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35화 (35/201)

제035화 고인물은응징한다.

스토커가 언제부터 따라다녔을까.

누가 날 쫓아다니고 있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어설프게 뒤를 돌아보면 스토커에게 눈치를 챘다는 것을 들킬 수 있다. 그걸 감추기 위해  앞을 보며 걸어갈 뿐이었다.

녹화된 플레이 영상을 작게 틀어 3인칭으로 확인한 결과. 날 쫓고 있는 유저와 유사했다. 시기는 마지막 사냥 중에 수풀로 접근한 것 같았다.

막피흥신소라는 특이한 닉이라 기억하기도 쉬웠다.

"특히 저 얼굴에 문신은……."

막피흥신소의 이마에 새겨진 $ 문신의 의미는 잘 알고 있다.

다크게이머도 급이 존재한다. $는 이 바닥에서 신용을 잃은 놈들이 하고 다니는 표시였다.

남들이 할 수 없는 더러운 일들로 돈을 벌고 다닌다. 쓰레기통을 뒤진다고 해서 속칭 짬타이거라고 불렸다.

전작에서 짬타이거들은 꽤 귀찮은 존재였었다. 뜬금없이 PK를 걸어오거나 사냥감을 스틸하는 등의 온갖 귀찮은 짓을 해서다.

저열한 행동 중에서 가장 귀찮았던 것은 바로 PK였다.

사냥 중에 뜬금없이 뒤에서 공격당해 종종 계획들이 틀어졌기 때문이다.

동해길드와 결국 손을 잡은 것도 그들 때문이었다.

엘리멘탈 소울2에서는 그때처럼 비를 피할 지붕 따위가 필요없다.

랭커들을 상회하는 내 강함만을 믿어서는 아니다. PK 기능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굳이 짬타이거를 붙이려는 존재가 몇이나 있을까.

먼저 떠오른 것은 천하제일 길드와 스피릿 길드였다. 물론 곧바로 용의선상에서 지웠다.

엘리멘탈 소울2에서 재기를 꿈꾸는 그들이 또다시 평판을 떨어트리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업계의 쓰레기들과 엮여서 좋을 것은 없었다.

"…뭐. 알아서 나오겠지."

짬타이거를 고용할 정도라면 얌전한 인물은 아니다. 답답하면 직접 나서게 될 것이다.

난 그때까지 더 강해지면 된다.

길드로 들어가자마자 발레인에게 퀘스트 아이템을 넘겼다.

"좋아. 훌륭하군. 역시 자네가 우리 길드의 희망이야!"

발레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어깨를 두드렸다. 빌어먹을. 방어구가 없으니 체력이 깎일 정도다.

"저 사람 거의 랭커인가 봐."

"그러게. 저렇게 환호하다니."

"변태 미쳤네……."

길드 내의 다른 유저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벤트 기간 동안에 발레인은 흔히 말하는 랭커 층정기였다. 이때까지의 호감도나 몬스터 헌터 등급에 관계없이 누적 포인트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였다.

시큰둥하게 대답하거나 무시하는 경우는 막 걸음마를 뗀 경우고 지금처럼 어깨를 두드릴 정도면 500위에 근접했다는 표시였다.

300위 안쪽으로는 어깨에 팔을 걸치고 100위 안쪽으로는 헤드락을 건다고 했다.

나와 같은 대우를 받는 이는 거의 없다. 쏟아지는 눈길은 당연한 수순이다.

"…조금 아쉽네."

내 랭킹을 확인하니 502위까지 올랐다. 확실히 상승폭이 적어졌다.

레벨이 1이라도 더 오른다면 더 어려운 퀘스트를 잡아야만 할 것 같다.

그때까지 메탈베어를 사냥해도 될 것 같다.

짬타이거가 공략을 뺏겨가도 상관이 없다.

이제는 던전도 돌아야 할 것 같다. 최우선은 3~4명 권장에 몬스터의 수가 작고 근거리 전투가 가능해야만 한다.

"여기 두 곳이 낫겠지."

선택한 곳은 아울베어의 둥지와 붉은두건 산적단이다.

히든레코드를 통해 이미 공략법까지 구매한 곳이라 시행착오는 적을 것이다.

아울베어의 둥지 퀘스트도 받아간 후, 뉴 알론을 벗어났다. 그때까지도 막피흥신소가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다른 유저들에게 숨으면서 다가오는 것이 꽤나 익숙해 보였다.

저들이 누구를 쫓아다녔는지는 모른다.

미안하게도 난 한 번 주목한 상대방을 놓칠 만큼 집중력이 부족하지 않다.

[푸히이잉!]

지금은 제법 익숙해진 소환으로 회색말을 불렀다. 처음처럼 놈은 귀가 아플 정도의 울음소리와 함께 말갈기를 거세게 흔들었다.

"워워. 착하지. 착해."

흩날리는 말갈기를 손으로 쓰다듬자 그 거침이 줄어들었다. 정수리에서 시작된 손길을 안장까지로 끝낸 후에 안장에 올라탔다.

"가자!"

높아진 시야만큼 높아진 자신감에 목소리가 커졌다.

목표지는 메탈베어의 서식지. 짬타이거가 계속 쫓아온다면 이번에 졸업을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하겠지.

"뭐, 뭐야. 저 말은?"

"겁나 빠른데? 저 불꽃은 또 뭔데?"

저렙구간의 유저는 물론 비교적 고렙의 유저들도 놀라 쳐다봤다.

나이트메어의 말발굽이 주는 화려한 이펙트가 전부는 아니다. 옵션으로 상승된 속도는 선두주자를 금방 제칠 정도로 만들어줬다.

하물며 후발주자는 어떨까.

날 쫓아오던 막피흥신소는 진즉 뒤에 쳐져서 보이지도 않았다.

메탈베어 서식지로 3인 파티와 4인 파티가 하나씩 있었다. 선객이 있으니 보다 깊숙이 들어갔다.

주변에 아무도 없자 아예 채널을 바꿨다.

막피흥신소가 날 찾으려면 제법 수고를 해야 할 것이다.

"자. 곰 잡아 볼까."

이곳을 뜰 정도로 실컷 날뛰어 보자.

*       *       *

"빌어먹을.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뒤늦게 메탈베어 서식지로 온 막피흥신소는 두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살폈다.

사냥 중인 파티가 둘이나 있었지만 어디에도 썩이나감은 없었다.

"제길. 똑같은 회색말인데 왜 그렇게 차이가 나냐고!"

뉴 알론을 벗어나자마자 급격하게 벌어졌던 거리를 생각하니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다.

막피흥신소는 아직도 머릿속에는 그 빌어먹을 말발굽이 아른거렸다. 그 템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썩이나감의 행적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눈앞에서 목표물을 놓친다. 그것만큼 불편한 것은 없었다.

[막피흥신소 : 그 새끼 못 봤냐? 벌써 채널 6개를 돌고 있다고!]

속을 타들어 가게 만드는 것은 썩이나감의 위치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입도 뻥긋하지 않겠지만 동업자라면 사정이 다르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불만을 토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탐욕인력 : 찾았다. 내가 있는 7채널에 있어.]

잠시 후, 동료에게서 귓속말이 왔다.

[막피흥신소 : 진짜야? 녀석 맞아?

[탐욕인력 : 저놈이 랭커가 아닌 것이 이상해. 컨트롤이 미쳤다고. 넌 못 봤어?]

[막피흥신소 : 난 가니까 거의 다 잡은 상태였다고.]

막피흥신소는 속으로 차오르는 불만을 삭혔다. 곧바로 7채널로 이동하려고 할 때였다.

[탐욕인력 : 야. 그런데 저놈 너 눈치 못 챈 것 맞아?]

[막피흥신소 : 맞아. 왜?]

[탐욕인력 : 뭔가 이상해. 저 새끼. 넌 오지 말아 봐. 내가 자료수집할게.]

[막피흥신소 : 그래. 알겠다.]

막피흥신소는 그걸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하나밖에 남지 않는 동료의 신중함은 자신감보다 더 귀중했다.

그걸 무시했다가 일어난 것이 ZI존짱짱맨 사건이었으니까.

[탐욕인력 : 플레이 영상 업로드할테니까. 그거 분석해 줘. 네가 그건 최고잖아.]

반 박자 늦게 온 채팅은 불만을 삭히기에는 충분했다.

막피흥신소도 동영상을 통한 분석은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이게 랭커가 아니라고?'

내심 흐뭇한 막피흥신소와 달리 탐욕인력은 이번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메탈베어는 최소 레벨 30을 기준으로 4인 파티를 권장한다. 어그로를 끌어줄 탱커에 딜러 두 명, 그리고 힐러 한 명이 이상적이었다.

단독사냥이 가능하다면, 랭커에 근접해야만 한다.

랭커의 끝자락인 300위 유저의 레벨이 34이였기 때문이다. 그들처럼 확실하게 메탈베어보다 레벨이 높지 않다면, 단독사냥은 불가능하다.

'랭커라도 이렇게 잡을 수 있을까?'

썩이나감은 엘리멘탈 소울2의 기형적인 존재였다. 흔히 극공전사로 불리는 소율을 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순수한 공격력은 이미 어지간한 랭커들을 압도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물론 모두가 그를 인정한 것이 아니었다.

[눈 먼 화살 맞고 뒤지면 뭔 소용이 있냐.]

[고렙되면 저 딜은 소용없어.]

[조금만 가 봐라. 몬스터 하나 잡기도 힘들다.]

전형적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플레이. 그 결말을 속단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컨셉 플레이가 결국 정석이 되지 못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막피흥신소도 거기에 동의하는 입장이었다.

썩이나감의 공격력은 지금에서야 빛을 발하지 온몸에 고품질의 아이템으로 도배할 유저들에게 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서 그를 관찰하라는 의뢰도 단순한 호기심으로 끝날 줄 알았다.

'저 플레이가 단순한 컨셉러는 아니야. 고였어. 그냥 고수라고.'

아무리 단순한 게임을 하더라도 작은 움직임에서 오는 차이는 명백하게 크다.

썩이나감은 메탈베어의 공격을 피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저 거리는 1cm만 더 다가가도 발톱에 찢기는 거리다.

터엉!

그리고 휘둘러지는 일반공격을 지금처럼 사자처럼 용맹하게 나아가 튕겨낸 후, 두 발자국 다가가 공격을 할 수 있는 최적의 거리이기도 했다.

푸욱! 촤악!

한 번의 공격에 터진 두 번의 임펙트.

'저 모션은 뭐지? 건맨의 소울인가?'

탐욕인력은 멀리서 봤기에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었지만, 방금 전에 보인 썩이나감의 동작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건맨의 소울이라면 똑같은 임펙트가 나와야 하지만, 서로 다른 것이 나왔기 때문이다.

'거리 때문에 잘못 보였을 수 있어.'

뒤에서 지켜보는 것도 변수일 수 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메탈베어의 체력을 일반잡몹처럼 깎아내는 엄청난 공격력은 압도적이다.

탐욕인력이 넋이 나간 것은 그게 아니었다.

썩이나감이 딜을 넣을 수 있도록 어그로를 끌어줄 탱커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압도적인 공격력도 맞아야 쓸모가 있다.

메탈베어의 넓은 공격범위에 스치기만 해도 죽을 것이다. 그런데 체력의 대부분을 떨어트린 상황에서 썩이나감은 한 대의 공격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저 움직임은 경이로웠다.

'누가 메탈베어를 저렇게 사냥할 건데. 엠페러 길드장? 아니면 블랙아미 길드장?'

각각 랭킹 1위를 다투는 최강의 유저라고 해도 썩이나감과 같은 방식으로 사냥을 하지 못할 것이다.

'왜 헬조선순례자가 신경을 쓰는 것인지 알 것 같군.'

여러 고객을 접하면서 헬조선순례자가 얼마나 오만하고 자존심이 강한지를 알고 있었다.

랭커도 아닌 놈이 자신보다도 더 주목을 받고 강하다면 절대 두고 볼 인물이 아니다.

'이놈으로 돈 좀 땡기겠는데.'

헬조선순례자가 이걸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탐욕인력은 돈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       *

사흘 차에 들어서면서 뒤쳐져있던 헌터들의 포인트가 급상승했다.

포인트가 68 대 32까지 벌어지자 소울리스에서는 기부 퀘스트에 제한을 걸었다.

여섯 시간에 기부 한 번. 이게 생기자 몬스터 헌터들의 비약적인 상승에 제약이 걸렸다.

[헌터 VS 죄수병 랭킹.]

401위. 서청.

403위. 썩이나감.

404위. 브랜드.

그 혼란의 시기에 나는 무려 이벤트 랭킹을 403위까지 끌어올렸다.

이쯤이면 엄청난 성장세다.

메탈베어를 떠나 아울베어의 둥지를 공략한 덕분이었다.

던전이기에 고립된 그곳은 짬타이거들이 쫓아서 들어올 수 없다. 그래서 공략 후에 주변을 보면 누가 나를 감사하는 것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막피흥신소. 그리고 탐욕인력.

어제와 오늘 유독 자주 마주친 유저들이었다.

[썩이나감 : 누가 저한테 짬타이거 붙였습니다. 해당 의뢰인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까?]

[빨간약파란약 : 히든레코드는 짬타이거쪽과 따로 거래를 하거나 연락은 하지 않습니다.]

[썩이나감 : 그러면 제 관련 정보가 시중에 풀린 것은 있고요?]

[빨간약파란약 : 아직 없습니다.]

빨간약파란약의 답변은 묘하게 다가왔다.

[썩이나감 : 아직은요? 유저들의 정보가 자주 팔립니까?]

[빨간약파란약 : 예. 아시다시피 ZI존짱짱맨 이후에 같은 업계 사람에 대한 정보는 더 중요해졌죠.]

ZI존짱짱맨은 동해길드와 거래를 트기 전에는 그저 그런 다크게이머란 평이었고, 칠대악룡 이전에야 겨우 네임드 끝자락에 이름을 올렸었다.

과연 누가 ZI존짱짱맨이 칠대악룡을 홀로 토벌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어디서 어떤 다크게이머가 사고를 칠 것인지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다크게이머들끼리 서로의 동향을 파악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한다.

[빨간약파란약 : 게임 초반이니 오래가지는 않을 겁니다. 무시하셔도 됩니다.]

[썩이나감 : 뭐. 그렇겠죠. 만약에 제 정보가 풀리면 저부터 사겠습니다.]

나에 대해 어떤 정보가 어떻게 풀리는가. 그걸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빨간약파란약 : 아. 참고로 메탈베어 공략에 대비해 아이템을 세팅한 순례자가 한 명 있습니다.]

"푸하하하!"

그 순례자가 누구인지 모를 수 없기에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아. 그놈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