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33화 (33/201)

제033화 고인물은마주친다.

[아들. 커서 뭐하고 싶어?]

아주 어릴 적.

아버지는 종종 자신의 무릎 위에 나를 앉혀 두었다.

두상이 이쁘다며 자주 깎았던 머리에 면도를 하지 않아 까끌까끌한 턱이 정수리에 닿을 때의 그 느낌은 아직도 선명하다.

[고깃집 사장!]

그때 그렇게 답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고깃집 사장이면 자주 못 사먹는 비싼 고기를 아버지한테 직접 구워 드릴 수 있었을 것 같아서였다.

[아하하. 우리 아들 사장님 되는 거야?]

아버지는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웃으셨었지.

"…힘드네. 오늘."

꿈에서 깨어나게 해 준 것은  휴대폰에 맞춰 놓은 알림 덕분이었다.

어제 그 싱숭생숭한 마음 때문인가. 꿈에서 아버지를 뵐 줄은 몰랐다. 머리가 가벼워진 것은 꿈이라도 바라던 것이 조금은 이루어진 증거겠지.

커피로 목을 축이고 마지막으로 받았던 아버지의 문자를 다시 봤다.

예전에는 스팸문자 취급하며 지웠을 이 텍스트는 지금의 나를 다잡아주는 부적이었다.

다시 게임에 접속해 이벤트 현황을 살폈다. 한눈에 들어온 그래프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균형은 완전히 깨졌네."

헌터VS죄수병의 점유율이 이틀째에 37 대 63으로 벌어져 버렸다.

순찰이라는 사기적인 퀘스트가 있어도 몬스터 헌터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믿기지 않는 수치다.

도대체 어떤 구조로 죄수병이 압도적인 걸까. 검색을 해보니 지금 상황에 충격을 먹은 다른 몬스터 헌터들이 정리글을 차곡차곡 쌓아 둔 상태였다.

공통적인 것은 몬스터 헌터 진영의 분열이었다.

주축이 될 헌터진영의 고렙유저들은 물론 상당수가 이전처럼 닥사만 진행한 것이다.

이번 이벤트에 있어서 가장 쓸모가 행위는 바로 닥사다.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잡지 않는 이상, 그들이 생산하는 포인트는 극히 적을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 헌터의 포인트 생산량은 최저일 수밖에 없다.

반면에 비교적 소수인 정예병은 랭커들까지도 의무적으로 순찰 퀘스트를 돌아주고는 했다.

지금 수순이라면 죄수병의 승리라고 봐야만 한다.

"힘들겠네. 이건."

이벤트를 신경을 안 쓰는 이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이성적인 판단이다.

경쟁자들과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는 건 좋은 기회니까.

내가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없을 뿐이다.

이벤트에서 얻어지는 보상들은 내 입장에서는 꽤나 짭짤하단 말이지.

이벤트 포인트가 1만에 도달하면 지급하는 노란색의 스킬북이 그 대표적인 예다.

순위권에 들면 얻을 수 있는 보상과는 또 별개다.

포인트 총합 100위 이내면 랜덤으로 유니크 아이템과 이벤트 칭호를 준다.

이걸 놓칠 이유가 있을까?

어떤 유니크 아이템이 나올 것인지 모르기에 100위권을 노려야만 한다.

각오를 다잡고 진행했음에도 내 이벤트 랭킹은 600등에 간신히 들 정도였다.

점유율에서 드러나듯 이벤트 포인트 랭킹은 죄수병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변이 생긴 것은 3일차였다.

[5.04 패치노트]

안녕하십니까. 위대하신 영혼들이여.

확장팩 블랙의 첫 이벤트인 헌터 VS 죄수병의 진행과정에서 지나친 한 진영의 우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건 개발진 및 운영진의 예상과 다른 것이며 AI를 통해 밸런스 패치를 실시하였습니다.

죄수병의 기존체제는 유지가 될 것이며, 헌터 진영에는 기부 퀘스트가 신설되었으니 이를 참고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예상외의 패치가 3일차에 나타났다.

소울리스가 이렇게 발 빠르게 움직일 줄은 몰랐다. 되먹지 못한 운영과 때늦은 패치로 수많은 유저들을 떠나게 만드는 것이 패시브였던 그들이 아니던가.

[헌터의 기부.]

-몬스터 헌터는 도시의 번영에 도움을 주었으나 안정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평판을 위해 길드장 발레인은 빈민가 및 재난구조금을 걷어 기부하기로 했다.

-완료 조건 : 발레인에게 기부.

-실패 조건 : 기부 거부.

퀘스트 목록을 확인하니 확실히 없던 것이 생겼다. 이건 헌터로서는 두 팔을 들고 환영할 만하다.

몬스터 헌터가 죄수병에게 앞서는 것은 무엇일까.

레벨? 전체적으로 죄수병이 높다.

아이템? 오히려 초반에 보급품을 주는 죄수병이 시작은 좋은 편이다.

차이는 바로 자본이다.

죄수병은 전리품을 윗선에 받쳐야 하지만, 몬스터 헌터들은 아니었다.

기부 퀘스트가 열리면서 전리품을 넘길수록 더 많은 포인트를 얻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일부 길드들이 현질을 때려 박아서 기부를 해 포인트를 높이기 시작했다.

몬스터 헌터가 이벤트 포인트를 45 대 55까지 균형을 맞추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다만, 착실하게 사냥을 하던 나는 1000위권까지 밀려 버렸다.

자본.

그 앞에서 나는 초라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돈지랄을 어떻게 이기라고."

눈앞에 다가온 현실을 받아들이려니 이가 부득부득 갈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면 더 무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메탈베어를 잡아야겠어."

개미유영 때를 생각하면 메탈베어는 여전히 버겁다. 30레벨짜리 몬스터면 나와 거의 10레벨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메탈베어를 택한 것은은 그만한 놈이 없기 때문이다. 무리를 짓지 않고 혼자 다니는 것이 컸을 뿐더러 패턴은 익숙한 편이다.

거대개미 출몰지역을 넘어가야하고 몰이사냥이 불가능해서 유저들이 찾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크고 단단한 강철 웅담.]

-웅담은 귀중한 약재이지만, 그중에서 단연코 높게 쳐주는 것은 메탈베어의 것이다.

-완료 조건 : 메탈베어 웅담 10개 수집.

-실패 조건 : 퀘스트 포기.

남들이 기피하는 곳. 거길 박살낼 수 있어야만 이벤트 랭킹을 높일 수 있다.

경쟁자가 없으니 메탈베어에 관련된 의뢰는 항상 여분이 있었다.

회색마를 소환해 곧장 메탈베어가 있는 숲으로 달렸다.

거대개미의 둥지들을 지나 보이는 숲의 나무들은 커다란 발톱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히든레코드의 정보를 신뢰할 수 있겠지?"

굳이 메탈베어를 택한 마지막 이유의 마지막. 그건 히든레코드에 메탈베어 공략법이 올라왔었기 때문이다. 그 자료를 기준으로 하면 혼자 사냥할 근거는 충분했다.

메탈베어는 굶주린 상태가 아니면 광산에 틀어박혀서 잠을 잔다.

놈들을 깨울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다가가서 공격을 하는 것. 두 번째는 놈들이 유혹할 미끼를 설치하는 것이다.

내가 택한 것은 두 번째다. 이걸 택하면 개미유영 때의 메탈베어가 터트리던 하울링이 없다고 한다.

곰 사냥꾼의 덫. 그 위에 거대개미의 유충을 올려놓고 벌집을 올려놓는다.

[그르르르릉.]

낮고 중후한 울음소리. 그보다 더 묵직한 진동이 지면에서부터 느껴졌다.

레벨 30의 메탈베어.

그 한 마리가 내가 설치한 함정에 다가간다.

으적! 으적!

두 발로 우뚝 선 5M의 거구가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대검만큼 굵직한 이빨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거대개미유충의 체액과 벌집에서 흐르는 꿀이 침과 섞여 바닥에 뚝뚝 흘렀다.

콰득!

뒤늦게 곰 사냥꾼의 덫이 발동한다.

곰 계통의 몬스터에게 추가 데미지와 함께 상태이상 출혈이 들어가는 아이템이지만 두터운 가죽을 뚫지 못했다.

다만, 입안이라면 다르지.

강력한 이빨에 부서지는 덫이 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크허엉!]

상태이상 출혈과 약간의 데미지를 받은 메탈베어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시선은 덤불 속에 숨어 있는 내게 정확하게 향했다.

쿠웅! 쿠웅! 쿠웅!

[크어어어어!]

메탈베어는 곧바로 내게 달려왔다.

멀리서 봤을 때도 컸지만 가까이 볼 때는 그 말조차 부족하다.

메탈베어에게 패턴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발톱을 휘두르는 일반공격, 두 번째는 두 팔로 땅을 내려찍는 범위공격, 세 번째가 지금과 같은 돌진이다.

구르기로 메탈베어의 공격경로에서 피한다.

콰아앙!

메탈베어가 자신보다 거대한 나무를 들이받았다. 나무가 부러지는 이펙트와 함께 훤히 드러난 등을 놓칠 수 없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헤이스트를 사용합니다.]

빛과 소금 같은 스킬을 사용하여 거리를 좁혔다.

촤아악! 촤하악!

[커허엉!]

한 번의 휘두르기에 두 번의 공격이 터졌다. 시기적절하게 터진 건맨의 소울에 메탈베어가 손실한 체력을 눈대중했다.

"무지막지한 놈 같으니."

전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진 공격력임에도 체력은 3분의 1이나 남아있었다.

후웅! 후웅! 후우웅!

[그어어어!]

메탈베어는 즉각 몸을 틀어서 반격을 했다.

반사적으로 백스텝 후, 구르기로 거리를 벌렸다.

내 몸통만한 발톱에 대검 크기의 발톱은 흉험하다는 표현 말고는 설명이 불가능한 정도다.

방금 전에 벌려놓은 거리 따위는 우습다는 저 사거리!

콰아아앙!

잔뜩 발톱을 휘두르던 메탈베어가 그대로 땅을 내려찍었다. 발바닥이 박힌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3M의 충격파가 터진다.

다시 구르기. 그리고 백스텝으로 아슬아슬하게 간격을 피했다. 부족한 스태미나와 마력을 포션으로 채우며 잠깐 경직상태에 빠진 메탈베어의 몸뚱이에 검을 찔렀다.

푸욱! 촤하악!

반쯤 박힌 검을 아래로 베며 빼냈다.

아까 전에 등판에 휘두른 공격보다는 형편없는 데미지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의 유지시간이 한탄스럽다.

메탈베어에게 접근하고 물러나는 것에 시간 대부분을 소모해야만 하니까.

[크어어어!]

메탈베어가 똑같은 패턴으로 공격해왔다.

스피어마스터의 쿨타임이 아직 많이 남았다. 그때까지 스태미나 관리를 하면서 피해야만 한다.

변수가 필요하다.

퍼걱!

무기 슬롯을 슬링으로 바꾼 뒤, 빙결의 구슬을 메탈베어의 다리에 던졌다.

메탈베어의 움직임이 느려진 것은 1초 정도에 불과하다. 더 높은 효력을 보려면 이제는 더 상위의 소모품을 써야겠지.

[그어어엉!]

하지만 그 잠깐의 시간이라도 상관없다. 한 모금의 숨을 채울 시간이 있다면 공격범위에서 확실히 물러날 수 있으니까.

절벽을 줄 하나에 의지해 건너던 위태롭던 상황에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작대기 하나가 쥐어진 정도랄까.

나무가 빽빽할 때는 아예 벽타기를 써서 나무를 발판삼아 움직였다.

후웅! 후웅!

이동기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인지라 메탈베어가 휘두르는 발톱에게서 여유롭게 피할 수 있었다.

콰아아앙!

다시금 메탈베어가 앞발로 대지를 후려쳤다. 굉음과 함께 터져나가는 대지. 그 파편 속에서 내 시선은 UI창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 번 더 공격을 피하면,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쓸 수 있다.

문제라면 모든 것이 내 예상대로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열심히 앞발을 휘두르며 공격해 오던 메탈베어가 제자리에 멈춰서 몸을 웅크렸다.

저게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쿠웅!

[크허어엉!]

메탈베어가 대지를 박차고 달려왔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이 다가오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함정을 설치했을 때의 거리는 30M 정도였다. 반면에 지금은 10M를 남짓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상황이다.

벽타기를 쓰기에는 마나가 부족하고 백스텝으로 피하기에는 타이밍을 잡기 어렵다.

쿠구구구!

사선으로 구르기를 사용했다.

메탈베어의 거구가 내가 서있던 곳을 지나쳤다. 만약 조금만 더 늦었다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콰아앙!

메탈베어는 나무 하나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췄다. 뿌리 채로 뽑힌 나무를 등지고 메탈베어가 날 바라본다.

[…특정거리를 벗어나면 메탈베어가 돌진공격을 해 오니 조심하자.]

히든레코드에서 읽었던 공략의 한 부분이 머리에 아른거렸다. 그 특정거리가 얼마인지 대충 알 것 같다.

또다시 돌진을 할 수 없게 먼저 다가갔다. 거리는 조금 전보다 더 가까운 7M 정도를 유지했다.

[크허엉!]

메탈베어는 몇 번이고 본 똑같은 패턴으로 발톱을 휘두르려는 모션을 취했다.

첫 공격이 제일 느리고 동선이 단순하다.

이때까지처럼 물러나지 않았다. 용기를 낸 만큼 앞으로 걸음을 내딛으며 그만큼의 힘을 담아 검을 휘둘렀다.

터엉!

메탈베어에 비교해 초라한 육신과 부족한 근력 수치로 인해 성공적인 튕겨내기임에도 시야가 흔들렸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기다렸던 스킬을 사용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는 없다.

푸욱!

[커허엉!]

힘껏 내찌른 검이 메탈베어의 몸에 박혔다. 치명적인 일격으로 인해 더해진 큰 데미지에 메탈베어가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렸다.

끝을 모를 것 같던 체력도 절반이하로 깎였다. 휘청거리는 품안을 벗어나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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