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53화 고인물은 도시에서.
[뉴 알론을 지켜라.]
-뉴 알론을 둘러싼 전쟁이 시작되었다. 도시의 치안을 흔들어 록의 평판을 무너트리려는 자닐의 수단을 막아내자.
-완료 조건 : 시가전 승리.
-실패 조건 : 시가전 패배.
퀘스트를 확인하는 동안에도 록이 말해주는 것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3시간마다 도시에서 펼쳐지는 시가전은 제1구역과 제2구역에서 각각 열 곳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스윗 :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보다 좋은 레이드 파티가 있는데 관심이 있으십니까? 특별추천해드리죠.]
[빨간약파란약 : 이벤트 장소가 될 구역들의 정보를 제공해드리려고 하는데 받으시겠습니까?]
그 사이에 스윗과 빨간약파란약에게서 연락이 왔다.
둘의 제안을 보면서 느낀 점은 하나. 다크로얄이 생각보다 멍청한 놈들이 많다는 점이다.
"별다른 관심도 없이 히든레코드를 견제하기 위해 묶어 두려고 했구나."
랭커가 되지 못해 레벨업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이때까지 내 행보를 고려한다면 저런 제의를 할 수가 없다.
난 이번 작에서는 단 한 번도 파티를 맺지 않았다. 그걸 같이할 사람이 없어서 정도로 여기면 단단히 착각한 셈이다.
영입하겠다고 해 놓고서는 기초적인 것도 조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썩이나감 : 아직 파티 생각은 없습니다. 이번에는 히든레코드 쪽과 이야기를 나눠야겠군요.]
고민할 필요도 없는 제안이었으니 답변을 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만 할 것이다.
[썩이나감 : 해당 정보 부탁드리죠.]
[빨간약파란약 : 이번 이벤트에도 관심이 있으시다니 다행입니다.]
빨간약파란약은 곧바로 자료를 보내줬다.
제1구역은 광장과 몬스터 헌터 길드 앞 등을 해서 유저가 가장 많이 지나가는 구역이었다.
제2구역은 비교적 외진 쪽이었다.
[썩이나감 : 제3구역은 없군요.]
[빨간약파란약 : 해당 정보는 구매할 용의가 있습니다.]
[썩이나감 : 위치만 파악하죠.]
아직까지 1구역에 출입이 가능한 것은 나뿐이다. 그곳에서 시가전 이벤트가 일어날 지점을 찾아서 제공한다면, 훌륭한 독점정보가 된다.
[시기가 상승합니다.]
1구역으로 가는 와중에 칠죄종 스택이 쌓이는 알림이 들었다.
"썩이나감이다."
"또 1구역 가는 거야?"
"정보는 나오겠네."
"쳇. 템팔이 자식."
귀를 기울이니 지나쳐 온 유저들의 뒷담이 들려왔다. 저런 행동이 오히려 날 돕는 걸 알고나 있을까.
"통과!"
"들어가라."
1구역을 지키는 NPC병사들이 직접 문을 열어 주는 호사를 겪으며 내부를 탐색했다.
이 구역에서 시가전이 표시된 장소는 시청을 포함하여 고작 다섯 곳뿐이었다.
[썩이나감 : 1구역에 보이는 시가전 정보입니다.]
[빨간약파란약 : 감사합니다. 이후로 레벨업 하실 거면 추천드릴 사냥터가 있습니다만.]
[썩이나감 : 갈만한 곳이면 가죠.]
1구역에는 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시가전 이벤트가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경쟁상대가 없으니 날로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록이 유리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시가전 이벤트가 5분 뒤에 시작됩니다. 해당 구역에 대기하고 있는 분들만 참여가 가능합니다.]
이벤트 알림과 함께 시청의 앞에 멈추었다. 활성화된 마법진에 나 혼자만이 있는 것이 낯설었다.
[도전과제, 혼자서도 잘해요를 달성하셨습니다.]
이번 도전과제의 보상은 소소한 경험치 뿐이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겁니다. 소울리스 CEO 대니얼 올림.]
잠깐의 로딩과 함께 뜬 메시지는 여전히 쓸데없는 소리뿐이다.
와아아아아아!
로딩이 끝나자마자 거대한 함성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두 무리의 병사들이 뒤엉켜서 싸우고 있었다.
이미 전장터가 된 것이다.
[튜토리얼.]
시가전은 10분의 제한시간에 높은 포인트를 기록하는 진영이 승리합니다. 포인트를 획득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적 진영 유저 혹은 NPC의 사망. 그리고 적 진영의 구조물 파괴입니다.
점수획득 구조는 단순했다.
미니맵을 확대하니 시청 앞 반원형의 공터에 목책과 병사들이 어우러진 형태였다.
색을 구분하기 쉽게 내가 속한 록쪽이 녹색이었고 자닐쪽이 적색이었다.
"그리고 유저는 없다."
이러면 변수는 없는 수준이다.
아군의 뒤에 숨어서 빈틈이 보일 때마다 검을 휘둘렀다.
적은 병사와 기사로 구분되어있었는데 병사가 일반공격 한 대, 기사가 두 대였다.
점수도 각각 1과 3점이었고 목책은 2점이었다.
"저 반란자들을 처단하라!"
"도시를 되찾아라!"
변수란 것이 존재하지 않은 상태로 게임을 진행하던 중에 7분이 되자 록과 자닐이 나타났다.
록은 3구역에서 보던 그대로의 흉악한 모습이었다.
반면에 자닐은 사뭇 달랐다. 연미복 위에 활동성을 강조한 경장갑을 입은 그의 손에는 레이피어 한 자루가 잡혀져 있었다. 귀족 검사라는 단어가 단번에 튀어나오는 모양새였다.
[튜토리얼.]
시가전에서 마지막에 다다르면 각 진영의 보스가 나옵니다. 일반 병사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 이들을 잡는 것에 성공한다면 엄청난 점수 획득이 가능합니다.
남은 시간은 3분에 보스가 등장했다면, 일반적으로는 개싸움이 날 것이다.
유리한 쪽이든지 불리한 쪽이든지 자신의 보스를 지킬 테니까.
예외가 있다면 지금 이 전장이다.
유저가 나 혼자밖에 없으니 보스에 대한 공격권을 독점하고 있다.
록의 앞길을 터 주며 자닐의 숨통을 끊을 때까지 앞을 막는 것은 겨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덤벼라. 자닐!"
"죽어라. 록!"
서로를 마주한 록과 자닐이 맹공을 퍼부었다. 그 여파에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휩쓸려 죽어나가는 참사가 나타날 정도였다.
록은 공격범위가 넓은 만큼 크고 단조로운 공격들이 주였고, 반면에 자닐은 공격의 폭은 적지만 재빠르고 공격횟수가 많은 편이었다.
다른 이들에게 둘 중에 누가 더 공략하기 까다롭냐면 단연코 자닐일 것이다.
록이라면 공격 후에 잠깐이지만 경직이 걸리겠지만, 자닐은 한 번은 더 공격하니까.
푸욱! 푹! 푸욱!
다섯 번째 공방 후, 모든 걸 토해내듯이 정자세에서 뻗어내는 상중하의 찌르기다.
록의 피가 눈에 뜨이게 깎일 정도의 강력한 위력이었다.
불사자인 나에게는 눈 먼 화살조차도 죽음을 맞이하게 만드니 그건 중요하지 않다.
"커허억!"
"으아악!"
진짜 중요한 것은 관통효과가 있어서 록의 뒤에 있다가는 같이 죽는다는 거다.
깊은 소리와 함께 들리는 병사들의 비명소리 두 개가 그 증거였다.
쿠우우웅!
"다 꺼져라아!"
물론 록이 가만히 맞고 있지는 않았다. 우직하게 다가가 횡을호 도끼를 한 번 휘두르기만 하면, 주변의 모든 적들이 쓰러졌다.
"놈의 빈틈을 노려라!"
록이 공격 후에 경직이 생기고 그때마다 자닐은 병사들을 지휘했다.
이때 모든 어그로가 록에게 쏠린다.
"도시에 자유를!"
"록의 잔당을 죽여라!"
자닐의 병사들이 후방에서 나타나 전진해왔다.
"대장을 지켜라!"
"배신자를 처단해!"
록의 병사들도 전진했다.
나도 이때 움직여야 록과 자닐의 공격에 휩쓸리지 않는다.
미니맵을 곁눈질하며 눈앞의 전장을 살폈다.
성인남자 열 명이 나란히 걸어갈 수 있는 일자형의 전장. 중간마다 앞을 가로막던 장애물들은 모두 무너져 있기에 단순함 힘과 힘의 부딪힘이 펼쳐질 것이다.
선택지는 두 개다.
병사들과 함께 싸우든가. 그 전에 먼저 싸우든가.
선택지는 후자다. 어차피 이긴 시가전이니 조금의 욕심 정도는 부려도 문제는 없다.
[헤이스트를 사용합니다.]
한층 경쾌해진 발걸음으로 달려갔다.
양측의 병사들이 합류하기 전이라 록과 자닐의 대결 사이에 끼어든 모양새였다.
쉐에에엑!
"죽어라. 록!"
자닐은 허리를 비틀며 레이피어를 쥔 손을 그대로 뻗었다. 그 일련의 동작은 펜싱선수를 보는 것처럼 신속하고 매끄러웠다.
그 일검을 그대로 허용했음에도 록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끼를 내려찍었다.
"간지럽다. 자닐!"
"큭! 괴물자식!"
자닐은 그 공격을 맞고 뒷걸음질을 쳤다. 소모된 체력을 보건데 록의 공격 한 번이 자닐의 공격 세 번이 달할 정도였다.
[스피어소울 마스터를 사용합니다.]
이 완벽한 빈틈을 가만히 구경만 할 수 없다. 가슴팍이 훤하게 열린 자닐에게 검을 찔러 넣었다.
목표로 하는 것은 몇 백 번이고 반복해 몸에 익은 평캔이다.
촤악!
"커허억!"
"…실패라고?"
한 호흡에 찌르고 베기가 들어가야만 했지만, 공격판정을 받은 것은 베기뿐이었다.
베기 판정만으로도 남은 체력의 절반을 날렸다는 것이 다행이라 여기지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단번에 끝냈어야만 하니까.
높은 데미지로 나에게 어그로가 쏠렸고 자닐이 검을 휘둘렀다.
"죽어라!"
"…갑옷이 두 겹?"
백스텝으로 뒤로 물러나고 구르기로 거리를 벌렸다.
자닐의 찢어진 망토 사이로 착용하고 있는 갑옷이 보였다. 얼핏 보면 몸에 딱 맞는 판금갑옷 하나만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겨드랑이 쪽을 보면 쇠사슬 갑옷이 하나 겹쳐져 있었다.
"저건 사기잖아."
찌르고 베는 평캔이 들어가려면 피부를 검이 찔러야만 하는 전제조건이 있다.
메탈베어와 같은 야수형이 아닌 인간형 NPC라 얕게 찔렀지만, 설마 갑옷을 두 겹이나 입는 것이 가능할 줄은 몰랐다.
전작에서는 NPC가 착용하는 장비나 사용하는 스킬이 결국 유저가 쓸 수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항이다.
일부 직업군은 갑옷을 두 겹이나 입을 수 있다는 거니까.
"돈이 되겠는데."
해당 직업군에 관해서는 갑옷 수요가 두 배가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해당 마스터리가 스킬북으로 나온다면 두 말할 여지가 없다.
최대한 물량을 확보해 시세를 조작할 생각을 하니 입가에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돈 냄새가 난다. 너무 나서 정신이 아찔할 정도다.
촤아악! 촤악!
"도망가지 마라. 이 애송이가!"
그 사이에도 자닐은 나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삼단 찌르기가 아닌 이상 관통이 없었기에 망설임 없이 록이나 그의 병사들의 뒤로 숨었다.
"자닐을 죽여라!"
"포위망을 두텁게 하라!"
자닐은 자연스럽게 록과 수하들에게 포위가 되는 형세였다.
남은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에 자닐은 눈 깜빡할 사이에 녹아버렸다.
[록의 진영이 승리했습니다.]
"우워어어어!"
승리의 메시지와 함께 록이 포효를 터트렸다. 승리 보상으로는 소량의 경험치와 10은화였다.
스토리를 위해서라면 굳이 참가하고 싶지 않은 이벤트였다.
눈앞에 뜬 10이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무너진 잔해와 목적을 달성한 NPC들이 사라졌다.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가며 내가 서 있던 곳에 마법진이 새겨졌다.
"Who?"
"…응?"
그때 내 앞에 처음보는 유저가 나타났다.
닉네임은 Emagician. 하얀색 지팡이를 움켜쥔 붉은 로브의 마법사였다.
"넌 뭐야."
다른 곳도 아니고 1구역이다. 이곳에 날 제외한 유저가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썩? 한국의 그 변태유저!"
어딘가 어색한 한국말로 손뼉을 친 Emagician은 신기하다는 투로 날 보고 있었다.
"서버가 달라. 여기에 어떻게 있어?"
"뭐? 난 한국서버……."
뜬금없는 소리에 말을 끝맺기도 전에 어느새 눈앞의 숫자는 0에 다다랐다.
[뜻하지 않는 만남이 우연 같나요? 그건 악연입니다. 소울리스 CEO 대니얼 올림.]
Emagician은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로딩창으로 전환된 화면에서 날 위로한 것은 대니얼이 남겼다는 불쾌한 메시지뿐이었다.
"누구지? 저 유저는."
머리가 복잡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가별로 서버가 다르다. 서로 다른 서버의 유저가 잠깐이나마 마주친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은 아니다.
엘리멘탈 소울2는 애초에 전 세계에 동시오픈을 했었으니까.
"전 세계가 경쟁을 할 수도 있다는 건가?"
뭐가 되었든지 가볍게 넘길 것은 아니다.
언제인지는 몰라도 결국 다른 국가의 유저들과 경쟁을 한다는 거니까.
"이 정보는 비싸게 팔리겠네."
Emagician이 짧게나마 영어를 썼으니 괜히 레딧에 글을 쓰기 전에 해당 정보를 팔아 버리자.
전 세계에서 1구역에 진출한 유저의 수를 파악하는 것은 그 뒤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