NPC라는 걸 다시 느꼈다.

오크펠슨의 지도를 하나하나 채워나갔고 요한은 마지막 장소에 멈췄다.

"시청입니다."

"이게?"

시청을 목도한 순간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뉴 알론의 시청은 너무 지나쳤다면, 오크펠슨의 시청은 그냥 너무했다.

이 도시에서 흔히 보던 오래된 건물보다 더 낡았다. 성벽마냥 몬스터의 뼈와 가죽으로 지었는데 그마저도 오래되어 검지로 툭 건드리면 폭삭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왜?"

혹시 오크펠슨의 시장은 목숨이 두 개인 것일까.

"오래된 곳에 지고한 영혼이 머무는 법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우리의 시선으로 타인의 삶의 가치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들을 존중하십시오."

요한이 쓸데없이 어려운 말이나 지껄이고 있기에 시청이라 불리는 낡고 오래된 건물로 혼자 들어갔다.

끼기기기긱!

녹슬다 못해서 부서지기 직전의 경첩이 비명을 질렀다. 녹가루와 함께 건물 바닥에 깔린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아무도 없나?"

뉴 알론처럼 무정부의 도시인 오크펠슨이기에 시청이 사실상 행정부터 시작해 도시의 모든 것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일을 해야 하지만, 커다란 탁자 하나와 책이 아닌 먹고 남은 뼈가 굴러다니는 책상 밖에 없었다.

"다 퇴근했나 봅니다."

"여기서 일을 하는 것은 맞아?"

시청이 아니라 버려진 시골집이라고 불러도 무방했다.

"가끔 하더군요."

"시청이라며."

"오크펠슨이니까요."

요한의 저 당연하다는 말이 내가 알고 있던 오크와 사뭇 괴리감이 있음이 느껴졌다.

"내가 알던 오크와는 다른데."

"모든 사람이 같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계속 기다리자고?"

"주변 주점을 찾으면 시장님이 있을 겁니다."

요한이 말을 마치자 그의 머리 위에서 퀘스트 물음표가 떴다.

"시장을 찾아오라는 거지?"

"썩이나감 님의 선택입니다."

요한이 고개를 저었지만, 말과는 달리 퀘스트가 등록되었다는 알임이 떴다.

[오크펠슨의 시장은?]

-운명을 따라 당신은 오크펠슨을 찾아왔지만, 초라한 폐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곳의 주인을 찾아 오크펠슨에 머무르는 동안의 도움을 요청하자.

-완료 조건 : 시장 발견.

-실패 조건 : 퀘스트 포기.

스토리를 위해서라도 이건 마다할 수 없는 퀘스트였다.

"그러지."

문제라면 주변의 주점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다.

먼저 오크펠슨을 부활할 도시로 정하고 시청 주변의 주점을 들렀다.

"오늘 봤냐? 그 새끼 쓰러트리는 거!"

"주인장! 여기 맥주 한 통 더!"

"해장술마저 마시고 사냥이나 가자고!"

첫 번째 주점에 들어서자마자 오크들은 한껏 취해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그들은 고막이 아프게 떠들어 댔는데 다들 맥주와 고기를 들고 있었다.

누구도 내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NPC들 머리 위에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주인장. 시장을 찾으러 왔는데 없어서 말이야."

"응? 뭐야. 이 소가 되새김질한 것 같은 대가리는."

"…뭐?"

"소화가 덜 되서 색이 빠졌나. 인간 애송이?"

주점의 주인장은 씨익 어금니를 드러내며 웃더니 딱 봐도 불결한 잔에 맥주를 채워 건넸다.

"1은화다."

"비싸."

"정보료까지."

"콜."

낯선 이방인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워 이득을 보는 클리셰는 언제나 스토리 라인에 빠질 수 없는 감초였다.

맥주 한 잔을 벌컥 들이켜도 아무런 미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때 혈관에 혈액이 아닌 알콜이 흐르던 몸인지라 시원한 생맥주가 절로 생각나 아쉬움이 들었다.

잔을 내려놓고 옆자리에 은화 하나를 얹었다.

"시장은?"

"30분 전에 여기 있었다."

"어디로 갔지?"

"사냥 나갔을 걸. 요즘 칼날어금니 멧돼지철이니까."

갑자기 주인장은 오븐을 열더니 큼지막한 고기 한 덩이를 꺼냈다.

"칼날어금니 멧돼지 스테이크다. 저쪽에 좀 주라고."

"위치는 알려 주는 거지?"

"그에게 배달할 음식도 주지."

"공짜로?"

"레시피라도 주지. 어때?"

주인장의 제안에 일단 칼날어금니 멧돼지 스테이크를 들었다.

[칼날어금니 멧돼지 스테이크.]

-등급 : 일반.

-효과 : 10분 동안 최대체력 13 상승.

-설명 : 집채만 한 칼날어금니 멧돼지를 잡아서 소금과 후추로 간단하게 한 요리입니다. 오븐을 사용해 고기내부가 골고루 익었습니다.

오븐을 써서인지 최대체력이 13이라는 애매한 수치가 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냥 구우면 이것보다 맛이 떨어지지?"

"오븐이 없으면 더 얇게 썰어야지. 안 그러면 겉만 익고 안은 생고기야. 그걸 좋아하는 사람은 있지만, 그건 채소랑 샐러드를 써야 해서……."

요리 이야기가 나오자 주인장은 조금 더 설명을 해 줬다. 말끝을 흐리며 테이블 쪽을 가리키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손님들의 그릇에는 그 어떤 풀쪼가리도 없었다.

"그러면 안 먹거든."

"오케이. 알겠어."

내가 직접 요리를 만들 수 있다면 칠대종 중에서 식탐을 더 자유롭게 채우는 것도 가능했다.

서빙을 한 후에 주인장은 오크펠슨의 시장이 간 곳을 알려 줬다.

퀘스트 아이템으로 주어진 도시락은 인벤토리칸을 5x5를 차지하는 어마무시한 크기였다. 그것과 함께 레시피를 받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그건 통하지 않았다.

"벌써 도망치는 거야?"

"약골이구만!"

"시장한테 도시락 배달이야!"

바깥으로 나오자 오크 경비병들이 약 올렸다. 적당하게 대꾸하며 회색마를 소환했다.

[푸히이잉!]

말은 투레질과 함께 청색으로 물들어가는 황무지에 붉게 타오르는 족적을 남겼다.

목표지는 오크펠슨에서 비교적 가까운 작은 산이었다.

산까지 가는 동안에는 아무런 적을 조우하지 않았다.

[창공의 독수리를 사용합니다.]

산의 입구에서 불사자의 영혼함을 심은 뒤에 창공의 독수리로 시야를 확보했다.

미니맵에 붉은 점들이 하나씩 찍혀 나갔다.

칼날어금니 멧돼지가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으니 상대적으로 붉은 점들이 좁혀진 곳들을 체크하며 움직였다.

첫 번째 지점에서 본 몬스터는 황야의 늑대였다. 놈들은 비교적 높은 고지에서 으르렁 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도시에 가장 인접한 지역의 일반 몬스터임에도 레벨은 무려 57이었다.

레벨 인플레가 확실하니 길드장이 왜 약점파악이라는 스킬을 준 것인지 이해했다.

나처럼 파멸적인 공격력을 가지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사냥이 힘들 테니까.

은신을 유지한 상태로 다음 지역으로 움직였다.

다음 포인트는 계곡이다.

[쿠웨에에엑!]

"크하하하! 덤벼라! 덤벼!"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불쾌한 울음소리와 함께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렸다.

오크펠슨의 시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칼날어금니 멧돼지인 것은 확실했다.

쿠우우웅!

강철과 강철이 부딪히는 것 같은 묵직한 진동과 소리에 궁금증이 동했다.

헤이스트를 쓰고 벽타기까지 사용해 나무를 발판삼아 뛰어 확인해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칼날어금니 멧돼지의 집채만 한 덩치는 둘째 치고 바깥으로 자라는 어금니는 무척이나 크고 날카로워 보였다. 레벨도 무려 64로 황야의 늑대 따위와 감히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 어금니를 양손으로 붙잡고 대치 중인 사내가 있었다.

머리 위에 퀘스트 느낌표는 저 사람이 오크펠슨의 시장임을 증명했다.

"나랑 같은 변태인가?"

오크펠슨 시장의 특별한 무장을 갖추지 않았다. 옆구리에 단도 하나만 있을 뿐이다. 맨손에 갑옷 하나 없이 바위 같은 근육을 드러낸 상체는 그가 권신이나 레슬러 쪽의 직업 중에 하나로 보였다.

[쿠어어어어!]

"으라차아아아!"

칼날어금니 멧돼지와 오크펠슨 시장은 본격적인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치지지직!

둘 다 괴성을 지르며 팽팽한 대치를 이어가던 와중에 1분도 되지 않아 힘의 균형이 깨졌다.

오크펠슨 시장의 힘에 칼날어금니 멧돼지가 조금씩 뒤로 밀려난 것이다.

드드드득!

"으아아아아!"

뒤이어 오크펠슨 시장이 칼날어금니 멧돼지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그 자랑이던 어금니도 오크의 거친 손바닥에 오히려 균열이 일어날 정도였다.

[꾸히이이익!]

네 다리가 땅에서 떨어지고 수직으로 들어 올린 칼날어금니 멧돼지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그 엄청난 몸무게에 오크펠슨 시장의 발이 점점 바닥에 파묻히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으랴아아!"

근육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오크펠슨 시장은 힘껏 칼날어금니 멧돼지를 땅에 후려쳤다.

"누가 변태라는 거냐. 비루먹은 인간 놈아!"

호흡을 가다듬고 칼날어금니 멧돼지를 부지런하게 무두질을 한 뒤, 오크펠슨 시장이 내게 손가락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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