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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40화 (40/201)

제040화 고인물은격렬하다.

"어차피 이기는 것은 나다!"

헬조선순례자는 이동속도와 공격속도를 올리는 순례자의 박수를 사용했다. 그리고는 벽타기가 끝나서 지면을 밟은 나에게 추가타를 펼치기 시작했다.

모두 원거리 스킬이지만 피하기는 어렵지 않다.

엘리멘탈 소울2은 버프 스킬을 제외하면 논타겟팅이기 때문이다.

전작에서부터 즐긴 유저들은 불만을 가지지만, 그 차이점이 새로운 유저들을 더 열광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했다.

"이이익! 어째서 다 피하는 거냐!"

헬조선순례자는 원거리 공격 스킬만 추가로 세 개 정도를 새로 배운 것으로 확인되었다. 위력이야 날 죽이기에 충분하지만 정작 사거리나 공격범위 등 다 하나씩 부족한 것들이었다.

탱딜힐 모두 되지만 어느 쪽으로도 특화가 되지 않는 순례자의 약점이다.

"빌어먹을! 나에게 오지도 못한다고 호언장담하더니!"

헬조선순례자가 이를 부득부득 갈기 시작했다. 원거리 스킬들이 모두 쿨타임에 빠져서는 아닐 것이다. 보유하고 있는 마나가 바닥을 드러낸 것이 분명하다.

레벨보다 높은 수준의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고 해도 무제한으로 스킬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나였다면 스킬을 난사하지 않고 쿨타임이 짧은 원거리 스킬들로 날 견제했을 것이다. 사람인 이상 한 번은 실수하게 되어있으니까.

헬조선순례자는 나와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다시 헤이스트를 쓰면서 중간에 구르기를 섞으며 거리를 좁혔다.

"네놈도 스태미나가 바닥을 드러냈겠다!"

갑자기 달라진 움직임에 헬조선순례자는 착각을 한 모양이다.

내 능력치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히 근력이 맞지만, 그렇다고 지구력이 낮은 편은 아니다.

투웅!

헬조선순례자가 제자리에 뛰어오르면서 몸을 비틀었다. 축이 되는 왼발이 바닥을 박차면서 높게 뛰어오른 그대로 오른발로 내 머리를 찍었다.

유성각. 순례자들이 초반에 익히는 주력 스킬 중 하나다.

회전 발차기 특유의 넓은 공격범위는 점프로 인해 사선을 긋고 있다.

스킬인 이상 튕겨내기는 불가능했다. 서로 근접한 상황이라 뒤로 물러나는 것은 기껏 좁힌 거리를 내주는 겪이다.

저 스킬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아래쪽으로 파고드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

구르기로 놈의 밑을 굴렀다.

1인칭이던 시점이 3인칭으로 바뀌면서 헬조선순례자의 표정을 봤다.

놈은 공격이 실패해 낭패라기보다는 오히려 웃고 있었다.

위화감에 구르기가 끝나는 즉시에 백스텝을 사용했다.

콰아앙!

믿기지 않게도 헬조선순례자의 두 발이 바닥에 처박혔다. 구르기만 사용했다면 그대로 저 공격에 죽었다.

반복적인 사용으로 백스텝의 레벨이 높아진 것이 신의 한수다. 만약 숙련도가 낮았다면 사용하는 순간에 죽었을 테니까.

"…스킬 캔슬이라."

유성각의 모션은 똑똑히 기억한다. 무릎이 끝까지 펴져야하는데 그 전에 다른 스킬을 사용했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근접격투가 익히는 만근추일 것이다.

만근추가 공중에서 써야 하기에 외면을 받는 스킬이라 감히 예상하지 못했다.

문제라면 준비가 거기까지라는 거다.

촤하악!

스킬 사용 후의 경직 때문에 아직 무방비인 등판을 검으로 힘껏 베었다. 특별히 버서커의 소울도 쓸 필요도 없었다.

단 일격에 237등 랭커인 헬조선순례자의 체력이 다 사라졌다.

촤하악!

다만, 그가 착용한 아이템에 붙어있는 옵션인 데미지 반사효과에 나 또한 죽음을 맞이했다.

[헬조선순례자 사망.]

[썩이나감 사망.]

[헬조선순례자 님에게 승리하였습니다.]

회색으로 변한 시야의 우측상단에 뜨는 알림이 나의 승리를 확정지어주었다.

[도전과제, 일격필살을 달성하셨습니다.]

[도전과제, 유리몸을 달성하셨습니다.]

추가로 뜨는 알림을 확인하니 보너스 스텟을 추가로 1씩 획득할 수 있었다.

"움직임 쩐다. 저걸 어떻게 다 피해?"

"백스텝 판정 개사기였네?"

"그보다 벽타기 스킬 뭔데!"

좁혀진 시야만큼 긴장이 덜어졌다. 자연스럽게 관중들의 소리가 들렸다.

벽타기 때부터 내 움직임이 화제가 된 것 같다.

헬조선순례자의 모든 공격들을 한 대도 맞지 않고 피했으니 예상한 정도다.

"딜 실화냐? 랭커가 한 방에 녹아?"

"데미지 반사에 죽을 정도야?"

"순수 딜량 미쳤다."

"저런 컨이 돼야 쓰는구나."

그 사이에서 비집고 올라오는 감탄도 느껴졌다.

"후우."

깊게 숨을 마시고 천천히 내쉬었다.

갑자기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자칫 자만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에 이건 좋지 않았다.

실력 대 실력이면 내가 유리하다.

하지만 썩이나감이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리스크를 생각하면 절대로 집중력을 흩어져서는 안 된다.

개미새끼 하나를 상대해도 짓밟아 죽이기 전까지 집중할 것이다.

2라운드가 시작되고 놈과 나는 투기장의 중앙으로 강제이동 되었다.

"그 사기꾼 새끼들이 날 속이다니!"

헬조선순례자가 누구를 원망하는 것인지 물어볼 것도 없다.

막피흥신소와 탐욕인력이 오히려 불쌍해진다. 처음에 펼친 지면 구르기는 물론 유성각과 만근추의 연계는 분명히 위협적이다.

그 두 사람이 날 얼마나 조사했는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문제는 그걸 소화할 헬조선순례자의 역량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어째서 한 대도 맞지 않는 거야. 단 한 대면 되는데. 단 한 대면!"

헬조선순례자는 제자리에서 울분을 토해냈다.

2라운드가 시작되고 급하게 손가락을 까딱이고 있었다. 그 위치를 보면 친구목록을 띄워서 검색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투기장에서 찾을 수 없던 막피흥신소와 탐욕인력라고 볼 수 있다.

"잠수 탔지. 개네들?"

"너……."

"끝까지 호구짓 하셨네. 한 번 우렁차게 울어 봐. 음머어어."

두 유저가 보통 짬타이거도 아니고 날 뒤통수쳤던 업계의 흉악범들이다.

히든레코드의 움직임을 듣자마자 딱 헬조선순례자까지만 거래를 하고 도망쳤을 것이다.

"템팔이 개새끼들!"

결국 헬조선순례자가 공격을 시작했다. 1라운드와 다른 점은 지면 구르기가 아니라 원거리 공격 스킬들을 난사한 점이다.

침착함을 유지하며 하나씩 스킬들을 피해냈다.

"너 진짜 멍청하구나."

헬조선순례자가 사용하는 스킬 순서는 소름이 끼치도록 똑같았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지면 구르기 스킬을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노림수는 뻔했다. 뒤로 물러나는 자신에게 내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벽타기가 아니라면 지면 구르기를 쓰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으니까.

내가 벽에 붙어서 오지 못하게 스킬을 쓰기도 했다.

헬조선순례자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는 것 같지만, 저 멍청함은 여전하다. 스킬남용으로 금방 마나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걸렸다!"

대략 10M를 남겨 둔 상황에서 내가 달려오자 그가 더 이상 물러나지 않고 한쪽 다리를 높게 들어 올렸다.

저 모션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다.

[헤이스트를 사용합니다.]

[이동속도를 12% 상승시킵니다.]

내 답은 정면돌파다. 가까워진 나를 보며 환호하는 그의 표정이 더 크게 보였다.

"멍청한 놈!"

"동감이다."

난 지나치게 헬조선순례자에게 다가갔다. 이 거리에서 지면 구르기를 사용한다면, 나는 꼼짝없이 죽는다.

물론 그건 정상적인 경우다.

헤이스트를 사용해 빨라진 내가 스킬을 시전하기 전에 움직였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발이 땅에 닿기 전에 이미 나는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왜, 왜 이렇게 빨……!"

뒤늦게 일이 잘못되었음을 안 헬조선순례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촤하아악! 촤하아악!

더듬거리는 입술이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검으로 머리통을 베었다. 시기적절하게 건맨의 소울이 터져 쓰러진 뒤에도 검의 궤적이 남았다.

[헬조선순례자 사망.]

[썩이나감 사망.]

[헬조선순례자 님에게 승리하였습니다.]

물론 두 번이나 돌아오는 데미지 반사에 나도 뒤따라 죽은 것은 흠이다.

[도전과제, 연승의 사나이를 달성하셨습니다.]

[도전과제, 간발의 차이를 달성하셨습니다.]

이번 도전과제의 보상은 회복아이템과 약간의 명예였다. 나쁘지 않지만 겨우 이거에 만족할 수 없었다.

진짜는 앞에 있으니까.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결투가 끝난 후, 다른 사람과 섞여 있는 투기장에서 헬조선순례자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코앞에 다가온 역전의 순간을 놓쳤다.

그는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되니까 내가 이겼지. 또 그 흔한 핵썼다라던가 버그 플레이라던가 지껄이시게?"

"이이익!"

"아니면 시간을 끌고 도망치게? 정말로 그럴 수 있겠어?"

나는 슬쩍 관중석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짝짝짝.

"승패가 결정되었군. 이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있나?"

기다렸다는 듯이 독고무적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커다란 음성에 부정을 하는 이들은 없었다.

모두 노골적으로 웃으면서 헬조선순례자를 보고 있었다.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었다.

"캐삭해라. 헬조선!'

"네가 캐삭빵하쟀다며!"

"지워라. 병신아!"

패배한 검투사의 죽음을 바라던 영화의 관중처럼 유저들은 헬조선순례자의 끝을 바라고 있었다.

비매너 유저로 불리며 자기 잘난 맛에 플레이를 하던 유저에게 우호적인 이는 몇 없었다.

"내놔. 약속대로."

한껏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고 그에게 손을 뻗었다.

꽈아아악!

"……."

헬조선순례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굳게 주먹을 쥐고 있을 뿐이다.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가 망설일수록 야유는 원색적인 비난과 욕설이 되어 그를 조롱할 뿐이니까.

"다 가지고 꺼져!"

헬조선순례자는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은 물론 인벤토리 안의 것들까지 하나씩 던지고는 사라졌다.

*       *       *

우와아아아아아!

투기장은 축제가 펼쳐진 것처럼 시끄러워졌다.

헬조선순례자가 자신의 아이템을 바닥에 던지기 시작한 이후부터다.

드디어 캐삭이 시작된다.

처음부터 그걸 보기 위해 모인 이들이 환호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중에서 자신만의 온도를 유지하는 이들도 있었다.

작금의 사태를 키운 독고무적. 그리고 그와 대등한 존재인 흑군이었다.

"어때. 소문보다 강하지?"

독고무적은 흑군에게 으스댔다.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은 없기에 썩이나감과의 일은 대충 언질했다.

"저 친구 조심하라고 전해 둬."

"무슨 말이지?"

"죄수병 만들 수 있으니까."

흑군의 시선은 썩이나감에게 고정되었다. 장난스런 어투지만 눈빛만큼은 진지했다.

헬조선순례자가 템빨만 믿는 어중이떠중이라지만 명색이 랭커였다. 그런 상대를 일격에 무너트렸다.

게임 내에 널리 퍼진 극공전사 컨셉의 플레이가 예상보다도 더 엄청났다. 또한 썩이나감과 비슷한 수준으로 모방할 수 있는 유저조차 없음을 깨달았다.

엘리멘탈 소울2에서 수많은 관종가 즐겜러가 있지만, 썩이나감은 대체가 불가능했다.

"다크게이머를 떠나 저건 진짜니까."

"글쎄. 저 친구를 억지로 우리 길드에 포섭하지는 않은 만큼, 소속을 바꾸게 두지 않아."

"재밌겠군. 한번 말이나 걸어 볼까."

PvP에 정통한 유저인 흑군에게 썩이나감의 플레이는 전율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몬스터 헌터. 그리고 죄수병.

두 세력은 마음먹기에 따라 전향이 가능했다.

"그를 건드리지 마."

"그가 직접 선택하는 거라면?"

"……."

흑군도 썩이나감 때문에 독고무적과 무리한 마찰은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관심이 생긴 것을 두고만 있는 체질도 아니었다.

투기장의 무대로 내려가니 인벤토리를 정리하고 있는 썩이나감이 있었다.

"죄수병이 될 마음은 있나?"

흑군은 곧바로 본심을 드러냈다. 거기에 대한 썩이나감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거절합니다."

"그런가? 죄수병이 오히려 자네에게 좋은 둥지가 될 것 같은데."

"언젠가 체험은 하는 걸로 하죠."

썩이나감은 둘러 둘러 거절했다. 그와 굳이 나쁜 관계를 형성할 이유가 없었다.

"흐음. 그런 건가."

흑군으로서는 못마땅한 결과였다. 원하는 답은 아니지만 여지가 남았다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니었다.

실제로 독고무적도 탐탁지 않은 기색이었으니까.

"선제시요."

"음?"

"물건 팝니다."

썩이나감이 불쑥 아이템 하나를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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