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73화 고인물은소문의중심.
"나에 대한 찌라시가 특별한 것이 없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내 캐릭터가 워낙 관종이기에 어지간한 막말과 조롱으로는 개념글에 올라갈 수 없었다.
방금 전에 본 찌라시 정리글과 동일한 수준이라면 혹하는 마음도 들었다.
0. 들어가기에 앞서서 이 씨벌새끼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어서 씀. 개인적으로 나뿐만이 아니라 업계에서 이놈에 대해서 엄청 궁금해 함.
이 솔직담백한 서론에서 혹시 나한테 닦인 적이 있는 놈인가 싶었다. 그게 아니면 나한테 연락했다가 씹힌 업계 관계자들일까.
1. 썩이나감은 혼자 움직임. 기본적으로 어디 엮이는 것에 관심이 없음. 천하제일 길드나 스피릿 길드는 둘째 치고 독고무적과 흑군의 길드 가입 제의마저 쌩깜. 어지간한 다크게이머들은 사람 취급도 안 하는 곳이라서 업계 사람들에게 재수 없는 놈으로 낙인찍힘.
1번 항목이 알려지면서 예상한 부분이다.
전작에서 특히 다크게이머들을 향한 비난과 무시는 엄청났다.
독고무적도 마찬가지였던 인간인지라 그가 내게 한 제의는 예전 기준으로 보면 경악스러운 정도였다. 사냥터에서 감히 겸상도 못하게 하던 작자들이었으니까.
어쨌든 그로 인해 업계 사람들이 시기를 샀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ZI존짱짱맨 때부터 이미 그딴 시기는 트럭 몇 대에 싣고도 남을 정도로 사 왔다.
2. 다크로얄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여러 조건 때문에 히든레코드 쪽과 주로 거래를 트는 중이라 히든레코드가 이놈에게 최대한 편의 봐주는 것으로 보임. 그래서 다른 업계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음.
3. 다들 처음에 이 새끼 처음에 다크게이머가 아니라 쌀먹이라 생각했음. 튜토 끝나고 해골 잡고 얻은 아이템을 그 자리에서 가상화폐랑 바꿔먹은 거랑 스킬북 팔아먹어서임.
4. 관종러? 맞음. 다크게이머 중에 저렇게 경박한 놈 없음. 다들 이미지 신경을 씀. 즐겜러? 맞음. 그게 아니고서는 저렇게 못함. 노출광? 이것도 맞음. 대도시만 벗어나면 귀신 같이 팬티만 입고 돌아다님. 이 게임 없었으면 알몸에 코트 하나 입고 돌아다녔을 놈임.
이 부분들은 대충 알고 있던 거다.
노출광이라 불리는 것에는 여전히 나만 특별하구나라고 느꼈다.
특히 전투 중에는 연미복 같은 아바타 스킨도 해제하는 이유는 내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서다.
피부 위에 무언가가 입혀지는 순간부터는 내 어깨와 팔, 손목의 궤적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전투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이건 어떤 비난과 조롱을 들어도 고수해야만 했다.
5. 플레이 스타일보면 다른 게임에서 온 뉴비 맞음. 특히 조작을 보면 어드벤쳐나 격투게임 쪽의 헤비한 유저로 추정. 스킬보다는 주로 평타 위주로 분석한 것이 그 이유임.
6. 그로 인해 썩이나감이 버그나 핵을 썼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건 아님. 버그나 핵 같아 보일 뿐임. 초반에 그 지랄한 애들 이미 다 영정 당함.
7. 플레이적으로 들어간 분석은 플레이 보정치를 최대한 0에 가깝게 한 것으로 보임. 간단해 보이지만 VR 게임에서 실제처럼 움직이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고 특정 구간까지 올라오기 너무 힘듬. 그래서 실제로 운동을 한 경력이 있을 거라고 보고 있음. 특히 기계체조나 검도.
7번 항목을 보면 앞으로 나와 유사하게 게임을 플레이하려는 유저가 더 늘어나겠구나 싶었다.
8. 얼마 전에 독고무적과 흑군이 뜬금없이 죽고 부활한 경우가 있음. 골드캐시가 1구역 통제했던 시기인데 이걸 해결한 것이 정황상 썩이나감이 맞음. 독고무적과 흑군은 팔짱만 끼면서 관전했다고 함.
9. 이번 통제도 골드캐시 팀원인 궁신이 주도하에 이루어짐. 즉, 1티어 골드캐시와 신입의 대결구도임.
10. 추가로 썩이나감의 강함에 대해서는 숨겨진 직업이라는 의견이 강함. 그게 아니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임.
결국 핵심은 마지막이다.
구멍이 난 댐을 손가락으로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직업에 대해 물어볼 것이고 나만 특별한 것이 불평등함을 호소하겠지.
"그때는 대가리부터 깨 줘야지."
최소 열두시간은 게임을 돌려야하니 오늘의 마지막 식사를 만끽하고 히든레코드에 접속했다.
히든레코드의 정보 및 공략 쪽은 게시글 등록 정도가 확 줄어들었다. 반면에 포션부터 각종 아이템의 판매란만 불티나게 리젠되고 있었다.
"애들도 템팔기 급급하네."
이번 통제로 인해 모든 아이템 시세가 올랐으니 악성재고로 쌓여 있던 것들을 풀어내기에 부족함은 없던 것이다.
"아니면 판매할 가치가 있는 정보가 아니거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봐도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록이 시장이 되도록 골드캐시와 경쟁하는 거니까.
* * *
카오가 되면 일반적으로 NPC들과의 거래가 불가능하다. 또한 누군가에게 죽어도 하소연할 수 없기에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위치가 들킨 낙오된 화전민의 마을을 벗어났다.
지금은 게임에 돌아가서 카오가 풀릴 때까지 모든 이목을 피하고 사냥을 다닐 수밖에 없다.
채집형 던전에서 약초와 채광 따위를 하며 도전과제나 쏠쏠하게 채웠다.
처음에는 지루했으나 어쩐지 엘리멘탈 소울1 초창기가 생각이 날 정도의 단순작업에 오랜만에 머리를 비우고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카오가 풀리고 인벤토리에 가득 쌓인 풀떼기를 보면서 옛날 양념치킨집에서 주던 양배추 샐러드가 그리워질 때였다.
[독고무적 : 잘 지냈나?]
내가 궁신을 포함한 천하제일, 스피릿 길드에게 통제를 당하고 있음에도 방관하신 그분에게서 귓말이 왔다.
[썩이나감 : 몸 건강합니다.]
[독고무적 : 잘 봤다. 30초의 사신.]
[썩이나감 : 좀 쩔었죠.]
상대는 내 직업에 대해 알고 있는 두 명 중 하나였다. 그랬기에 커뮤니티에 화제가 된 내 학살영상에 대해 굳이 감추려고 들지도 않았다.
[썩이나감 : 그쪽은 어때요? AC인사이드에서 개념글 봤는데.]
이쪽은 완전 방치가 되었던 만큼, 독고무적이 한 회의에 대해 들을 이유가 있었다. 그걸 인터넷 찌라시로 접하는 것은 썩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독고무적 : 그 찌라시가 자네 쪽은 아니지?]
[썩이나감 : 다른 개념글에 적혀있잖아요. 전 혼자라서 뭘 못해요.]
[독고무적 : 꽤 신빙성이 있나보군.]
[썩이나감 : 근거 없는 뇌피셜보다는 그럴 듯 해보이더군요.]
물론 그걸 전부 믿지는 않았다.
온전한 사실을 두고 몇 글자만 바꾸면 그건 완벽한 거짓말이 되니까.
[썩이나감 : 통제는 잘 끝났습니다. 스피릿 길드는 손을 땠고 천하제일 길드는 없어졌죠.]
[독고무적 : 훌륭한 성과다. 길드원이었다면 포상이라도 줄 텐데.]
[썩이나감 : 업계에서 찍혔다잖아요. 저도 먹고 살아야죠.]
[독고무적 : 흠, 아쉽군. 어쨌든 회의 결과는 최악은 아니지만, 최상도 아니었다.]
독고무적은 회의록 전체를 보여주는 수준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전개로 회의가 이어졌는지 설명해주었다. 그 덕분에 마치 내가 현장에 있던 것처럼 이해가 되었다.
[썩이나감 : 흥미롭네요.]
[독고무적 : 재밌는 부분이 있지?]
[썩이나감 : 예.]
[독고무적 : 어느 부분인지 말해 줄 수 있나?]
[썩이나감 : 첫 번째는 뉴비와 올드비로 나눠진다는 것이죠. 어떤 게임이라도 결국 랭커 혹은 헤비 과금러의 뇌구조는 같거든요.]
그런데도 전작 출신과 아닌 자들의 길드 성향과 의견이 확연하게 달랐다.
어떤 것이라도 독점한다는 것의 가치를 모를 바보 들이 아닌데도 말이다.
주변의 평판이 거슬릴 수 있겠지만, 애초에 커뮤는 커뮤에 그친다.
거대길드들이 작심하면 그딴 의견 따위는 귓등으로도 오지 않게 박살내 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왜 힘이 없는 자들의 의견에 움직이지 않으려고 할까.
[썩이나감 : 견제 받고 있으시네요.]
[독고무적 : 그래.]
[썩이나감 : 좋겠네요. 적폐세력으로 간주 받아서.]
결국 세력간의 경쟁이라는 뜻이었다.
실제로 휘파람이 올린 통제길드 목록 및 관여자 명단을 지금에서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구린 구석이 많았다.
지금 사태에서 누가 이득을 볼 것인가.
휘파람. 골드캐시. 그리고 새로운 게임에 들어온 세력들. 이 세 박자가 잘 어울려져 있었다.
골드캐시의 뒤에 다크로얄이 있는 것과 달리, 내 쪽에 도와주었으면 좋았을 히든레코드는 템팔기에 급급하다.
다만, 현 랭킹 1,2등과 그 길드와 함께한다는 점은 다르다.
[독고무적 : 썩은 줄을 잡은 것 같나?]
[썩이나감 : WD만 바르면 황금줄일 것 같은데요.]
[독고무적 : 물론이지. 난 다른 유저들을 좀 만나야 하니까. 나머지는 흑군에게 들어라.]
독고무적은 절대로 가만히 당할 성격은 아니다. 적폐세력으로 몰아붙인다면 철저하게 되갚아 줄 것이다.
[썩이나감 : 귓말 가능합니까?]
[흑군 : 물론이야. 30초의 사신.]
[썩이나감 : 소름 돋네요. 그 별명.]
[흑군 : 누가 그렇게 설치래? 저번에 듣지 않았다면 네 직업을 공개하라고 나부터 압박했을 거야.]
흑군의 장난기 가득한 말이 절대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독고무적과 함께 알려 준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썩이나감 : 독고무적 씨가 나머지 물으라고 해서요.]
[흑군 : 놈이 세력을 규합하고 내가 대응을 하기로 정했거든. 일단 휘파람 놈을 누가 찌른 덕분에 작정하고 들쑤시고 있어.]
흑군의 말을 토대로 정리하자면 휘파람이 가지는 영향력은 독고무적이나 흑군조차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휘파람이 일반채팅으로 치면 그의 추종자들이 각종 채팅에서 그 말을 복사 붙여넣기를 해서 다른 글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그 여파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휘파람이 통제 중인 길드의 사냥터에 가면, 그 통제가 저절로 풀릴 정도라고 했다.
[썩이나감 : 개들 다른 게임 출신이죠?]
[흑군 : 처음에 세 군데는 그렇고 나머지는 평소에 눈치를 많이 보던 작은 규모 애들이었지.]
처음에 기세를 타도록 시작을 잘 끊어 주었다는 것이니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도대체 휘파람과 그의 조력자들은 얼마나 준비를 한 것일까.
[흑군 : 템팔이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썩이나감 : 전 혼자 움직여서 모르죠. 이렇게 큰 판으로 움직일 줄 알았으면 통제 당하고 있겠어요?]
[흑군 : 그건 맞지. 1구역에서 황금추적자한테 통제당할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썩이나감 : 통제 때문에 전혀 신경을 못 썼는데, 시가전은 어때요?]
지금 상황만 봐도 아이템 시가가 올라서 업체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여기다가 록이 아닌 자닐이 시장이 된다면 완전히 그쪽이 원하는 방향이다.
다소 우세하던 3구역과 2구역은 팽팽해졌는데, 1구역은 통제해방전쟁이 불거지면서 자닐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1구역에서 시가전을 할 인원이 골드캐시 이외에는 전무한 수준이라서다.
[썩이나감 : 좀 곤란해졌네요.]
[흑군 : 너에게는 그쪽이 좋지 않나?]
흑군의 의문은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나 또한 똑같은 인물일 수밖에 없다.
[썩이나감 : 글쎄요. 좀 노는 물이 달라서요.]
ZI존짱짱맨 때와 지금의 생태계가 사뭇 달라졌다. 당시보다도 더 조직화되고 작업의 스케일이 굉장히 커졌다.
예전이라면 지금 같은 일은 상상도 못한다.
독고무적이나 흑군도 한 방 얻어맞은 것이 이래서다.
[흑군 : 그렇겠지. 앞으로도 그래야만 할 거다.]
[썩이나감 : 그쪽도 마찬가지인 것 맞죠?]
또한 지금의 업계는 헤비과금러에게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기 시작했다.
만약 그 흐름을 놓친다면 흑군도 고생을 꽤나 할 것이다.
[흑군 : 아마?]
[썩이나감 : 저도 아마요.]
[흑군 : 말 장난이군.]
[썩이나감 : 전 증명은 다 했어요.]
골드캐시에세 일방적으로 통제를 당하던 독고무적과 흑군을 도와주었다. 심지어 궁신의 통제를 풀 때는 조력을 거부당한채로 혼자서 해냈다.
난 할 만큼 했다. 무언가 더 바란다면 나로서도 불만이다.
[흑군 : 너를 휘파람이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썩이나감 : 개가 왜요?]
[흑군 : 자신은 결백하다. 그 찌라시를 유포한 사람에게 죄를 묻겠다.]
[썩이나감 : 설마?]
[흑군 : 그게 너라고 하더군.]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일이 아주 더럽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