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16화 고인물은화가났다.
왜 죽은 거지? 의혹을 삼키고 불사자의 영혼함에서 살아난 뒤에 다시 노파에게 달려갔다.
마녀가 소리를 지른 것이 아무래도 스킬인 것 같다.
처음 생각이 든 것은 마비였지만, 그랬다면 지금처럼 전신에 조작이 불가능했겠지.
그러면 포박일 가능성이 높다.
함정보다는 식물을 이용한 마법이겠지.
"태우면 그만이니까."
바닥부터 정리해서 싸우자.
화염의 구슬로 마녀 주변의 농작물들을 태웠다.
타다다닥.
치솟는 불길 속에서 마녀의 모습은 더 음산하다. 어쩌면 함정 같은 것이 있으니 저 마녀가 오게 해야지.
슬링에 돌멩이를 얹어 마녀를 향해 휘둘렀다.
거리는 20M 정도니 최대한 힘을 빼서 맞추는 것에만 심혈을 기울였다.
퍼억!
[이 건방진 놈!]
두 번째 시도에 돌멩이에 맞은 마녀가 나에게 다가온다.
좋아. 농작물이 사라진 곳까지 왔군. 이러면 최소한의 변수가 사라진다.
"어?"
잠깐. 왜 다리가 또 움직여지지 않는 거지?
언제 바인딩을 쓴 거지?
도대체 어떻게? 수많은 의문을 가진다. 일어나기 전에 손으로 빠르게 다리를 훑었다.
얇지만 단단한 무언가가 손에 잡힌다.
낚싯줄인가 싶었지만, 희미한 달빛에 비추어지니 그 끝이 다다르는 것은 마녀의 길고 긴 머리카락이다.
"이거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고?"
어처구니가 없다. 허탈함이 가슴을 채우는 것보다 먼저 손이 움직인다.
촤악!
날카로운 검이 머리카락을 잘라낸다. 끊어진 부분이 살아 있는 것처럼 펄떡인다.
후우우웅!
[죽어라!]
마녀가 크게 낫을 휘둘렀다. 그걸 보자마자 바로 주저앉았다.
촤아악!
풍압이 머리카락을 어지럽힌다.
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머리가 날아갔겠지.
뒤이어 휘둘러지는 이격도 튕겨내기로 막을 자신이 없다. 아직 마녀의 공격패턴도 더 확인해야만 한다.
구르기로 거리를 벌리고 다시 슬링을 던졌다.
퍼억! 퍽!
슬링으로 꾸준하게 마녀의 체력을 깎았다. 작지 않은 데미지지만, 평소의 것을 생각하면 볼품이 없다.
[도망치지 마라!]
이때까지와 달리 마녀가 달려오며 낫을 길게 휘둘렀다.
고블린 주술사 때처럼 스킬일 가능성이 높다. 감히 맞설 생각은 없다. 어처구니없게 죽으면 안 되니 구르기로 피한다.
거대한 동작이었으니 그 뒤의 빈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검으로 분명히 마녀를 베었다. 손에 그 느낌이 분명히 왔다.
그러나 마녀의 체력은 달지 않았다. 공격 후였음에도 무적판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스킬인 거지?
"없다."
위화감을 정체를 알아 버렸다.
마녀의 손에 낫이 없다. 우뚝 멈춘 손짓은 마치 낫을 던진 것처럼 보인다.
후웅! 후웅! 후웅!
고개를 돌릴 필요가 없다. 귓등에서 들리는 섬뜩함의 정체는 충분히 알 것 같았으니까.
낫을 던졌고 그게 돌아온다!
꽈아아아악!
[죽음을 맞이하라.]
"제길!"
옆으로 구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마녀가 내 양어깨를 움켜쥐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꿰뚫었다. 체력의 3분의 1이 빠진다. 움직이려고 해도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촤아아악!
그리고 돌아오는 낫이 내 몸을 베었다.
[YOU DIED]
회색으로 변하는 시야.
마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손에는 다시 낫이 들려 있었다.
"빌어먹을!"
되살아난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올 수는 없었다.
고블린 주술사 때도 그랬다.
왜! 도대체 왜! 겨우 초반에 만나는 보스 몬스터가 기존의 상식에 벗어난 공격패턴을 가지고 있는 거지?
"아. 그래. 인정해야지. 소울리스 개새끼들."
이 모든 일의 문제는 내가 마녀의 공격 한 번에 죽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자처한 일이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 지금의 모토가 되었으니까.
죽어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
이 약간의 찝찝함도 익숙해져야만 한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면 된다.
그게 불사자다.
다시 마녀에게 달려가면서 보니 욘은 혼자서 거대 구울을 상대로 선전하고 있었다.
서로 체력은 절반 이상이 남았다. 그 말은 두 번 정도 더 죽어도 괜찮다는 거다.
마녀는 같은 자리에서 날 물끄러미 보고 있다.
다시 슬링을 든다.
아예 바닥에 깔려서 기어오는 머리카락을 화염의 구슬로 태웠다.
화르르르륵!
[욘의 동료! 죽어라!]
운이 좋게도 머리카락을 태우는 불길이 마녀의 몸까지 번졌다. 체력이 떨어지는 것은 겨우 1픽셀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다.
쏟아내는 슬링의 돌멩이들을 맞으며 거리를 좁힌 마녀는 낫을 횡으로 크게 3번 휘두른다.
저 속도를 제대로 쳐낼 자신이 없다.
거리를 벌리며 위험할 때는 구르기도 사용했다.
다음 패턴은 마녀가 낫을 횡으로 2번을 휘두르고 머리를 찍는다.
횡의 2번도 피한다.
마녀가 낫을 번쩍 들어 올릴 때가 내가 노리던 순간이다.
터엉!
벼르던 순간이기에 검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마녀의 낫을 튕겨냈다.
곧바로 공격은 하지 않는다. 인벤토리에서 꺼낸 성수를 검에 부었다.
신성력이 가미된 검이 은은하게 빛났다.
지속효과는 3분.
내가 죽으면 그마저도 끝이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한 번으로 끝내자.
두 손으로 움켜쥔 검을 활짝 열린 마녀의 몸에 그대로 꽂았다.
푸욱!
[키하악!]
마녀의 몸이 활어처럼 펄떡였다.
단 일격으로 체력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체력이 얼마나 많은 거야!"
성수에 회심의 일격. 그리고 스피어마스터의 소울까지. 마녀를 상대로 꺼낼 수 있는 모든 패였기에 일격필살까지 생각했었다.
곧바로 숨통을 끊고 싶었지만 그건 욕심이었다.
[끼아아아악!]
경직이 풀리자마자 마녀가 크게 낫을 휘두른다.
내가 경계하던 그 공격이다. 이번에도 감히 맞설 생각도 하지 않는다.
옆으로 몸을 굴리며 피한다.
촤하아아악!
다리 사이로 낫이 지나간다. 만약 조금만 느렸으면 허리가 잘려나갔겠지.
마녀는 무적판정을 받은 상태로 나에게 손을 뻗었다.
"미안하지만……!"
한번 봐서 또 당할 마음이 없다.
다시 구르기로 물러났다.
내가 있었던 곳을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낫이 스쳐 지나갔다.
[너를 죽여서 욘을 절망에 빠트려주마!]
"그 새끼랑 그런 사이 아니야."
체력이 절반도 남지 않은 마녀였지만 공격패턴은 아까와 같았다.
횡베기 세 번. 그리고 다시 횡베기 두 번 후에 내려찍기.
터엉!
마지막을 튕겨내기로 쳐낸다.
뒤이어진 찌르기가 성공적으로 들어갔다.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의 효력은 끝난 상황이다. 아직 성수의 효력이 남아 있었기에 마녀는 그대로 모든 체력을 잃었다.
[욘…을 죽이기 전…에……!]
마녀는 무릎을 꿇고 무너졌다. 몸에서 검은 연기가 빠져나가 초라한 노파의 모습이 되었다.
쿠우우웅!
뒤이어 거대 구울도 쓰러졌다.
욘은 나를 지나치고 노파를 내려다봤다.
노파의 원한 어린 눈은 그를 찢어 죽일 것처럼 보인다.
[욘. 이 저주…받을…….]
"당신이라도 목숨을 건졌다면, 나를 원망하지 말고 고마워하지 그랬소."
욘은 혀를 차고는 자신의 도끼로 노파의 숨통을 끊었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욘이 대부분의 사냥감을 처리한 탓에 레벨업도 못했다.
혼자 궁시렁거리는 사이에 그는 농원에 불을 질렀다.
"나까지 태울 셈이야?"
"아쉽군. 살아 있어서 답례를 줘야 하잖아."
욘은 장난기 가득한 투로 10은화와 책 하나를 줬다.
[미확인 스킬북]
-등급 : 미확인.
-효과 : 미확인
-설명 : 감정이 되지 않아 어떤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지 모른다.
맙소사! 스킬북이라니!
설마 이런 귀한 물건을 줄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마지막에 죽은 녀석에게서 얻은 거다. 미확인이라 뭐가 나올지는 모르겠다만. 너의 운에 따라 나눠지겠지."
"잘 받지. 아주 고마워."
"아침점호 때문에 먼저 돌아가지. 죄수병은 언제든지 입대를 받으니 생각이 바뀌면 또 보지."
"……."
끝까지 쓰레기 같은 말을 남기고 가는군.
홀로 뉴 알론에 복귀해 길드의 감정사에게 스킬북 감정을 의뢰했다.
"흐음. 기다려 보게나."
감정사는 두터운 안경을 치켜올렸다. 스킬북에 손을 얹고 분석을 하는 동안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격용 스킬 혹은 버프 스킬이다.
"이 스킬은 대단하군!"
"진짜? 그 말 확실해?
감정사의 말이 날 들뜨게 했다. 은박지를 뿌린 것처럼 반짝이는 스킬북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보게. 이 색을."
"……."
빛이 사라진 스킬북은 빨간색으로 변해 있었다.
스킬북의 가치는 무지개색으로 되어있다. 빨간색은 가장 가치가 낮은 스킬북이다.
"좋기는 개뿔."
"대금이나 주게나. 1은화네."
대단하다고 해서 최소 노란색일 줄 알았기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더럽게 비싸네."
아무리 싼 스킬이라도 최소 5은화가 넘는다. 그걸 생각하면 저렴한 편이기는 하다.
[1인 도발 스킬북.]
-종류 : 일반.
-효과 : 스킬 습득.
-설명 : 1인 도발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
이게 좋은 스킬이라고? 짜증이 확 솟구쳐서 감정사를 째려봤다. 놈은 1은화를 벌어서 좋은지 희희낙락이다.
"그냥 팔까?"
여러 가지로 고민이 된다.
그래도 도발 스킬이 있으면 나쁠 것은 없다. 흥분해서 달려드는 상대가 공격패턴이 한정되기에 대응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도발 대상이 겨우 1인이라는 점이다.
"아닌가? 오히려 괜찮겠는데?"
대부분 도발스킬들은 범위형이다. 그래서 원하지 않던 적까지 끌어들이고는 한다.
반면에 1인 도발은 대상을 지정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혼자 사냥을 하는 나에게는 썩 나쁘지 않을 수 있다. 싸울 수 있는 적의 수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1인 도발]
-종류 : 액티브 스킬.
-효과 : 마주하고 있는 적들 중 하나를 지정해서 도발 상태에 빠지게 합니다.
-쿨타임 : 1분.
-마나 소모량 : 75
습득 후에 확인한 내용도 예상한 것과 동일하다.
이걸 시험하기 위해서 괜찮은 퀘스트를 찾아야한다.
마침 코볼트 퀘스트가 있다. 장소도 던전형 동굴이니 남의 눈치를 볼 것도 없었다.
* * *
엘리멘탈 소울1은 후속작의 출시로 미묘한 분위기가 나왔다. HD 리마스터가 나왔으니 그대로 즐긴다는 유저층과 새로운 엘리멘탈 소울을 즐기겠다는 유저층으로 나눠졌다.
업계에서 흔히 말하는 캐시카우가 많은 엘리멘탈 소울은 구작과 신작으로 어수선해졌다.
변화를 싫어하는 이들은 그대로 정점을 차지하고자 하였고, 상대적으로 뒤쳐졌던 이들은 새로운 무대에서 정점을 자리하고자 했다.
전작에서는 물주는 많지만 강자는 없다고 평가되었던 천하제일 길드는 후자였다.
"멍청한 놈들. 결국 넘어오지 않다니!"
천하제일의 길드마스터 철홍. 그는 지금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엘리멘탈 소울에서 천하제일 길드는 후발주자였다. 다른 이들에 밀려 투자한 금액과 시간에 비해 큰 유명세를 누리지 못했다.
지난 시간 동안에 누적된 것을 뒤엎기는 쉽지 않았다.
철홍은 신작에서는 그걸 뒤엎고 싶었지만, 순조롭지 않았다.
모든 길드원들이 그를 따르지 않았다.
HD 리마스터가 되었다는 명분으로 그대로 게임을 즐기겠다는 이들이 속출했다.
철홍은 천하제일 터트리면서 엘리멘탈 소울2로 끌고 가려고 했지만, 결국 따라온 이들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상위권 길드가 되고 싶지만 그때의 이력 때문에 선뜻 가입하려는 이들이 없었다.
[철홍 : 천하제일의 길마로서 명한다. 간부들은 능력이 있는 자들을 스카우트 해와라. 다른 길드와의 마찰도 상관이 없다.]
철홍은 결국 결단을 내렸다. 상승세를 타지 못한다면 경쟁에서 뒤쳐지고 만다. 그 대가가 얼마나 큰지 게임을 해 본 사람이면 모를 수 없었다.
"…괜히 따라온 건가."
엘리멘탈 소울1 때부터 천하제일 길드 소속인 고려제일검객은 혀를 찼다. 아무리 길드가 힘들다고 하더라도 간부들에게 직접 길드원을 모집하라고 시킬 줄은 몰랐다.
"다들 사냥 중지. 도시로 귀환한다."
그래도 길드마스터인 철홍은 챙겨줄 때는 확실히 챙겨주는 놈이다. 원하는 것만 들어준다면 그에 맞는 보상을 줄 것이다.
"요즘 유명한 놈 있나?"
"썩이나감이라고 있는데."
"그 변태, 딜 지린다던데요."
같이 파티로 사냥하던 길드원들이 썩이나감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강하기는 하지?"
"딜만 보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해골병사 영상 보면 쩔어요."
길드원들은 해당 영상을 보여 줬다. 그걸 본 고려제일검객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놈이다."
컨셉질만 그만두게 한다면 천하제일 길드의 딜러가 되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