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30화 (30/201)

제030화 고인물은이해한다.

랭커만이 아니라 헌터 진영의 유저라면 모두 이 부조리함을 깨달았을 거다.

몬스터 헌터 길드의 내부도 그로 인해 시끄러울 정도로 달아오른 상태였다.

"죄수병 새끼들 콧대 눌러줘야지! 거대개미 파티 모집합니다!"

"코볼트 동굴 탐색 모집이요! 이벤트 포인트  파티입니다!"

당장 파티를 구하는 이들도 신경이 바짝 서있다. 사람도 붐벼서 그 사이를 파고드는 것이 지옥철을 연상하게 했다.

"이봐! 지금 오면 어쩌자는 거야. 다들 열심히 하는 것 안 보여?"

의뢰게시판으로 가려는 나를 길드장 발레인이 불렀다. 그는 얼큰하게 취한 사람처럼 붉게 물들어서는 헤드락을 걸었다.

"우리 간판이 될 헌터가 이제야 온다고?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먹는다는 것 몰라?"

"난 야행성이야."

"어이쿠. 그러면 봐줘야지."

무슨 답이라도 상관없던 것인지 발레인에 헤드락을 풀었다. 어찌나 강하게 옥죄였던지 체력도 조금 깎여있었다.

"그보다 도시가 시끄럽던데."

"그래. 시끄럽지! 죄수병은 물론 록 따위에게 질 수 없으니 자네도 분발해야 한다고!"

발레인의 목소리에서부터 거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록과 경쟁적인 관계일 줄은 몰랐다. 그사이에 패치라도 된 걸까.

"C등급 이상부터는 죽을 준비를 하고 임무를 받으라고!"

발레인이 날 죽일듯이 노려봤다. 어쩐지 평소보다 과하게 반기더라.

칭호를 C급 헌터로 바꾸지 말 걸 그랬다.

"퀘스트 내용도 꽤나 바뀌었네."

의뢰들을 보면 퀘스트가 극단적으로 바뀌었다. 토벌 퀘스트는 급격하게 난이도가 올라갔다.

채집이나 수집 같은 것들은 전보다 주민친화적으로 바뀌었다.

난이도에 따라 이벤트 포인트량이 다르다.

반면에 죄수병의 순찰은 극도로 낮은 난이도에 비해 포인트 수급이 괜찮은 편이었다.

왜 죄수병 진영이 우세를 하고있나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어차피 누구 하나 포기를 하는 기색은 없으니까."

몬스터 헌터의 압도적인 머릿수를 고려하면, 순찰이라는 퀘스트가 오히려 밸런스를 잡아줄지도 모른다.

진영간의 경쟁을 떠나 특정 포인트 때마다 주는 보상은 나쁘지 않았다.

포인트를 높게 받으려면 역시 양보다는 질이지만, 아웃벤에 어떤 유저가 올린 보상이 큰 퀘스트 목록이 있었다.

대부분이 소소한 심부름이기에 이 기회에 한 번 몰아서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해당 퀘스트로 얻은 보상과 이벤트 포인트 보상으로 인해 죽을 필요도 없이 10은화가 절로 들어왔다.

문제라면 역시 포인트 상승폭이 너무 낮다는 정도다.

역시 토벌이나 던전 공략으로 노선을 바꿔야만 할 것 같다.

[빨간약파란약 : 썩이나감님. 보내주신 공략 확인했습니다. 답례로 추가금을 보냈습니다.]

때마침 빨간약파란약에게도 귓속말이 왔다.

엘리멘탈 소울2에서는 큰 수확이 없는 내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빨간약파란약 : 저번에 말씀드린 퀘스트가 준비가 되어있습니다만. 관심이 있으십니까?]

[썩이나감 : 접선하죠. 어느 채널이죠?]

이건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빠르지.

[빨간약파란약 : 17채널 하수도 근처에 와주십시오.]

그가 지정한 위치는 나도 잘 아는 곳이었다.

거길 왜 모를까.

죄수병의 백인대장인 욘과 함께 똥물에 들어갔던 바로 그 지점인데.

약속장소에는 나 이외의 유저가 있었다.

드워프처럼 풍성한 턱수염은 세 갈래로 땋았다. 머리는 다 밀었는데 화려한 붉은색 문신이 얼굴 반쪽을 차지할 정도로 큰 오크였다.

닉네임은 헬조선순례자.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불만이 표출된 닉네임이 어딘가 익숙하다 싶었는데 상위 300등에 드는 랭커였다. 착용한 장비만 봐도 시중에 풀린 유니크 투성이었다.

거래가 끝난 것인지 그제야 빨간약파란약이 날 발견했다.

"어? 벌써 오셨군요."

"썩이나감? 옷을 입는 것을 보니 컨셉을 버렸나보군."

헬조선순례자는 나를 보며 이죽거렸다.

저건 나를 단순한 어그로 끄는 변태로 취급하던 이들에게서 볼 수 있던 태도다.

"평판 관리다."

그 이상의 답이 필요할까.

헬조선순례자는 날 지나치며 어깨를 툭 쳤다.

"변태새끼 같으니. 다음에 또 눈에 띄면 죽여줄 줄 알아라."

"…해봐."

미안하지만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저번에 내가 쓰러트린 고려제일검객의 랭크가 더 높았었다.

아예 PvP까지 가도 상관없다. 단칼에 모가지를 뎅겅 썰어줄 자신이 있으니까.

"자자! 그만하시죠. 서로 바쁘신 분들이잖습니까."

"히든레코드도 쓸모없군. 저런 어그로꾼이랑 거래나 하다니."

빨간약파란약이 말다툼을 중재하려고 하자 헬조선순례자는 비아냥거리면서 물러났다.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십시오. 저 사람이 저렇게 보여도 꾸준히 랭커여서 썩 님과 같은 이를 경계하거든요."

"저런 놈이 전작에서도 랭커였다고?"

"고객의 정보를 드릴 수는 없으니 그 이상은 함구하겠습니다."

빨간약파란약은 어이쿠라는 말과 함께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누가 봐도 일부러 흘린 모양새였다.

"이벤트에 포함이 되는 퀘스트인가요? 그게 아니라면 지금은 사양하고 싶은데."

"떠보시는 겁니까? 모든 퀘스트가 이벤트에 포함이 됩니다."

"이벤트 점검 및 패치되고 1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확실해요?"

"퀘스트만이 아니라 사냥하는 몬스터의 강함에 따라 이벤트 포인트가 책정됩니다."

빨간약파란약은 포인트 산정방식에 대해 설명해줬다. 닥사를 하는 유저가 유리해보이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닥사를 해도 비슷한 레벨대의 몬스터가 대상이면 산정되는 포인트는 없는 수준이었다.

더 높은 레벨대를 사냥할 수 있는 포식자.

바로 나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닥사는 비효율적이었다.

"헌터쪽에게는 좋지 않은데?"

불편한 진실을 알아버렸다.

엘리멘탈 소울은 기본적으로 몬스터가 1레벨만 높아도 스펙차이가 커져서 사냥속도가 느려지는 게임이었다.

죄수병이 순찰만 꼬박꼬박 돌아도 안정적으로 얻어내는 포인트와 상반될 수밖에 없었다.

"소울리스잖습니까. 완벽한 밸런스는 없습니다."

"뭐, 그것도 맞죠."

"그보다 계속 퀘스트를 의뢰하고 싶은데 괜찮으십니까?"

"난이도는 어떻죠?"

"저희도 모릅니다. 공략이 불가능해서요."

하긴. 그렇지 않고서는 개미유영도 넘기지 않았겠지.

"이번에는 이겁니다. 길드에서 다른 퀘스트와 연계로 진행해도 될 것 같군요."

빨간약파란약은 퀘스트 스크롤을 줬다.

[질주하는 악몽 퀘스트 스크롤.]

-종류 : 매직.

-효과 : 퀘스트 생성.

-설명 : 새벽마다 질주하는 악몽으로 인해 수많은 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그 정체를 밝혀서 주민들을 안정시키자.

딱 봐도 언데드 퀘스트다.

빨간약파란약이 말한 연계가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

가까운 마을에서 주민들이 불면증에 빠졌으니 언데드들을 사냥하라는 내용의 퀘스트가 있었으니까.

D+ 등급에 1인 퀘스트인지라 택하는 사람이 없어서 계속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진행해 보지."

똥인지 된장인지는 일단 찍어 봐야 안다.

[질주하는 악몽.]

-새벽마다 질주하는 악몽으로 인해 수많은 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그 정체를 밝혀서 주민들을 안정시키자.

-완료 조건 : 악몽의 정체.

-실패 조건 : 주민 사망.

실패 조건이 꽤 까다롭다.

잘못하면 퀘스트를 떠나 평판이 나빠질 수 있다. 마을 내부에서 전투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야겠군.

길드로 돌아가서 관련된 퀘스트를 찾았다.

[무덤가의 레이스.]

-가까운 마을 근처의 공동묘지에서 유령들이 배회하고 있다. 그들의 원혼을 달래주자.

-완료조건 : 레이스 토벌 20마리.

-실패조건 : 퀘스트 포기.

점 찍었던 것은 저주받은 구울은 누가 가져간 모양이다. 그래도 퀘스트 위치를 보니 질주하는 악몽과 같은 곳이다. 이왕 가는 김에 주변 NPC들의 퀘스트를 검색했다.

배달 퀘스트 두 개를 준비하고 해당 마을로 갔다.

메마른 강 마을.

우기를 제외하면 언제나 황폐한 곳은 사막의 도시를 방불케 했다.

상대적으로 고렙존에 속하는 곳이기에 유저의 수는 극히 드물었다.

먼저 마을촌장과 대장장이에게 물건을 배달하는 퀘스트를 끝냈다. 그리고 질주하는 악몽에 대해 물었다.

"자정이 넘으면 계속 기이한 소리가 납니다."

"정체를 찾던 이들은 모두 미쳐서 죽었지 뭡니까."

그 답변을 시작으로 NPC들에게 물었다.

질주하는 악몽은 자정이 넘어서 나타난다. 그리고 거기에 간 자들은 그 자리에서 죽거나 살아도 미쳐 버린 후라고 한다.

촌장의 허락을 구해 그 미친 사람을 찾아갔다.

창고에 손발이 묶인 이는 침만 질질 흘리고 알 수 없는 노래만 흥얼거리고 있었다.

"이봐. 질주하는 악몽은 기억하나?"

"흥…흐흥. 흐흐흥."

"뭘 봤지?"

"흐흐흥. 흐으응."

아무리 말을 걸어도 초점이 없는 눈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결국 현장을 보는 것이 제일 빠르다.

장소는 근처의 무덤가다. 그곳으로 가자 보이는 것은 두 주먹으로 언데드들을 박살 내고 있는 오크 순례자였다.

헬조선순례자.

놈을 또 만나게 될 줄이야.

"…네놈. 뭐냐."

"퀘스트 때문에 왔지. 전세라도 내셨나?"

뒤돌아 나를 발견한 놈과 나는 서로 반가워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빨간약파란약에게 받은 퀘스트 스크롤을 흔들었다.

"아니면 그쪽도 이거?"

"……."

헬조선순례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불편함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인벤토리에서 퀘스트 스크롤을 꺼냈다.

"나와 같은 건가."

"모르지. 그쪽 스크롤의 퀘스트는."

"설마 네놈이 나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건가?"

"더 위일 수도 있지."

팬티만 입고 돌아다닌 것이 단순히 컨셉이 아님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시비를 거는 것은 나를 얕잡고 보는 거겠지.

"이해도. 인정도 할 수 없다. 이 세계의 지존은 나 하나뿐이니까."

턱을 치켜들고 내려다보는 헬조선순례자는 오만하다는 말이 가장 적합했다.

[분노가 상승합니다.]

분노 스택이 하나 더 쌓인 것을 제외하면 조금도 이득이 없는 대화다.

"기억해 두겠다. 그리고 명심해라. 감히 나를 뛰어넘으려고 한다면 그때가 네놈의 마지막이다."

"……."

대꾸를 하지 않자 헬조선순례자는 살벌한 경고와 함께 사라졌다.

"진상손님이네. 빨간약파란약도 고생하겠어."

이래서 고객도 잘 골라서 받아야한다. 손님이 왕이던 시대도 지났으니까.

언젠가 마주친다면 그때 밟아주면 된다.

지금은 그런 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눈앞의 퀘스트다.

빨간약파란약이 같은 퀘스트를 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헬조선순례자보다 늦게 깨고 싶지 않으니까.

레이스 출몰 지역으로 가니 무덤가 위를 배회하는 유령들이 보였다.

놈들의 레벨은 23이다.

"입구에다 묻고."

저 레이스들을 죽이고 질주하는 악몽에 대해 알아봐야지.

[아아아아아아.]

[흐아아아아.]

방랑하는 레이스들은 듣는 것만으로도 울적한 노래를 흘리고 있었다.

레이스의 패턴은 모르니 신중하게 몸으로 배워 볼까.

[1인 도발을 사용합니다.]

[상대가 도발에 걸렸습니다.]

1인 도발로 하나를 끌어들이고 크게 휘두르는 손톱을 튕겨낸다.

푸욱!

[아아악!]

영체임에도 불구하고 힘껏 찌른 검에서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반투명했던 옅은 청색의 레이스는 몸이 갈라지며 찢어지는 절규와 함께 사라졌다.

바닥에 남은 것은 동화 몇 개와 레이스의 영혼조각이었다.

"어렵지는 않은데."

근접딜러로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유형의 몬스터를 정하려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이 유령이다.

유령은 기본적으로 비행을 하고 있다. 개체에 따라서 아예 새처럼 날아다니고는 했다. 공중으로의 회피가 가능하기에 스킬이 아닌 일반공격이 물리적으로 닿지 않는 경우가 나왔었다.

또한 정신체이기에 물리적인 피해는 적게 받으며 유저들에게 각종 상태이상과 디버프를 걸 수 있었다.

나에게도 여러모로 궁합이 좋지 않은 상대이지만, 낮은 체력과 방어력은 내 일격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하나씩 끌어들여서 죽일 수 있다면 순삭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