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56화 고인물은등장했다.
"뭐야. 재가 왜 여기에 있어?"
"누구 만나러 왔나?"
"팬티 위에 뭘 입어서 누구인지 몰랐네."
제3구역의 병영 근처로 가자 뒤늦게나마 죄수병 유저들이 하나씩 나를 알아봤다.
1구역에 들렸다가 온 덕분에 연미복 아바타 착용 중이었는데, 닉을 보지 않는 유저들이 꽤 있어서 생긴 촌극이다.
"오랜만이군. 어쩐 일이지?"
한 무리의 죄수병이 나오더니 그중의 하나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죄수병의 최강세력인 흑랑길드장 흑군이었다.
"아. 잠시 퀘스트 때문에요."
"퀘스트? 전에 욘이라는 NPC랑 하지 않았나?"
흑군은 당연히 의혹을 드러냈다.
죄수병과 몬스터 헌터가 서로 교류하는 퀘스트는 몇 개 되지 않았었다.
"그거 말고 새로 생겼더라고요."
"제1구역 전용인가?"
"이번 시가전이랑 조금 엮인 것 같은데요."
"…록 진영인가?"
흑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예상보다 많은 수의 다크게이머들과 몬스터 헌터들이 자닐 쪽으로 갔기 때문이다.
"예. 당연하죠."
"1구역에서의 시가전이 가능하던가?"
"곧 정보 올라갑니다."
"우리 사이에 유료로?"
"얼른 오시죠. 저 혼자 싸우기 적적하니까요."
"푸하하하. 좋아. 잘 알겠어."
돈 주고 팔아야 할 정보를 공짜로 쥐어주려니 저 웃음이 별로 달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록의 진영이 우세하려면 더 많은 시가전에서 승리가 필요하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같은 진영에서의 1구역 진출뿐이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거든."
흑군은 수고하라는 말을 덧붙이며 길드원들과 함께 사라졌다.
주변의 눈길이 사뭇 적어진 것을 느끼며 병영의 입구로 갔다.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는 것이고. 소울리스 CEO 대니얼 올림.]
언제적 유머인지도 모를 메시지와 함께 짧은 로딩이 생겼다.
그 후에는 배경이 바뀌어졌다.
대낮이었던 게임 날씨는 어두운 저녁으로 바뀌었고 병영 앞에는 록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라. 썩이나감!"
"죄수병 일인데 이쪽에 의뢰를 줘도 괜찮은 건가?"
"물론이다. 애초에 너가 아니면 곤란하다고."
록은 시원한 목소리와 달리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냥 기습만 하면 되는 건가?"
"몰래 잠입해서 여기에 있는 곳들에 신호를 남겨 주면 된다."
록은 붉은색 분필 세 개와 병영내부의 지도를 주었다. 분필에 딱 맞게 세 개의 건물이 표시가 되어 있었다.
"들키면 어떻게 되지?"
"죄수병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다."
"문제가 있기를 바라는 건가?"
"아아. 물론이다."
팔짱을 낀 록은 툭 튀어나온 어금니가 부러질 것처럼 입을 꽉 다물었다.
"담을 타고 넘어가면 되나?"
"알아서 해라. 지금은 순찰 중인 병사에게 쉬라고 해 뒀으니까."
록은 말을 끊고 등을 보였다. 먼저 시야 확보가 필요하니 스킬을 사용했다.
[창공의 독수리를 사용합니다.]
다소 어두웠던 미니맵이 단번에 밝아졌다. 확장시키니 병영의 NPC들의 위치도 하나씩 들어났다.
중간마다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을 보니 역시나 건물 내부까지 확인은 되지 않는 변수가 있다.
[벽타기를 사용합니다.]
목이 꺾일 것처럼 올려다 봐야할 높은 벽을 평지처럼 밟고 올라섰다.
병영 내부에서 듬성듬성 세워진 망루들을 보니 횃불로 안이 훤하게 밝혀져 있었다. 그래서 첨탑의 죄수병이 감시하는 영역을 쉽게 체크할 수 있었다.
그 뒤에는 병영 내부를 돌아다니는 순찰병들이었다.
"…대충 이런 경로네."
벽타기가 있으니 병영 밖으로 도망치는 것도 쉽다.
침입경로에만 심혈을 기울이면 될 뿐이다.
"애들 군기 풀렸지 않아?"
"천인장이 시작한 소원수리 때문에 그래. 우리 짬밥에 야간근무가 말이 되는 거야?"
"맞아. 청소랑 빨래도 우리 때는 막내가 했다고."
3인을 1개조로 하는 순찰조 하나가 눈앞을 지나쳤다. 그 뒤를 쫓아 우측으로 이동을 했다.
첫 번째 목표는 죄수병 숙소 중 하나인 제5생활관이었다.
[붉은색 분필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생활관의 문 앞에 손을 뻗어 흔적을 남겼다.
그 뒤에는 병영의 무기고였다.
아까 전의 생활관보다 더 잦은 순찰과 그 앞을 지키는 병사들도 있었다.
저들의 경계를 피해 침입할 수 있을까 계속 지켜봤다.
"이봐. 근무교대다."
"가서 들어가라고."
그때 다음 경계병들이 무기고로 찾았다.
근무교대 중에 나누는 사소한 잡담이 이루어지는 사이에 그들의 눈길을 피해 무기고에 손을 뻗었다.
[붉은색 분필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병사들이 쳐다보기 전에 얼른 Y를 누르고 어둠에 스며들었다.
마지막 목표는 병영본부건물에 있는 행정실이었다.
모두가 퇴근했는지 경계를 서는 이도 없어서 조심할 필요도 없었다.
[붉은색 분필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주저할 것도 없이 Y를 누르고 벽타기를 통해 병영 밖으로 나왔다.
"군기가 아주 빠졌군. 수고했다."
정문으로 가자 록이 만족을 표하며 퀘스트는 끝났다.
[스킬, 은신을 배우셨습니다.]
보상으로 주어진 것은 은신스킬이었다.
[은신LV1.]
-종류 : 패시브 스킬.
-효과 : 어두운 곳에서 멈출 경우 적에게 발견될 확률을 1% 감소시킵니다.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라지만 성능이 너무 낮다. 스킬창만 괜히 어지럽게 되니 달갑지가 않았다.
"이봐. 이제 하나 남았다고."
길드로 복귀하니 발레인은 다시 날 잡아당겼다. 그가 강제로 알선한 퀘스트 중 마지막은 불쾌한 하수도 정화다.
"점점 자닐 쪽이랑 엮인다는 말이지."
제1구역의 하수도로 들어가야만 하는 임무다. 그것도 탐색 100%이니 어디에 무엇이 있을 것인지 모른다.
막말로 폐쇄된 감옥의 순찰처럼 자닐 쪽이 날 습격할 수도 있다.
그래도 시가전까지는 1시간이 넘게 남아있으니 집중한다면 그 안에는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1구역의 성문 앞에서 수십 명의 유저가 모여 있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다들 함성을 지르며 들뜬 기색이었다.
"뭐지. 누가 템 뿌리나."
간혹 게임 접는다고 비싼 아이템을 뿌리는 관종들이 있다. 몬스터 하나 잡는 것보다 훨씬 낫기에 가는 길에 하나 주워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와! 저 사람 뭐야!"
"미쳤다. 재는 누군데 두 번째야!"
"그 변태처럼 록 진영일려나?"
다가갈수록 들려오는 대화가 심상치 않았다.
"잠시만요."
유저들 사이를 파고들어 앞으로 나아갔다.
제1구역의 성문은 활짝 열렸고 개선문을 지나는 군인처럼 당당한 표정이었다.
"…황금추적자."
저 다섯 글자의 닉네임을 모를 수 없었다.
ZI존짱짱맨 이후에 가장 엘리멘탈 소울에서 유명한 다크게이머였으니까.
엘리멘탈 소울2에서도 자신의 팀인 골드캐시를 구성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설마 이렇게 나타났을 줄은 몰랐다.
다크로얄에서 업계최고의 대우를 보장받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랭킹 300위?"
엘리멘탈 소울1에서의 입지가 너무 커서 뒤늦게 전향했는데 벌써 랭킹 300위까지 올라왔다.
나보다 높은 레벨이니 속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
캐릭터 직업은 광신도.
사제의 1차 전직 중 하나로 최종으로는 암흑신관까지 가는 직업이었다.
암흑신관은 미친 디버프와 흑마법사에 준하는 폭딜을 자랑하는 직업 중 하나였다. 문제는 스킬배분과 사용법이 까다로워서 어지간한 유저는 절대 건드리지도 않았다.
"어? 뭐야. 소문의 루키 아니야."
자신을 보던 유저들을 살피던 황금추적자가 날 알아봤다.
"반갑네요. 썩입니다."
"반가워. 업계 후배님. 같이 일할 수 있었는데 거부했다지?"
"노예계약 같아서요."
"조건은 들어보지 그랬어. 잘 쳐주는데."
황금추적자는 사람 좋은 얼굴로 1구역쪽으로 손짓을 했다. 그를 따라가니 다른 이들의 이목은 자연스럽게 차단되었다.
"히든레코드가 잘 해 주나 봐?"
"지금은 템보다는 정보가 더 비싼 것 같아서요."
"아. 그건 인정. 다크로얄은 정보는 잘 안 쳐 주니까. 오로지 템이 실적이거든."
황금추적자는 자신의 경험을 대수롭지 않게 털어놨다. 말이 좋아 게임이지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이곳도 현실이었다.
내가 사라진 시절부터 업계 탑 중으로 올라선 사람의 이야기는 제법 들을 가치가 있었다.
"그러면 다크로얄 자체에는 관심이 있다는 거지?"
"관심이야 있죠. 인프라가 다른데."
히든레코드가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이 찾은 다크로얄을 쉽게 넘을 수 없을 것이다.
"맞아. 만약에 네가 올린 스샷이 오류가 아니라면 경매장이 서버통합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
황금추적자는 거기에 두 눈을 빛냈다.
빨간약파란약이 지금쯤이면 자료를 올렸을 것이다. 업계 탑이라면 거기에 흥미가 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팀으로 와라. 너. 따로 때가는 것 없이 같이 활동하는 것만큼 N빵 할 테니까."
그는 나에게 매력적인 제의를 꺼냈다.
팀 골드캐시에 추정 다크게이머는 엘리멘탈 소울1에 30명. 엘리멘탈 소울2에 10명이라고 한다.
엘리멘탈 소울2에서는 뒤늦은 출발로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는 평이 있었다. 그래서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지만 황금추적자가 벌써 1구역에 진입을 한 것을 보면 그건 아니다.
골드캐시는 확실히 진짜라고 봐야만 했다.
"제가 팀으로 활동 안 하는 것은 아시죠?"
"어중이떠중이랑 놀까 봐 그런 것 아니야?"
"팀이 실력만 중요하던가요."
이 바닥에서 왜 불문율과 신뢰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그걸 고수하면 손해라서다.
팀이라는 단어만큼 보기 좋게 포장한 것은 없다. 결국 이익다툼은 끝없이 벌어진다. 아무리 돈을 잘 벌었어도 해체가 되는 경우도 그래서다.
칠대악룡 때도 팀이 아닌 상황에서 배신을 당했다. 만약 팀인 상태였다면 더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난 예외야. 확실하거든."
황금추적자가 자신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결국 골드캐시가 비교적 큰 다툼 없이 유지를 해서다.
"그래도 거절하죠."
"아직 네 캐릭터를 지키고 싶어서?"
"……."
계속 권유만 하다가 찔러오는 질문은 예리했다.
"직업전용스킬과 아이템이 본격적으로 나올 2차 전직 레벨 대에면 들켜."
"어차피 들킬 거면 그쪽으로 오라?"
"널 위한 컨설팅도 가능하다. 그리고 네 마이너버전의 정보를 유포하자고."
황금추적자의 말은 꽤나 매력적이었지만, 불가능한 제의였다.
불사자가 아닌 이상 어떤 직업으로도 날 따라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다만, 황금추적자가 나에게 이런 제의를 하는 이유가 뭐냐는 거다.
"당신이 궁금하지?"
"정답. 어떤 직업으로도 너의 딜량은 나오지 않거든. 이건 우리팀이 분석해서 나온 결과야."
"업계최고대우는 이미 들었어요. 골드캐시도 나에게는 매력이 없지."
불사자라는 직업을 공유할 정도로 난 바보가 아니다.
"생각을 바꿔 줘야겠네."
"엠페러나 흑랑보다 당신이 매력적일까?"
"시가전에서 보자. 생각이 달라지게 해주지."
황금추적자는 전에 올려준 미니맵은 잘 보고 있다며 시청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사이에 제1구역의 하수도로 이동해 퀘스트를 진행했다.
[파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N빵입니다. 소울리스 CEO 대니얼 올림.]
로딩 중에 뜬 문구를 보니 방금 전의 대화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디를 가도 1인분 이상을 하는 나에게는 머릿수별로 나누는 것만큼 바보 같은 계약이 없었다.
로딩이 끝나고 펼쳐진 공간은 1구역의 지하하수도였다.
어두운 지하를 희미한 빛이 새어들어 조금씩이나마 밝혔기에 횃불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3구역이 시궁창이라면 1구역은 음습한 지하복도 정도의 느낌이었다.
물기가 없이 넓었던 하수도는 조금씩 좁아졌고 빛이 차단되었다. 걸을 때의 소리도 점점 진흙탕에 첨벙이는 정도까지 되었다.
화르르륵.
"슬슬 써야겠네."
결국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고 횃불을 높게 들었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중독에 걸렸습니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공포에 걸렸습니다.]
"어?"
갑자기 상태이상이 두 개나 생겼다. 중독에 걸려 피가 미친 듯이 빠져나가는데 공포로 인해 컨트롤이 불가능해졌다.
내 캐릭터가 주저앉고 벌벌 떨 뿐이었다.
[YOU DIED.]
허무하게 찾아온 죽음에 눈살을 찌푸리며 부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