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45화 고인물들은결집한다.
페널티가 너무나 심각하다.
아이템 가격이 상승하는 것도 모자라서 경험치와 아이템 드랍까지 건드리다니.
헌터 VS 죄수병으로 인해 급상승한 아이템 물가가 서울 집값처럼 올라갈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래도 필드 보스니까 다행인가."
어차피 뤼움의 시험까지 있는 마당에 반드시 잡아야만 한다.
필드 보스라서 다행인 점은 한 대라도 때리기만 하면 누가 잡더라도 토벌을 인정해 준다는 점이다.
문제는 공략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점이다.
전작에 기준으로 둔다면 난이도가 너무 높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독고무적 : 필드보스 레이드에 대해 토론합니다. 제가 귓말을 보낸 인원들은 적어둔 이즈코드로 접속해주세요.]
[흑군 : 필드보스 레이드에 대해 토론합니다. 헌터와 협력할 것으로 길드를 막론하고 정예만 뽑습니다.]
각 세력의 대장인 독고무적과 흑군이 같은 내용의 전챗을 올렸다.
이번 필드보스 레이드를 공략하기 위한 올스타를 선발하기 위함이 분명했다.
[독고무적 : 너도 참여할 생각이 있나? 헌터들 최고로만 공대를 꾸릴 예정이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나도 헌터다보니 욕심이 났지만 쉽게 승낙할 수는 없었다.
이때까지 왜 솔로로만 플레이를 했는가. 파티를 맺으면 파티원에게 내 정보가 공개되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서 불사자라는 직업을 공개할 필요가 없다.
[썩이나감 : 저를요?]
[독고무적 : 죄수병에게 필드 보스를 내줄 수는 없지.]
[썩이나감 : 합심해서 레이드 아니었습니까?]
[독고무적 : 딜량은 물론 막타까지 다 쟁취할 거다.]
독고무적은 여전히 이런 부분에서는 확고했다. 또한 나를 원하는 이유는 확실하다.
바로 압도적인 딜량이다.
버서커의 소울과 함께 각종 버프를 입고 딜을 넣을 나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썩이나감 : 제가 파티를 맺어서 좋을 것이 있겠습니까? 필드보스면 평타가 광역기일텐데. 저는 접근도 못할걸요.]
반대로 약점도 극명하다. 쥐꼬리만도 못한 체력과 방어력은 동레벨의 몬스터에게 빗맞아도 최소한 빈사상태에 빠지는 기염을 토한다.
[썩이나감 : 그리고 저 가지고 워낙 이간질이 심하잖습니까. 다른 랭커들이 불편해할 걸요?]
[독고무적 : 그것도 있군. 기다려라. 이야기를 하고 올 것이니.]
[썩이나감 : 랭커들 자존심 강한데 저 때문에 팀워크 깨지면 수습이 안 될 겁니다.]
[독고무적 : 맞는 말이군.]
거기까지 말하니 독고무적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랭커들의 자존심 싸움은 강하다. 실력이야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현질에 부주까지 돌리는 이들이 허다하다.
거기에 끼어든 나는 전형적인 이레귤러다.
비랭커들에게 나는 비교를 하면서 이간질을 하기에 너무나 좋은 도구였다.
[분노가 상승합니다.]
[시기가 상승합니다.]
"어라?"
갑자기 칠죄종 중에서 두 개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어떤 미국 CEO가 SNS에 가상화폐 로고 하나를 띄운 것처럼 정점을 찍었다.
[독고무적 : 의견을 받아들였다. 파티는 다음에 같이 하도록 하지.]
잠깐 잠잠하던 독고무적에게서 답이 왔다.
"내 뒷담화 오질나게 깐 건가?"
칠죄종 중에서 내 행동으로 수치가 높아지는 것이 있다면, 반대로 남의 행동으로 높아지는 것이 있다.
분노와 시기가 대표적이다.
독고무적이 랭커들과 의견을 조율하다가 내 욕이 나온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알림이 뜬 김에 칠죄종 수치나 확인해 볼까.
[칠죄종]
교만 : 75.
인색 : 67.
시기 : 100(MAX).
분노 : 100(MAX).
음욕 : 100(MAX).
식탐 : 100(MAX).
나태 : 100(MAX).
*칠최종 중 5개의 최대치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15% 상승 적용합니다.
나도 모르게 지를 뻔한 환호성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이거면 공격력이 얼마나 상승할 것인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잠깐만. 이러면 쓸 수 있는 스킬도 다섯 개인가?"
시기, 분노, 음욕, 식탐, 나태. 이중에서 내가 쓴 스킬은 고작해야 음욕뿐이었다.
칠죄종 효과 때문에 나머지는 제대로 쓴 적이 없었다.
"다 괜찮기는 한데."
다섯 개의 칠죄종 스킬 중에서 가장 쓸모가 없는 것을 택하라면 식탐이다.
칠죄종 스킬 식탐의 미련함은 10분 동안 최대체력과 최대마나를 2배로 올리는 것이었다.
체력 따위는 포기한 극단적 딜러인 나에게는 별로 좋지 않다.
상대적으로 식탐을 쌓기 쉽기에 더 아쉬울 뿐이다.
거기에 비하면 마지막으로 쓴 상대의 스킬을 1회 복사할 수 있는 시기의 거울이나 지정한 공간에 있는 적을 탈진 상태로 만드는 나태의 구덩이는 충분히 훌륭하다.
필요에 따라 전황을 바꾸는 조커 카드가 될 수 있다.
"물론 이게 최고지."
현재 내가 쓸 수 있는 다섯 개의 칠죄종 스킬 중 마지막.
[분노의 전투.]
-종류 : 액티브 스킬.
-효과 : 10초 동안 불사의 상태가 됩니다. 그 후에 즉사합니다.
-분노 소모량 : 100.
바로 분노의 전투다.
죽음이야 늘 가깝기에 조금도 문제가 없다.
결사항전의 영역. 스피어마스터의 소울. 거기에 분노의 전투까지 써서 말뚝딜을 넣을 수 있다면, 난 얼마나 강한 것일까.
너무 궁금해진다.
뛰는 가슴을 억누르기 힘들 정도다.
어쩌면 필드 보스도 혼자서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진정해. 속단하지 말자. 리스크도 커."
불사자라는 것을 들킬까봐 파티도 하지 않던 내가 모두의 이목이 쏠리는 필드에서 저 스킬들을 마음껏 쓸 수 없다.
칠죄종의 스킬 하나만 써도 15% 능력치 상승이 10% 상승으로 하락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특히 분노는 쉽게 스택이 쌓이지 않는다.
"최후의 보루니까."
작정하고 싸우면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에게 제대로 된 피해는 입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만 집중해서는 될 것도 안 된다.
내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에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각자 필드보스 레이드를 위한 파티를 모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니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에 대비할 아이템들을 살폈다.
일반적인 검이라면 데미지가 낮게 들어갈 것이다. 옵션에서 파괴나 관통이 들어간 물건이 필요했다.
"…없군."
문제는 매물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당연한지 고가의 아이템들이 모두 사재기 당했다.
몇 분을 뒤적거렸지만 히든레코드에도 마땅한 물건이 없었다.
[독고무적 : 헌터와 죄수병의 가이드라인입니다. 필드 보스 레이드에 참여할 분들은 참고바랍니다.]
[흑군 : 필드보스 레이드 전까지 헌터와 죄수병의 쓸데없는 마찰을 금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독고무적과 흑군이 교통정리를 끝낸 것 같다.
공식홈페이지나 아웃벤에도 두 길드를 주축으로 필드 보스 레이드에 대해 몬스터 헌터와 죄수병이 협조할 것이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빨간약파란약 : 혹시 엠페러 길드측에서 제의가 오지 않았습니까?]
조금 늦었지만 기가 막히게 냄새를 잘 맞는 인간의 연락도 왔다.
[썩이나감 : 왔었지만 거부했습니다.]
[빨간약파란약 : 어째서죠? 다른 이들과의 마찰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좋은 파티를 알선해드릴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히든레코드쪽에서도 공대를 꾸리고 있다고 한다.
미안하지만 저쪽도 거부다.
독고무적의 성격상 다른 파티에 내가 가입하면 절대 잊지 않을 테니까.
이번에도 혼자가 낫다.
각 길드들이 필드 보스의 정확한 소재지를 찾기 위해 정찰대를 보내기 시작했다.
정찰대는 북서, 정북, 북동으로 나눠졌다. 거기서 나는 북동으로 향했다.
저번에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을 본 요새가 그쪽에 있기 때문이다.
두두두두두!
수백 마리의 말들이 동시에 대지를 두드린다. 의외라면 인원수가 많으니 주변의 몬스터들이 알아서 피한다는 점이다.
AI가 확실히 상승했다는 것을 여기서 느낀다.
문제는 한 번에 이동하는 유저가 많다 보니 가끔 버벅이는 점이다.
승마에 조작보정이 없기에 나로서는 치명적이다. 낙마해서 죽었다가는 박제가 되어서 올라갈 테니까.
속도를 조금 줄여서 끝에서
그래서 조금 속도를 늦춰서 꼬리를 쫓아갔다.
"정북에 필드 보스 등장!"
"다들 뻐꾸기 날려!"
귓속말을 받았는지 선두의 유저들이 소리치며 말머리를 틀었다.
나 또한 방향을 맞추며 인터넷을 켰을 때, 화면이 시네마틱으로 바뀌었다.
* * *
크르르르릉! 크허어엉!
뿌리는 지평선보다 넓게, 그 끝은 하늘에 닿을 듯이.
절망의 산맥과 그 너머의 대지는 알피온 대륙의 인류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곳이었다.
절망의 산맥은 방파제였다.
그들이 품은 절망이 넘치면 그때서야 쏟아낼 뿐이었다.
[너희들은 실수를 했다. 필멸자들이여.]
절망의 산맥에서 태어나 그곳의 의지를 잇는 존재.
고대정령은 그 절망을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들을 보면서 분노했다.
절망은 빗물과 같이 강물에 닿아 바다로 흘러야만 했다.
하지만 필멸자들이 조금씩 절망을 흐르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산맥 근처에서 절망이 끝나간다.
모두 필멸자들의 도시 때문이다.
쿠구구구궁!
[절망을 받아들여라.]
필멸자들의 도시는 옳지 못했다.
절망의 산맥은 다시금 절망이 이 땅의 모든 것에 퍼지기를 원했다.
불멸자들이 생겨나기 이전처럼 그랬듯이 말이다.
잠들어 있던 고대정령은 산 하나를 걸치고 일어났다.
필멸자들의 도시보다는 작지만, 그들이 벌레처럼 보이기에는 충분하다.
작은 절망들이 넘지 못한 성문을 두들기고 성벽을 박살내어 다시금 모든 것이 흐르게 하리라.
[절망하라. 절망하라.]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은 불멸자들의 도시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엄청난데."
요새에서 봤던 것은 대략적인 실루엣만 보인 수준이었다.
시네마틱 모드로 본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은 짐작하던 것보다도 거대했다.
전작의 고대정령보다도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고무적 : 정찰대는 필드 보스의 위치를 끝없이 보고하라. 곧 선발대가 도착한다.]
[흑군 : 죄수병들이 진군하여 기지를 형성할 것이다. 시간을 벌어라.]
독고무적과 흑군은 자연스럽게 전챗으로 명을 내렸다. 그럴만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니 굳이 반발하는 유저는 없었다.
절망하는 산맥이 보였고 그보다는 가까이서 다가오는 산이 보였다.
[목표.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의 발을 파괴하십시오.]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의 실루엣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목표가 생겼다.
쿠웅! 쿠웅!
가까이 갈수록 지진이 심해진다. 그게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에게 가까워지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독고무적 : 정북 정찰대 전멸! 움직이는 것으로도 광역 데미지가 들어온다!]
[흑군 : 북서와 북동은 거리를 유지해라. 어그로만 끌어!]
정북으로 간 정찰대가 발견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전멸했다.
도대체 어떤 수준의 광역 데미지라는 걸까.
"난 확정으로 죽겠는데."
남들의 눈길만 없으면 불사자의 영혼함이라도 심었을 것이다.
[절망하라.]
거리가 더 가까워져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이 더 뚜렷하게 보였다.
암석으로 된 갑옷에 나무가 가시처럼 박힌 모습이었다.
"이쪽으로 유인해!"
"기마 스킬 가진 사람만 와!"
"나머지는 걸리적거린다!"
서와 동쪽에서 온 정찰대는 빠르게 재편을 했다.
탈것의 속도가 높은 이들만 나와서 어그로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고르고 고른 유저들이라 대응이 좋다. 당장은 뒤에서 사태를 관망하기만 해도 충분할 것 같았지만.
쿠우우우웅!
"끄아아악!"
"피, 피해라!"
절망하는 산맥의 고대정령이 한 발을 내딛는 순간에 퍼진 충격파는 끔찍할 정도였다.
남은 정찰대에서 빠르다고 차출된 여덟 명 중에서 다섯이 죽었다.
"저거 너무 넓은데."
저 충격파가 내 슬링 최대사거리에 근접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라면 이동속도가 지극히 느리고 반응도 둔하다는 거다.
어그로를 끌어서 한 번씩 방향을 틀어주기만 해도 뉴 알론에 도착하는 시간은 극단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독고무적 : 소속에 상관없이 원거리 딜러들은 모두 모이십시오. 지원사격이 필요합니다.]
실시간으로 보고가 되는지 독고무적의 요청도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