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59화 고인물은새집에간다.
[록의 진영이 승리했습니다.]
56 대 52.
기사의 숨통을 거둔 후, 최종으로 결정된 점수였다.
이번에도 보상은 소량의 경험치와 10은화가 전부다. 투자한 것을 생각하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
황금추적자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가 그린 그림을 마음껏 엉망으로 만들어준 탓에 속은 후련했다.
"삼류가 된 기분은?"
"결사항전의 영역. 그게 네가 숨긴 스킬인가 보군."
"맞아."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에게 왜 딜을 넣을 수 있었는지도 알겠고."
어깨를 축 늘어트리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힘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왜 그걸 썼지? 네 가장 중요한 무기를 겨우 여기에 보인다고?"
"그래서 관심이 사라졌나?"
"물론이다. 계산도 못하는 멍청이는 필요가 없어."
"나도 마찬가지야."
이런 부분에서 마음이 맞는 것은 다행이다.
이 무대가 끝나기까지의 어색한 10초. 그게 0으로 다다를 때 그가 말했다.
"너는 경쟁자가 될 가치도 없다."
"아. 예예. 평가 고맙네."
업계 탑이라고 기대는 했지만, 저런 태도를 보면 거듭 실망할 수밖에 없다.
황금추적자는 내 직업에 대한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숨겨둔 것이 결사항전의 영역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사항전의 영역이 그만큼 뛰어난 스킬인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만이 내 무기라고 생각하는 셈이다.
이때까지 나의 행적을 무시당한 느낌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든 의문은 저런 놈이 어떻게 장수할 수 있었느냐다.
어쩌면 골드캐쉬도 과대평가가 되어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변의 풍경이 원래대로 바뀌었다.
지하감옥 앞의 마법진에서 황금추적자와 나는 한 곳을 멍하니 봤다.
"저거 네가 봤던 거지?"
"…대충 맞는 것 같은데."
나와 그처럼 낯선 이들도 우리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둘 다 근접 캐릭터로 보이는데 한자와 일본어라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반면에 황금추적자는 적잖게 놀란 기색이다.
"재들 누구인지 알아?"
"몰라서 묻는 거냐?"
"응."
"중국의 기린아(麒麟兒). 일본의 오니기리(おにぎり)."
"개들이라고?"
황금추적자가 슬쩍 풀어준 정보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중국의 기린아는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중국서버의 각 길드장들을 뽑아 칠대악룡 레이드 파티를 꾸린 것으로 유명했다. 당시 그 파티는 한 캐릭터마다 걸치고 있는 아이템이 최소 10억부터 시작이었다.
오니기리는 일본서버에서 PvP랭킹을 3년 동안 1위를 유지한 괴물이기도 했다.
"…왜 거물들만 만나지?"
시가전. 그 후에 만난 전작의 거물들. Emagician은 물론 황금추적자부터 칠대악룡을 처음으로 혼자 잡은 나까지.
지금까지 마주친 이들은 엘리멘탈 소울1에서 한 획을 그은 유저들이었다.
Emagician 때처럼 기린아와 오니기리가 사라졌다.
황금추적자는 그제야 지금 상황에 대한 위화감을 느꼈는지 아까 전과는 사뭇 다른 눈빛으로 날 보았다.
"너 정체가 뭐냐."
"썩이나감."
"전작의 닉네임은?"
"알아서 찾아봐."
말하란다고 곧이곧대로 알려줄 이유는 없다.
기린아와 오니기리. 이 둘에 대한 정보를 판매할 것만으로도 바쁘니까.
* * *
황금추적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실력테스트라지만 썩이나감에게 자신이 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업계 탑이라는 자존심은 상했지만 썩이나감에 대한 평가는 올라가지 않았다.
상위 클래스는 강점은 많지만 리스크는 적었다.
반대로 하위 클래스는 강점과 상관없이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했다. 그래서 썩이나감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더라도 변태검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극도의 치명적인 플레이가 증명해준다.
양날의 검과 같기에 그에게 관심을 드러낸 다크로얄과 히든레코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썩이나감은 같은 업계출신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정보를 적극적으로 판매한다는 점에서 그는 즐겜러 혹은 공략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Emagician. 기린아. 오니기리."
각각 중국, 일본, 미국에서 유명한 엘리멘탈 소울 유저였다. 그리고 다크게이머가 아니라 네임드 플레이어였다.
어째서인지 썩이나감은 그 셋에 어울렸다.
"누구지? 썩이나감으로 활동할만한 네임드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엘리멘탈 소울1의 운영기간이 길었던 탓에 네임드라 불릴 유저는 너무 많았다. 억지로 추리더라도 누구라고 예상조차 힘들었다.
"이 플레이는 다른 게임을 더 잘하는 유저인데."
황금추적자는 방금 전에 자신과 겨뤘던 썩이나감의 영상을 재생했다.
팬티 하나만을 입은 사내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듯이 아슬아슬하게 병사들을 쓰러트리고 있었다.
일반 잡몹들에게도 한 번이라도 공격을 허용하면 죽는다.
노력만큼 강해진다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RPG에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광경이기도 했다.
제3자가 찍은 것과 달리 직접 봐야만 느낄 수 있는 압박감이 있다.
"어설프게 이쪽 바닥에서 놀다가는 넌 끝이다."
황금추적자가 이끄는 골드캐쉬가 오래간 이유는 간단했다. 팀에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드는 것들을 모조리 쳐내기 때문이었다.
[운영자 : 안녕하십니까. 위대한 영혼들이여. 변경된 엘리멘탈 소울2의 정기점검 및 PK 관련 패치까지 1시간 남았습니다. 점검 시간 전까지 안전한 장소에서 로그아웃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놈들은 또 갑자기 점검을 땡긴 거야?"
운영자의 전채채팅을 본 황금추적자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PK가 추가된 것은 충분히 반길 만한 일이었다.
"통제를 해 줄까. 아니면 막피를 해 줄까."
1구역은 극소수의 이들만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렇다면 곧 투입될 자신의 팀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 * *
Emagician만이 아니라 기린아. 오니기리와도 접촉한 것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었다.
정기점검은 물론 PK에 관련된 패치도 있다고 하니 그간 게임만 하느라 미뤄두었던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목돈을 모으면 첫 번째로 할 것이라 다집했던 이사였다.
내 짐이라고 해 봐야 컴퓨터에 옷 몇 개와 이불. 그리고 VR접속기기였으니 빈방만 있으면 당일에 이사가 가능했다.
"이 방인데 어떠세요?"
"빛이 들어온다더니……."
중개인 아저씨에게 소개를 받은 첫 번째 방은 지하 단칸방이었다. 소개에는 그래도 빛이 들어온다고 하더니 실상은 주차가 된 차의 바퀴가 떡하니 창을 가려 버렸다. 가격이 워낙 싸서 왔지만 역시 이런 곳은 피해야만 할 것 같다.
"크흠. 그래도 넓지 않아?"
"햇볕보다 형광등에 의지해서 살겠는데요."
"그래도 관리비는 없다니까?"
"여기 비가 새는 것 같은데요."
천장은 물론 한쪽 벽을 보니 어린아이가 오줌을 갈린 것처럼 지도가 진하게 그려져 있었다. 부풀어 오른 벽지를 자세히 보니 검고 작은 반점도 보였다.
벌써 이끼가 끼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방을 소개해 주세요."
"다른 곳은 좀 쎄서 말이야. 요즘 괜찮은 방은 너무 올랐거든."
중개인 아저씨는 시선을 돌리는 척을 하며 날 위아래로 훑어봤다.
지금 내 꼴을 생각하면 별로 기분 나쁘지도 않다.
미용실도 가지 않아 어설프게 자란 머리는 떡져 있고 로션 바를 돈도 아끼느라 피부에 각질이 일어났다. 심지어 옷도 매일 입어 무릎이 툭 튀어나온 츄리닝이었다.
왜 나한테 이런 집만 소개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확인한 방들은 아직 남아 있던데."
"응? 거기 어제 나갔어. 어제."
"어제 전화드릴 때는 그런 말 없었잖아요. 거기 보여주신다면서요. 허위매물로 속이면 벌금 좀 나와요."
템을 팔아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신세다. 그래서 어지간한 것은 넘어가지만 이건 아니다.
저 뻔뻔한 대응을 보니 할 말도 없다. 그럴듯한 허위매물로 사람을 낚으려는 짓거리는 너무 더럽다.
"내가 속였어? 증거 없으면 그러는 것 아니야."
"흐음. 그러시구나."
"헉!"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들어올리자 중개인 아저씨가 화들짝 놀랐다.
"설마 녹취한 거야?"
저 말에 순간 머리에 벼락이 쳤다. 아직도 식비를 아끼는 판에 중간중간 전원이 나가 버리는 휴대폰을 바꿀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
그런데 저렇게 혼자 넘겨짚은 꼴을 보니 속으로 웃음을 지어졌다.
다른 중개인에게 연락하려던 것은 접어두고 저 장단에 맞춰줘야겠다.
"요즘 녹취 잘되더라고요."
"……."
"SNS도 이런 것 올리면 사람들이 되게 관심가지던데."
중개인 아저씨는 입을 꾹 다물며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정작 나는 SNS 같은 것은 눈팅만 해서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른다.
이때까지 가장 많이 쓴 채팅은 선제시요나 협상ㄴㄴ 정도일까.
"…그러면 옥탑방은 어떤가. 자네가 말한 금액에도 괜찮고 집도 아주 깔끔한데."
잠깐 침묵을 지키던 중개인 아저씨는 꽤나 구미가 당기는 카드를 꺼냈다.
"어디죠?"
"조금 오래된 건물인데 월세는 비슷한데 보증금은 작아. 그래도 내부는 관리가 잘 되어 있지."
"가죠."
옥탑방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같이 공사장을 구르던 아저씨 중에서 옥상의 낭만에 대해 구구절절이 말해 준 적이 있으니까.
옥탑방도 역시 좁겠지만 서울의 밤을 홀로 감상한다는 장점은 굉장히 크다고 했다.
특히 평상이나 의자에 앉아 밤하늘을 안주 삼아 마시는 맥주는 천상의 맛이라고 연신 극찬을 했을 정도니까.
다만, 낭만에는 현실이라는 대가가 있었다.
밑층의 에어컨 실외기의 소음이라든가 부실한 냉난방을 꼽았다. 또한 옥상을 집주인이 쓰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는데 그보다 심각한 것은 퇴근 후에 술 마시고 올라갔다가 계단을 잘못 밟아서 이승에서 하직할 뻔했다던 경험담은 섬뜩했다.
그런데도 관심을 가진 것은 하나. 적어도 햇볕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는 거다.
중개인 아저씨는 자신의 오래된 승용차에 날 실었다. 향하는 곳은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원룸촌이었다.
오래된 건물도 많아서 리모델링을 종종 하고는 했다.
여기에 공사하러 왔었기 때문에 이 일대는 편히 잠을 잘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이 주변은 소음 꽤 심한데."
"저녁에는 조용한데?"
중개인 아저씨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해 뜨면 공사소음. 해가 지면 학생들 술 마실 거고요."
왜 원룸이 많은가하면 근처에 전문대가 있어서다. 그래서 곳곳에 술집도 꽤나 많았다.
절대로 조용해질 수 없는 구조다.
게임에 올인을 하는 기간이라 잠을 청해 봐야 기껏 3시간에서 4시간인 상황이라 수면의 질은 무척 중요했다.
"요즘에 비대면이고 술집 장사도 오래 못하잖아."
"에?"
"뉴스 요즘 안 봐? 코로나로 난리 났잖아."
"잠잠해졌다고는 들었는데……."
"아니야. 다시 확진이야. 영국인가 어딘가는 변이니 뭐니하면서 난리라던데."
"어쩐지 업계가 호황이더라."
엘리멘탈 소울2가 재밌어서만은 아니었을 줄이야.
중개인 아저씨의 요즘 세상이 어쩌고저쩌고하는 훈수를 귓등으로 넘기며 게임 외의 정보들을 봤다.
새로운 만남은 물론 오래된 만남에도 제약이 된다. 무언가를 배우거나 자신을 가꾸는 것도 자유롭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단절된 상황이 이어지면 방구석에서 무엇을 택할 수 있을까.
여러 반응들을 보니 외출도 쉽지 않다고 한다.
거기에는 공포심이 자리했다. 잘못해서 내게 문제가 생긴다면 가족에게까지 피하가 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세계를 집어삼킨 질병은 젊은 내가 아닌 나이가 드신 부모님에게 더 치명적이었으니까.
결국 택할 수 있는 것은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풀어줄 수 있는 재밌는 것일 뿐이었다. 그게 게임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차라리 이게 나을 것이다. 커뮤니티에서 쓸데없이 키보드 워리어가 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실제로 미래의 다크게이머가 될 유망주들이 쌀먹이라는 포장으로 수많은 게임에서 생성되고 있다고 한다.
"자! 여기야."
"신축이네요. 여기면 좋다."
중개인 아저씨가 차를 멈춰 세웠다. 차에서 내리자 보이는 것은 말끔하게 세워진 원룸건물이었다.
다른 것보다 1층에 편의점이 있는 것이 특히 매력적이다.
"거기 아니야. 저기야. 저기."
차에서 내린 중개인 아저씨가 그 옆을 가리켰다.
건물과 건물 사이. 길게 뻗은 낡고 오래된 건물이 있었다.
"여기가 7층 건물인데 옥탑방이 꽤 괜찮다고."
"뭐. 싸기만 하다면야."
건물 외관이 오래되었지만 층수가 제법 높아 보였다. 대충 훑어봐도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위화감의 정체는 그건 내부로 들어갔을 때 알아차렸다.
계단만 있을 뿐, 엘리베이터가 없다. 혹시나 싶어서 건물 뒤쪽을 확인하려고 하니 중개인 아저씨가 불러 세웠다.
"엘리베이터 없어서 걸어 가야해. 힘내자고 젊은이."
"에? 7층짜리잖아요."
"한 층에 원룸 두 개뿐이거든. 용적률이 작아서 문제가 없대나 그러더라고."
"……."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버렸다.
다른 곳을 소개받고 싶지만 자신감 있게 데리고 온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어이구. 무릎이야. 어이구."
"……."
먼저 계단을 오르는 중개인 아저씨는 양심을 찌르듯이 앓는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랐다.
저 뒷모습을 보니 갑자기 아버지가 절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