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24화 고인물은결심하다.
"뭐야. 벌써 점심이잖아."
목이 말라 일어났을 때는 이미 점검시간을 훌쩍 지난 뒤였다. 집중을 너무 한 것인지 나도 모르게 푹 잠들어 버렸다.
찬물로 세수를 한 뒤, 엘리멘탈 소울2 공식 홈페이지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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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 패치노트]
안녕하십니까. 위대하신 영혼들이여.
금일 진행된 긴급점검은 게임 내부의 밸런스 패치와 상세하게 표시되지 않은 항목들에 대한 것들이 중점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를 눌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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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 패치는 주로 나와 관계없는 것들이었다. 그나마 엮인 것이라면 초반의 해골병사와 모그 산골마을의 극악한 난이도를 조금 낮추는 정도였다.
나 하나로 게임의 밸런스가 바뀐다. 여기서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나한테 큰 문제는 없겠네."
랭킹을 보니 어느새 레벨 20을 넘은 유저도 더러 생겼다.
혼자서 하는 나와 달리 부주가 작업을 해야 가능한 효율이다.
그럴 여력이 없는 나로서는 부러울 따름이다.
다시 게임에 접속하고 보이는 것은 익숙한 정경이 아니라 안내창이었다.
[히든 클래스 안내문.]
안녕하십니까. 위대하신 영혼이여. 금일 진행된 패치로 히든 클래스인 불사자에 대해 변동된 점을 단 하나뿐인 영혼께 안내드립니다.
불사자는 별도의 스킬 포인트를 지니지 않기에 숙련도를 통해 스킬의 레벨이 올라가며 해당 수치를 보다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최종결론이 났습니다.
부디 엘리멘탈 소울의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영광스러운 길을 걷기를 바랍니다.
어떤 말인지 확인을 하기 위해 스킬창을 열었다.
[스킬]
-링크 스킬 : 스피어마스터의 소울, 건맨의 소울, 버서커의 소울, 칠죄종의 소울.
-직업 스킬 : 불사자의 은총, 불사자의 숙명.
-습득 스킬 :
구르기 LV 2
도검 마스터리 LV 3
회심의 찌르기 LV 1
1인 도발 LV 1
"이렇게 변했구나."
스킬들을 살피니 세부 설명도 바뀌었다. 확실히 이전에는 뭉뚱그려 되어 있던 것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으니 편하기는 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링크스킬들은 상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훌륭한 전과다! D+등급을 혼자서 해결하다니!"
아쉬운 마음을 접고 발레인에게 보고를 했다. 그는 이전과 달리 격한 반응으로 나를 반겼다.
[시기가 상승합니다.]
그에 호응하듯이 칠죄종 스택도 차곡차곡 쌓인다.
[도전과제, 발레인의 인정을 받은 자를 달성하였습니다.]
[칭호, 소문의 루키를 획득하였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록의 인정을 받은 루키답군. 정말로 대단하다!"
발레인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내 등을 두들겼다. 눈에 띄게 떨어지는 체력을 보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제길. 도전과제 보상 아이템으로 쓰지도 않을 활을 주는군.
[분노가 상승합니다.]
칠죄종이라도 올랐으니 다행인가.
발레인의 칭찬을 대충 넘기며 길드 상점에서 내가 살 수 있는 스킬들을 살폈다.
봉골레국밥에게 당할 뻔했듯이 나에게는 돌진기가 필요하다. 무적판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면 회피기로도 쓸 수 있으니 최적이다. 물론 그런 귀중한 스킬을 지금 단계에서 구할 수는 없다.
"회피스킬이라도 사야 하는데."
뭐가 좋을까.
스킬북들을 살피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한 번이라도 확실하게 공격을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채널을 바꾸며 상점을 확인했다.
[백스텝의 스킬북.]
-종류 : 일반.
-효과 : 스킬 습득.
-설명 : 백스텝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그나마 이게 낫겠다."
채널을 절반이나 뒤지고 나서야 원하는 것을 발견했다. 하나밖에 수량이 남지 않았을 뿐더러 가격도 부담할 수 있는 정도였다.
[백스텝 LV 1]
-종류 : 엑티브 스킬
-효과 : 뒤로 최대 1M 이동해 적의 공격을 회피합니다.
-쿨타임 : 10초.
-스테미나 소모량 : 50
근접직업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스킬이지만,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팔아서 다행이다."
이동범위는 구르기에 비하면 턱 없이 모자라다. 후방고정이 아쉽지만 적의 공격을 회피한다는 것이 주요했다. 최소한 한 번은 피할 수 있다. 그게 가져다주는 이득은 적지 않을 터다.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그리고 퀘스트를 등록했다. 제대로 된 정보를 확인해야 공략에 팁을 얻을 수 있으니까.
[개미유영]
-거대개미들이 번식기에 다다랐다. 집을 떠나 새로운 둥지를 만드려는 거대수개미와 거대공주개미를 사냥하자.
-완료 조건 : 거대수개미와 거대공주개미 1쌍 사냥 성공.
-실패 조건 : 퀘스트 포기.
예상대로 거대수개미와 거대공주개미를 동시에 사냥해야만 한다.
퀘스트 장소는 아직 내가 다다르지 못한 곳이다. 위치상으로는 개미집에서 더 들어가야 한다.
직접 발품을 파는 것에는 시간이 걸려 해당 지역의 지도를 샀다. 확대해서 보인 맵은 인근에서 보기 드물게 녹림이 우거진 곳이었다.
"출몰 몬스터는 야수계인가."
만약 퀘스트 장소가 던전이 아니라 오픈필드면 다른 몬스터와의 분쟁도 염두에 둬야만 한다.
온라인상에 공개된 정보가 있나 살폈지만, 아직 해당 지역이나 관련 퀘스트를 올린 이들은 없었다.
추가로 길드 내부의 NPC들에게 해당 지역의 정보를 수소문했다.
누군가는 모른다며 무시했고 누군가는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
그나마 발레인을 통해 그 일대에서 올라오는 퀘스트가 무엇인지 알려 줬다.
"메탈베어, 하울링 울프가 주로 나오는구나."
역시나 내 레벨로 감당하기 힘들다. 놈들은 최소 C-등급의 퀘스트 몬스터였다.
거대수개미나 거대여왕개미보다 더 위험도가 높다.
"저쪽으로 가면 나도 무리야."
만약 보스전이 그놈들의 지역까지 간다면 기꺼이 포기할 생각도 해야만 한다.
* * *
거대개미의 집이 있는 곳에는 어제보다 많은 유저들이 있었다. 공략대가 정보를 풀자 후발주자가 빠르게 올라오는 시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저들 중에는 나보다 늦게 시작을 했음에도 비슷한 레벨로 올라온 이들도 있겠지.
빌어먹을. 나도 모르게 더 졸아버린 시간이 아깝다.
"어차피 레벨 따위."
내 강함은 그런 숫자 따위를 넘어선다.
불사자가 가지는 특성으로 나는 육성한계치가 없다. 지금은 낮아도 결국 내가 그들을 넘어설 수밖에 없다.
혼자 개미집도 끝낸 것을 감안하면 레벨 20이상의 몫은 하고 있다.
"이봐요. 거기 넘어가면 위험해요."
"랭커들도 안 가는 곳인데?"
어디를 가도 오지랖이 넓으신 분들이 나를 부른다.
"그냥 맵 작업 좀 하려고요."
적당한 변명으로 관심을 차단한다.
정식직업은 아니지만 탐험가처럼 여러 곳을 탐험하며 지도를 넓히는 유저들이 있다. 최초 발견으로 경험치와 도전과제를 달성하며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는 것이 가치를 두는 이들이다.
거기에 혈안이 되어 길드 전용 탐험가를 두는 경우가 있다.
지도에 채취할 수 있는 자원과 출몰하는 몬스터 등 주요 정보가 잘 잡혀진 것은 웃돈을 주고 구하지 못한다.
"잘 구하면 우리도 좀 줘요."
그러니 오히려 좋은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내 닉을 보고도 별 반응이 없는 것을 보면, 특별하게 정보통이 밝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열심히 게임만 하는 부류겠지.
퀘스트 장소는 거대개미집과 웅성한 산림의 경계선이었다. 거기에 들어서니 잠깐의 로딩이 일어났다.
[알고 있죠? 게임은 결국 pay to win입니다. 망설이지 말고 지르세요. 소울리스 CEO 대니얼.]
"여긴 던전 판정을 받겠구나."
던전 때마다 나타나는 알림은 상황파악을 용이하게 해 준다.
실제로 내가 지나온 길이 짙은 안개로 가로 막혔다. 이걸 깨기 전에는 나가지 못하는 것 같다.
드러나는 정경에 열 개 정도의 거대개미집이 있다.
[크허어어어엉!]
돌연 천지를 울리는 굉음이 들렸다.
5M가 넘는 거대한 체격에 갑옷을 걸친 것처럼 전신에 금속으로 된 비늘이 달린 몬스터. 가급적이면 마주치기 싫은 메탈베어였다.
메탈베어는 무려 30레벨이다. 몇 배나 큰 개미집을 부수고 거기서 거대개미의 유충들을 으적으적 꺼내 먹고 있었다.
거대개미들은 거기에 대항하고 있었다.
헛된 발악일 뿐이다.
거대일꾼개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거대병정개미의 발악은 별다른 데미지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남들 눈에 띄지 않아서 좋지만, 던전으로 판정되면 매번 상황이 바뀌겠는데."
이 퀘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던전이라면 매번 다른 환경이 조성된다. 로그라이크는 불사자에게 있어서 유일한 죽음으로 인한 페널티다.
이곳의 근본적인 것을 파악하기 전에는 얼마든지 죽어 줄 수밖에.
"판정 확인을 해 볼까."
시작지점에 불사자의 영혼함을 심고 메탈베어에게 다가가 1인 도발을 걸었다.
[상대가 도발에 걸렸습니다.]
스킬은 통했다. 보스가 아니었는지 어그로가 나에게 쏠린다.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걸까?
[크어어어어어!]
메탈베어가 반쯤 박살낸 개미집을 버려두고 포효했다.
[플레이어가 상태이상 위압에 걸렸습니다.]
[전체 능력치 10%가 하락합니다.]
"……이런."
저 포효는 적으로 인식되면 피할 수가 없는 건가.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쿠웅! 쿠웅! 쿠웅!
메탈베어가 네 발로 뛰어온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게 느리기를 바랐건만 이때까지 본 몬스터 중에 제일 빠르다.
저 압도적인 속도는 거대수개미의 돌진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크허엉!]
메탈베어는 그 두터운 몸뚱이로 부딪쳐 왔다. 거기에 맞춰 몸을 틀고 곧바로 백스텝을 썼다.
후우웅!
메탈베어의 거대한 육신이 나를 스친다. 육안상으로는 몸이 찢겨져야 하지만 백스텝의 판정이 나를 살려줬다.
예상했던 것보다 판정이 좋다.
그래. 이 맛에 스킬을 쓰지.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메탈베어는 내 레벨과 2배 차이다. 전력으로 다한 일격이 얼마나 통할까.
후우웅!
메탈베어가 휘두르는 앞발을 구르기로 파고들었다.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힘껏 공격을 가했다. 가슴에서 옆구리까지 길게 베었다.
촤하아악!
"쳇."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이기에 잔뜩 기대를 했지만, 메탈베어의 체력은 고작 10% 정도만 달았을 뿐이다.
으적.
그리고 메탈베어의 두 번째 공격이 내 몸을 으깨 버렸다.
[YOU DIED.]
각오한 죽음이기에 곧바로 부활했다.
"…곰은 잡더라도 시간이 너무 걸리겠어. 패스."
다시 컬러를 갖춘 시야에서 보인 것은 아까와 다른 배치인 거대개미집과 그에 다가가는 메탈 베어의 모습이었다.
빌딩 숲에 우뚝 선 거대괴수를 보는 느낌이다.
저걸 어떻게 상대하지?
* * *
메탈베어의 압도적인 강함은 눈앞이 컴컴할 정도다. 백 번을 도전하면 한 번쯤은 잡을 수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레벨업을 할 시간을 모두 버린다.
내가 왜 게임을 하지?
겨우 메탈베어 따위를 잡기 위해서인가?
아니.
난 돈을 원한다.
이건 지나가는 길거리의 풍경 중 하나일 뿐이다.
개미유영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한 번은 진득하게 메탈베어의 움직임을 봤다.
메탈베어는 벌꿀을 탐하는 것처럼 개미집을 부수고 그 안의 것들을 먹었다. 특히 좋아하는 것은 유충과 알이었다.
메탈베어가 까다로운 것은 그 개미들을 먹을 때마다 더 강해진다는 거다.
첫 개미집을 부수는 것에 5분이 걸린다. 그 다음부터는 대략 20초씩 줄어드는 수준이다.
"이건 개미유영이 아니잖아. 곰의 습격이지."
저 메탈베어를 피해서 거대수개미와 거대공주개미를 죽여야만 한다.
보스전이 타임어택인 셈이다.
"그것도 입구부터 비집고 가야 하니까."
목표는 두 가지다.
위험을 감수하고 메탈베어가 박살내고 있는 개미집을 털 것인가. 그게 아니면 마지막으로 노릴 개미집을 끝낼 것인가.
어느 것도 안전하지 않다.
전자는 개미집을 오르는 도중에 메탈베어로 인해 내가 죽을 수도 있고, 후자는 보스를 만나기 전에 내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답은 후자다.
거대개미들의 신경이 메탈베어에게 쏠리면 나는 바로 보스전을 시작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