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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57화 (57/201)

제057화 고인물은등장했다.

"뭐에 죽은 거야."

갑자기 중독과 공포가 걸릴 줄은 몰랐다.

중독에 대해서 든 생각은 두 가지다. 몬스터에게 당했거나 독지대가 있거나.

문제는 공포의 출처였다.

도대체 어디서 당한 것일까.

"죽을 때 영상을 보면……."

지하하수도가 좁아지는 부분에서부터 천천히 영상을 재생했다.

내가 횃불을 들던 장면에서 느리게 재상을 했다.

횃불로 인해 막 주변이 밝혀지자마자 중독과 공포에 걸렸다. 그래서 무엇 때문에 생긴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이번 퀘스트는 아무래도 함정에 주의해야만 할 것 같다.

지도를 확인하니 처음처럼 어둡기만 했다.

"셋 중에서 여기가 제일 힘들겠네."

불사자의 특성 때문에 혼자서 몇 번이나 죽음을 겪는 것은 익숙했다.

내 나름대로 경험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현역 때 감각이 돌아온 것인지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미로만 아니어라."

로그라이크가 적용되는데 알 수 없는 함정이 도사리는 곳을 100%로 탐색하는 것이 편할 수는 없다.

"이건가?"

이번에는 처음부터 횃불을 대동하면서 아래 위를 꼼꼼히 살폈다.

지하하수도가 좁아져서 빛이 들어오지 않는 부분부터 머리 위에 자라난 이끼와 버섯 같은 것들이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것들에 손을 뻗었다.

손끝에 걸리는 미약한 진동과 시야에 살짝 보였던 광원효과를 보니 이건 채집대상이었다.

[독이 서린 이끼를 획득하였습니다.]

[공포의 버섯을 획득하였습니다.]

비밀은 너무나 쉽게 풀렸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중독에 걸렸습니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공포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대가에 별다른 반응도 할 필요가 없었다.

아까와 같은 죽음일 뿐이다.

[YOU DIED.]

색을 잃은 시야와 눈앞에 툭 튀어나온 글자를 봐도 화가 나지 않았다.

이유는 이미 알았다.

남은 것은 공략일 뿐이다.

"이런 함정에 대한 공략이 있었을 건데."

내가 모든 유형의 던전을 줄줄 꿰고 있는 것은 아니다.

히든레코드는 물론 요즘 주목을 받는 너튜버 영상들을 참고해 비슷한 함정을 가진 것들을 봤다.

어떤 함정과 몬스터가 나올 것인지 몰라도 미리 눈에 담아 둬야 빨리 반응할 수 있다.

세 번째 도전에서 주목해야만 하는 것은 저 빌어먹을 버섯과 이끼들이었다.

내가 가진 수단 중에서 시야를 밝힐 수 있는 것은 횃불밖에 없다. 이걸 들고 가다가는 또 이끼나 버섯을 태워서 죽을 공산이 컸다.

"한번 죽고 보자."

고민 끝에 내놓은 해답은 문제가 되는 것들을 불태우는 것이다.

슬링을 꺼내 화염의 구슬을 위로 던졌다.

화르르륵!

구슬이 깨지면서 화염이 천장에서 아래로 타고 내려왔다. 그 경로에 있던 것들이 불타며 녹색의 독연기가 만들어졌다.

해당 범위에 휩쓸리지 않게 뒤로 물러났다.

연기는 1분 동안 지속되었다가 사라졌다. 고작 몇 발자국에 희생하기에는 아까운 시간이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해독약 자체도 적을 뿐더러 공포에 걸리면 대응할 수단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전하게 게임을 진행하려면 어쩔 수 없다며 중얼거리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키히이이익!]

여섯 번째 화염의 구슬을 쓴 후, 멀지 않은 곳에서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내 행동이 몬스터를 자극한 것임은 분명했다.

두두두두두!

좁은 하수도가 울리며 나타난 것은 레벨 47의 탐욕스런 거대쥐였다.

비좁은 하수도를 꽉 채울 정도로 거대한 쥐새끼는 툭 튀어나온 앞니는 흉험한 칼날 같았다.

그보다 먼저 신경을 쓸 것은 그 거대한 몸뚱이로 나에게 돌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퍼걱!

먼저 슬링으로 빙결의 구슬을 맞췄다.

탐욕스런 거대쥐의 속도가 줄어드는 사이에 바닥에 함정을 설치했다.

푸욱!

[키하악!]

곰덫이 발동해 쥐의 뒷발을 잡아챘다.

탐욕스런 거대쥐가 드디어 돌진을 멈췄다. 함정에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사이에 나는 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키하아악!]

탐욕스런 거대쥐가 함정에 막 벗어나자마자 앞발을 나에게 휘둘렀다.

터엉!

낫과 같이 휘어진 발톱을 튕겨냄과 동시에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발동했다.

푸욱! 촤하악!

[키하아아악!]

찌름과 동시에 베기로 바꾸는 평타캔슬.

탐욕스런 거대쥐는 비명과 함께 죽었다. 부산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거대한 쥐고기 1개와 크고 단단한 앞니 2개였다.

계속 진행한 결과 튀어나오는 것은 탐욕스런 거대쥐 정도뿐이었다.

나머지 함정들도 처음에 날 괴롭혔던 독에 끝이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몬스터는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함정이 거슬린다는 점이다.

한 가지 문제는 하수도는 좁은데 쓸데없이 길이 배배 꼬여 있다는 점이다.

실생활에 한 번도 쓸 수 없던 미적분을 들었던 때처럼 스트레스를 꾹꾹 눌러 참으며 던전의 지도를 100%까지 완성했다.

다만, 이번을 위해 인벤토리 한쪽을 채워두었던 화염의 구슬이나 횃불 같은 것들이 모조리 사용한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열 명의 직장인 보다 한 명의 골프 치는 건물주가 더 소중한 고객입니다. 소울리스 CEO 대니얼 올림.]

특히 모바일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문구와 함께 던전 밖으로 돌아왔다.

"아슬아슬했네."

"좀 징글징글하시네."

시야에 처음으로 잡힌 것이 황금추적자였다. 설마 이렇게 날 찾아올 줄은 몰랐다.

"어떻게 알았어요?"

"시청 위에서 잘 보이더라고. 시가전 할 거지?"

"해야지. 당연히."

상대는 노골적으로 날 노리고 있다. 그렇다면 도망가지 않고 부딪히는 것이 맞다.

이 게임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크랙인 불사자가 나다.

황금추적자는 물론 그의 팀 골드캐시가 날 가볍게 보게 둘 수 없었다.

"어라? 꽤나 당당한데?"

"히든레코드의 자료는 봤을 테니 시청 말고 다른 곳으로 가죠."

"그래도 되겠어? 거기라도 가야 네가 이길 확률이 높을 건데."

"그건 이길 때의 말이고."

상대는 나의 패를 모른다.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약점이 도드라질 때다.

황금추적자가 나에게 지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게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여기는 어때. 내 다음 퀘스트 장소거든."

황금추적자는 지하감옥 앞에 활성화된 마법진에 먼저 들어갔다.

"아마 네가 이길 유일할 기회일거야. 우리 골드캐시 전원은 자닐이니까."

"당신이 일대일로 정정당당하게 나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지."

"새싹답게 패기가 있네. 밟아 줄 보람이 있어."

"밟아 봐. 밟히기 전에."

엘리멘탈 소울2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을 꼽으라면 나조차도 주저하지 않고 나를 꼽을 테다. 그리고 가장 많은 유저에게 욕을 먹으면서 분석된 유저도 마찬가지다.

솔로플레이를 고집하는 점에서부터 팬티 하나만 입고 싸우는 단점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들었다.

황금추적자가 그걸 모를 수 없다. 내 관련 영상은 진즉 봐뒀을 거다. 그래서 더 승리를 확신했을 수 있다.

PvP에서 까다로운 것은 나처럼 극단적으로 하나만 튀어나온 캐릭터가 아니니까.

[승리의 순간에 뭐가 중요한지 아십니까? 바로 현질이죠. 엘리멘탈 소울 M에는 그게 가능합니다. 소울리스 CEO 대니얼 올림.]

짧은 로딩과 함께 뒤바뀐 전장은 시청 앞에서와는 많이 달랐다.

이번에도 지하감옥 앞이었지만 막상 전장은 지하감옥 내부였다.

우오오오오오!

병사들이 양쪽에서 함성을 지르는 대기시간에 맵을 확장시켜 열었다.

나에게는 다행이게도 전장은 퀘스트 때 겪은 지하감옥과 같지는 않았다.

ㅁ자 형태인데다가 각 통로는 병사 셋 정도가 지나가도 되는 정도였다.

시작위치는 내가 좌측상단, 황금추적자는 우측하단이었다.

[황금추적자 : 이건 너무 AOS 아닌가?]

[썩이나감 : 해봤습니까?]

[황금추적자 : 대리쪽은 별로 돈이 되지 않아서 말이야. 접었지.]

내 예상보다 황금추적자는 여러 게임을 건드려 본 것 같다.

시가전 중이니 아바타 의상인 연미복도 해제했다. 팬티 한 장만을 입은 자연스러운 캐릭터의 상태가 움직일 때 제일 편했다.

기분상으로 익숙하고 편한 것은 물론 움직일 때마다 내 움직임이 더 잘 보였기 때문이다.

"돌격하라! 지하감옥을 사수하라!"

록의 기사들은 병사들을 독려해 양쪽으로 나눠졌다.

난 위쪽 경로를 택했다.

촤악! 촥!

"적을 죽여라!"

"도시를 되찾아!"

먼저 나갔던 병사들이 서로 뒤엉켜 싸웠다. 사태를 관망 중에 기이한 점은 점점 내 쪽이 밀린다는 점이었다.

각 진영의 NPC들의 스펙은 완전히 똑같다.

다른 것은 마지막 3분을 남겨두고 나타나는 록과 자닐일 뿐이다.

그런데도 상대병사의 공격이 너무나 많은 체력이 닳았다.

"벌써 버프를 걸었네."

저게 좋은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다.

황금추적자의 현 직업은 광신도다.

광신도부터 최종직업 암흑신관까지 가는 직업의 버프는 전작부터 아주 유명했다.

버프의 위력이 뛰어나지만, 그만큼 각오해야만 하는 페널티도 크다.

중독이 된 것처럼 체력이 초당 얼마씩 떨어지거나 상태이상에 걸릴 확률을 대폭 높여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숙달된 유저가 아니면 감히 파티에 들이지 않는다.

버프나 힐을 해 주려다가 아군파티가 전멸당하는 불상사가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닐의 병사들은 공격력이 높아진 대신에 피격되지 않았음에도 체력이 감소되고 있었다.

퍼억!

난 뒤에서 슬링을 힘껏 던졌다.

화염의 구슬을 던져 체력을 전체적으로 깎아 주고 쇠구슬로 마무리를 하는 식이었다.

당장은 팽팽해보이지만 지하감옥은 경로가 두 개다. 윗쪽은 내가 있지만 반대쪽은 계속 밀리고 있었다.

"…나도 사이드를 털어야겠는데."

현재 점수는 13 대 21이다.

마나포션만 마시면서 병사들에게 버프만 걸어대는 황금추적자가 유리하다는 소리다.

나도 뒤에서 마냥 슬링만 던져댈 수는 없었다.

푸욱! 촤악!

"크하악!"

"커헉!"

슬링을 집어넣고 다시 검을 쥐어 전선에 합류했다.

병사 셋이서 나란히 가야할 정도로 좁은 곳이니 눈 먼 칼을 맞을 것도 없었다.

콰드드득!

"이게 더 빠르다고. 어떻게 할래?"

병사 넷과 기사 하나를 죽이고 눈앞의 목책까지 부쉈다. 순식간에 9점의 점수를 벌어뒀다.

반면에 황금추적자의 현재 점수는 고작 24점이다.

지금 상태면 그보다 내가 한쪽을 먼저 다 밀어버릴 수 있는 페이스였다.

"예상보다 저돌적인데?"

결국 황금추적자는 내 앞을 막아설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버프질만 해대고 이기기는 힘들지."

"맞아. 그래서 스택을 잘 쌓았지."

"스택?"

"이런 다인전투 전용이지."

황금추적자는 손에 든 책을 펼쳤다. 광신도의 고유장비는 바로 저 책이다.

"피 묻은 광신도의 경전?"

이틀 전에 잠깐 올라왔다가 바로 사라진 유니크 아이템.

광신도의 무기 중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것으로 잘 알고 있었다. 특히 거슬렸던 것은 저 책이 가진 옵션 때문이다.

죽은 아군의 숫자만큼 마법 공격력 상승. 한 명당 1%로 최대 10%까지 상승한다.

저걸로 흔히 장판이라 불리는 마법공격을 쓰면 나는 반항도 못하고 죽을 지도 모른다.

"거기에 전작에 없던 스킬이 있어서 말이야."

황금추적자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스킬을 캐스팅했다. 그걸 막으려고 슬링으로 바꿔 공격했지만, 자닐의 병사에게 막혔다.

후우우웅!

그 사이에 캐스팅이 완료된 스킬이 자닐의 병사 하나에게 스며들었다.

그놈을 공격대상으로 지정해 상태를 확인했다. 체력 밑에 처음 보는 문양이 있어 클릭했다.

[신의 곁으로 : 사망 시에 최대체력과 죽을 때의 데미지에 비례하여 자폭합니다.]

"이런."

자폭 데미지는 분명 나를 죽이고도 남을 것이다. 까다로운 것은 폭발 범위였다.

검을 들고서는 저 병사를 해치울 수 없다. 하다못해 주변에 갈 엄두도 못 낸다.

상대의 1포인트를 얻기 위해서 내가 가진 5포인트를 헌납할 수는 없었다.

"자. 도망가야지?"

황금추적자는 신의 곁으로를 쓴 병사가 죽지 않게 회복과 온갖 버프를 걸어주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일보전진을 위한 이보후퇴였다.

"도망가려고?"

"아니. 멀리서 죽이려고."

다시 슬링으로 무기를 바꾼 후, 쇠구슬을 얹어 힘껏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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