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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61화 (61/201)

제061화 고인물은불사자다.

"역시 숨겨 둔 직업인가."

"흥미가 당기는데?"

방금 전까지 골드캐쉬에게 복수감을 드러내던 둘의 흥미가 오로지 나에게만 향했다. 그만큼 전대미문에 가까운 내 캐릭터에 궁금증이 큰 것이겠지.

"하나. 제 직업에 대해 어떤 식으로도 발설하지 않는다."

"계약으로 입을 막겠다?"

"재밌네. 재밌어."

검지를 피며 조건을 꺼내니 둘은 가벼운 장난기를 넘어 진중함을 드러냈다.

이때까지 꽁꽁 숨겨 뒀던 비밀이다.

남들과 달리 자신들만이 알 수 있다. 그건 특혜라고 표현할 수 있었다.

히든레코드에서도 내 직업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으니까.

"싫으십니까?"

"아니. 듣지."

"궁금하니까."

둘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촬영하는 것도 알고 있으니

"둘. 알려 주는 대가로 저에게 악의적인 행위는 금해 주시죠."

"관계를 틀 이유는 없지."

"헌터 대 죄수병의 경쟁이라면 제외다."

여기서는 이견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기준이 모호했기에 1달 동안 서로 게임 플레이를 방해하는 것은 하지 않는 정도로 정했다.

"그러면 네 직업을 공개해 주실까?"

"굉장히 궁금했거든."

결론이 나자  독고무적과 흑군은 직업에 대해 독촉했다.

[독고무적 님과 흑군 님을 파티에 초대하시겠습니까? Y/N.]

"받으시죠."

잔뜩 기대를 하는 두 사람에게 파티 초대를 넣었다.

[썩이나감LV41. 불사자.]

[독고무적LV53. 성기사.]

[흑군LV53. 권사.]

파티창에 각자의 레벨과 직업이 표기가 되었다.

"……."

"……."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두 사람은 얼어붙었다.

황금추적자가 보였던 반응에서 보듯이 내 직업에 대한 의문은 계속 나왔다.

독고무적과 흑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히려 더 심할 수 있다. 수많은 유저들 중에서 정점에 있으면서도 나와 친분이 있는 편이었으니까.

[독고무적 : 불사자는 도대체 무슨 직업이지?]

[흑군 : 심지어 레벨 41? 고작?]

잠깐의 침묵이 끝나고 두 사람은 이것저것 물어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세간의 이목을 신경을 썼는지 귓속말을 보내왔다.

"파티용으로 대화하죠."

음성채팅도 두 가지가 있다. 근처의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 일반음성채팅. 그리고 파티원들에게만 들리는 파티음성채팅이다.

파티를 할 일이 없으니 처음으로 쓰는 것인데 음질이 뭔가 특이했다.

"이건 다소 먹먹한 음성이라 좀 불쾌하다."

"맞아. 고막이 아니라 머리에 울려."

독고무적이나 흑군이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래서다.

그들만이 아니라 이걸 불쾌하게 여기는 이들은 많았다.

계속 피드백이 나오는 부분이지만 개발사인 소울리스는 일반적인 상황과 구분하기 위함이라고 뻐팅기는 중이었다.

왜 그랬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만 파티음성을 써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채팅으로는 늦어요. 1구역에서 통제당하는 상황이잖아요. 죽고 나서 채팅 치시려고요? 아니면 골드캐시에게 들리게 말하고 할까요?"

"그건 합당한 말이다. 불편해도 참아야하니까."

"그보다 먼저 말해 줄 것이 있을 텐데."

아직 두 사람의 관심은 불사자라는 직업에 벗어나지 못했다.

"먼저 직업의 정확한 획득 방법은 모릅니다. 이스터에그로 보이고 불사자의 가장 큰 특징은 죽을 때의 페널티가 없다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극공전사로 간 것이로군."

"그렇다고 스치면 사망은 심각하지 않아?"

이점과 함께 단점을 깨달은 둘은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증명했잖습니까. 단신으로 남들은 엄두도 못내는 10레벨 이상의 몬스터나 4인 권장 던전도 처리하니까요."

"그러기에는 레벨이 너무 낮다."

"맞아. 안정성이 떨어져."

내 예상과 달리 둘은 단점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아직 41레벨에 불과했다.

랭킹 1,2등인 두 사람이 53인 것을 생각하면 차이가 심했다.

"전 부주 없잖아요. 쌩으로 혼자 돌리면 얼마나 힘든데요. 알죠? 부주한테도 비밀이라는 거."

높은 랭킹을 유지하기 위해 유능한 부주를 쓰는 것이 마냥 이상한 일은 아니다.

"부주 때문만은 아니다. 파티사냥의 경험치가 더 높을 뿐이지."

"그리고 너는 공략에만 신경을 써서 레벨업이 느린 걸 텐데."

결국 MMORPG에서 중요시 되는 것은 사냥이다.

필드에서 닥치고 하는 사냥만큼 경험치를 빨리 쌓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1구역에 제일 먼저 들어섰죠."

다만, 내 목적이 레벨로 쌓는 랭킹1위냐는 거다.

난 아이템만이 아니라 정보도 판매하는 입장이었다. 높은 레벨도 좋지만 아무도 구할 수 없는 정보를 판매하는 것도 쏠쏠했다.

그게 아니었으면 이렇게 일찍 이사도 못 했다.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즐겜러가 아니라 다크게이머라면 분명히 있지."

두 사람은 더 많은 정보를 원했지만, 지금 이상을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제가 공개하는 것은 여기까지죠. 밑지는 장소는 못합니다."

"흥. 건방진 놈."

"그럴 줄 알았다."

둘 다 최소한의 정보는 들었으니 1구역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랭킹 1위와 2위가 지역통제를 당하는 희대의 상황. 이건 엘리멘탈 소울에서 사상초유의 일이었다.

둘 다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아시다시피 엘리멘탈 소울은 접속자가 폭주해서 뉴 알론의 3구역의 경우 채널이 수십 개지만……."

"2구역은 채널 다섯 개."

"1구역은 단 하나."

독고무적과 흑군의 눈이 차가워졌다.

골드캐쉬는 황금추적자를 제외한 나머지 이들은 랭커가 아니다.

10레벨 이상이 차이가 나는 유저를 PK하기 위한 준비야 입이 아프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통제가 가능한 공간이어야만 한다.

던전 입구나 터가 좋은 사냥터에서 통제를 하는 이유는 하나.

뉴 알론을 벗어난 외부에는 채널이란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고무적과 흑군이라는 두 유저가 방심까지 해버렸기에 기습마저 성공했다.

골드캐쉬로서는 성공할 수 없는 조건이 벌써 맞춰진 것이다.

"왜 통제를 하냐는 궁금하지 않습니까?"

"기선제압과 거래겠지."

"놈들의 수작은 뻔하다."

그들의 동기에 대해서는 두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다.

골드캐쉬가 여러모로 악명이 높은 것은 통제를 해서 작업장을 만들고 단물이 빠진 곳은 통제를 푸는 조건으로 다른 이들과 거래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소한 시가전 이벤트가 끝나기 전까지 통제를 해서 자닐이 시장이 되기만 해도 그들은 이득이라는 뜻이다.

"두 분이서 죽은 위치 좀 찍어주세요."

지도를 펼치자 두 사람이 해당 지점에 핑을 찍었다.

"다녀오죠."

어차피 죽음에 대한 페널티가 없으니 두 사람과 달리 나는 기꺼이 뛰어들 수 있다.

1구역에 들어서자 앞에는 황금추적자가 있었다.

"황금추적자가 있으니 파티음성은 끌게요."

지금은 저 여유가 넘치는 놈과의 대화가 중요했다.

"랭커들이랑 파티를 맺었다지? 그들을 대신해서 협상하려고 왔나?"

"아니. 통보다. 어떤 미친놈들이 엠페러랑 흑랑에 통제를 걸었다고 해서 말이야."

"크크큭. 놈들이 그렇게 말해?"

황금추적자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의 닉네임은 붉게 표시가 안 된 것을 보니 PK를 저지른 당사자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미안해서 어쩌나. 네가 할 거래 내가 막을 거거든."

"할 수 있나?"

"해봐."

"후회할 거다."

황금추적자는 날 보며 비웃었다. 그들의 통제에 랭킹 1위와 2위마저도 죽었다. 심지어 나는 이번이 두 번째다.

일반적이라면 지금 상황에서 모험을 하지 않는다.

계속 죽어나가는 통에 경험치는 떨어지고 아이템 수리비가 깨지는 상황이니까.

랭커 1위와 2위도 무너진 상황에서는 더욱 더 몸을 사려야만 한다.

"얼마든지 죽어주지."

하지만 나는 예외다. 아무리 죽어도 잃는 것은 없다.

*       *       *

그그극.

손가락에 걸린 시위를 천천히 당긴다. 끊어질 것처럼 팽팽해졌을 때 화살촉을 눈에 담은 시야는 다가오는 적에게 다가갔다.

골드캐쉬의 멤버, 궁신은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재가 오네."

연미복 아바타 복장에 검 하나가 전부인 초라한 유저.

썩이나감은 헤이스트를 건 상태로 달려오고 있었다.

"독고무적이나 흑군도 아니고. 평타 한 번에 가는 병신이 왜 또 오냐고."

막 1구역에 진입했던 두 사람을 죽였을 때의 짜릿한 손맛을 잊을 수 없었다.

"아니지. 원조에게 고맙다고 해야하나."

궁신은 일찍이 썩이나감이 선택했다던 소울들에 감명을 받았다.

착용장비가 적을수록 공격력이 올라가는 버서커의 소울. 그리고 일정한 확률로 평타가 두 번 적용되는 건맨의 소울. 지금은 너프가 되었지만 방어력 무시가 되는 스피어마스터의 소울까지. 그야말로 원거리 딜러를 위한 소울트리였다.

운이 좋게도 건맨의 소울이 연달아 터졌다지만, 그 독고무적과 흑군을 죽일 수 있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던 것은 이 좋은 소울트리로 검을 들고 뛰어다니는 썩이나감의 정신상태였다.

투웅.

"잘가라. 병신아."

썩이나감이 지나갈 곳으로 화살을 놓는 순간.

퍼걱!

"엇!"

화살은 목표물을 잃고 바닥에 꽂혔다. 거리에 보여야할 썩이나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황금추적자 : 멍청한 놈. 벽타기다.]

잠깐 당황한 그에게 황금추적자의 귓속말이 왔다.

"쳇. 다 나불거렸구만."

썩이나감은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필시 독고무적이나 흑군 중 한 사람이 위치를 말해줬을 것이다.

[신속한 손놀림을 사용합니다.]

썩이나감의 움직임이 빠른 것을 알고 있기에 공격속도를 올려주는 신속한 손놀림을 사용했다.

자신이 있는 4층 건물의 옥상이다.

주변의 건물들은 다 2층이라 다시 벽타기를 쓰기 전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화살비를 사용합니다.]

"그러니 뒤지라고."

궁신은 하늘 높이 화살을 쐈다. 화살촉이 90도로 하늘에 닿는 순간, 그 지점 아래로 화살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스킬, 화살비.

클래스 궁수가 배우는 초반에 배우는 가장 넓은 범위의 공격스킬이었다.

[썩이나감님을 살해하였습니다.]

"벌레컷!"

건물과 건물 사이에 쏟아지는 화살비에 썩이나감은 죽었다.

"멍청한 놈. 그냥 우리 쪽에 붙지."

제1구역에 진출한 골드캐쉬는 총 다섯 명이다. 반면에 상대는 고작 셋에 불과했다.

최소한 하루 정도는 더 통제할 수 있었다.

랭커들에게 그 하루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말할 것도 없었다.

"또 오네. 진짜 미쳤구나."

다시금 썩이나감이 1구역으로 달려 들어왔다. 궁신은 비웃음과 함께 화살통에서 화살 하나를 꺼냈다.

*       *       *

거리를 달리며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곳보다 거대한 건물들을 지날 때마다 날 노려보는 붉은 닉네임이 보인다.

궁신.

벌써 나를 네 번이나 죽인 녀석이었다.

이 녀석이 선호하는 것은 안전한 위치에서 최대한의 딜을 기록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놈이 있는 위치는 파악하기 쉬웠지만, 역시나 거기까지 다다르기가 힘들었다.

내가 사는 옥탑방 마냥 홀로 높게 솟은 저 옥상까지 다다르는 것은 쉽지 않다.

다른 건물들 사이로 파고드는 것은 문제가 없다.

보통이라면 창문을 깨고 들어가거나

하지만 이 건물은 쓰이지 않아서 건물이 굳게 닫혀져 있다. 창문이라도 깨고 들어가면 주변을 배회하는 병사들로 인해 곧바로 잡혀간다.

원거리 딜러가 무한PK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설마 내가 판매한 지도로 저런 생각을 끝냈을 줄은 몰랐다. 허를 찔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궁신이 있는 4층 건물의 출입구에 바짝 붙으면 내 몸이 보이지 않는다.

투두두두둑!

"거기냐!"

두 번째에 나를 죽였던 스킬이 머리 위를 두드린다. 두터운 건물이 머리 위를 막아줬다. 땅에 떨어지는 화살비는 멀찍이 떨어질 뿐이었다.

퍼엉! 퍼엉!

인벤토리에서 연막의 구슬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뿌연 연기가 올라오면서 놈은 나의 위치를 놓칠 수밖에 없었다.

"비겁하게 템을 써?"

"……."

PK로 선빵치고 통제를 시작한 골드캐쉬 팀원이 할 말은 아니다. 기꺼이 무시하고 사용아이템 슬롯에서 맨 마지막에 있는 아이템을 연기 속으로 던졌다.

도발적인 허수아비.

비행몬스터에게 도발효과가 있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얼마든지 이목을 끌어 줄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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