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28화 고인물은모험한다.
샹들리에를 바라보던 시야에 요한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는 단상의 중앙에서 홀로 기도를 올리는 이를 가리켰다.
"썩이나감 님. 바로 저분이 이 신전을 책임지시는 주교 뤼움 상급사제님이십니다."
"그렇군."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는다. 평범한 사제복이 펄럭일 정도로 깡마른 눈에 띄었다.
요한은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뤼움 상급사제님. 그를 모시고 왔습니다."
"…기도 중에 방해는 하지 말라고 했거늘. 요한 사제는 이곳을 책임지는 내가 그렇게 가볍게 보이시는가."
뤼움은 불편한 기색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부리부리한 두 눈과 반대로 희미한 눈썹에 뒤로 질끈 묶은 장발. 그저 깡마른 몸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2M에 달하는 거구였다.
"실례했습니다. 주교님."
요한은 품위를 잃지 않은 목소리와 몸짓으로 사죄했다.
뤼움의 살벌한 두 눈은 요한을 지나 나에게 닿는다. 마치 적을 보는 눈초리였다.
음. 뭔가 이상하다.
뤼움에 대해서 유저들의 평가에 대해 공통적인 단어가 있다.
바로 겸손과 경건함이다.
왜 내 눈에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지?
심지어 신전 안에는 나뿐이다. 전에 봤던 스크린샷에는 뤼움과의 대화에 다른 유저들이 찍혀있었는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적어도 하나는 확실하다.
스토리의 흐름은 같아도 직업마다 조금씩 다르다.
지금이 그 경우겠지.
불사자는 나 이외에 없으니까.
"저는 바깥에 있겠습니다."
눈치를 보던 요한이 신전 바깥으로 나갔다.
"…불사자가 맞군. 진짜였어. 크리스가 자신의 운명을 이루었군."
그제야 뤼움은 불편한 얼굴을 더 가까이 들이댄다. 처음의 적의가 없기에 별다른 대꾸가 없이 경청했다.
"C등급 헌터가 되었다는 것은 그대의 힘을 되찾고 있는 것이겠지."
"날 깨운 이들의 조력만 있으면 더 편할 것 같은데."
다른 유저들도 이런 식의 요청으로 아이템이나 스킬을 받았다. 그들보다 더 긴밀한 관계일 수밖에 없는 나에게는 과연 무엇을 줄까!
"거절하오."
뤼움은 들떴던 내 기대를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쳤다.
"나를 깨운 것은 데스티아 여신교다. 그런데도 협조를 하지 않겠다고?"
"불사자를 인도하는 것은 크리스의 역할이오. 나는 그 자격을 보고 교주께 연락을 하는 것뿐이지."
"즉. 시험을 보겠다는 거군."
"그대의 불미스러운 소문은 익히 들었으니까. 요한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는 아니오."
뤼움이 저렇게 나오니 음욕 수치를 높인 것이 그렇게 잘못인가 싶었다.
칠죄종 스킬을 쓸수록 데스티아 여신교와 틀어지면 스토리 진행이 불편해진다.
"불미스러운 모습이란 여기서의 소문인가."
"취향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오. 다만, 자중할 때에 지나친 이목을 끌 필요가 없다는 거지."
흠. 그런 부분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알퐁스 교주를 만나기 전까지 힘을 길러야만 하는 것이 내 설정이니까.
"이해했으면 다행이오. 그대가 불사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다면 칠죄종을 보일 수 있겠지."
뤼움이 결국 퀘스트를 주려는 것인가.
방금 전의 대화를 생각하면 칠죄종의 스킬을 이용한 퀘스트일 거다.
"칠죄종의 힘이면 지금이라도 보여줄 수 있는데."
"물론이오. 곧 몬스터의 침공이 시작될 시기지. 그건 헌터이니 잘 알 것이오."
"……."
모를 수 없지.
몬스터 침공 때마다 관련 퀘스트가 늘어난다. 스토리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칠죄종의 힘을 쓰라는 건가?"
문제는 이 부분이다.
몬스터 침공 관련한 퀘스트는 대부분 필드에서 펼쳐졌다.
불사자를 평생 빌미로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벌써 꺼내기는 아쉽다.
"그럴 필요는 없소. 불사자인 것을 부정하지는 않으니까. 최소한 이곳에 인정받으라는 거요."
"인정? 어느 수준까지지?"
"헌터들 중에서 괄목할만한 결과를 내시오."
"……."
흠. 공적치를 쌓으라는 건가? 아니면 헌터등급을 더 올려야하나?
도대체 기준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군.
"싫소?"
"해야지."
어차피 거부권은 없으니까.
퀘스트를 받은 후에 고민해도 늦지 않았다.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자. 어디 이 깐깐한 사제가 바라는 기준을 알아볼까.
[뤼움의 시험]
-뤼움은 불사자인 당신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크리스가 바친 운명의 무게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도록 몬스터의 파도에 맞서 보이자.
-완료 조건 : 비활성화.
-실패 조건 : 비활성화.
"……."
퀘스트 내용을 보며 두 눈을 의심하고야 말았다. 세상에 어떤 퀘스트가 이런 식으로 표시가 되는가.
"인디망겜 같으니."
고객센터에 문의하면 뭐라고 할까. 불사자가 히든클래스니 이것도 히든퀘스트라는 변명이나 할까? 의도한 이스터에그라는 식으로?
다른 몬스터헌터 유저들이 뤼움에게서 받는 퀘스트를 기준으로 생각하자.
결국 몬스터 침공 관련 퀘스트를 수행하다보면 답은 나오겠지.
"당신의 시험에 대해서 내게 더 말해줄 것은 없나?"
"없소. 가서 수행하시오."
"정말 아무것도 안 알려준다고?"
"당신의 운명을 따르시오."
"……."
아. 짜증나. 데스티아 여신교 놈들의 아가리에서 그놈의 운명이란 단어를 빼놓고 싶다.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헝클이며 신전을 나섰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요한의 등과 나를 불만스럽게 보고 있던 다섯 명의 유저였다.
"님. 안에서 무슨 일 한 거죠?"
"왜 우리 접속 막음?"
"버그 쓴 것 아니죠? 왜 우리가 밖에서 대기를 탄 거임?"
모두 나에게 불만을 토했다. 다짜고짜 저렇게 달려드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어떻게 알아요. 지금에야 여기 왔는데."
두 눈을 크게 뜨고 오히려 되물었다. 최대한 억울함을 강조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다른 유저가 들어오지 못했다면 내가 불사자라서다. 그걸 다 설명해 줄 정도로 친절하지 않다.
"또 버그겠죠. 인디게임 수준 알잖아요."
2구역까지 왔다면 다들 알겠지.
소울리스가 만든 게임은 언제나 유저를 실망시키는 다양한 버그와 헬적화가 된 운영이 돋보이는 곳이니까.
가끔은 엘리멘탈 소울1이 유지가 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뭐. 그렇기는 하죠."
"어쨌든 버그라는 거죠? 님 말은."
다들 의심스러워도 더 캐물을 것이 없겠지.
히든퀘스트라고 짐작은 하겠지만 그보다 더 심한 히든 클래스가 있다고 짐작이나 할까.
"전 이만."
저들이 더 귀찮게 하기 전에 나 또한 자리를 떴다.
드디어 온 2구역이다. 이대로 빠져나가기 보다는 이곳을 더 살필 필요가 있다.
2구역은 3구역에 비해서 좁은 편이었지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의 수준이 달랐다.
내 레벨로는 감히 착용할 수 없는 장비를 파는 것은 물론 노란색의 스킬북도 판매하고 있었다.
2구역의 유저와 그렇지 않은 유저의 격차는 클 수밖에 없다.
언젠가 구매할 것들은 미리 눈도장을 찍은 뒤고 현실적으로 쓸 물건들을 살폈다.
구매 조건은 저비용 고효율이다.
지갑전사가 아닌 생계형 플레이어라 무턱대고 인터넷에서 찾는 정보를 맹신할 수 없다.
게임 초반에는 직접 발품을 파는 것이 정답이다.
협상 스킬이 없어서 DC를 못하는 것이 새삼 치명적이다.
뤼움의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몬스터 헌터 길드로 돌아가야겠지.
2구역을 나오자마자 빨간약파란약이 예전보다 더 화려해진 모습으로 앞을 가로막았다.
"오랜만이네요. 썩이나감 님."
"…그러게요. 반갑네요."
"반가워보이지는 않으신데요."
"아뇨. 반가워요."
개미유영을 거래한 인물이 반갑지 않다면 거짓이다. 불편한 이유라면 더 좋은 조건으로 거래를 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2구역에 진입하셨군요. 솔로 플레이만 하시는 유저 중에서는 가장 빠른 편입니다."
"그래요? 전 잘 모르겠는데."
"진짜에요. 확인된 랭커들은 대부분 길드의 지원을 받아 파티사냥을 하거나 부주를 구해서 24시간 돌리거든요."
빨간약파란약의 눈이 사라질 것처럼 호선을 그렸다. 어떤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잘 아시네요."
"그럼요. 업계 사람이니까요."
"업계요?"
업계가 어디를 뜻하는 것인지 모를 수 없다. 놀랍다기보다는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다.
빨간약파란약이 나에게 호기심을 가질 것은 두 가지다. 개미유영을 정말로 깼는가. 그리고 거기에서 거대공주개미의 검이 나왔는가.
나에게 해당 퀘스트를 줬으니까 확인하고 싶겠지.
"동종업계 분이시지 않습니까. 이미 거래후기도 하나 올라왔던데."
"……."
굳이 한 번 더 떠보려는 것은 나에 대한 확신이 없는 거겠지.
신중한 것은 미덕이라지만, 지나친 사람의 경우는 마냥 좋은 거래상대는 아니다.
뒤에서 자꾸 귀찮은 짓을 한단 말이지.
"어떤 걸 말씀하고 싶으신거죠?"
"좋은 관계를 가지고 싶어서요. 썩님이 숨기고 싶은 걸 파내고 싶어하는 건 아닙니다."
빨간약파란약은 말과 달리 그걸 알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같은데.
내가 변태검사라는 컨셉러로 포장되었다지만, 혼자서 2구역까지 도달한 것은 가려지지 않는다.
특히 남들은 파티로 간신히 깨는 거대개미를 혼자서 해결했다.
직접 본 빨간약파란약은 나에게 돈 냄새를 느낄 수밖에 없겠지.
"시험삼아 스크롤 거래한 건가요?"
"반반이죠. 정말로 혼자서 깰 줄은 몰랐거든요."
"저 말고 개미유영을 깬 사람은 있었습니까?"
"제가 요청할 수 있는 분들 중에는 없더군요. 랭커들은 바쁘고 그 밑의 구간은 자격도 없어서요."
역시나 시험 삼아서 준 것이 맞다. 굳이 나에게 줄 필요가 있었을까.
"아깝지 않습니까? 결국 모르던 제가 께서."
"조금은요. 배가 아파서 그런데 확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 물건이 거기에서 나온 것이 맞습니까?"
빨간약파란약은 드디어 검에 관심을 드러냈다. 굳이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더 눈을 빛냈다.
"전 아이템보다는 정보를 취급하는 사람입니다."
"사이트 운영자인가요?"
"맞습니다."
저 친절한 모습이 불편하다. 본론을 말하지 않고 빙빙 돌리며 떠보고 있으니 더 답답했다.
"아웃벤?"
"빨간약파란약 : 설마요. 그쪽은 아닙니다."
"그러면 아이템마니악이랑 아이템메이 밖에 모르는데요."
지금 애용하는 아이템거래사이트는 양지에서 꼽자면 아이템마니악과 아이템메이다.
이쪽은 수많은 사람들이 접근해서 거래가 빠르고 편한 부분이 있다.
자잘한 아이템을 파는 지금으로서는 더 애용할 수밖에 없다.
그 두 곳이 거론되자 빨간약파란약은 이해를 하지 태도였다.
"업계분이 굳이 그쪽을 쓸 필요가 있나요. 용돈벌이도 아니고."
"썩이나감 : 자잘한 거래가 편하죠. 지금은 큰 규모의 거래가 없잖아요."
예전의 나는 당연하게 딥 웹 기반인 다크게이머 전용 사이트를 썼었다. 기록과 흔적이 최대한 남지 않으니 칠죄종 세트를 판매했어도 내 신상을 지켰던 이유였었다.
"전 히든레코드의 직원입니다."
"그래요? 전 다크로얄만 주로 써서 처음 듣는데."
다크로얄이 다크게이머 전용사이트 중에서 업계최고다. 신용은 물론 판매자와 구매자의 신상을 가장 잘 지켜 주는 곳이었다.
"다크로얄 좋죠. 저희는 거기에 정보를 더하고 있습니다."
"공략사이트만 뒤져도 충분하지 않나요? 요츰 너튜브도 잘 되어있고."
정보는 언제나 중요한 자원이다. 문제는 게임에서 웃돈을 주고 거래할 정보가 그렇게 많지 않다.
게임을 잘 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게임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더 많다,
굳이 다크게이머가 공략을 할 필요가 없다.
게임에 인생을 갈아 넣은 헤비 유저들이 알아서 해준다.
다크게이머도 그들의 공략을 참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차피 우리는 남들보다 더 효율적인 사냥으로 아이템을 획득하는 것에 특화되었으니까.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있죠. 당신의 노하우로 쌓은 정보가 그들과 같습니까?"
도발을 하듯이 던지는 저 물음은 나에게 작지 않은 파동을 줬다.
저 말도 틀리지 않았다.
같은 소재라고 하더라도 그걸 가공하는 이에 따라서 명품이 될 것인지 폐품이 될 것인지 정해진다.
한 줌의 모래 같은 정보에서 다이아몬드와 같은 결과 만들던 것이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