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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43화 (43/201)

제043화 고인물은 놀랐다.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죽어도 다시 도전하니 실험을 해보자.

퀘스트로 인해 병사들도 아군이니 효과를 보겠지.

"오오오! 요새를 지킨다!"

"우린 할 수 있어!"

날 중심으로 결사항전의 영역이 펼쳐졌다. 이때까지 잠자코 활과 창만 들고 있던 병사들이 눈에 띄게 분전하기 시작했다.

데미지가 너무 적어서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게 견제용으로만 쓰이던 창들에 힘이 실리자 강철어금니 늑대가 비명을 질렀다.

목책에 올 때까지 한 발도 간신히 날리던 화살도 빗발처럼 쏟아져 몸에 박히기 시작했다.

"…뭐야."

병사들만 둬도 버틸 수 있을 정도다. 거기에 내가 손을 거두니 결사항전의 영역이 지속되는 동안에 열 마리의 강철어금니 늑대 무리가 죽었다.

콰드득!

[크허엉!]

[크아앙!]

더 버텨 줬으면 좋겠건만 결국 목책 하나가 무너졌다. 한 번에 들이 받치는 열 마리의 상처받는 늑대들의 기세는 흉흉하다.

방금 전에 받은 수모를 되갚을 것처럼 보였다.

상대가 성이 났을 때 어울려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래서 뒤로 살짝 물러나려고 했지만 늑대들의 눈빛이 나를 따라온다.

이때까지 가한 데미지 비율이 내가 너무 높아서 어그로가 끌린 것이다.

"별수 없나."

이미 주변 지형은 파악했다.

연막의 구슬을 연달아 바닥에 던졌다.

푸스스스스.

"쿨럭! 이게 무슨 일이야!"

"동료를 공격하지 마!"

발밑에서 피어오르는 연막이 올라온다.

병사들은 당황하며 서로 어깨를 붙였다.

[커엉! 컹!]

[크르르릉!]

반면에 강철어금니 늑대들은 꽤나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직 다 회복하지 못한 마나 탓에 포션을 흡수하고 스킬 벽타기를 썼다.

부서진 요새 벽을 타고 오르자 병목현상으로 연막의 범위 바깥에 있던 늑대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우우우우우!]

그 강철어금니 늑대의 울음소리가 주변에 강하게 퍼졌다.

갑자기 연막 속에 있던 강철어금니 늑대들이 뛰어 올라 나를 깨물려고 했다.

촤하아악!

"어딜!"

원래는 화염의 구슬로 연막 속을 불태우려고 했다. 어차피 병사들은 아군이기에 피해를 입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날치처럼 팔딱팔딱 뛰어오르는 늑대들은 오히려 고맙다.

한 번에 하나씩. 스태미나가 바닥을 드러내는 것도 개의치 않고 힘껏 검을 휘둘렀다.

"이, 이봐! 이곳에 지원을 해 달라고!"

그러는 사이에 성문 쪽은 난리가 났다.

목책은 당연히 박살났고 성문도 점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쪽을 지휘하는 솔이 내게 지원을 요청했다.

"우리는 성벽 위로 화살을 쏜다!"

"썩이나감 님이 솔 백인장을 지원해 주십시오!"

같이 싸우던 병사들이 그에 호응했다.

솔이 백인장이라는 것에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그런 것치고는 병사가 겨우 서른 명밖에 없었다.

"나머지 병사는 없나?"

"…반은 죽고 나머지는 환자요."

거리가 가까워지자 솔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퀘스트 진행 중에 중요한 NPC와 감정이 더 상할 수는 없다.

콰드드득!

"비, 빗장이 부러진다!"

"성문이 열린다!"

강제로 열리려던 성문을 마지막까지 억눌러 주던 빗장이 분질러졌다.

콰앙!

끝내 성문이 활짝 열렸다.

선봉은 거대한 몽둥이로 연신 두드렸던 외눈박이 트롤이었다.

외눈박이 트롤.

레벨 45로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는 독보적인 체력과 체력회복량이 특징이다.

저 녀석이 상대면 아까 전에 쓴 결사항전의 영역이 아쉽다.

쿠웅! 쿠웅!

[크어어어어어!]

외눈박이 트롤이 풍차처럼 몽둥이를 휘두르며 요새로 들어왔다. 말이 좋아 몽둥이지 사실상 통나무를 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저놈을 공격하려면 품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데 저 무지막지한 거리가 문제다.

통상공격인 것은 분명하지만 저게 튕겨내기가 될까 싶다.

"아니면……."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외눈박이 트롤의 괴력에 병사들이 손수무책으로 밀리고 있었다. 나머지는 강철어금니 늑대보다는 레벨이 낮은 노란 코볼트 무리였다.

[1인 도발을 사용합니다.]

[상대가 도발에 걸렸습니다.]

먼저 1인 도발을 외눈박이 트롤에게 사용했다.

[크어어어어!]

도발에 걸린 놈은 주변의 병사들에게 공격을 받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에게 돌진했다.

슬링에 화염의 구슬을 얹어 던지며 놈과의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보폭에서 너무 차이가 컸다. 트롤의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거리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겨우 네 발자국 내딛었을까.

외눈박이 트롤이 힘껏 몽둥이를 휘둘렀다. 뒤로 구르기를 사용해서 피했다.

콰득.

몽둥이의 끝에 턱이 걸렸다.

[YOU DIED.]

"……."

허망한 죽음에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외눈박이 트롤의 사거리가 긴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거리계산에 실패한 것은 아주 심각한 실수다.

"제대로 못 본 내 실수네."

죽은 화면을 느리게 돌아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달려오던 그대로 공격을 해서인지 외눈박이 트롤이 반 발자국 더 내딛은 상태였다.

외눈박이 트롤이 워낙 거구인지라 그 작은 차이가 날 죽였다.

백스텝이라도 썼어야 하는데 당연히 피할 거라도 방심했던 내가 멍청했다.

부활하자 모든 것은 처음으로 돌아가 있었다.

불사자의 영혼함을 챙기고 요새 안에 심었다. 이번에는 처음과 달리 동쪽 벽이 무너져 있었다.

아까처럼 무너진 벽에는 목책 두 개를 세웠고 성문 앞에 한 개를 세웠다.

또한 다가오는 적의 발목을 잡아줄 아이템도 사용했다.

"몬스터가 온다! 모두 정신 차려!"

첨루의 감시병이 똑같은 대사를 했다.

이번에는 솔이 뭐라고 하기 전에 먼저 움직였다.

[몬스터를 처리하십시오. 0/2.]

똑같은 목표는 무시하고 슬링에 쇠구슬을 얹었다.

[커엉! 컹!]

내 쪽으로 강철어금니 늑대가 달려왔다.

쿵! 쿵!

놈들이 오는 길목에는 기름통을 설치했다. 거기에 쇠구슬을 쏘니 구멍이 뚫리며 기름이 바닥에 스며들었다.

엘리멘탈 소울에서는 아이템의 활용법이 매우 중요하다. 이제 저 위에 화염의 구슬을 쏘면 된다.

화르르륵!

화염의 구슬이 기름에 적셔진 대지에 불을 붙였다.

메마른 들판에 퍼진 불길처럼 빠르게 퍼졌지만, 강철어금니 늑대는 그걸 무시하며 달려왔다.

[커엉! 컹!]

모두 조금씩이지만 데미지를 입었다. 운이 없게도 화상까지 입은 늑대는 겨우 하나뿐이다.

퍼억!

그에 개의치 않고 힘껏 쇠구슬을 던졌다.

결사항전의 영역은 외눈박이 트롤을 상대하기 전까지 봉인이다.

쿠웅! 쿵!

겨우 한 마리를 슬링으로 죽인 사이에 강철어금니 늑대가 목책에 들이 닥쳤다.

처음과 같이 연막의 구슬로 시야를 가리고 성벽을 타올랐다. 나를 본 늑대들을 죽인 뒤에 물러나 병사들로 시간을 때운 뒤에 다시 공격을 하는 것으로 반복했다.

"…후."

검이라면 일격필살이다.

별다른 피해가 없이 늑대들을 모조리 제거했다.

콰아아앙!

"성문이 부서졌다!"

"진열을 가다듬어!"

시기적절하게 성문이 박살나고 외눈박이 트롤과 노란 코볼트 무리가 요새로 들어왔다.

처음과 3분이나 늦어졌음에야 일어난 일이다. 이걸 보면 한쪽을 퇴치하기 전까지는 성문이 부서지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퀘스트 공략의 권장레벨보다 낮고 권장인원도 충족하지 못하는 나 같은 유저를 위한 밸런스 조절이다.

그런데도 마냥 즐기지 못하는 것이 이 게임의 현실이다. 물론 한 번이라도 맞으면 죽는 내 현실이다.

몬스터와 병사들이 엉켜있는 상황을 보고 마냥 생각에 잠길 수도 없다.

[1인 도발을 사용합니다.]

[상대가 도발에 걸렸습니다.]

먼저 외눈박이 트롤을 내쪽으로 유인했다.

[크어어어어!]

주변의 병사들의 내팽개치고 달려오는 녀석을 보며 숨을 가다듬었다.

이번에는 아까 전처럼 허무하게 뒤질 수는 없다.

후우우웅!

마지막 디딤발까지 확인한 뒤, 구르기로 안전하게 뒤로 피했다.

외눈박이 트롤이 상대하기 힘든 것은 저 강력한 일격이다. 숙련도가 낮은 파티의 경우 탱커가 한 대 맞아주고 시작할 정도였다.

그래도 후속타가 없다시피 할 정도로 공격사이의 딜레이가 컸다.

한번 파고들면 그대로 끝이다.

촤아악! 촤아악!

스피어마스터까지 쓴 상황에서 휘두른 일격은 건맨의 소울로 두 번 적용이 되었다.

[도전과제, 트롤을 일격에 죽인 자를 달성하였습니다.]

기쁜 마음이 들었지만 즐길 여유는 없다. 아직 노란 코볼트 열아홉 마리가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까.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다 죽여!"

노란 코볼트와 병사들이 뒤엉킨 곳에 다가가 결사항전의 영역을 사용했다.

[케헤엑! 켁!]

[끼아아악!]

요새의 병사들이 머릿수가 앞서던 상황이다. 거기에 펼쳐진 결사항전의 영역은 압도적으로 노란 코볼트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좋네. 아주 좋아."

효과에 적용되는 병사의 수가 많을수록 체감이 컸다.

노란 코볼트가 겨우 레벨 34인 탓에 뒷짐만 지고 있어도 알아서 정리가 될 정도였다.

[몬스터를 처리하십시오. 2/2.]

마지막 하나마저 죽임으로서 목표도 완성이 되었다.

"고맙소. 덕분이오!"

"요새나 수리하라고."

"알겠소. 곧 지원이 올 것이니!"

퀘스트의 흐름에 따라 솔이 주변을 정리했다. 곧 지원병력과 함께 물자를 싣고 온 인부들이 요새를 천천히 수리하기 시작했다.

퀘스트가 이대로 끝났으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다.

[요새가 수리될 때까지 인부들을 지키십시오.]

바로 이거다.

지금부터는 랜덤하게 몬스터가 출몰한다.

주변을 지나가는 마적 떼일 수도 있고 바닥을 헤집고 올라오는 두더지나 벌레 쪽도 가능하다. 아니면 내가 가장 취약한 공중에부터 노리고 올 수도 있다.

인부가 하나도 죽지 않게 버티는 시간은 대략 5분 정도라고 했다.

먼저 무너진 벽과 성문에 함정들을 설치했다. 다른 이들이라면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올라가겠지만, 나는 예외다.

바로 창공의 독수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게 있으면 3분 동안 미니맵에 적들이 표시가 된다.

3분이라는 제약도 처음에는 저렙 몬스터가 오니 조금 뒤에 쓰면 될 뿐이다.

"시체먹이새가 온다. 내쫓아!"

"몬스터 시체를 불태워!"

먼저 날아온 것은 시체먹이새였다.

방금 전에 잡았던 노란 코볼트보다도 레벨이 낮은 녀석이라 그렇게 위험하지도 않았다.

[끼아아악!]

병사들이 몬스터 시체를 태우자 먹이를 잃은 시체먹이새들이 병사들과 인부들에게 달려들었다.

퍼억! 퍽!

그걸 지켜보다 한 번씩 슬링을 던져 시체먹이새들을 죽였다. 몇 번의 웨이브가 올 것인지 몰라도 이 정도면 감사할 따름이다.

두 번째 웨이브는 강철어금니 늑대였다.

숫자는 고작 열 마리였기에 병사들의 도움을 받아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창공의 독수리를 사용합니다.]

대략 2분이 넘었을 무렵이었으니 창공의 독수리를 켰다.

"…뭐야."

그리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 눈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점들이 미니맵에 빼곡하게 찍혀 있었다.

일당백이 아니라 일당천은 해야 할 정도다.

"성문 수리 끝났습니다!"

인부의 외침이 마냥 달갑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아직 동쪽 벽의 수리는 되고 있지 않았다.

미니맵을 보자 천만다행이게도 극히 일부의 적들만이 오고 있었다.

쿠웅! 쿠웅! 쿠웅!

지면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병사들은 사색이 되었다.

"트롤들이다! 트롤들이 온다!"

"젠장! 성문을 열고 적과 싸운다. 수리를 마쳐야 해!"

정해진 것처럼 솔은 성문을 열었다.

병사들과 앞을 향해 나가다가 빠른 속도로 요새로 가는 놈들이 보였다.

외눈박이 트롤의 숫자는 넷이다.

병사들과 함께 싸웠다가는 어설프게 휘말린다.

[1인 도발을 사용합니다.]

[상대가 도발에 걸렸습니다.]

선두에 선 외눈박이 트롤 하나에게 도발을 걸고 옆으로 빠졌다. 어차피 일격필살이니 하나씩 제거하면 금방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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