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11화 고인물은헌터다.
초반부터 이딴 퀘스트를 넣어 둔다니. 이상한 마음이 들어 계약서를 천천히 훑어봤다.
"자, 자네 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나."
"글자를 배운 지가 오래되지 않아서요."
불안해하는 주인장을 보며 확신했다.
역시나 이건 사기다. 항목 하나하나를 뜯어보니 기가 찰 정도다.
법을 잘 모르는 나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니까.
"엄청나네요."
"너무 좋은 조건인가?"
잡화점 주인은 쑥스러운지 코밑을 긁적인다.
[분노가 상승합니다.]
얼마나 대단한지 내 칠죄종 수치도 올라간다.
"제가 농사는 못해서요."
"아쉽구먼. 그래도 다시 생각해보게. 숙식제공도 하고 자네가 머물 집도 있다네."
"……."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잡화점 주인을 보니 말도 안 나온다. 어디인지 슬쩍 물어보니 몬스터가 뉴 알론에서도 멀리 떨어진 곳이다.
"이때까지 몇 명이나 속였지?"
"가,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이거 말이야. 이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줘도 되나?"
계약서를 슬쩍 품에 넣자 잡화점 주인의 얼굴이 굳어진다.
아. 이거 각이다.
"내가 연이 닿은 놈이 몇 명인 것 같아."
"그러면 나는 록한테 가지 뭐. 법보다 주먹이 가까우니까."
"록? 네놈 설마……."
"록의 인정을 받았지."
상태창에서 비어져 있던 칭호를 적용했다.
록의 인정을 받은 자.
내 닉네임 위에 그게 뜨자 주인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졌다.
"…서로 없던 일로 하지."
"맨입으로?"
"가지게. 그 스킬."
"호오."
나쁘지 않다. 오히려 이득이다. 고작 말 몇 마디로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까.
"그러지."
오픈 첫날이라 기대는 없었지만 의외의 소득들이 생긴다.
"자네가 몬스터 헌터나 죄수병이 되면 느낄 것이네. 차라리 내 소작농이 되는 것이 나을 것이야."
잡화점을 나가자 들리는 경고음에 조용히 중지를 들어 올렸다. 농사 스킬은 당장 팔고 싶지만, 구매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진득하게 기다려야겠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길드 입회를 신청하는 건가?"
몬스터 헌터 길드로 들어가자 근육질의 장한 NPC가 말을 걸어왔다.
길드 마스터 발레인. 그 직위에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도록 옷으로 가려지지 않은 피부에는 전투의 흔적만이 가득했다.
"밥이란 사람에게 소개를 받고 왔다. 몬스터 헌터 길드를 추천해 주던데."
"그 밥쟁이 말이군. 밥을 참 잘하던 친구였지."
발레인은 자신의 배를 두들겼다. 몇 마디 말보다도 더 진실성 있는 행동이었다.
"밥은 무릎에 화살을 맞지만 않았다면 은퇴를 하지 않았을 거다. 그 녀석의 요리는 특별했지."
"여관을 하던데 맛집이었나보군."
VR 게임이 모든 감각을 연결해 주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후각과 미각이었다.
상용화가 된 모델도 있지만 현실처럼 다양한 맛과 향을 재현하지 못해서 불쾌하다는 평이 많았다.
"아침에 갓 구워낸 빵과 함께 내어주는 스프가 최고지. 꼭 먹어봐라."
발레인의 애찬은 끝나지 않았다. 이 쓸데없는 대화를 언제 끊을까 고민을 하던 찰나.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뭘 했다고 퀘스트가 생긴 걸까.
[밥의 밥]
-밥이 참 쉽게 만들던 밥을 아직도 발레인은 그리워한다. 서로 어색한 관계가 되었기에 관계를 진전시키자.
-완료 조건 : 밥과 발레인 초대.
-실패 조건 : 밥의 거부.
그다지 해결하고 싶지 않은 퀘스트가 생겼다. 여유가 생기면 이야기는 꺼내 봐야겠군.
"몬스터 헌터 길드에 등록을 하고 싶은데."
"밥이 소개를 했으니 의심할 필요는 없지만, 몬스터 헌터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발레인의 눈이 아래위를 훑는다.
"하지만 너는 예외겠지. 록의 인정을 받았다고 들었다. 그런 루키가 나오는 것은 극히 드물지."
길드 마스터가 편하게 대화를 거는 것도 그래서일까. 록 덕분에 뉴 알론에서 내 명성이 빠르게 퍼진 모양이다.
"그 루키에게 해 줄 특별대우는?"
"쓸데없는 교육을 대신해서 바로 실습에 투입한다는 것 정도."
발레인은 길드원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누군가는 눈을 마주치자 고개를 숙인다. 또 누군가는 아예 등을 돌렸다.
"어이. 샘슨! 여기 신입이랑 신고식 좀 다녀와라!"
"…알겠소. 길드장."
지명된 사내는 투덜거리며 일어났다. 키가 작고 마른 체격으로 다소 신경질적인 인상의 NPC였다.
툭!
"동이 트고 길드에 와라. 그때 보도록 하지."
샘슨은 어깨로 나를 치고 길드에서 나갔다.
저 새끼 봐라.
"잘해 봐라. 샘슨이 저렇게 보여도 착한 놈이니까."
"미리 알아야할 정보는 있나?"
"샘슨이 알아서 할 거다."
발레인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등을 돌렸다.
[몬스터 헌터 신고식]
-몬스터 헌터가 되기 위한 신고식을 위해 샘슨과 동행한다. 그의 부사수로서 첫 헌팅을 성공하자.
-완료 조건 : 사냥 성공.
-실패 조건 : 사냥 실패.
"그래도 직접 확인해야지."
엘리멘탈 소울은 이전부터 NPC들과의 대화를 장려했다. 그렇게 숨겨진 정보를 하나씩 모으면 게임의 전반적인 이해와 공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잡화점에서 농사 스킬을 얻게 된 것도 그래서다.
노력과 별개로 정식 헌터가 아닌 나와 누구도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지 않았다. 모르는 편이 신고식이 더 재밌다고 거부했다.
결국 의뢰게시판에 붙여진 의뢰들을 훑어봤다. 이중에 내가 갈 곳이 있을 지도 모른다.
"자이언트에 와이번인가. 당분간 여기에 갈 일은 없겠네."
의뢰들은 감히 내가 해결할 수준이 아니다.
답답한 마음에 대화창을 켰다.
전체채팅에서는 소소하게나마 서로의 정보가 공유되고 있었다.
유저 대부분이 튜토리얼에서 고생하거나 막 나온 정도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게임 속 시간이 아직 넉넉하다.
엘리멘탈 소울 관련 게시판에서 다른 사람들이 올린 글들을 하나하나 파헤쳤다.
뉴 알론에서는 나처럼 몬스터 헌터를 택한 사람이 많았다.
신고식 글은 딱 네 개만 올라왔다. 고블린이 한 명, 뿔토끼 토벌이 세 명이었다.
너튜브에서도 올라온 플레이 영상도 그랬다.
알고리즘의 연결로 몬스터 헌터만이 아니라 죄수병 플레이 영상도 볼 수 있었다.
역시나 몬스터 헌터는 컨텐츠와 자유도가 높은 것이 장점이다. 그래서 깊은 수준의 공략은 아직 전무하다 봐야만 한다.
반대로 죄수병은 자유도가 낮아 상대적으로 유저가 적지만 그만큼 공략에 깊이가 있는 것 같았다.
"죄수병도 나쁘지 않겠는데."
문제는 사유재산을 계속 뜯겨야한다는 점이다. 빠른 레벨업과 아이템을 고르라면 난 후자일 수밖에 없었다.
* * *
해일처럼 쏟아지는 몬스터의 파도는 뉴 알론을 중심으로 몇 개의 요새도시들이 방파제처럼 막아내고 있다.
그랬기에 후방의 많은 소도시와 마을의 피해가 최소화되는 셈이다.
샘슨은 그런 작은 마을의 근처 동굴로 이동했다.
"우리의 목표는 고블린이다. 최소 열 마리에서 최대 열다섯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이 막 성체가 된 녀석들은……."
샘슨은 목표에 대해 브리핑을 하기 시작했다.
뭔가 많이 말하지만 누구나 알 법한 내용이다. 진짜 중요한 동굴내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었다.
"내가 밥까지 먹여 주랴?"
그 불만을 알아차렸는지 놈은 오히려 띠꺼운 태도로 되묻는다.
[분노가 상승합니다.]
[시기가 상승합니다.]
순간적인 감정변화는 곧바로 칠죄종으로 쌓인다.
샘슨에게 너무 얽매이지 말자. 어차피 게임초반이다. 몸으로 배워도 충분하다.
"정신만 차리면 혼자서도 가능할 것이다."
샘슨은 횃불을 들어 입구를 밝혀줬다.
양옆에 뼈로 쌓은 무더기를 연결한 줄에는 작은 방울들이 묶여 있었다.
침입자를 방지하기 위한 간단한 트랩이었다.
그 앞에다 불사자의 영혼함을 묻었다.
"흥. 이따위 것에 겁을 먹었나."
그 잠깐의 행동을 망설임으로 본 것일까.
샘슨이 뼈 무더기를 걷어찼다. 방울이 울리면서 안쪽에서 흉흉한 안광이 느껴졌다.
고블린 세 마리가 선발대로 나타났다.
"아. 친절도 하셔라."
나에게는 다행히 동굴은 넓지 않았다. 성인 남성이 두 팔을 활짝 필 수 없을 정도다.
이 좁은 공간의 장점은 포위를 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르기가 무적이 아니지만, 이걸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충분하리라.
[키리리릭!]
불쾌한 기합과 함께 고블린1이 몽둥이를 휘두른다.
터엉!
즉각적으로 튕겨내기를 사용한다. 고블린1이 경직상태에 빠짐과 동시에 반격했다.
푸욱!
[끼아아아악!]
치명타와 함께 고블린1이 즉사했다.
뒤이어 다가오는 고블린2와 고블린3도 똑같이 죽어 나갔다.
튜토리얼을 벗어나자마자 레벨10짜리 해골병사도 죽인 나였다.
능력치가 민첩에 높게 투자된 소인종이 감당할 수 없다.
"얼마나 맛있는 아이템이 나오려나."
그저 단순한 고블린이더라도 마지막에 있을 보스는 강할 것이다.
강한 적에게는 큰 보상이 따른다. 그걸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제법이군."
뒤에서 지켜보는 샘슨이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2분도 걸리지 않아 고블린 셋을 죽였다. 내 레벨에서 나올 수 없는 강력함이다.
전리품을 챙기고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키헤에에엑!]
[키륵! 키르르륵!]
좌우 갈림길에서 고블린들이 나타났다.
시야가 부족하다. 놈들의 수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
"난 여기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얄밉게도 샘슨이 선을 그었다.
미안하지만 나도 빈손으로 오지는 않았다.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두 개를 꺼냈다.
독연기의 구슬과 화염의 구슬.
전작에서는 저렙구간부터 자주 쓰이는 소모품이었다.
엘리멘탈 소울1에서는 사냥터와 사냥감에 따른 소모품의 사용이 고인물의 척도였다.
무심코 버려 대는 잡템이 보스를 잡을 키워드가 될 정도다.
과연 2에서도 얼마나 반영이 될 것인가가 문제겠지만, 손에 익은 것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먼저 독연기의 구슬을 왼쪽에 던졌다.
천장에 부딪혀 금이 가고 바닥에 떨어져 깨진다. 새어나온 연기가 왼쪽 통로를 채웠다.
우측에는 화염의 구슬을 던졌다. 천장에서 떨어진 불길이 우측 길을 막았다.
[키리릭?]
[키하아악!]
고블린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좌측은 어그로가 끌려 달려왔다. 중독상태에 걸려 녹색 피부의 주변에 희뿌연 안개가 감돌았다.
놈들의 수는 세 마리.
반면에 우측의 고블린들은 화염에 길이 막혀 오지 않는다.
저쪽도 최소 셋이라 봐야한다.
"좋아. 더 화내라고."
화염의 유지시간은 30초가량이다. 그 전에 왼쪽을 정리한다. 아까 전처럼 느긋하게 사냥할 여유가 없다.
"이쪽은 이미 물약도 든든하다고."
지구력포션을 마셨다.
즉효성이 아니라 천천히 차오르는 스태미나를 확인하고 코앞에 다가온 고블린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나를 죽이고 곧바로 뒤로 굴렀다.
쿵! 쿵!
내가 있던 바닥을 몽둥이 두 개가 두드린다.
공격 후의 딜레이를 놓치지 않는다. 다시 앞으로 굴러가 거리를 좁히며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키헤에엑!]
여지없이 하나가 죽는다.
남은 하나가 깨물려고 하자 황급히 방패를 휘둘렀다. 몸에 베인 동작으로 튕겨내기를 성공했다.
푸욱!
"좋…아!"
서로 마주보고 껴안는 것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검을 찔렀다. 폐부가 찔린 고블린이 절명한다.
한 대도 맞지 않고 끝냈다.
"익숙해진다. 점점."
앞으로 구르기를 한 것은 다소 모험이었다. 잘못 반응했으면 고블린의 몽둥이에 뚝배기라도 터졌으리라.
모그 산골마을의 해골이나 좀비라고 생각했다가는 혼쭐이 날 것 같다.
[키하아악!]
[카악! 칵!]
화염의 구슬의 불길이 꺼지고 다가오는 것은 아까처럼 고블린 세 마리였다.
스테미나 포션까지 마시면서 싸울 필요는 없다.
어설프게 나서지 않고 거리를 유지한다.
몽둥이를 든 고블린과 검을 든 인간. 서로 비교를 한다면 인간 쪽이 압도적으로 리치가 길다.
이걸 최대한 살린다.
촤하악! 촤학!
또한 최대한 몸에 힘을 빼고 가볍게 검을 휘두른다. 소모되는 스태미나의 양이 줄어든 것처럼 데미지도 적어졌다.
그런데도 고블린을 죽이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과연 소문의 루키인가."
뒤에서 관람하고 있던 샘슨의 말이 날 들뜨게 했다.
"계속 지켜만 보지 말고 길잡이 역할을 마저 해 주시지."
"흥. 알겠다."
샘슨이 다시 걸어나간다. 전리품을 챙긴 후, 그 뒤를 쫓았다. 한 차례 더 고블린을 만나 참살하자 레벨은 6으로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