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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79화 (79/201)

제079화 고인물은개척자.

"…아바타에 능력치 보정 효과도 없네."

엘리멘탈 소울2를 개발진들이 배가 덜 고프구나 싶은 것이 이 부분이다.

캐시로 사는 아바타 아이템도 그렇지만, 한국 서버 혹은 전 세계 유일하게 뉴 알론을 졸업할 유저가 받은 보상에 별다른 메리트가 없었다.

우리 K게임이면 아바타도 쪼개고 색깔별로 파는 것은 기본이고 거기에 능력치 부가 및 다양한 옵션을 넣어서 들숨에 충전 날숨에 결제가 될 텐데 말이다.

"다음 물건도 봐라."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 말고."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생존능력을 높여 주는 스킬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유일한 착용장비인 한 손 검이다.

[뉴 알론의 황색마.]

"쓰읍."

두 번째 아이템이 내 작고 소중한 기대감을 망가트렸다.

방금 전에 받은 연미복과 그야말로 깔맞춤이 아닌가.

"그 말은 특별하다. 잘 교육되어 있어서 네가 잠들어 있어도 알아서 뉴 알론으로 돌아오지."

"뭣!"

실망하지 말라는 록의 말에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뉴 알론의 황색마.]

-등급 : 매직.

-보유능력 : 기본속도 5, 질주속도 10, 뉴 알론 자동이동.

-뉴 알론에서 오랫동안 교육을 받아 안장에서 잠이 들어도 안전이동이 가능한 짐말입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회색마와 속도는 똑같았다. 다만, 일반보다 높은 매직등급답게 자동이동이라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나 같은 경우는 조작보정이 없기에 한정적이나마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고마워. 또 보자고."

정체가 되어 있던 이야기를 위해 그간에 안면을 퉜던 NPC들을 찾아갔다. 보통 다른 장소로 떠나면 퀘스트를 주거나 하다못해 푼돈이라도 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NPC들에게서는 별다른 대꾸도 없었다. 잘 다녀오라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남은 곳은 몬스터 헌터 길드, 죽음의 요람, 데스티아 여신교 신전이었다.

"바깥에 나가서 굶지 말라고!"

먼저 들린 죽음의 요람의 주인장 밥은 스킬북 하나를 줬다.

[초급 요리 스킬북.]

-종류 : 일반.

-효과 : 스킬 습득.

-설명 : 초급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요리로 인한 버프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문제는 가시적인 효과를 보기까지 들이는 시간과 재료가 너무 아까워서 비효율적일 뿐이다.

"고마워요. 종종 놀러 오죠."

이때까지 빈손으로 답만 하던 NPC들보다 밥이 훨씬 낫다. 들뜬 마음으로 몬스터 헌터 길드에 들렸다.

"오크펜슬을 아나요? 시민증도 받아서 슬슬 가려고 하는데."

"푸하하! 잘 알고말고. 거기에서 헌터짓 좀 하려면 이걸 꼭 배워야만 할 거다!"

긴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는지 길드장인 발레인이 스킬북 하나를 줬다.

[약점파악의 스킬북.]

-종류 : 레어.

-효과 : 스킬 습득.

-설명 : 약점파악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약점파악?"

설마 도시를 떠나는 김에 이곳저곳을 들쑤시다가 레어 등급의 스킬북을 얻을 것은 생각도 못했다.

[스킬, 약점파악을 배우셨습니다.]

기대감에 부풀어 곧바로 익힐 수밖에 없었다.

[약점파악LV1.]

-종류 : 패시브 스킬.

-효과 : 이해도가 높은 몬스터의 약점을 파악해 확정적인 치명피해를 입힙니다. 숙련도가 높을수록 약점이 더 명확하게 보입니다.

"굉장한데!"

그야말로 매력적인 스킬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순수하게 뉴 알론이라는 도시에서 얻은 스킬 중에 가장 훌륭하다고 표현할 수 있었다.

"거기서도 헌터 일 잘 하라고."

발레인은 힘껏 내 등짝을 후려치며 체력을 손실시켰다.

뒤이어 쓸데없는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기에 붕대를 감으며 나왔다.

투덜거리면서 향한 마지막 장소는 데스티아 여신교였다.

인연이 깊을수록 가치가 높은 것을 줬다. 그렇다면 데스티아 여신교에서는 나에게 엄청난 것을 줘야만 한다.

신전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무표정한 뤼움이었다. 그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감사함을 표했다.

"고맙네. 스톤크를 도와주어서."

"별말을."

"이 도시도 본래의 운명을 되찾았다네."

"그놈의 운명론."

전작부터 들어온 데스티아 여신교의 운명타령은 여전했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듣기만 했다.

"오크펠슨으로 가시게. 거기에 운명이 기다리고 있으니."

"난 운명이 안 보일 텐데."

"그대의 곁을 따라가는 이의 운명 말이야."

뤼움이 길고 얇은 손가락을 들어 왼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요한이 여행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제 운명이 따르는 곳으로 갈 것이니 썩이나감 님은 저를 피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확실하네."

요한이 스토리에 중요한 NPC임을 알고 있으니 오히려 그가 없다면 의심했을 것이다.

뉴 알른만큼이나 중요한 도시가 오크펠슨일 것임은 분명했다.

"가시게."

"작별의 선물은 없나?"

"요한에게 있다네."

뤼움은 그 흔한 스킬북하나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혀를 차며 요한을 보니 어서 가자고만 재촉을 할 뿐이었다.

[썩이나감 : 바쁩니까?]

[빨간약파란약 : 이제는 괜찮습니다. 그간의 활약 잘 보았씁니다. 썩이나감 님.]

[썩이나감 : 뉴 알론에 관한 마지막 정보 정리해서 보내겠습니다.]

[빨간약파란약 : 마지막 정보요?]

빨간약파란약은 연이어 질문을 해댔지만, 거기에는 따로 답할 생각이 없었다.

히든레코드와 거래가 잦았다지만, 이번 일에 아이템만 파느라 바쁜 것에는 한계를 봤기 때문이다.

[빨간약파란약 : 그래도 찌라시 내용은 재밌지 않았습니까?]

무시하던 와중에 저 귓속말이 눈에 박혀버렸다.

무슨 의도로 한 말일까.

[썩이나감 : 재미는 있었죠.]

[빨간약파란약 : 누구인지 몰라도 업계사람인 것 같더군요. 돈을 주고도 못 구하는 정보로 잘 풀었고요.]

[썩이나감 : 어떤 뜻으로 하는 말이죠?]

[빨간약파란약 : 상대를 이길려면 그들의 좋은 점을 배워야하죠. 그냥 그렇다고요.]

[썩이나감 : 인정합니다. 골드캐시의 일은 저 혼자로는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왜 빨간약파란약이 저런 귓속말을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 증거로 보여줄 수 없지만, 결국 그 찌라시를 흘린 것이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썩이나감 : 새로운 도시로 갑니다. 거기에 관련된 정보도 후속으로 보내드리죠.]

[빨간약파란약 : 지도 먼저 부탁드립니다. 고객님.]

빨간약파란약은 어필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는지 더 귓속말을 걸며 재촉하지는 않았다.

히든레코드가 왜 나에게 투자하는 것인 줄은 뻔히 보이지만, 골드캐시에게 대응할 아군이 생긴 것은 좋은 일이었다.

물론 언제까지나 아군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찌라시에 적힌 내 정보에는 굳이 텍스트로 보고 싶지 않는 것도 있었으니까.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시작을 꿈꾸세요. 물론 꿈은 꿈에 불고합니다.  소울리스 CEO 대니얼 올림.]

요한과 함께 뉴 알른을 벗어나자마자 로딩창이 눈앞을 가렸다.

매번 불쾌한 저 대기화면 메세지들을 왜 계속 항의해도 내버려두는 줄 모르겠다.

"계속 말에 타려니 힘들군요. 썩이나감 님은 괜찮으십니까?"

"뭐, 적당하네."

로딩이 끝나자마자 들려오는 요한의 목소리는 건성으로 넘겼다. 그보다는 주변을 눈에 담는 것이 중요했다.

뉴 알론처럼 황무지가 일색이었다. 지형적으로 보면 녹색의 산들이 곳곳에 보였다. 아무래도 보다 풍요로운 곳이구나 싶었다.

"뭐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요?"

"오크펠슨은 어떤 곳이지?"

"오크펠슨이 궁금하시구나!"

갑자기 목소로 톤이 높아짐과 동시에 햇볕을 담았던 눈동자가 올곧이 나를 담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쏟아지는 정보량에는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였다.

히든레코드에 독점으로 팔아야하니 정보를 가다듬어야만 했다.

오크펠슨은 이름에도 알 수 있듯이 오크가 중시인 도시다.

뉴 알론의 중심인 드워프, 오쿠, 인간이 각자 종족을 중심으로 전진기지를 세운 곳 중의 하나였다.

지리상으로도 뉴 알론의 남서쪽에 있는 도시로 무척이나 오크스러운 곳이라고 했다. 그 이유로 거주민의 구성 대부분이 오크이기에

뉴 알론보다도 후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거주민은 오크가 대부분이기에 완전히 다른 도시라고도 했다.

"확실히 뉴 알론에서 오크는 제법 점잖은 편이었지."

엘리멘탈 소울1은 각 종족별 개성이 뚜렷한 게임이었다. 그때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유저들은 이번 작에서는 그런 개성이 없다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었다.

세 종족이 엮여 묘하게 숨이 막히는 분위기였던 곳과 달리 오크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길 오크펠슨이라면 꽤나 구미가 당긴다.

"종교는 몇 개가 있지?"

"아무래도 오크쪽이거나 종족에 구애받지 않는 곳들이 많습니다."

"데스티아처럼?"

"본교는 없습니다."

"그렇겠지."

개인적으로는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데스티아 여신교는 모든 것에 운명을 거론한다. 문제는 거기에 더 나아가 항상 여신이라는 존재를 강조했다.

반면에 오크의 종교관은 보다 자연에 가까운 편이었다.

다른 종족이 중심이거나 자연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존재에 대해서는 곱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요한과 거기 간다면 종교적인 마찰은 분명히 나올 것이다.

"마녀사냥은 안 당하겠지?"

"마녀는 아니니까요."

"너 거기가면 안전한 것은 맞지?"

"운명을 믿을 뿐입니다."

요한은 대수롭지 않게 웃고 있지만, 종교적 이벤트가 생기는 것은 빼박이겠구나 싶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꺼내진 오크펠슨의 고리타분한 역사에 대해서는 굳이 질문조차도 하지 않았다.

판매할 정보를 갈무리하는 동안에 든 의문은 세 개의 도시 중에서 모든 유저가 오크펠슨으로 와야만 하는 걸까.

각 도시별로 충족해야만 하는 조건이 있을 것 같았다. 그것까지 확인하면 더 목돈을 벌겠지만, 부캐라도 키우지 않는 이상 확인하기는 어렵다.

고민을 더 잇는 동안에 시점이 바뀌며 시네마틱 모드가 시작되었다.

*       *       *

사막의 모래보다 더 황폐한 땅은 황무지가 끝에 끝을 이었다.

절망하는 산맥조차 끊어져 그보다는 훨씬 작고 초라한 산들을 넘어 보이는 것은 거대한 몬스터의 뼈를 기둥에 차곡차곡 쌓인 흙벽이 인상적인 도시였다.

오크펠슨.

뉴 알른이 만들어지기 전보다 더 오래 전에 세워진 도시.

이곳은 죄를 짓거나 전사로서 도전을 위해 절망의 산맥으로 가는 이들의 쉼터였으며 또한 종점이었다.

뉴 알론처럼 세 개의 종족에서 전폭적인 지원이 있지 않았다.

죽음과 죽음이 겹쳐 쌓아올려진 곳은 목책에 의지했고 그 뒤에는 허름한 흙벽뿐이었다. 그마저도 몬스터들에 의해 부서졌기 일쑤였다.

강철을 구할 수 없다. 흙과 나뭇가지로는 파도와 같이 몰아치는 몬스터들을 막을 수 없다.

오크펠슨이 될 초라한 야영지에서 오크들은 답을 찾았다.

적으로 적을 막으라.

몬스터의 뼈를 박아 기둥을 세우고 가죽에 흙을 담아 벽으로 만들었다.

그 위에 썩은 피가 뿌려지며 절망의 산맥을 넘는 몬스터들도 기피를 하는 공간이 되었고, 그곳에서 얻은 작고 보잘 것 없는 평화는 도시가 되었다.

*       *       *

"도시 맞지?"

시네마틱 모드가 끝나고 직접 보게 된 오크펠슨은 뭐라고 표현할 단어가 퍼뜩 떠오르지 않았다.

몬스터의 뼈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도시다.

석양을 받아 피처럼 붉게 물든 황무지가 밝고 따스하게 보일 정도인지라 밤이 되면 사실상 네크로폴리스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훌륭한 도시입니다."

"…어디가?"

"들어가 보면 알게 될 겁니다. 저곳만큼 활기가 찬 곳은 없으니까요."

"망자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도대체 오크펠슨은 어떤 컨셉을 가진 곳일까. 잘못해서 유저가 잘 유입되지 않는 도시라면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나에게 적자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도전과제, 오크펠슨의 첫 방문객을 달성하였습니다.]

[도전과제, 두 개의 도시남아를 달성하였습니다.]

도전과제 보상으로 각각 오크어학사전과 추가 능력치 1을 받았다.

"뉴 알론 방향에서 왔군."

"정체를 밝혀라."

성문에서 오크 경비병들이 나와 요한을 경계했다. 뉴 알론이 깔끔한 판금갑옷에 창이었다면, 이들은 뼈로 만들어진 갑옷에 낫과 도끼를 들고 있었다.

"데스티아 여신교의 요한이라고 합니다."

"뉴 알론 시민 썩이나감이다."

요한이 말에 내렸기에 나 또한 땅에 발을 딛고 록에게 받은 시민증을 내밀었다.

"데스티아 여신교. 용건은 뭐지?"

"순례입니다."

"저자도?"

"운명을 따를 뿐이죠."

"……."

오크 경비병은 날 못 마땅하게 아래위로 훑어봤다.

오크펠슨에도 거르는 놈들이 뉴 알론으로 가는 겪이니 그러려니 했다.

"인간 따위가 여길. 쳇."

다른 오크 경비병이 혀를 차는 것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오크의 터전에서 그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 종교인과 함께 썩 달갑지 않은 인간이 함께 왔으니 좋게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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