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52화 고인물은편을갈랐다.
[불타는 뉴 알론.]
뉴 알론의 갈등이 드디어 본격화되었습니다. 더 부유한 도시를 원하는 자닐과 예전의 모습을 지키고자 하는 록의 파벌이 갈라졌습니다.
몬스터 헌터와 죄수병에 관계없이 자신이 지지하는 쪽을 택하십시오.
3시간에 한 번씩 펼쳐지는 시가전에서 가장 많은 포인트를 기록한 진영의 수장이 뉴 알론의 시장이 됩니다.
-록 : 뉴 알론 인근의 경험치 획득량이 2% 상승합니다.
-자닐 : 뉴 알론의 보상이 5% 상승합니다.
간략하게 설명된 이벤트 내용은 많은 이들을 고민에 빠트리게 만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이 끝나고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때의 피해를 복구조차 못한 이들이 아직 많았기 때문이다.
"불사자는 히든클래스 수준이 아니야. 내가 스토리 라인을 여는 열쇠다."
반면에 나는 다른 사실에 의식이 팔렸다.
필드보스인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이 나타나기 전에 먼저 뤼움의 시험 퀘스트를 받았었다. 이번 불타는 뉴 알론 이벤트도 내가 자닐의 저택을 털고 난 직후에 생겨났다.
우연은 처음 한 번뿐이다.
모든 이벤트의 뒤에는 내가 있다.
나보다 고렙의 랭커들이 모두 레벨업에만 신경을 썼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1구역에 진입한 것은 내가 최초였다.
하나씩 맞춰지는 의심과 망상들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다만, 벅차오르는 감정에는 오래 취하지 않았다.
게임을 이끄는 것과 별개로 랭커들보다 계속 레벨이 낮아서는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꽃밭과 같은 게임 속과 달리 내 현실은 골방의 폐인에 불과하니까.
"줄을 잘 택해야 하는데."
헌터 VS 죄수병 때는 진영선택이 강제적이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강대세력들이 어느 세력이 어딜 지원하냐에 따라 원하는 방향으로 보상이 바뀐다.
껄끄러운 점은 나에게도 선택권이 있냐는 거다.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자닐과 악연이라 그쪽을 택했을 때 페널티가 있을 수 있었다.
[레벨업하려면 록이 정배 아니냐?]
[오크. 전사. 정답이네.]
[누가 허약한 인간 새끼 고르냐.]
[기부랑 필드보스 때문에 올라간 시세 때문에라도 자닐 찍는다.]
[1퍼보다는 5퍼 아니냐?]
[돈복사 가자. 자닐 가즈아아.]
레벨과 보상.
두 가지 키워드 때문에 당장의 의견은 팽팽해 보이지만, 실상은 조금씩 다르다.
경험치 획득량 보다 보상금 퍼센트가 더 높다.
현질러가 아니고서는 유저 대부분이 자금난을 겪는 초반 상황에서 자닐의 진형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으리라.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모든 게시판에서 어떤 진영이 더 좋은가에 대한 토론이 거셌다.
"자닐보다는 록이지."
여러 의견을 취합할수록 내 생각은 록으로 고정되었다.
판매하는 입장에서 높은 시세는 나쁠 일이 없다. 거기다가 2% 경험치 상승이 절대 적은 수치도 아니다.
지문대로라면 단순히 사냥만이 아니라 퀘스트 완료나 도전과제를 달성하고 얻어지는 경험치도 높아질 것이다.
록과의 호감 때문에 하는 선택도 아니다.
오픈이 되고 모든 시간을 갈아 넣었지만 아직 레벨은 40도 되지 않았다.
불사자라는 직업을 들키지 않기 위해 솔로 플레이만 했다지만, 레벨업이 너무 더뎠다.
"이럴 때는 경험치 부스터가 그립네."
흔히 말하는 K-RPG의 특징을 보면 경험치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돈으로 쪼개서 파는 일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모바일 게임 시장의 경우는 강해지는 것을 떠나서 현질을 하지 않으면 게임 진행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과거에는 정액제로 인해 높은 욕을 먹었던 엘리멘탈 소울이 재평가되는 기현상이 나올 정도였다.
엘리멘탈 소울2에서는 정액제도 포기했다.
아바타와 스킨과 같이 게임 플레이에 편이성을 위한 것은 현질로 파는 식의 부분유료화를 택한 실정이다.
다른 게임에서 종종 볼 수 있듯이 시즌패스도 안정화가 된 이후에 돌입한다는 말도 했으니 나름대로 크게 본 셈이다.
플레이어의 숫자를 최대한 유지하겠다는 것이나 나쁠 것은 없다.
결국 많은 유저가 있어야 되니까.
나머지는 직접 게임에 접속해서 느끼는 것이 빠르다.
[5.19 패치노트.]
안녕하십니까. 위대하신 영혼들이여.
금일 진행된 패치로 인해 불타는 뉴 알론이 추가되었습니다. 관련 퀘스트 중 하나를 택일하여 진영을 선택하시기를 바라며 일부 스킬들의 밸런스를 조정하였으니 자세한 내용은 해당 링크를 확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생겨 밸런스 부분을 살폈다.
여러 가지 버그를 포함해 직업과 스킬에 대한 패치가 대대적으로 행해졌다. 그중에서는 나에게도 치명적인 내용이 있었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
-5초 동안 일반공격이 방어력을 80% 확률로 무시합니다.
-쿨타임이 5분으로 늘어납니다.
-마나소모량을 제거합니다.
다른 것은 납득하고 넘어가지만, 이건 뒷목이 뻐근해졌다.
쿨타임은 2분이나 상승하는데 유지시간은 절반이나 줄었다. 무조건 무시하던 방어력도 80%로 하향되었다.
하나하나 뜯어볼수록 주옥같은 패치였다.
"빌어먹을."
원인을 찾자면 이번 필드보스 때 원거리 딜러들의 두드러진 활약 때문일 것이다.
한쪽이 너무 우세하면 연거푸 너프를 먹여 엉망으로 만들어 밸런스를 맞추는 것은 종종 있던 일이다.
그래서 스피어소울 마스터의 너프는 추후에 더 이루어질 공산이 컸다.
공홈에 따져도 돌아오는 것은 형식적인 답변이니 기대할 것도 없었다.
[록과의 대화.]
-뉴 알론의 새로운 시장이 될 록에게 조력이 필요하다. 그와 대화해 가담을 하자.
-완료 조건 : 록 진영에 가담.
-실패 조건 : 자닐 진영에 가담.
[자닐과의 화해.]
-뉴 알론의 새로운 시장이 될 자닐에게 조력이 필요하다. 그에게 화해를 청하고 도움이 되자.
-완료 조건 : 자닐 진영에 가담.
-실패 조건 : 록 진영에 가담.
다른 유저들과 달리 자닐 퀘스트 부분의 지문이 살짝 달랐다. 1구역에 진입한 나만이 자닐과의 호감도에 따른 보정을 받은 것이다.
툭툭.
"접속하시기를 기다렸습니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려 고개를 돌리니 빨간약파란약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귀를 툭툭 건드리더니 귓속말을 보내기 시작했다.
[빨간약파란약 : 해당 퀘스트에 대한 정보를 사고 싶습니다만.]
[썩이나감 : 팔면 재미가 없죠. 다만, 모두가 예상하듯이 제가 기폭제가 된 것은 확실할 겁니다.]
[빨간약파란약 : 오피셜은 아닙니까?]
[썩이나감 : 오피셜은 아니죠. 검증이 안 되니까.]
히든레코드는 정확한 정보를 파는 곳이다. 정보의 등급이 높기 위해서는 희귀도와 수요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많은 검증이 되냐는 거다.
[빨간약파란약 : 썩이나감님은 헛된 정보를 판매하지 않습니다. 본사에서는 적극적으로 신뢰하고 있죠.]
설마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히든레코드에서 저런 태도를 보이기에는 서로 간의 신뢰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한 유저가 빨간약파란약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건장한 체격의 오크 전사 캐릭터라 인간형인 빨간약파란약을 완전히 가렸다.
머리 위의 닉네임은 스윗. 1구역에 들어설 때 가장 격렬하게 연락을 해온 인물이었다.
"다크로얄의 스뮛입니다. 썩 님에게는 일전에 연락을 드렸었죠."
업계 1위인 다크로얄.
전작에서 칠대악룡 세트를 깔끔하게 판매해준 거래처이기도 했다.
"반갑네요. 직접 찾아오실 줄은 몰랐는데."
"실력이 있는 분과 친분을 쌓는 것은 항상 기쁜 일이니까요."
"정말로 단순한 친분입니까?"
보이지 않아도 지금 상황에 당혹스러워할 사람이 있다.
바로 빨간약파란약이다. 앞으로 튀어나온 그는 당장이라도 PvP를 걸 것처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썩 이랑은 먼저 대화 중이었으니 끼어들지 마시죠."
"아! 히든레코드 분이었군요.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유능한 인재를 착취하고 있으시다고."
"착…취?"
"착취맞죠. 썩이나감 님처럼 다크게이머로서 두각을 드러내는 분이 있던가요. 업계 최고로서 대우해야죠."
스윗은 빨간약파란약에게 등을 돌리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업계최고의 대우로 지원하겠습니다."
"……."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수수료 때문에라도 다크로얄에 전속으로 거래를 하는 다크게이머들은 많지만, 그중에서 제대로 대우를 받는 이들은 몇 되지 않는다. 업장을 가지고 있거나 최소한 팀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철저하게 개인으로 움직이면서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없는 수준이다.
나도 ZI존짱짱맨 시절 칠대악룡 세트를 처분하려고 하니 저 제의를 받을 정도였으니까.
엘리멘탈 소울2에서 썩이나감이 돋보이지만, 감히 그때와 비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든 생각은 하나였다.
"히든레코드 견제입니까?"
"사자가 토끼를요?"
"호오."
"과거 ZI존짱짱맨 이후, 본사도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이를 스카우트하고 있습니다."
스윗이 이런 경우로 내 캐릭터를 언급할 줄 몰랐다.
"썩 님은 우리 사람이다. 또 빼 가서 버릴려고?"
"전속이 아니잖나. 그리고 선택지를 늘려 줬을 뿐, 결정은 당사자가 한 거야."
"네놈들이 평생 갈 것 같나?"
"구멍가게보다는 오래 가겠지."
빨간약파란약은 발끈했지만 스윗은 여유로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히든레코드가 업계 2위의 위치라고 하지만 아직 다크로얄에게는 많은 것이 모자라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말 좋네요. 결정도 책임도 내가 하는 거니까."
시간 아깝게 저 둘에게 더 시간을 할애할 생각은 없었다.
스윗의 기대에 찬 눈길과 달리 빨간약파란약의 불안한 눈길이 둘의 입장을 말해 준다.
[스윗 : 다크로얄을 알고 있다면, 지금의 조건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겁니다.]
[빨간약파란약 : 다크로얄은 자선단체가 아닙니다. 다른 이들과 같은 실수를 하지 마십시오.]
내 대답을 기다리는 둘은 바쁘게 귓말을 보내 왔다. 와중에 서로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등을 지고 있었다.
"날 만족시킬 제의를 가지고 와요. 전속 이야기는 그때부터니까."
다크로얄에 이대로 전속이 되어도 나쁘지 않고, 역으로 히든레코드에 속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어디를 택하더라도 전속이 되는 순간 내 모든 행동에 제약이 걸린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대로가 최선이다.
엠페러 길드 쪽과 친해져서 업체가 없이 직거래를 하는 쪽이 더 이득은 크니까.
"…뜻 잘 알겠습니다."
"계속 연락드리죠."
서로 소득이 없는 상태로 두 사람은 물러났다.
스윗의 어깨가 조금 더 처진 것으로 희비가 정반대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유저수가 적은 채널이었음에도 록이 있는 제3구역 성문에는 제법 많은 수의 유저들로 붐볐다. 개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 두 길드의 길드원이었다.
"역시나인가."
현 시점에서 엠페러와 흑랑은 1위와 2위를 다투는 길드다. 시세가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더 많은 경험치였다.
다른 순위권 길드들도 비슷할 것이니 이보다 든든할 수 없다.
록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두 팔을 펼치고 나를 환대했다.
"뉴 알론의 존중받는 자여! 어서오게! 그대가 나를 도와주러 온 것인가!"
"시장을 만나고 생각을 굳혔지."
"환영한다. 이 뉴 알론을 아무것도 모르는 이방인에게 넘길 수 없으니까. 도끼로 놈을 쪼개버리지!"
록은 커다란 배틀액스를 들어 올리며 포효했다.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전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가득 차 있던 경험치바가 0으로 돌아가며 오랜만에 레벨업을 했다.
물리적인 보상이 없어도 가뭄의 단비와 같은 결과였다.
[도전과제, 소중한 지지를 달성하였습니다.]
[칭호, 록의 열렬한 지지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추가로 얻은 보상은 록과의 조금 더 높은 친분 정도였다.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자닐은 내 트집을 잡기 위해 이 도시의 치안을 어지럽힐 것이다. 반드시 그걸 방해해다오."
록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새 퀘스트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