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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66화 (66/201)

제066화 고인물은표적이다.(2)

뉴 알론은 아직 유저가 파헤치지 못한 요소가 많았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히든퀘스트나 이스터에그가 발견되고는 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무도회였다.

무도회를 열 수 있을 정도로 크고 장식이 잘 되어 있는 건물을 가진 사람이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켰을 때의 이벤트였다.

한 회에 소모하는 금액은 최소 100골드.

NPC들을 고용하고 음식과 음료 등 모든 것을 처리했을 때에 드는 경비였다.

거기에 장점이 있다면 단 하나.

해당 장소는 허락되지 않은 이들 이외에는 들어올 수 없다. 또한 무도회 시간 동안에는 PK가 불가능하다.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는 공간이니 마다할 이는 없었다.

그랬기에 현 한국서버의 선택받은 이들이 보일 수 있었지만 분위기는 마냥 좋지가 않았다.

독고무적이 초대한 것은 고작 서른 명. 진형을 가리지 않고 가장 강한 길드의 대표들이기에 누구 하나 랭커이지 않은 이가 없었다.

"왜 무과금 애들 말을 들어주죠? 게네들 약코만 하잖아요."

"그렇다고 좋은 사냥터를 죄다 독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게임하기 X 같지."

"꼬우면 강해지면 되죠. 아예 길드들 들쑤시는 문제아들 다 썰자니까요?"

"사냥하기도 바쁜데 왜 굳이 PK를 해서 카오 상태가 되냐고요."

30분이 넘도록 두 가지에서 바뀌지 않았다.

필드에서 닥사를 했다면 경험치를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뉴비와 올드비의 차이? 아니. 기존유저와 신규유저의 차이다.'

통제를 고수하는 입장은 기존 엘리멘탈 소울1의 유저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반면에 후자는 다른 게임에서 넘어온 이들이었다. 주로 무과금이 많으며 유저의 유입과 이탈이 잦은 편이었다.

독고무적은 손깍지를 끼고는 그 위에 턱을 슬쩍 올렸다. 지금의 사태는 생각보다도 지루하고 얻을 것이 없었다.

"모든 유저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지. 그렇다고 모든 유저들에게 피해를 받을 이유도 없다."

잠자코 있던 이들 중 하나, 흑군이 입을 열었다. 소란스러웠던 무도회는 침묵과 함께 그에게 시선이 쏠렸다.

"게임을 하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적이 되기도 하고 아군이 되기도 하지. 그래도 지금은 의견을 합칠 때야. 그렇지 않나. 독고?"

"물론이다. 엘리멘탈 소울1에서의 방식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만, 서로 납득할 수 있는 범위는 정해야겠지. 이해가 없으면 다툼 후의 화해도 없으니까."

독고무적은 겨우 이번 사태로 다른 이들을 찍어 누르려는 것이 아니다.

엘리멘탈 소울2는 이미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전작의 유저와 현 시점의 트렌드를 적절히 조합해 새로운 유저층이 많았다.

노는 물이 달라졌는데 예전처럼 굴어서는 안 된다.

독고무적은 다른 이들의 이해가 필요했다. 그래야 그들을 무너트리고 정점에 설 테니까. 그게 그의 방식이었다.

'저 능구렁이 새끼.'

그걸 잘 아는 흑군은 말없이 웃고 있었다.

독고무적은 강직해보이고 때로는 부드러운 사람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알멩이를 볼 때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그 또한 그랬으니까.

*       *       *

부활지점은 절망의 산맥에 가는 길목에 있는 주둔지 중 하나인 낙오된 화적민의 요새였다. 이곳은 뉴 알론에서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은 범죄자들이 사는 곳이었다.

양쪽에 산을 끼고 있는데 공중에서나 지상에서나 다양한 몬스터가 난입을 하고 주어지는 퀘스트 또한 일반적인 도덕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이곳을 부활할 거점으로 삼은 것은 그런 것을 꺼려하는 유저들로 인해 무법자 성향에 가까운 유저들이 모였다는 것과 뉴 알론 주변의 거점 중에서 유독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주변에 숲이 있었기에 궁신과 같은 궁수라고 하더라도 날 저격하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다.

퍽!

전방을 보던 와중에 수풀 사이에서 반짝임이 보였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자 머리카락을 훑으며 화살 한 대가 나무에 박혔다.

"졸라 잘 쏘네."

내가 창공의 독수리를 가진 것처럼 놈은 그보다 더 높은 색적 스킬을 갖진 것 같다. 물론 저번 1구역에서의 사태를 보면 황금추적자가 피해보상으로 쥐어준 거겠지.

퍼버버벅!

"미…친!"

나도 모르게 마음을 놓아 버렸다. 대낮임에도 수많은 별이 반짝였고 내 몸을 수놓았다.

[YOU DIED.]

처음에 든 생각은 궁신이 스킬을 쓴 것일 까였다. 그건 내가 당황해 반응을 못한 쪽팔림에 나온 변명일 뿐이었다.

햇빛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서 그렇지 스킬 임펙트가 아니라 그저 평타였었다.

회색으로 변한 시야를 뒤로 하고 내가 죽었던 영상을 돌려봤다. 조금 더 명확하게 보기 위해 흑백으로 확인한 결과 평타가 맞았다.

즉, 궁신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거다.

[원샷원킬에게 PK를 당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왜……?"

로그를 살피니 날 죽인 유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였다.

원샷원킬.

스피릿 길드장인 그와는 구면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될 사이도 아니었다.

스피릿 길드와 천하제일 길드와 함께 날 영입하려고 했을 때에 앙금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스피릿 길드와 원샷원킬은 저번 필드보스 때 같이 레이드를 뛰었기에 나쁜 감정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궁신의 편에서 스피릿 길드를 끌고 올 줄이야.

"아. 이 새끼 좃도 없네."

"왜 애한테 쫄았지?"

"변태새끼 뻗은 것 보소."

내 시체 주변으로 한 무리의 유저들이 몰려왔다. 놀랍게도 스피릿 길드만이 아니라 천하제일 길드까지 섞여 있었다.

스피릿도 놀라운데 그들과 앙숙인 천하제일 길드까지 끌고 왔을 줄이야.

저 앙숙들을 궁신이 어떻게 구슬린 걸까.

나라면 물과 기름 같은 두 길드를 끌고 오지 않았을 테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감행했다면 진짜 칼을 갈았다는 것 말고는 표현할 수 없다. 아예 날 여기에 가둬서 시가전에 신경조차 쓰지 못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독고무적이 당분간 지원을 하지 않는 이상 나는 부딪힐 수밖에 없다.

[썩이나감 : 날 감당할 수 있겠어요?]

빈틈이 있을까 싶어 원샷원킬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다행이게도 귓속말 거부 상태는 아니라 금방 답이 왔다.

[원샷원킬 : 놀랐나?]

[썩이나감 : 궁신이랑 붙어 다니는 것도 그렇고. 스피릿의 개가 된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놀랍네요.]

[원샷원킬 : 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안 되지. 어차피 이 바닥이 다 그런 거고.]

[썩이나감 : 다크게이머에게 고용되는 소감은 어때요?]

[원샷원킬 : 너 같은 쌀먹보다는 믿음직스럽던데?]

가볍게 잽을 날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카운터였다.

궁신은 그렇게 신뢰를 할 만한 인물은 아님에도 원샷원킬이 이렇게 나온다면 철홍과 이간질은 포기다.

[썩이나감 : 척살갑니다. 당신들 모두.]

[원샷원킬 : 독고무적과 흑군의 지원도 없이 혼자서?]

[썩이나감 : 못할 것 같지?]

미안하지만 혼자서 가능하다.

골드캐쉬를 상대로 불사자라는 직업이 까발려져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낙오된 화전민의 마을에 부활한 후.

"이 새끼 이제 왔네."

"로그아웃 안 했네? 왜 대기 탔어? 쫄? 쫄? 쫄?"

"변태 통제 실화냐? 실화다!"

천하제일 길드원들이 먼저 보였다.

랭커도 아니지만 열 명에 달하는 유저가 마을중앙에서부터 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썩 반갑지가 않았다.

특히 저렇게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꼴은 어처구니가 없다.

불과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나와 마주치면 혀를 차고 등을 돌리던 것이 저들이었으니까.

천하제일 길드는 2개조인 것 같다.

마을에서 날 기다려서 목적지를 알려주는 대기조. 그리고 일정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고 마을 바깥에서 있는 포위조.

몰이사냥을 하듯이 영역을 좁혀두면 거기서 궁신과 스피릿 길드가 날 공격하는 식일 것이다.

[푸히이이잉!]

"확인해보자고."

즉각 말을 소환해 바깥으로 나섰다.

"변태새끼 쫓아라!"

"도망가지 말라고. 이 변태야!"

뒤에서 소리를 치며 대기조가 쫓아왔다.

전체가 시끄럽게 소리를 치거나 함성을 지르는 것처럼 개중에서 조용히 타자를 치는 놈이 있었다.

나누우리.

천하제일 길드의 포위조에서 연락망은 저놈이다.

두두두두!

놈들을 무시하고 말을 몰았다.

[창공의 독수리를 사용합니다.]

뒤에서 거리가 조금 생기자마자 창공의 독수리를 사용했다. 인근의 지도가 밝아지며 날 PK했던 궁신과 일격필살의 위치가 잡혔다.

궁신이 북쪽, 일격필살이 남쪽이었다.

"여기로는 못 가지!"

"몸으로 막아!"

그렇다면 우측으로 말머리를 틀자 수풀에서 튀어나온 천하제일 길드원 하나가 말을 끌고 와 앞을 가로 막았다.

쿠웅!

"큭!"

"못 가지!"

천하제일 길드원이 택한 것은 육탄방어였다.

서로 약간의 피해를 입었지만 단순한 사고로는 카오가 되지 않았다.

숲속길이라 한 명만 가로 막아도 수풀 속을 파헤치고 가야만 한다.

드드드득!

그걸 의식했을 때, 날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는 스피릿 길드원 둘이 보였다.

두 눈에 담은 순간 낙마를 하듯이 뛰어내렸다.

머리부터 떨어질 것을 팔부터 떨어졌다. 큰 진동과 함께 체력이 절반은 날아갔다.

이 놀라운 방어력이 보여주는 기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몇 번이고 죽을 수 있지만, 하나라도 더 많은 정보를 취득한 후에 죽어야만 한다.

투두두둥!

내가 있던 곳에 화살비가 떨어졌다.

평타가 아닌 스킬이지만, 그게 어떤 것인지 분석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헤이스트를 사용합니다.]

[벽타기를 사용합니다.]

말로 도망치는 것은 포기다. 승마 관련 스킬이 없는 이상 적들이 몸으로 막으면 오히려 말위에서 화살을 맞고 죽을 가능성이 컸다.

결국 믿을 것은 두 다리였다.

평지처럼 나무 꼭대기로 올라가 다른 나무로 뛰어다녔다.

피빗! 핏!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나를 노려왔다.

"저 새끼 도망가잖아. 스피릿 애들아 뭐하냐!"

"우리가 다 해줘? 응?"

"활잽이 새끼들 떠먹여줄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것 봐라!"

밑에서는 천하제일 길드원들이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저렇게 소리를 지르면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편하니 나로서는 더 이득이었다.

벽타기가 끝나니 아까처럼 안정적이게 나무 사이를 뛰어다닐 수 없다.

"일단 여기까지."

다음에는 서쪽으로 찔러서 반응을 보자.

퍽! 퍽!

나무 꼭대기에서 움직임을 멈추자 묵직한 화살 두 대가 내 몸에 꽂혔다.

스킬, 더블샷.

기본적인 스킬이지만 충분히 딜량을 뽑아낼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하나만 빗맞아도 죽을 판이니 이건 죽음을 피할 수 없다.

[YOU DIED.]

시야가 회색으로 변하고 몸뚱이는 바닥에 처박혔다.

이번에는 주변의 조롱을 들을 사이도 없이 곧바로 낙오된 화전민의 마을에서 부활했다.

"벌써 부활했네?"

"그냥 포기하고 겜 접지?"

낙오된 화전민의 마을에는 아직 두 명 정도의 천하제일 길드원이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며 의기양양했지만, 서쪽으로 말머리를 가자 놀라 소리쳤다.

"저 새끼 잡아!"

"시간을 늦춰야해!"

머릿수가 아무리 많아도 지금의 천하제일 길드의 대기조와 포위조의 전력은 동쪽으로 많이 쏠린 상태였다.

마을에서 날 기다린 대기조가 고작 두 명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반대쪽을 흔든다.

몇 번 정도 반복하면 적들의 포위망의 형태를 일그러질 것이다.

그때까지 얼마든지 죽어줄 것이다.

PK로 인해 카오가 된 적이 많아질수록 나에게는 이득이니까.

*       *       *

"흥. 쓸데없는 짓."

궁신은 천하제일 길드와 스피릿 길드로부터 끊임없이 보고를 받고 있었다.

썩이나감은 처음부터 눈치를 차렸는지 자신과 궁신이 있는 곳을 제외한 다른 지역으로 도주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는 죽어나갔다.

동쪽을 찌르고 서쪽을 찌르며 움직였지만 기어코 자신과 원샷원킬이 있는 쪽으로는 오지 않았다.

[궁신 : 나는 서쪽으로. 님은 동쪽으로 옮기죠.]

[원샷원킬 : 좋다.]

그의 요청을 원샷원킬도 거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껄끄러워하던 원샷원킬도 이제는 썩이나감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철홍 : 이때까지 놈이 움직인 동선이다. 숙지해라.]

잠자코 현장지휘로 하며 썩이나감을 옥죄고 있던 철홍도 그답지 않게 자료도 공유했다.

[궁신 : 썩이나감이 언제까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궁지에 몰렸으니 놈도 곧 반항을 하겠죠.]

[원샷원킬 : 하라고 해.]

[철홍 : 바라는 바다.]

궁신은 슬쩍 겁을 주며 떠보았지만, 둘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니 잘 가라. 썩."

궁신은 자신의 가시권으로 들어온 썩이나감을 향해 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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