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60화 고인물은이사했다.
막노동을 할 때는 제법 근성과 체력이 붙어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퇴근 후에는 매일 소주에 컵라면만 마시고 뻗는 탓에 수명을 긁었다지만, 어쨌든 내 인생에서 가장 규칙적으로 먹고 자고 일하던 시기였다.
"와. 죽겠다."
그때가 얼마나 지났다고 3층에 다다르자 벌써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5층에서는 숨도 벅차고 머리가 핑핑 돌아가서 벽을 짚으며 간신히 하나하나 밟으며 일어나갔다.
"젊은 친구가 왜 그렇게 몸이 약해?"
앞서나간 중개인 아저씨의 말에 이를 악물고 옥상에 발을 내딛었다.
계단에 오르기 전에 왜 아버지가 생각났는지 알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죽어도 가기 싫은 등산에 데리고 가서는 지친 나를 저렇게 자극시켰었지.
후우우웅!
옥상으로 올라오자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살짝 누런 하늘과 그 아래에 빽빽하게 들어선 원룸촌이었다.
먼저 옥상은 건물 용적률이 낮은 탓에 좁았다. 아래층들의 실외기는 다행히 건물 외벽에 설치가 되어있어서 소음은 좀 줄어들 것 같다.
언제적인지 알 수 없는 안테나와 옥탑방 벽에 박은 못에 밧줄을 묶어서 빨래도 널 수 있었다.
평상을 기대했지만 다리에 금이 간 플라스틱 의자가 아쉬울 뿐이다.
"건물 외관이 좀 그래도 안은 괜찮다고."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여기저기를 들쑤시는 내가 중개인 아저씨는 좀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거기에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고 메마른 웃음만 보였다.
옥탑방의 외관은 판넬벽으로 처리가 되어 있었다. 신축이 아닐 뿐더러 어차피 싼값에 온 것이니 그건 염두에 둔 상황이었다.
내부의 구조는 진짜 아무것도 없다는 표현이 적합했다.
오랫동안 방이 나가지 않는지 창가를 포함해 구석구석마다 먼지가 제법 쌓여 있었다.
특히 벽걸이 에어컨은 틈새를 보니 먼지로 가득했다.
"지금 보일러 되요?"
"가스 막아둬서 안 될 텐데."
"뭐. 어쩔 수 없죠."
판넬벽으로 된 옥탑방이다. 난방이 되더라도 크게 기대할 수는 없다.
차라리 전기난로 같은 것을 사서 버티면 될 것 같았다.
"물은 잘 내려가죠?"
수압이 약해서 변기가 막히는 것만큼 최악이 없다.
화장실에 들어가니 보이는 것은 양쪽에 극단적으로 붙은 좌변기와 세탁기였다.
주머니에 미리 가지고 온 휴지를 찢어서 변기에 넣었다. 다행히 물은 잘 내려가는 편이었다.
"여기 물 새고 그런 것은 없죠?"
오래된 건물인데 심지어 판넬로 된 옥탑방이다. 여기에 대한 신뢰도가 생길 수가 없는 구조였다.
"없어. 새로 도배한 것도 아냐. 저 누렇게 뜬 벽지 봐봐. 비는 안 샌다고."
"확실히 그렇네요."
벽지랑 장판을 뚫어지게 쳐다봐도 곰팡이가 피었거나 하는 흔적은 없었다.
옥탑방은 예상보다는 괜찮았다. 그토록 보고 싶던 햇살은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 다소 좁을 수 있는 공간도 옥상이 있으니 문제가 없다.
꺼림칙한 부분이 있다면 7층이라는 점이었다.
어차피 월세와 전세금을 따지고 생각하면 지금 사는 곳보다 나쁜 것은 없다.
"여기로 할게요."
막상 올라오니 시야가 탁 트여서 보기가 좋았다.
* * *
이사는 당일에 빠르게 진행되었다.
중개인 아저씨가 아는 동생이 한다는 이삿짐센터에 연락해서는 곧바로 사다리차를 불러온 것이다.
빼도 박도 못하게 처리하겠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쁠 것은 없다.
단번에 끝내면 나도 빨리 게임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뭐야. 이것밖에 없어?"
"이러면 짧게 하고 끝내기 좋네."
이삿짐센터의 직원들은 내 짐을 보고 크게 반겼다. 1시간도 걸리지 않아 이사가 완료되었다.
문제라면 빠른 일처리로 인해 그만큼 많은 돈이 빠져나갔다는 거다.
"그래도 하루를 통으로 날라지는 않았네."
이삿짐 정리라고 할 것도 없다.
옷도 몇 별도 없고 침구류도
국룰이라고 할 수 있는 짜장면에 탕수육 세트를 먹으며 게임 커뮤니티를 살폈다.
"PK가 생기니까 바로 통제 들어가네. 역시는 역시인가."
PK가 도입되고 겨우 반나절이 지났건만, 벌써부터 심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이때까지 게임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화목한 편이었다.
나야 불사자라서 지루할 틈이 없었지만 다른 이들은 단순한 레벨업에 불만이 조금씩 쌓였던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여러 유저가 겹칠 수밖에 없는 필드사냥의 경우다.
저렙의 마법사가 고렙존에 나타나 장판형 스킬을 고렙이 사냥 중인 몬스터에게 사용해대는 거다. 그런 종류의 스킬은 명중률이 너무 높아 저렙이라도 확실히 데미지를 줄 수 있었다. 그렇게 가끔 몬스터를 스틸해가면 높은 경험치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저렙에서 종종 있는 겹사로 경험치를 이득을 보는 행위였다.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 레이드 때와 함께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의 너프의 주된 이유로 꼽히기도 했다.
고레벨의 유저들이 이것에 불만을 가져도 당장 제제를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아예 필드를 통한 닥사를 꺼리는 현상도 나올 정도라고 했다.
그런데 마침 PK가 나왔다.
PK에는 당연히 페널티가 따른다. 3시간 동안 해당 지역의 NPC들에게 공격을 받으며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
하지만 랭커들을 포함한 거대길드에서 일부 사냥터를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감정을 풀기 위한 것은 핑계였고 사실은 안정적인 레벨업과 자신들의 강함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통제를 할 수 있는 힘의 유무가 가지는 의미는 컸다.
[저렙이라도 출입이 가능한 공간인데 그걸 왜 막음?]
[랭커 길드 새끼들 x 같네.]
[지들만 게임 하냐? 우리한테 왜 이럼?]
[우리가 사냥 잘해서 나오는 아이템을 지들이 사갈 것 아니야?]
물론 그에 따른 여론은 좋지 않았다.
꼼수로 잘 해먹다가 걸린 유저들이 유독 극성이었지만, 게임에서까지 힘의 논리로 밀리는 것에 불만인 이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쯧쯧. 저래봐야 통하지도 않는데."
게임이 순수한 노력과 시간으로만 강해지던 시대는 지났다. 이미 MMORPG에는 자금이라는 글자가 빠질 수 없었다.
"저렇게 입 털다가 막피로 다 썰려 봐야 아닥 하지."
매번 반복이 되는 일이 있다.
막강한 힘을 가진 이가 다른 이들을 통제하면 힘이 없는 이들이 볼멘소리를 한다.
성공한다면야 바츠해방전쟁이라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건 열에 하나가 나올까 말까다.
실상은 소수의 강자들에게 다 썰려나가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선동하는 애들은 가입일이 죄다 오늘이네. 이것도 모르고 휘둘리는 순진한 사람들 봐라."
아무것도 모르고 여론에 편승하는 이들을 보면 혀를 찰 수밖에 없다.
어차피 저런 이들을 걱정해 봐야 돌아오는 것은 없다.
정작 내 코가 석자다.
거대길드들이 사냥터를 통제하면 나도 PK를 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날은 불사자라는 직업을 기꺼이 드러낼 것이다.
PK가 존재하는 이상 최강의 플레이어는 나일 수밖에 없으니까.
경험치 손실도 없고 장비 내구도 페널티가 없이 무한으로 싸울 수 있는 나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천하제일이나 스피릿도 좋고. 아니면 골드캐쉬도 좋고."
누구라도 상관없다.
먼저 PK 도발을 걸어온다면 기꺼이 맞상대해 줄 것이다.
게임에 접속한 순간.
[YOU DIED.]
1구역의 중심에서 있지 말아야할 일이 생겼다.
시청 앞.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곳에서 죽어 버린 것이다.
"…뭔 일이야."
게임에 들어가며 생기는 이펙트 탓에 사망원인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결국 초 단위로 영상을 끊으며 천천히 훑었다.
"화살?"
고개를 치켜드는 순간에 관자놀이에 화살이 꽂혔다.
"1구역에서 PK 당했네. 골든캐쉬인가."
대화창을 열어서 메시지 기록을 살폈다.
[당신은 궁신에게 PK를 당하셨습니다.]
"맞네. 궁신 새끼."
궁신이라는 두 글자 희귀한 닉네임을 모를 수 없다. 이쪽 업계에서는 좋지 않은 쪽으로 네임드였다. 설마 골드캐쉬가 이렇게 빨리 PK를 시도할 줄은 몰랐다.
"내가 맞은 지역을 생각하면 이쪽 건물 옥상이네."
딱 경비병들의 동선에 걸리지 않을 위치였다. 내가 판매한 1구역의 지도로 날 죽일 줄이야.
다시 1구역으로 가려는데 옆에서 부활한 유저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 닉네임이 낯익은 것이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독고무적.
현 랭킹 1위인 그인 것 이다.
"어쩐 일입니까?"
"…1구역에서 죽었다."
"골드캐쉬죠?"
"너 그걸 어떻게!"
독고무적은 크게 놀라더니 곧 납득하기 시작했다.
"그렇군. 같은 업계에 소문이 난 건가."
"어떤 소문요? 일이 있어서 늦게 접속했더니 상황파악이 덜 돼서요. 그보다 1구역 진출이라면 축하드립니다."
"필요 없다. 진출하자마자 죽었으니."
"아하."
독고무적이 왜 화가 났는지도 알 것 같다. PK를 당하면 갚아주면 그만일 뿐이다. 다만, 그 시점이 중요하다.
1구역에 진출했다고 좋아한 타이밍이면 짜증이 날 법도 하다.
"저도 죽었어요. 궁신이라는 놈인데 아세요?"
"맞아. 같은 업계이니 잘 알겠군."
"예전부터 원거리 딜러 잘하던 놈이라고 알고 있어요. 공속보다는 치명타에 더 집중해서 한 방을 노리는 편이죠."
"그야말로 스나이퍼군."
"그런데 한 놈에게 죽을 사이즈는 아니잖아요."
궁신은 아직 랭킹 밖이다. 스피어소울 마스터를 쓴다고 하더라도 한 번에 독고무적을 죽일 수는 없다.
독고무적의 클래스 성기사는 방어력과 체력이 준수한 클래스였다.
골드캐쉬 전체가 1구역에 숨어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놈들이 왜 통제를 하는 거지? 나를 상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독고무적은 그걸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독고무적은 전작에서부터 유명한 거대길드를 이끌고 있는 큰 손이다. 우리 업계 입장으로서는 아주 고마운 손님이기도 했다.
한번 공성전이나 길드끼리 쟁이 일어나면 몇 억은 쓰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런데 황금추적자와 그의 팀인 골드캐쉬가 그를 죽일 이유는 없다.
관계가 틀어지면 거래 또한 틀어지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유일하게 랭커를 통제할 수 있죠."
"……."
입을 꽉 다무는 독고무적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큰 손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것은 업계사람으로서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두 번째는 이번에 록이 아닌 자닐을 시장으로 잡아서 보상을 높게 받고 싶은 겁니다."
"1구역에 그럴 퀘스트가 있나?"
"저쪽 애들이 기가 막히죠. 뭔가 있을 겁니다."
독고무적이 1구역에 진입했으면 흑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랭커들을 상대로 통제를 할 정도면 나도 놓친 어떤 퀘스트가 있다.
"시청에 한 번 들어가야 하는데 상대가 통제를 하고 있지. 거기에 협력을 해준다면 사냥터 한 곳의 출입을 허가해주마."
"…꽤나 매력적인 제의네요."
엠페러 길드는 현재 세 군대의 사냥터와 두 곳의 던전 입구를 막은 상태다. 그중의 하나는 내가 나도 출입을 눈 여겨 보고 있는 장소였다.
이 의뢰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
"거기다 하나 추가해시면 안 됩니까? 같은 룩 진영이니 자닐이 시장이 되지 않도록 힘 써주시죠."
"1구역의 시가전에는 빠짐없이 참가하지."
"흑군 님도 콜이죠?"
독고무적이 동의한 순간, 뒤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흑군의 의향도 물었다.
"물론이다."
그 또한 1구역에서 죽었는지 두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상태였다.
클래스 권사인 그가 죽었다면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좌측에는 랭커 1위 독고무적.
우측에는 랭커 2위 흑군.
각각 몬스터 헌터와 죄수병의 최고길드 수장을 끼고 가니 이목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썩. 파티는 이번에도 거부할 것이냐?"
"이번에는 해야 할 것 같은데."
1구역에 들어가기 앞서 독고무적과 흑군이 내게 은근한 압박을 보였다.
PK에 굳이 파티를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PK범은 공공의 적이기 때문이다.
파티를 한다고 복수를 했을 때 추가경험치 같은 것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묻는 것은 내 클레스를 확인하고 싶다는 뜻이다.
"감당할 수 있어요?"
그래서 물었다.
세상에는 가끔 몰라야 되는 사실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