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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62화 (62/201)

제062화 고인물은계속싸운다.

"거기냐!"

도발적인 허수아비가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순간 기다렸다는 듯 높은 목소리가 들렸다.

피슉!

일반적인 화살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허수아비의 체력이 대폭 깎인 것까지 고려하면, 단일대상에게 높은 데미지를 주는 궁수의 스킬인 고뇌의 화살이다.

다만, 저건 범위형 스킬이 아니다. 여러 명이 겹쳐 있어도 한 명에게만 적용되는 스킬이었다.

퍼엉! 퍼엉!

놈의 공격스킬들이 빠진 것은 확인한 뒤에 사방으로 연막의 구슬을 던졌다.

주변에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라 건물은 마치 구름 속에 홀로 모습을 드러낸 높은 산봉우리와 같았다.

"이 새끼가!"

위기감을 느낀 궁신이 사방팔방으로 활을 쏴 댔다.

스킬의 사용빈도가 처음부터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궁수의 스킬은 마나 소비량이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또한 PK를 한 카오스 상태면 뉴 알론의 도시시설 사용이 불가능하다.

인벤토리에 아무리 가득 채웠어도 화살보유량과 마나포션의 수는 급감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나는 순수한 피해자일 뿐이다.

죽더라도 얼마든지 사용품을 충전해 올 수 있다. 그것도 내 지갑이 아니라 두 거목이 도와줄 것이다.

"씨발! 씨바알!"

머리 위에서 욕지거리와 함께 파공음만 들렸다. 화살은 이곳저곳을 노리지만, 저런 쓸데없는 난사는 비효율적이다.

저 무차별적인 난사는 스태미나를 바닥에 닿게 만들고 아직 제자리에 있는 내가 옥상에 오르도록 앞당겨 줄 뿐이다.

퍼엉! 퍼엉!

바닥의 연기가 가라앉기 전에 슬링으로 연막의 구슬을 옥상으로 던졌다.

연기는 성공적으로 옥상을 가려버렸다.

"빌어먹을!"

열에 받친 궁신의 욕지거리는 그저 찬사에 지나지 않았다.

[벽타기를 사용합니다.]

난사 끝에 헐떡임이 들리는 순간, 벽타기를 쓰며 벽을 질주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연기를 파헤치며 옥상으로 올랐다.

투웅! 투웅!

"어디냐! 이 개자식!"

연기를 꿰뚫고 화살이 사방으로 쏘아졌다.

내가 올라온 사이에 궁신이 스태미나를 회복한 것이다. 만의 하나를 위해 숨을 죽이고 바닥을 기었다.

연기는 천천히 가라앉아 궁신의 허리까지 내려앉았다.

"놈이 어딨지? 다른 놈에게 간 건가?"

궁신은 내가 시야에 보이지 않자 적잖게 놀라했다.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사격을 하려고도 했었다.

"아니. 여기에 있지."

"히이익!"

"뒤져라. 병신아."

땅에 놈의 발이 닿는 순간, 발목을 잡아당겼다. 비명과 함께 바닥에 뒤통수를 찧은 그의 체력이 조금 닳았다.

발목을 잡은 손이 허리를 눌렀고, 다음 손은 가슴을 짓눌렀다.

퍼억!

"놔, 놔!"

근접거리에서 사격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한 궁신이 활로 내 머리를 후려쳤다. 능력치를 전부 민첩과 스태미나에 몰빵했는지 체력은 절반도 닳지 않았다.

"뒤져."

궁신의 두 어깨를 무릎으로 짓누른 마운팅 자세. 이종격투기와 달리 움켜쥔 손에는 검 한 자루가 있었다.

푸욱!

"이……!"

궁신이 뭐라고 말을 잇기도 전에 검은 놈의 목을 잘라냈다.

콰아아앙!

[YOU DIED.]

승리를 만끽하기도 전, 발밑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어? 붉은 닉네임인데?"

"카오다. 누굴 죽인 거야?"

칼 같이 부활하자마자 주변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같은 채널에서 궁신이 부활한 것이다.

"궁신은 잡았어요."

파티음성을 보내자 곧 전체챗으로 두 사람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독고무적 : 엠페러 길드의 이름을 걸고 궁신을 척살한다.]

[흑군 : 흑랑 길드 또한 궁신을 척살한다.]

"화가 단단히 나셨나 보네."

각 진영의 일인자들이 직접 내리는 척살령이다. 이 분노가 어디까지 뻗칠 것인지는 모르지만 궁신은 카오 상태가 끝나더라도 당분간은 마음 편하게 돌아다닐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마법사인가."

원거리 저격수는 제거했지만, 이제 남은 놈들이 문제였다.

"드디어 하나 잡았군."

"나머지는 몇이나 있지?"

1구역 앞으로 가자 독고무적과 흑군은 나를 크게 반겼다. 그도 그럴 것이 앉아서 그 귀찮던 궁신을 끊어냈다. 앓던 이가 빠지는 기분일 것이다.

"골드캐쉬가 총 열 명인 것으로 알고는 있거든요. 잠시만요."

인게임에서의 해프닝이지만 워낙 굵직한 인물들이 얽혀있었다.

엘리멘탈 소울2 커뮤니티만이 아니라 업계에서도 지금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썩이나감 : 귓말 가능합니까?]

이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히든레코드다.

[빨간약파란약 : 얼마든지요.]

[썩이나감 : 골드캐쉬와 일이 있습니다.]

[빨간약파란약 : 업계의 엘리트가 큰 고객을 통제하는 상황이라 아주 흥미로운 일입니다.]

[썩이나감 : 그렇겠죠. 큰 손들은 자극을 주면 더 많은 현질을 하지 누구들처럼 포기는 없으니까.]

업계에서 고객들에게 항상 저자세를 고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현질을 하게끔 적절하게 조여주기도 했다.

지금도 그런 상황의 연장선이라고 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썩이나감 : 재들 단독 맞습니까? 뒤에 다크로얄 있을 것 같은데.]

[빨간약파란약 : 음모론에는 어떠한 답변도 드릴 수 없는 것이 본사의 입장입니다.]

[썩이나감 : 맞아요. 음모론이죠.]

골드캐쉬가 아무리 오래된 다크게이머 팀이라고 하더라도 첫 번째는 수익임에는 변함이 없다.

머리에 총을 맞지 않고서는 엠페러 길드와 흑랑 길드와 척을 지는 1구역 통제라는 승부수를 띄우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처음부터 모험이 아니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닐을 시장으로 만들면서까지 얻을 수익. 그걸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은 결국 독점거래를 하고 있는 다크로얄이었다.

[썩이나감 : 이해합니다.]

저 신중한 태도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빨간약파란약과는 조건없이 신뢰를 줄 관계가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하기에 엮여진 사이였다.

[썩이나감 : 1구역에 진입한 골드캐쉬의 인원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빨간약파란약 : 궁신을 제거한 것은 썩이나감님이십니까?]

[썩이나감 : 독고무적, 흑군과 파티를 맺어도 통제를 풀려고 하고 있습니다.]

[빨간약파란약 : 궁신을 제외하고 총 셋 입니다. 자세한 것은 진행사항을 알려주시면 답해드리죠.]

그는 대가로 1구역의 진행사항을 원했다. 적당한 거래이니 수락을 했다.

나만 죽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 부분은 내가 죽어야 페널티가 적다는 것과 그만큼의 보수를 받았다는 걸로 수습했다.

"이러면 끝났잖아."

명단을 받은 후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황금추적자가 왜 그렇게 자신감을 보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좋은 일이라도 있나?"

"보고해라. 썩."

잠자코 있던 두 사람이었지만, 내 혼잣말에 관심을 보였다.

"저쪽 애들이 통제 못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확실한가?"

"놈들은 죽이고 싶은데."

둘은 혹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직접 끝내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 1구역에 합류한 골드캐쉬 애들입니다. 두 분을 단번에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딜량이 나오는 것은 한 명뿐이죠."

"S2영이아빠? 오랜만이군."

"이 새끼 적혈이었는데."

전작에서도 화끈하게 놀았던 덕분에 그에 대한 반응은 사뭇 달랐다.

내가 알기로 독고무적과 거래가 잦은 녀석이었다. 다만, 골드캐쉬에 합류하기 전에는 흑랑 길드의 철천지원수인 적혈의 동맹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감이 오죠? 귓말 좀 할게요."

"나는 찬성이다."

"…두고는 보마."

일단 찬성이 떨어졌으니 곧바로 S2영이아빠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썩이나감 : 똑똑. 거기 영이네 댁입니까?]

[S2영이아빠 : 흥. 네놈이랑 귓말할 것도 없다.]

[썩이나감 : 아이구, 영이 아버지. 왜 이렇게 나오십니까. 업계인끼리.]

S2영이아빠라는 닉의 기원은 특별하다. 영이는 자신의 딸의 이름이었다.

엘리멘탈 소울1에서 한창 레이드 중에 딸 하교길 데리러 간다고 중간에 나간 유명한 일화를 가지고 있었다.

[썩이나감 : 궁신이가 없어서 어떻게 합니까. 독박으로 카오가 되셔야하는데, 저한테 죽으면 개처럼 되는 것 알죠?]

[S2영이아빠 : 통제 못 풀 것 같아서 이빨 터냐?]

[썩이나감 : 궁신이야 나가리고. 나머지 애들이 합류하면 그쪽에게 좋잖아요. S2영이아빠님도 카오도 빼고.]

[S2영이아빠 : 맨 입으로?]

[썩이나감 : 흑군님한테 적혈 때 감정 풀라고 말은 드릴 수 있는데.]

[S2영이아빠 : 이 거래는 비밀로 해.]

S2영이아빠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골드캐쉬라는 팀으로 움직이지만, 모든 수익이 거기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다들 팀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거래가 있다.

특히 큰 이익이 되는 것은 직거래다.

다크로얄과의 계약을 생각하면 위반이지만, 일일이 제지할 수 없으니 그냥 눈 감아 주는 것이 업계의 관례였다.

S2영이아빠는 흑군이 속한 흑랑 길드와 적대관계로 그쪽과의 거래루트가 막혔었다.

이번에 그걸 틀 수 있다면 그에게도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       *       *

"병신 같으니."

궁신이 죽은 광경을 본 황금추적자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궁신은 최적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썩이나감에게 복수를 허용당했다.

독고무적과 흑군의 개입 때문에 입구를 지키고 있던 황금추적자로서는 울분이 터지는 일이었다.

"한 대면 죽일 수 있는데 그걸 못 해?"

썩이나감에게 궁신은 완벽한 카운터라고 생각했다. 행운이 따랐다지만 독고무적과 흑군을 연달아 죽인 것에는 완벽한 통제를 확신했다.

그런데 연막의 구슬 따위에 저렇게 허둥거릴 줄은 몰랐다.

고막에다가 욕을 내뱉고 싶지만 아직은 궁신이 필요했다. 그가 있어야 독고무적과 흑군이 쉽게 1구역에 진입하지 못한다.

[황금추적자 : 1구역에 다시 올 수 있나?]

[궁신 : 몯아.]

귓속말을 보내자 돌아온 답변은 맞춤법도 엉망이었다. 그 이유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마을 광장에서 부활한 뒤로는 NPC들은 물론 엠페러와 흑랑을 피해 다니기 바쁠 것이다.

"…병신 같은 놈."

황금추적자는 화를 억누르며 전황을 살폈다. 아직 그들을 제외하면 1구역에 새롭게 진출이 가능한 이들은 없었다.

썩이나감은 단 한 방이면 끝이다. 거기에 이목이 끌렸다가는 언제 침입할지 모르는 독고무적과 흑군에게 처참하게 쓸려나갈 것이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피해를 감수하고 통제를 하느냐. 아니면 다시 기회가 올 때까지 침묵하느냐.

"적자 씨. 계속 통제할 거야?"

침묵을 깨는 것은 S2영이아빠였다. 그의 파티음성은 썩이나감을 죽여 카오가 된 덕분에 보다 무거웠고 기계음이 섞여 듣기 껄끄러웠다.

"궁신이가 죽어서 통제 힘들 것 같은데."

"통제가 왜 힘듭니까. 영이아빠님이 뒤에서 딜 넣고 나머지가 버티면 되는데."

"난 궁신이처럼 버서커의 소울이 아냐. 폭딜이 아니라 짧은 스킬 쿨타임으로 꾸준히 데미지를 주는 법사라고."

"독고무적과 흑군의 마법저항력이 그걸 견딜 정도는 아닙니다."

"한 번은 버티겠지. 그러면 그 뒤는? 우리들은 하나씩 죽을 것이고 그러면 궁신이처럼 추살 당하는데?"

S2영이아빠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게 솔깃했는지 잠자코 듣기만 하던 다른 이들도 맞장구를 쳤다.

"이거 영이아빠 님 말이 맞는 것 같은데요. 막말로 독고무적이랑 흑군이 탱커하고 썩이나감이 찌르면 탱커고 나발이고 다 뒤져요."

"그리고 지금 궁신 봐봐요. 재 못 버티고 아예 로그아웃 했잖아요. 우리도 저렇게 되면 장사 며칠 못한다니까요?"

"……."

그에 황금추적자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통제를 억지로라도 하는 것이 맞다. 손실은 있어도 더 큰 이득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팀원들이 저런 태도라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나서도 버거울 판에 손절을 하려고 들면 될 일도 안 된다. 이러다가 일이 잘못 풀리면 자신이 정치질 당할 공산이 컸다.

골드캐쉬를 유지해 얻는 이득이 워낙 컸기에 황금추적자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애들 오면 통제 합시다. 어차피 우리가 더 빠를 것 아냐."

"맞아요. 이왕이면 엠페러랑 흑랑에 불만 있는 길드도 모으죠."

"그게 아니면 자닐 지지하는 애들 랭커들한테 접촉하거나."

연달은 팀원들의 말에 황금추적자도 입맛을 다셨다.

"…계획을 바꾼다. 통제는 포기하고 나머지 팀원들이 합류할 때까지 몸을 숨기고 시가전에 집중해."

결국 그는 자존심을 구기고 독고무적과 흑군에게 이번 통제는 자신들의 잘못이었다며 사과를 하는 귓속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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