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64화 (64/201)

제064화 고인물은어그로다.

다섯 개의 시체산은 차례대로 몬스터를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후순위일수록 더 강력한 몬스터를 나타나게 했다.

세 번째부터는 사망한 인간병사는 나오지 않았다. 오로지 오크들만 나왔는데 사망한 오크병사는 셋, 사망한 오크중보병은 둘이었다.

[그워어어어!]

인간보다 거대한 체격에서 뿜어 나오는 함성은 망자가 되어 뭉개지고 어긋났어도 변함이 없었다.

[파워샷을 사용합니다.]

검에서 슬링으로 바꾼 뒤에 남은 시체산 두 개를 빙빙 돌며 쇠구슬을 연달아 쏴 댔다.

어쨌든 느린 오크는 덩치도 큰 편이라서 10M 이내라면 조준 따위는 필요없이 마음껏 휘둘러도 될 정도였다.

쿠웅!

먼저 사망한 오크병사1을 쓰러트렸다.

계획대로라면 이대로 남은 오크병사 둘이 목표였지만, 전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미니맵 상으로 남은 시체산은 두 개가 남북에 있다. 난 그 중앙에 있는데 동쪽은 오크병사가 오고 있었고 속도가 느린 오크중보병이 어쩌다보니 서쪽을 점한 상태였다.

무지성으로 사망한 오크병사를 처리하려다가는 앞뒤로 적을 맞이할 공산이 컸다.

완전히 막히기 전에 한쪽을 뚫어야 생존율이 높아진다.

잠깐 쉬며 스태미나를 회복하는 동안에 오크중보병이 가까이 다가왔고 등뒤에서 오크중보병이 공격모션을 취하는 순간.

[벽타기를 사용합니다.]

너무나 가팔라서 이동속도가 떨어지는 시체산을 평지처럼 뛰어갔다.

망자들은 나를 쫓아 시체산을 천천히 올라왔다.

[그워어어어.]

놈들이 절반을 오르기도 전에 나는 아예 바닥까지 내려왔다.

사망한 오크병사와 오크중보병이 나를 목표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 대열은 아주 예쁜 일렬이었다.

퍽! 퍼벅!

스태미나를 모두 쏟아낼 기세로 슬링을 사용했다. 한 번씩 건맨의 소울 효과로 인해 일반공격이 두 번씩 터지며 네 번째 시체산이 일어남과 동시에 놈들을 정리했다.

이번에는 사망한 오크병사는 하나도 없었다.

전부 사망한 오크중보병이었으나 숫자는 하나가 적은 넷이었다.

[헤이스트를 사용합니다.]

먼저 놈들에게 1초라도 빨리 다가가야만 한다.

[그워어어어어!]

[그우! 그우우!]

사망한 오크중보병들이 나를 발견하고 메이스를 휘둘렀다. 무려 넷이나 공격을 하니 어지간한 탱커들도 버틸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등가교환의 방패를 사용합니다.]

그랬기에 방어구 하나도 없이 팬티 한 장을 걸친 내가 받아내면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5초의 공격불가가 함정이지만, 내 공격력의 30% 만큼의 방어력을 얻는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네 번의 공격을 받으며 체력이 조금씩 깎였다. 그걸 감수하면서 한 것은 몸통박치기로 중구난방으로 서 있던 오크중보병들을 한 자리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 뒤에는 곧바로 구르기와 백스탭으로 거리를 확보했다.

오랜만에 힐링포션(소)로 체력을 회복한 뒤.

[버서커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파워샷을 사용합니다.]

아까처럼 시체산을 빙빙 돌며 슬링을 휘둘렀다.

일렬로 쫓아오는 사망한 오크중보병을 하나씩 제거했다.

남은 사망한 오크중보병은 두 마리일 때는 슬링이 아닌 검을 들었다. 또한 두 마리라면 일렬로 서있지 않아도 감당할 수 있다.

터엉!

정면에서 공격하는 사망한 오크중보병의 도끼를 튕겨냈다. 엇박자와 다름없어서 순간 가슴이 철렁했지만, 수없이 반복된 기계적인 움직임은 어긋남이 없었다.

푸욱! 촤악!

평타캔슬로 큰 데미지를 줬지만 죽이지는 못했다. 숨통을 끝내고 싶어도 그럴 시간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옆에 바짝 붙은 다른 사망한 오크중보병의 공격에 꼼짝없이 맞을 터였다.

터엉!

몸을 비틀며 옆에서 오는 공격을 쳐낸 후.

[그워어어어!]

앞서 끝내지 못했던 사망한 오크중보병이 경직이 끝나자마자 공격모션을 취했다.

서걱!

도끼날이 닿기 전에 내 검이 먼저 놈을 베었다. 경험치가 되며 무너지는 놈에게 시선을 떼고 혼자 남은 사망한 오크중보병을 보았다.

쿵! 쿵!

혼자 남은 오크중보병은 손에 들고 있던 메이스와 방패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거리가 있으면 모를까 근접한 상황에서는 저 모션이 반갑다.

다시 괴성을 지르기까지 아무리 공격을 해도 공격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놈이 아니었구나. 필시 교단이 보낸 놈이겠어. 결국 이 흑마법사 델로가 마지막 수단을 꺼내게 하는구나!"

시체산은 일정시간이 지나면 하나씩 깨어나지만 예외가 있다면 마지막인 다섯 번째다.

흑마법사 델로는 지팡이를 높게 들어 올리더니 벼락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아무런 지식도 없었을 때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단칼에 목을 베었었지만, 애석하게도 다섯 번째 시체산에 파묻힌 그것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무적 상태였었다.

구구구구구!

다섯 번째 시체산에서부터 시작된 지진이 필드를 조금씩 크게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시체산에 생긴 균열이 점점 커져갔다.

산사태처럼 시체가 떨어지는 가운데 단 하나의 존재만이 우뚝 서있었다.

[나…는 황야의 투사다.]

사망한 오크중보병보다 더 커서 2.5M는 될 것만 같은 거구. 근육을 억누르는 것 같은 강철갑옷을 입고 짐승의 가죽을 허리에 두른 망자.

오크의 고위 언데드 중 하나인 그레이브파이터였다.

"이 델로가 명한다. 저기에 있는 인간을 죽여라!"

[나…는 싸운다.]

이야기 속에나 볼 법한 프랑케슈타인처럼 놈은 어눌한 목소리와 초점을 잃은 눈으로 나라는 적을 찾았다.

[죽…어라!]

그레이브파이터는 땅을 박차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이 던전에서 보스는 총 4페이즈로 그중에서 3페이즈까지가 그레이브파이터의 것이다.

마지막 페이즈가 아니고서는 흑마법사 델로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랬다가는 통제를 잃고 날뛰는 그레이브파이터를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반면에 그걸 감당할 수 있다면 흑마법사 델로를 먼저 죽이는 것은 훌륭한 선택지다. 4페이즈까지의 절차가 무시가 되어서 퀘스트를 빠르게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권장된 파티도 아니고 혼자서는 감히 시도할 엄두조차 못내는 것이 정상이지만, 세상에는 예외가 존재한다.

서걱!

"커허억!"

움켜쥔 검은 나를 보며 웃고 있던 흑마법사 델로를 베었다. 인간형에 마법사이니 체력이나 방어력은 특히 낮은 편이겠지만, 명색이 보스라는 것을 생각하면 잡몹이나 다를 바가 없는 수준이라 헛웃음이 나온다.

사실상 그레이브파이터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도구인데다가 몰라서거나 혹은 실수로 델로를 죽여서 난이도를 급상승시키는 함정카드였다.

콰드드득!

[그워어어어어!]

델로가 죽은 후, 그레이브파이터가 양팔을 펼치며 괴성을 질렀다. 그러자 그의 몸을 옥죄고 있던 강철갑옷들이 부서져 내렸다.

3페이즈에야 그레이브파이터가 폭주를 하는데 그걸 체력이 전부 차있는 처음부터 시작한다.

쿠우웅!

[우어어어어!]

그레이브파이터가 제자리에서 높게 뛰어 올랐다. 떨어지는 지점은 내 머리 위다.

몸무게를 실은 내려찍기가 1차. 그로 인해 5M 가량의 지면이 푹 파이며 충격파가 2차로 온다.

권장레벨에 속하는 탱커도 그냥 맞으면 체력 절반이 깎이는 일격이다.

나는 2차인 충격파에 스치기만 해도 죽음확정이다.

[헤이스트를 사용합니다.]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공격범위에서 멀어졌다.

콰아아아앙!

머리 위에서 까마득하게 높이 떨어지는 것이니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충격파와 함께 먼지구름이 일어났고 그레이브파이터는 그 안을 꿰뚫으며 달려왔다.

저 돌진공격은 속도가 느린 편이지만, 판정은 괴랄해서 어설프게 피했다가는 죽기 딱 좋았다.

놈이 다가올 때에 연달아 구르기를 해 돌진을 피했다.

쿵! 쿵! 쿵!

[나…는 싸운다!]

그레이브파이터는 두 발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제부터는 평타구간이자 내가 공략을 할 시간이었다.

[신성부여를 사용합니다.]

먼저 검에 인첸트 스킬을 사용했다. 은은한 빛이 스며든 검은 묘하게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버서커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두 개의 스킬을 연달아 사용했다.

그때는 그레이브파이터가 결사항전의 영역에 완전히 들어온 뒤였다.

서걱! 퍼억!

먼저 검을 휘두른 뒤에 그레이브파이터의 주먹이 나를 가격했다.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던 체력은 뒤늦게 차오르는 피해량 대비 체력회복으로 인해 금방 처음처럼 돌아왔다.

촤아악! 퍼억! 퍽!

다시금 휘두른 일검에 돌아온 두 번의 주먹질. 체력게이지는 널뛰기를 한 것처럼 끝과 끝을 오갔다.

서로를 코앞에 두고 벌어지는 난투.

누군가가 이걸 본다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싸운다.]

열 번째 공방이 펼쳐지고 나서야 그레이브파이터는 무릎을 꿇었다.

고레벨이 될수록 보스의 스팩은 올라가는 폭이 높아지고 있었다. 던전의 패턴도 다양해져서 오히려 이곳처럼 함정은 없고 순수하게 무력으로만 밀어붙일 수 있는 곳도 많아졌다.

[그레이브파이터의 권갑.]

-등급 : 레어.

-공격력 : 607~653.

-효과 : 근력 4 상승, 체력 2상승, 공격속도 10% 상승, 이동속도 5% 감소, 명중LV1, 파괴LV4, 암흑속성저항LV3.

이번 던전에서 수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 물건이었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흑군이었지만, 그가 쓰고 있는 장비는 이보다 더 좋을 터였다.

먼저 든 생각은 던전 근처에서 사냥하고 있는 엠페러 길드의 사람들이었다.

던전 밖으로 나오자마자 아이템을 흔들었지만, 필드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과 달리 엠페러 길드원이 한 파티 말고는 없었다.

"…뭔가 이상한데."

이곳에 사냥을 할 수 있는 것은 랭커들이지만, 엠페러 길드와 감히 경쟁하려는 이들은 없기는 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경험치 수급처인데 아무도 없는 것은 의외였다.

무슨 일이 벌어졌음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 터졌어요?"

"좀 사건이 있었어요."

"평범한 일이에요."

엠페러 길드원들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오늘 무엇 때문에 커뮤니티가 불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냥 평범한 일이라……."

모든 MMORPG게임에서 거대길드들의 사냥터 통제가 있던 것은 아니지만, 엘리멘탈 소울은 그 통제가 아주 심한 게임이었다.

엘리멘탈 소울1에서부터 즐겨온 이들에게 이건 일상이었다.

불합리하면 강해져라.

그 간단한 논리만큼 무서운 것도 없었다.

[축배를 들어라! 하나 잡았다!]

[반왕 성공! 반왕 성공!]

[씨발! 코볼트 지역 자유다!]

[X 같은 벌레길드 컷이요!]

엘리멘탈 소울2의 아웃벤을 보니 모두 항의를 하며 누워있던 자유게시판은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붉은 코볼트 리젠 지역을 통제하고 있던 길드 하나가 무너진 것이다.

공동경B구역. 전작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듣보잡 길드였다. 규모를 확인하니 10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놈들이었다.

그러니 초보구간이라고 할 수 있는 붉은 코볼트나 통제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벌써 이변이 일어났는데요."

통제를 하고 있는 길드가 무너졌다. 비록 엠페러에 비하면 듣보잡이라지만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악질입니다. 그 녀석들."

"맞아요. 통제도 가치가 있는 곳에서나 해야지."

"그래도 무과금한테 썰리냐."

"근본 없는 애들이잖아."

엠페러 길드원들도 이미 현상황을 알고 있었다.

통제가 들어가는 구역은 레벨 대비 경험치를 많이 얻거나 특별한 아이템이 많이 나오는 곳이 주다.

게임 플레이 자체에 지장이 가는 통제는 하지 않는 것이 기본매너였다.

"그렇게는 하네요. 저 지역을 왜 통제했는지."

커뮤니티를 더 살펴보니 통제가 풀린 것보다 그 대상이 공동경B구역 길드이기에 다들 환호하고 있었다.

붉은 코볼트는 초반에 자금을 확보하는 것에 꽤나 중요한 사냥터였다. 거기를 통제하고 있었으니 대부분을 차지하는 저렙유저들이 원망이 컸을 수밖에 없다.

[이제 시작이다. 과금러 새끼들 몰아내자!]

[지들만 게임하나? 우리도 하지!]

[길드 없는 사람 모이자!]

자유게시판을 시작해서 게임 내의 전채채팅에서도 현 상황에 대해 불이 붙은 상황이었다.

[휘파람 : 통제길드 및 범죄자 새끼들 목록 올렸습니다. 확인해주세요.]

전채채팅 중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