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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34화 (34/201)

제034화 고인물은추적당한다.

불사자이기에 당연한 죽음을 각오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을 드러낸 스태미나가 문제였다.

잠깐 숨을 돌리며 지구력포션을 마시는 순간, 메탈베어가 포효했다.

[크허어엉!]

"…쳇!"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메탈베어는 약 10%의 체력을 남긴 상태다. 다시금 정해진 패턴대로 공격을 하는 놈의 체력은 꾸준히 떨어졌다.

거대공주개미의 검이 가지고 있는 옵션인 출혈LV2가 꾸준히 영향을 미친 덕분이다.

끝까지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그러기에는 내 시간이 너무나 아쉽다.

터어엉!

압도적인 이펙트에 주눅이 든 것도 아까까지다. 정해진 패턴에서 한 번의 공격을 튕겨내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지 않다.

다시 젖혀진 품안으로 검을 마음껏 휘둘렀다.

쿠웅!

가슴팍에 길게 새겨진 검상이 숨통을 끊자 메탈베어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도전과제, 강자에게 맞서는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단 한 마리를 위해 5분을 넘게 투자했다. 거기서 얻은 보상을 탐닉할 차례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이번 도전과제의 보상은 특별했다. 이때까지와 달리 아이템이나 보너스 스텟이 아닌 추가 경험치를 준 것이다.

공짜로 레벨업을 한 느낌이라 콧노래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메탈베어에게서 나온 웅담과 곰발바닥을 움켜쥐며 사냥을 계속했다.

내일까지 목표는 랭킹 300위권.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랭킹 1위까지 차지하겠다.

메탈베어는 시작일 뿐이다.

*       *       *

헌터와 죄수병의 이벤트 포인트 점유율을 위한 경쟁은 시간이 갈수록 격해지고 있었다.

기부 퀘스트로 몬스터 헌터가 랭킹을 급속도로 높이면서 죄수병도 날이 섰다.

순찰 퀘스트를 돌면서 종종 길을 막고서는 헌터들을 귀찮게 만들고는 할 정도였다.

"흥. 짭새도 아닌 놈들이 무슨."

헬조선순례자는 저렙에 불과한 죄수병 따위가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에 결투장으로 끌고 가고 싶을 뿐이었다.

광장에 대기하고 있는 그에게 빨간약파란약이 찾아왔다.

"여기 부탁하신 물건들입니다."

"다음번에도 가지고 와. 100위권에는 들어갈 거니까."

헬조선순례자는 입금을 한 만큼의 아이템들을 챙겼다.

몬스터 헌터 길드로 가서는 곧바로 기부 퀘스트를 실행했다.

"좋아. 자네 마음에 드는군."

길드장 발레인이 헬조선순례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친근감의 표시는 평소의 호감작은 물론 이벤트 포인트가 높다는 표시였다.

헬조선순례자의 의기양양해 주변을 둘러봤다. 그처럼 편안하게 몇 푼만 쓴다면 금방 이벤트 포인트를 올릴 수 있다.

그런데도 이벤트 포인트를 신경을 쓰며 퀘스트를 정하는 유저들이 안쓰러울 뿐이다.

'즐겜이나 해라. 너희들은 정점에 설 자격이 없으니까.'

저들의 초라한 장비를 보라.

유니크 하나도 없이 경매장이나 퀘스트 보상으로 맞춘 쓸모없는 아이템뿐이었다.

"저놈이……."

유저의 강함은 아이템으로 나타난다.

예외는 단 하나.

헬조선순례자도 이미 마주친 썩이나감이다.

뉴 알론에서 당당하게 팬티 하나만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내. RPG게임에서 방어력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공격력에 투자한 변태같은 플레이를 선택한 자. 그리고 혈혈단신임에도 스피릿과 천하제일 길드와도 척을 진 유저.

어째서인지 엠페러 길드가 관심을 가진다는 뜬소문이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엘리멘탈 소울2에서 벌거벗은 임금님과 같은 놈이 당당하게 돌아다니는 꼴은 베알이 꼴릴 수밖에 없었다.

"흥. 랭커도 아닌 놈이 꼴깝은."

다른 유저를 보고도 참았던 비웃음을 헬조선순례자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저놈과 마주쳐서 좋았던 적이 있던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불쾌함을 감출 수 없었다.

게임에서의 모든 어그로는 가져가면서 정작 공식 홈페이지에 소개되는 랭킹 300위에는 들지도 못하는 나약한 놈.

그런데도 개인의 무력은 300위 랭커들도 이긴다는 평가를 받는 놈.

그는 수많은 의뢰 중에서 하나를 택해서 곧바로 사라졌다.

"…메탈베어라고?"

헬조선순례자는 뜯겨져간 의뢰의 한 부분을 눈에 담고 말았다. 그래서 의문이 생겼다.

메탈베어는 일반적인 몬스터가 아니다. 지나치게 높은 방어력과 비상식적인 체력은 비슷한 레벨대의 보스에 준하는 수준이다.

현 랭커들도 효율적인 사냥이 불가능해서 기피하는 존재였다. 간혹 가다고 하더라도 최소 3인 이상의 파티가 기본이었다.

절대 혼자서 사냥할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녀석이 왜……?"

썩이나감은 솔로 플레이어다. 누군가와 파티를 해서 사냥했다는 목격담 자체가 없었다.

"멍청한 놈."

랭커도 아닌 놈이 혼자서 메탈베어에게 간다는 것은 죽겠다는 뜻이다. 기껏 올린 경험치는 물론이고 아이템 수리비가 왕창 깨질 터다.

"기부다."

"오오. 충분한 양이군."

발레인에게 인벤토리에 가득 찬 아이템들을 털어놨다. 그러자 이벤트 포인트가 급상승했다.

"단번에 80등 가까이 올렸군."

이벤트 포인트 랭킹에서 자신을 찾은 헬조선순례자는 흡족해했다.

남들이 굳이 고생할 때, 겨우 30만 원 가까운 투자로 포인트를 높였다.

퀘스트까지 병행한다면 이틀 내에 100위권까지도 진입이 가능하다.

죄수병이 아무리 시간을 녹여도 결국 헌터의 자금력을 이길 수 없을 테니까.

마지막에는 1위에 올라서면 된다.

[헌터 VS 죄수병 랭킹.]

421위. 리치도비.

422위. 헬조선순례자.

423위. 썩이나감.

기존 랭킹처럼 이벤트 포인트도 300위의 명단만 전부 공개가 된다. 그 이후는 자신을 기준으로 위아래로 1명씩만 보였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다.

이벤트 랭킹에 존재하지 말아야할 놈이 있으니까.

"왜 그놈이 내 바로 밑이라는 거지? 어째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벤트 상위권으로 분류되는 헌터들 대부분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

바로 헤비과금러다.

그들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기본이고 현질로 기부를 해서 순위를 높였다.

왜 돈을 쓰는가. 그건 게임을 편하게 즐기기 위해서다. 굳이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왜 쓸 수 있는 자원이 있는데 아껴야만 하는가.

반대로 게임을 즐기기 위해 플레이를 하는 것 같은 썩이나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놈이 버그를 쓰는구나."

즐겜러 따위가 감히 자신의 순위를 위협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게임상의 버그를 이용해 메탈베어를 사냥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면 절대 자신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네깟 놈이 어떻게 하나 보자."

어디나 밑바닥은 존재한다.

몇 푼의 돈만 주면 개처럼 일할 놈들은 널리고 널렸다.

"그래. 이놈들이 좋겠다."

여러 거래목록 중에서 눈길이 멈춘 것은 가장 최근에 추가를 한 두 명이다.

과거 동해길드와 함께 ZI존짱짱맨을 습격하다가 밑바닥으로 떨어진 버러지들이 있었다. 다른 놈들은 업계에서 사라졌지만, 이 두 놈들은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게임 내에서의 스토킹은 물론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는다. 소정의 수고료만 주면 부릴 수 있는 훌륭한 개들이었다.

"문제가 없다면 내가 써 주고."

버그를 남용한 플레이는 제지를 받지만, 의외로 별 문제가 없으면 덮고 지나가는 경우가 있다.

문제가 될 소지가 없다면 얼마든지 그 비결을 빼오면 된다.

일단 헬조선순례자는 빨간약파란약에게 100만 원을 입금했다.

[헬조선순례자 : 내일까지 추가로 준비해.]

썩이나감이 포인트를 높인 방법에 현질을 더한다. 그러면 예상보다 빨리 정상을 탈환하리라.

"독고무적. 그리고 흑군까지 노린다."

양대세력을 대표하는 엠페러 길드와 블랙아미 길드의  수장이자 랭킹 1등과 2등을 차지한 거물들은 확장팩에 넘어와서도 그 아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번 이벤트 랭킹 또한 나란히 선두를 차지한 그들의 목덜미에 검을 들이밀 기회이기도 했다.

*       *       *

[크허어어엉!]

메탈베어가 대지를 박차고 달려왔다. 돌진공격은 매번 봤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다.

회피.

딱 그 하나뿐이다.

쿠우웅!

거대한 나무에 처박힌 거대한 등판은 노리기 좋은 먹이감이었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언제나 기분이 좋은 알림에 힘껏 검을 휘둘렀다. 일격. 이격. 그리고 삼격을 퍼붓는 동안 스태미나는 급감한다. 그에 비례해 높은 데미지는 메탈베어의 체력을 크게 깎아냈다.

[크허엉!]

피투성이가 된 놈이 포효했다. 나를 잡아채기 위해 휘두르는 발톱을 보며 거리를 끝까지 유지했다.

발톱이 공간을 훑고 지나가는 이펙트가 아슬아슬하게 피부에 닿지 않는다.

튕겨내기를 곧바로 할 필요는 없다.

안정적으로 움직일 스태미나 회복이 더 중요하다.

콰아앙!

지금처럼 거대한 앞발로 바닥을 후려칠 때가 위험하니까.

강한 충격파와 함께 2초 정도의 경직상태에 빠진 저 거대한 몸뚱이는 어디를 공격해도 충분하다.

푸욱! 촤아악!

찌른 검이 절반도 채 들어가기 전에 곧바로 허리를 틀었다. 검이 옆으로 그어지며 두 번의 공격이 들어갔다.

스태미나를 듬뿍 쓰는 일반적인 강공격보다 적은 시간과 스태미나를 소모하면서도 데미지는 그보다도 훨씬 높다.

여러 방향으로 베고 찌른 연구결과 공격판정이 어디까지 들어가나 체득한 결과다.

물론 일반적인 캐릭터로는 불가능한 조작이다. 오히려 공격모션이 캔슬될 것이다.

뭐. 흔히 평캔이라고 부르는 조작이지만, 남들이 이걸 따라할 수 있을까?

다른 직업이 아닌 불사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보정치가 없기에 내 의도대로 미세한 조작이 이렇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처럼 평캔을 한다? 그건 똑같은 불사자가 아니면 따로 프로그램을 쓰는 거다.

[크어어어엉!]

메탈베어가 반격을 위해 앞발을 휘둘렀다. 전이라면 부족한 스태미나 때문에 물러났을 것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터엉!

이미 몇 번이고 잡은 메탈베어의 공격을 튕겨내는 것은 문제가 없다. 활짝 열린 저 피 묻은 가슴팍에 마음껏 검을 휘두를 뿐이다.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후우."

예전이면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두 번은 돌려야 한 마리가 사냥이 가능했다.

지금은 그 전에 사냥이 가능하다. 체감상 1분에 불과한 이 격차는 엄청나다.

"돈지랄만 하는 놈들과 격차는 줄어든다."

메탈베어를 뒤지자 웅담이 나왔다. 체감상 드랍율은 30%인 것 같았다. 그것보다 조금 더 돈이 되는 곰발바닥은 50%, 곰가죽이나 이빨은 80%대다.

한 마리를 사냥하는 것에 시간이 걸릴 뿐더러 떨어지는 보상도 적지만, 독점으로 모든 걸 가져가는 솔로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졸리네."

반복퀘스트를 통한 닥사는 오랜만이어서인지 꽤나 피곤했다.

메탈베어의 패턴에 대해서 완벽히 파악했음에도 새로운 평캔 모션을 제대로 구사하기 위해 너무 집중을 한 탓일까.

짜악! 짜악!

"이 악물자. 아직 레이스 도중이야."

레벨이 오른 탓에 상승폭에 지약이 걸렸지만, 아직도 메탈베어로 인해 오르는 포인트는 안정적이다.

두 번 정도만 반복하면300위권까지 충분히 입성할 수 있다.

"…더 사냥할까."

여러모로 고민이 되던 찰나에 수풀 속을 살짝 삐져나온 텍스트가 보였다.

닉네임을 길게 하면 저렇게 티가 나는 경우는 종종 있다.

"꼬리가 길었군."

메탈베어를 잡기 위해 한 번씩 찾아오는 파티들이 있었다. 깊숙한 곳까지는 오지 않기에 마음껏 사냥했지만, 결국 누군가가 발견한 모양이다.

메탈베어를 혼자서 사냥한다. 이걸 대놓고 광고할 생각은 없었다.

"새로운 사냥터를 찾기는 해야겠어."

남들과 굳이 어울려서 사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불사자를 숨겨야 해서는 아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공개할 생각이다.

내 사냥 노하우를 넘겨주고 싶지 않아서다.

곧바로 뉴 알론으로 귀환을 했다.

빛에 휩싸이는 순간에 수풀 속에서도 같은 빛이 보였다.

광장에 눈을 뜨자 2초 차이로 같은 지점에 복귀한 유저가 보였다.

"……."

수풀에서는 제대로 못 봤지만, 저 닉네임의 길이를 본다면 아무래도 동일인물인 것 같다.

게임 내에서 스토커가 붙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모래를 가득 삼킨 것처럼 목구멍이 불타기 시작했다.

천하제일 길드일까. 아니면 스피릿 길드일까.

어떤 곳이라도 상관없다. 어설픈 호기심은 네놈들에게도 이롭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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