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22화 고인물은개미가쉽다.
"손님맞이 좋네."
열 마리가 넘는 거대병정개미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놈들은 넓게 포진하여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1인 도발을 사용합니다.]
[상대가 도발에 걸렸습니다.]
내 예상보다도 이 스킬의 활용도는 높으니까.
[키릭? 키히이익!]
아슬아슬하게 스킬 범위에 걸린 거대병정개미1이 턱을 쩍 벌리며 다가왔다.
다른 거대병정개미들은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것인지 어쩔 줄 몰라 했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쿨타임은 진즉 돌았다.
좁은 통로로 무식하게 대가리를 들이대는 거대병정개미1을 공격했다.
콰득! 콰득!
시기적절하게 건맨의 소울이 터진다.
한 번의 휘두름에 두 번의 충격. 거대병정개미1은 그대로 무너졌다.
[키익?]
[키이익!]
나머지 놈들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거리를 유지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멀어진다. 대열도 무너트리며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배끝을 바닥에 댄 채 계속 흔들고 있었다.
놈들이 신호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도 나갈 수 없다.
웅크린 상태로 1인 도발의 쿨타임이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1인 도발을 사용합니다.]
[상대가 도발에 걸렸습니다.]
바깥으로 나감과 동시에 스킬을 건다.
[키리리릭!]
도발에 걸린 거대병정개미3이 나에게 달려들음과 동시에 다시 좁은 통로로 들어갔다.
터엉!
허리를 끊으려는 거대병정개미3의 턱을 튕겨낸다. 대가리가 높이 올라가고 훤히 보이는 저 좁은 허리를 찔렀다.
치명적인 찌르기를 통한 데미지는 훌륭한 연계다.
문제라면 거대병정개미의 높은 방어력이다. 기대했던 것보다 체력이 낮게 떨어진다.
쿠웅!
연타로 대가리를 두들겼다.
타악! 탁!
거대병정개미3은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들이대며 나를 씹어 먹으려고 했다.
허공을 휘젓는 턱은 확실히 위협적이다.
터엉!
도발에 걸린 놈의 동작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튕겨내기 후 치명적인 찌르기.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반복해서 몸에 익어 버린 몸뚱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
[키히익!]
도발이 끝나 뒷걸음질을 치는 놈을 머리를 찍어 마무리를 냈다.
"이대로 몇 놈만 더 잡으면 되겠네."
경험치를 보니 거대병정개미만 세 마리를 더 잡으면 레벨업이 가능할 것 같다. 쓸데없이 욕심을 내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다가 거대병정개미를 하나씩 끌어들이며 사냥했다.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전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좋아."
드디어 13까지 올렸다.
그사이에 남은 거대병정개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무슨 일이지?"
공략본에서도 거대개미의 행동에 대해 상세하게 파악된 것은 없다. 그건 탐구의 영역이다.
공략은 변수를 최소화해서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이다.
"맵이나 더 봐 둘까."
나에게 나쁠 일은 없다.
네 갈래의 길을 유심히 살폈다. 어디가 좋을까 고민하다 가장 좁은 길을 택했다.
좁을수록 더 안전하니까.
사각. 사각.
통로가 끝나고 작업 중인 거대일꾼개미가 보인다. 그 수는 열이 넘는다.
숫자가 부담스러운 것을 떠나 거대일꾼개미는 별다른 메리트가 없다.
특별한 것도 없으니 물러나려고 할 때.
투둑. 투둑.
"이런……."
뒤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아차 싶었다.
지나온 좁은 통로에서 거대병정개미의 모습이 보였다. 하나가 아니고 둘 이상이다.
"당했네."
설마 내가 나오자마자 양쪽에서 공격을 당할 줄이야. 어처구니가 없어서 코웃음만 나온다.
그냥 죽어 줄 수 없지.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쓰고 거대일꾼개미를 공격했다.
콰득! 콰득!
거대일꾼개미도 이제는 한 방에 끝이다. 세 마리를 죽이고 나갈 때, 뒤에서 합류한 거대일꾼개미가 뒤를 덮쳤다.
[YOU DIED]
13레벨까지 올랐으니 공략에 더 속도를 내도 될 것 같다.
* * *
음. 마음을 먹는다고 모든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는다.
7번째 죽음부터는 거대병정개미에 대한 파훼법을 몸으로 익히기 시작했다.
던전도 크게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비교적 적당한 크기의 통로다.
지금의 나로서는 절대 공략이 불가능하다. 세 방향으로 떨어지는 거대병정개미를 대처할 수 없어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대처할 수 없다.
그래서 아예 천장에서 우회하기도 힘들 정도로 넓은 공간인 두 번째의 경우나 너무 좁아서 일대일로 적들과 싸우는 것이 가능한 세 번째 유형이 좋았다.
그래서 죽으면서 내가 바라는 맵이 되기를 바랐다.
10번째 죽음에서 세 번째 유형의 맵에 걸렸다.
이전과 똑같은 식으로 두 번의 거대개미들을 퇴치한 후, 좁고 빙빙 꼬아진 길을 이동했다.
중간마다 위험한 것은 역시 탁 트인 공간이었다.
그때마다 최소 다섯 마리의 거대병정개미들이 버텼다.
거대일꾼개미는 이제 마주치면 도망간다. 거대병정개미도 동시에 두 마리는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는다.
싸우다 죽을까.
아니면 슬슬 욕심을 낼까.
"한 번은 써 봐야지."
인벤토리에서 거대개미 페로몬 주머니를 꺼냈다. 여분으로 하나가 더 있어서 사용하더라도 미련은 없다.
꾸우욱.
공략에 봤던 대로 조심스럽게 페로몬 주머니를 쥐어짠다.
네 갈래의 갈림길.
오른쪽 두 번째에서 작은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저기가 거대여왕개미가 있는 길목이다. 확실히 다른 곳에 비해 넓다.
거대개미들은 다가오려고 하다가도 페로몬 주머니의 효과 때문에 물러났다.
탁 트여진 드넓은 공간.
거대 일꾼개미들은 먹이를 나르고 거대병정개미들이 그걸 지키고 있었다.
거대개미들은 종종 나를 보다가도 흘러나오는 페로몬에 고개를 돌린다.
"저게 여왕인가."
머리와 가슴만 해도 코끼리와 같아 보인다. 그 아래에서 끝없이 알을 뱉어내는 배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레벨은 무려 20이지만 두렵지는 않다. 애초에 거대여왕개미의 공격능력은 전무하다.
파르르르르.
개미집 토벌의 보스는 거대여왕개미가 아니다.
바로 이 날갯짓 소리의 주인공이다.
해당 던전의 거대여왕개미가 오래된 개체면 나타나는 것이 거대공주개미였고 비교적 나이가 어린 개체면 거대수개미가 나타난다.
둘 중에서 난이도가 쉬운 것은 거대수개미라고 한다.
초심자의 경우에는 거대공주개미가 나타난다면 기꺼이 해당 던전을 이탈하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다.
"수개미네. 나는."
팔자로 여유롭게 비행을 하는 거대수개미는 천천히 거대여왕개미 앞에 멈추었다. 고개를 숙여 여왕에게 경의를 표하고서는 나를 향해 천천히 2M가 넘는 거구를 돌린다.
파르르르르!
거대수개미는 몸을 바짝 낮췄다. 활짝 편 날개는 가늘게 떨리고 있다. 반면에 접혀져 있던 여섯 개의 다리가 펴지는 순간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나에게 다가왔다.
이건 어쩔 도리가 없다.
피하거나. 죽거나.
콰아앙!
이를 악물고 바닥을 굴렀다.
거대수개미는 벽에 처박혔다. 이대로 어설픈 엔딩이 나기를 바랐다.
파르르르르!
놈은 또다시 몸을 낮추고 날개를 가늘게 떤다.
거대수개미는 특히 비행에 특화되어있다. 지금의 돌진공격도 그 응용일 뿐이다.
스킬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 반응속도로 저걸 쳐낼 수는 없다.
그래서 1인 도발을 사용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슬링으로 힘껏 돌멩이를 날렸다. 높아진 민첩만큼 상승된 유효사거리와 명중률은 비껴나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거대수개미의 돌진은 그 뒤였다. 돌멩이에 달려드는 모양새였다.
퍼걱.
아주 작은 소리로 돌멩이는 가루가 되었다.
거대수개미의 체력도 아주 조금 깎였다. 그마저도 민첩에 투자를 한 덕분이었다.
콰드드득!
늦기 전에 주저 없이 바닥을 굴렀다.
거대수개미의 턱과 발톱이 바닥을 파헤치며 지나갔다. 이번에는 벽에 부딪히지 않아서인지 곧바로 자세를 갖췄다.
"이게 쉽다고?"
나로서는 기가 막힐 분이다.
지금까지 거대수개미의 공격은 단순하지만 너무 빨라서 까다롭다. 이보다 어렵다는 거대공주개미는 어느 정도란 말인가.
"무조건 여기서 끊어야겠네."
뒤늦게라도 불사자의 영혼함을 설치했다. 만약 부활하면 어디부터 시작할지는 몰라도 이 던전의 구조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외웠다.
중간에서 깨어나도 금방 보스까지 도달할 것이다.
자. 침착하자. 직선적인 공격인지라 눈으로 쫓기 힘들어도 예측하기는 비교적 쉬울 테니까.
주변의 거대개미들은 무시한다. 어설프게 신경을 써 봐야 득이 될 것은 없다. 오로지 거대수개미에게만 집중하자.
저놈만 죽이면 된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스킬을 쓰는 것과 동시에 거대수컷개미가 돌진준비를 한다.
파르르르!
덩치보다도 더 큰 날개의 가는 떨림이 멈추는 순간, 놈은 땅을 박차고 나에게 온다.
눈을 감을 수 없다. 그랬다면 몸이 곧바로 찢겨질 테니까.
오른발을 옆으로 뻗는다. 허리를 찢을 듯이 비틀며 검을 휘둘렀다.
콰드드드득!
그리고 거대수컷개미와 부딪쳤다.
강철만큼 단단한 껍질과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날카로운 턱은 물러남이 없다.
검에서 시작되는 진동이 온몸에 퍼진다.
깎여나가는 검에서 튀는 불똥과 균열이 가는 껍질에서 흘러나오는 체액이 불쾌하게 튀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부딪힘 끝에 부러짐은 없다. 마찰 끝에 서로 비틀어졌을 뿐이다.
허리를 비틀며 오른쪽으로 무릎을 꿇었다.
거대수개미의 돌진은 왼쪽으로 방향이 틀어져 벽에다 대가리를 처박혔다.
"…살았네."
공격이 실패하면 언제나 죽음으로 이어졌었다. 그러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투툭. 툭.
[키헤에에에엑!]
거대수개미는 벽에 처박힌 몸뚱이를 빼내며 괴성을 터트렸다. 체액과 함께 날개 한쪽이 떨어져 내렸다.
1페이즈가 끝났다는 증거다.
지금부터는 2페이즈다.
치이이이익.
거대수개미의 배끝에서 눈물 한 방울 정도의 액체가 계속 떨어진다.
그때마다 바닥이 녹으며 유색의 연기가 피어오른다.
2페이즈는 개미산이다.
거대수개미가 흥분하여 흘리는 개미산으로 인해 지나간 자리에서 약 10초간 산성독이 퍼지는 것이다.
그래서 맵의 왼쪽 끝에 붙었다.
적의 남은 체력은 60% 정도다. 최소한 두 번의 공격을 더 성공시켜야만 한다.
필수요소인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다시 쓸 시간 동안 산성독으로 인해 더럽혀질 공간을 최소화한다.
특히 오른손잡이인 내가 검을 마음껏 쓸 수 있게 왼쪽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파르르르!
거대수개미는 전보다는 더 가까이 다가와 하나밖에 남지 않은 날개를 흔들었다. 이후에 달려오는 속도는 아까 전에 비교하면 확연히 느리다.
콰과과과과.
돌진 자체의 위험성은 줄었지만 흩뿌려지는 산성독으로 인한 2차 피해는 치명적이다.
구르기를 통한 회피는 필수적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거대수개미가 연속적으로 돌진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개체보다 유독 길고 날카로운 다리를 놀려 다가와서는 나를 물어뜯으려고 했다.
콰앙! 쾅!
피할 때마다 들리는 거대수개미의 턱이 부딪치는 소리는 폭음에 가까웠다.
"상체로 세 번. 하체로 한 번."
침착하게 놈의 공격패턴을 파악한다.
그 뒤에 공격을 하려고 했으나 제자리에서 돌아 개미산을 주변에 흩뿌렸다.
치이이이익!
범위는 거대수개미 반경으로 2M 정도다.
예상보다 넓지는 않지만 자욱한 연기에 놈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다.
이건 변수다.
스테미나의 소모를 감소해서라도 뒤로 물러나야만 한다.
파르르르.
바닥이 녹는 소리와 함께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그게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 없었다.
후우우웅!
"엇……!"
전면만을 보며 피할 준비를 하다가 의표를 찔렸다.
연기 속에서 거대날개수개미가 날아오른 것이다. 그리고 개미산이 폭탄처럼 머리 위로 떨어진다.
"귀찮은 짓을."
한쪽밖에 없는 날개비행은 느리고 비틀거린다. 불규칙적으로 떨어지는 개미산을 끝까지 보며 피했다.
쿠웅! 쿵!
거대수개미는 불안정한 비행을 끝내고 거칠게 착지했다.
내 스태미나는 충분하다. 다음 패턴까지 마음껏 공격해도 된다.
터엉!
먼저 깨물려는 거대수개미의 머리를 튕겨낸다. 그리고 드러난 목과 가슴을 잇는 얇은 관절을 찔렀다.
[키히익!]
거대수개미의 머리가 순간 기괴한 각도로 비틀린다.
그것도 잠시.
타액이 질질 흘리는 턱을 들이 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