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08화 고인물은사냥한다.
먼저 부족한 스태미나를 위해 남은 포인트를 기력에 투자했다.
해골병사 두 마리에게 무너진 이유 중 하나가 결국 스태미나가 부족해서라 판단이 되어서다.
"저 유저 또 왔다."
"아까 전에 뽀록 아니었을까?"
다시 합류한 나를 보는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그럴 만도 하지.
불사자인 것을 모르면 난 팬티 하나만 입고 싸운 벌거숭이다.
해골병사 하나를 쓰러트린 것에 다른 유저들도 해볼 만하다 싶겠지.
실제로 비무장이었던 자들이 무장을 하고 있었으니까.
"리젠 전인가."
나에게는 천만다행으로 해골병사는 두 마리뿐이다. 물론 두 마리 모두 체력이 완전히 회복된 점은 어쩔 수 없지.
달그락. 달그락.
둘뿐이지만 패턴은 똑같다.
아까 전처럼 해골병사2가 홀로 나에게 달려왔다.
"저 사람 또 시작한다."
"찍어둬. 우리도 해야 하니까."
상대방의 실력에 감탄하면 삼류. 그걸 따라하면 이류. 넘어서면 일류가 된다.
저들 중에서 일류가 될 자들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류가 될 수 있는 자들은 없다.
쉐에에엑!
달려오는 속도를 유지하며 해골병사2가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저건 튕겨낼 엄두가 나지 않아 허리를 숙였다.
후웅!
머리를 스치는 검은 서늘하다. 땅을 박차고 해골병사2의 몸을 어깨를 들이받았다.
관절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해골병사2가 뒷걸음질을 치며 검을 내리찍었다.
터어엉!
의심할 것도 없이 완벽한 타이밍에 쳐낸 후.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곧바로 스킬을 사용한다.
아까보다 훨씬 높은 데미지를 줄 것은 당연하다.
카드드득!
"좋아."
단 일격에 해골병사2의 체력이 70%는 떨어졌다.
주변에서 터지는 경악은 귓등으로 무시한다. 연격으로 해골병사2를 쓰러트리자 남은 스태미나는 절반에 불과하다.
튕겨내기 후에 강한 공격 두 번이 그만큼 소모되는 것이다.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전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레벨이 올라 모든 것이 회복된다. 이러면 투자를 할 것은 근력이다.
달그락. 달그락.
해골병사3은 그 틈에 가까이 다가왔다. 이번의 공격패턴은 아까와 달랐다.
내 앞에서 한번 멈추고는 엇박자로 검을 찔러온다.
새로운 패턴이다. 이게 가능한 것은 현시점의 유저를 능가하는 달리기 속도 때문일 터다.
카그그그극!
감히 맞설 생각은 없다.
옆으로 물러나니 아슬아슬하게 해골병사3의 검이 나를 지나 암석을 긁는다.
불똥이 튀는 순간,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의 유지시간을 본다. 겨우 10초도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일격이 마지막일 터.
서걱! 서걱!
"……어!"
나는 분명히 한 번을 휘둘렀다.
그러나 검은 두 번이나 해골병사3을 베어 버렸다. 눈과 귀로 보고 느낀 이펙트를 모를 수 없었으니까.
"……."
나조차도 잠깐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설마 그 한 번으로 끝낼 수 있을 줄이야.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건맨의 소울. 10%의 확률로 일반공격이 두 번 가격되는 링크스킬이 지금 발현될 줄 몰랐다.
멍하니 구경을 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쓰러트린 해골병사들의 잔해를 뒤졌다.
"…나왔다."
지금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아이템이 나왔다. 자신 있게 그걸 번쩍 들어 올렸다.
"녹슨 철검 팝니다. 선제시요."
"……!"
순간 의혹에 차있던 눈길들이 탐욕으로 바뀐다. 눈알이 달려있으면 내가 쓰던 것과 같은 것임을 잘 알겠지.
"안전한 곳으로 가면서 제시 받습니다. 가상화폐 5만 원부터 시작할게요. 기프티콘은 안 받아요."
훗날에는 아무도 쓰지 않을 녹슨 철검이지만, 지금은 오픈 당일이다.
자금이 있는 사람이라면 술 한 번 아끼면 만들 수 있는 작은 차이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여기 아이템 정보를 띄우죠."
안전한 장소로 유저 몇이 따라왔다. 호구들을 살피며 녹슨 철검의 아이템 정보를 띄웠다.
"이게 5만 원이라고?"
"너무하네. 진짜."
"변태새끼 돈 욕심 봐라."
흥미를 보였던 이들 중 몇은 바로 등을 돌렸다.
원색적인 비난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이런 장사 한두 번도 아니고 어차피 저들은 내 고객이 아니다.
시간과 노력으로 구할 수 있는 평범한 아이템이지만, 그걸 돈으로 살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5만 원 바로 입금하죠."
"여기 5.2요."
"너무 비싼데. 5.4요."
남은 두 사람이 그런 경우다. 서로 눈치를 보며 가격을 높이는 아름다운 광경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칠 뻔했다.
"5.4 다음은 없나요? 5초만 셀게요."
아주 천천히 숫자 다섯을 센다.
"6만 원. 여기서 끝냅시다."
"…이견 있나요?"
예상보다 만 원이나 높게 나왔다. 혹시나 더 가격을 올릴 수 있을까 봐 다른 이를 봤지만,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다.
뭐. 6만원이면 나쁜 거래는 아니지. 오히려 첫 개시로는 나쁘지 않다.
"빌게이츤데레 씨. 계좌 보냈어요."
"알콤으로 드리죠."
"어. 입금이 되기는 했는데 못 드리겠는데요."
"이 사기꾼 새끼가?"
빌게이츤데레가 눈에 쌍심지를 켰다. 흥분하는 그에게 알콤의 시세를 보여 줬다.
"꾸준히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건데 딱 6만 원은 너무한 것 아닙니까?"
가상화폐의 가격이 실시간으로 변동되는 것은 이상하지는 않다. 문제는 알콤이 꾸준하게 저점을 찍고 있다는 거다. 거래량은 있지만 반등할 기미도 안 보인다.
거래에 대한 정확한 계약서를 쓰지 않았으니 이 정도는 요구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
"이거 곧 떡상할 화폐거든요?"
"제가 알콤으로 받은 만큼의 가격이 한 시간이라도 유지가 됩니까?"
솔직히 이건 내 손해가 맞다. 최소한 가격방어가 되는 걸로 정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으니까.
빌게이츤데레는 못 이기는 척 추가 알콤을 입금했다.
"아. 이런 내 손해인데."
"서로 손해죠."
찝찝함이 남아서 깔끔한 거래는 아니다.
"종종 거래합시다. 좋은 아이템 있으면 살 테니까."
녹슨 철검을 얻은 빌게이츤데레는 꽤 만족스러워 보인다. 저 사람으로서는 계속 나와 엮여서 나쁠 일은 없겠지.
"친구추가는 서로 신용이 더 생길 때 하죠."
미안하지만 겨우 6만 원짜리 아이템을 계기로 엮이기는 싫다. 친추를 했다가는 내가 어디서 사냥하고 접속 중인지 아닌지도 다 보이게 되거든.
"음. 그래도……."
"수고요."
귀찮게 하기 전에 곧바로 채널을 바꿨다.
채널 6에서는 날 아는 사람이 없어서 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숲길은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수풀이 우거져 끝자락에서 보이는 빛이 더 찬란하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 빛에 희미하게 노란색의 물음표가 보인다. 그 형태가 점점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놈! 언데드임이 분명하구나!"
내 쪽을 내려다보는 NPC가 목소리를 높였다.
데스티아 여신교의 성기사가 왜 나에게 언데드라는 거지? 혹시나 싶어 뒤를 봤다.
그 흔한 해골병사 하나도 없다. 오로지 나뿐이었다.
높은 레벨의 NPC면 내가 보이지 않는 거리까지 보일 수 있겠지. 그걸 보고 과민반응한 것인가.
"여신의 곁으로!"
사태가 이상해졌다.
데스티아 여신교의 성기사가 적의를 가지고 달려든다.
"죽어라! 망자여!"
빠르게 다가온 그의 검이 떨어져 내린다.
초인적인 반응으로 구르기를 쓰며 물러났다.
멍하니 있었으면 죽었겠지.
"뭐하는 짓이지?"
"크리스 대사제님은 어디에 있나! 네놈은 그분의 것을 품고 망자의 것을 쥐고 있구나!"
"……."
성기사의 눈이 내 손에 향한다. 해골병사에게 탈취한 녹슨 철검이 있었다. 아이템 하나로 상황이 변한 건가. 이걸 사간 빌게이츤데레의 친추를 받지 않기를 잘 했군.
"난 불사자 썩이나감이다. 크리스 대사제가 보냈다."
"그분은 어디에 있지?"
"……."
죽었다.
그 말을 차마 꺼낼 수 없었다.
날 향한 성기사의 눈동자가 불꽃을 토할 것 같다!
"대답을 못하는군. 망자여. 너의 운명으로 돌아가라!"
"크리스 대사제가 나에게 준 편지가 있다!"
얼른 인벤토리에서 크리스에게 뜯어낸 편지를 꺼냈다.
만약 여기서 죽으면 녹슨 철검을 버리고 이야기를 진행해야 한다.
후우웅!
성기사의 검이 내 코앞에서 멈춘다.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그 옅은 검풍 때문에 체력이 10분의 1이 날아갔다.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정말로 교주께서 대사제에게 준 것이로군."
성기사는 다행히 검을 거두었다.
"하지만 네 말은 믿지 않는다."
"그러면 어쩔 건데."
"지금은 너밖에 없다."
그리고 시네마틱 모드로 바뀌었다.
[구워어어어!]
[그웨에에엑!]
내가 지나온 길에서 엄청난 수의 언데드들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길을 따라 나아가라. 그곳에 또 다른 운명이 기다리고 있으니."
성기사가 내 등을 밀쳤다.
"너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의 운명은 여기까지다. 수많은 운명이 저들에게 짓밟히게 둘 수 없으니."
성기사는 검을 높게 들어올렸다. 그리고 눈을 감고 기도문을 올리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그의 검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두운 하늘에 한 줄기 빛이 내려와 내리쬐었다.
"여신이여! 운명을 밝혀주십시오!"
성스럽게 느껴지는 후광과 함께 성기사는 언데드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퀘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시네마틱의 끝과 함께 퀘스트가 생겼다.
성기사는 홀로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썰어내고 있다. 저기에 끼어들어서 경험치나 아이템을 챙기고 싶지만, 투명한 막이 그걸 방해하고 있다.
[알퐁스 교주에게로 (2)]
-사건의 전말을 알기 위해 알퐁스 교주를 찾아야만 한다. 성기사의 말을 잊지 말고 또 다른 운명을 찾아가자.
-완료 조건 : 대주교 크리스의 시동과 조우.
아쉽지만 퀘스트를 확인하고 스토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길은 헷갈리지 않게 일직선으로 놓여있다. 거길 따라 나아가니 산 하나가 보였다. 너무 높지도 않고 적당한 크기.
먼저 오르는 유저들도 보였다. 그들을 뒤따른다.
산길 중간마다 보이는 공터에서 사냥 중인 유저들이 보인다. 그들은 3레벨짜리 해골과 4레벨짜리 좀비를 사냥하고 있었다.
"해골병사 잡기를 잘했네."
지금 내 수준이면 저놈들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무슨 퀘스트인지 몰라도 금방 끝내겠군.
사냥터를 지나 목책이 보인다. 엉성하고 낮은 목책 너머로 보이는 마을 자경대원들의 장비는 가죽갑옷에 조잡한 창 한 자루가 끝이었다.
미니맵에 뜨는 이름은 모그 산골마을이다.
화전민 마을이 생각날 정도로 궁벽하다.
"정지. 네놈은 누구냐."
"다가오지 마라!"
자경대원들이 장창을 들이민다. 저항의 의지가 없기에 두 손을 들었다.
"여기 데스티아 여신교의 사람이 있지 않나? 그를 찾아왔다."
"……."
자경대원들은 서로를 바라본다. 곧 한 명이 나를 포박하고는 마을 안쪽으로 끌고 갔다.
"여긴 오래 있을 곳이 아니겠네."
마을의 수준을 보면 퀘스트의 정도가 보인다.
모그 산골마을은 NPC의 수마저 적다. 그렇다고 특별히 강한 몬스터도 없으니 그저 스쳐가는 장소일 것이다. 여기서는 굳이 오래있을 필요는 없겠지.
"이곳에 있어라."
좁은 창고에 갇히고 1분도 지나지 않아 천천히 문이 열리며 곱상하게 생긴 청년이 들어왔다.
"제가 데스티아 여신교의 사람입니다. 형제여."
"크리스 대사제와 성기사가 보냈다."
"정말이십니까? 그분들은 어디에 계신 겁니까!"
청년은 밝아진 안색으로 나를 재촉했지만, 딱히 꺼낼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들은 나를 여기에 보냈다. 크리스가 받은 편지도 있으니 확인하도록."
"…풀어드리겠습니다."
청년은 혈관까지 보일 정도로 하얗게 질린 채로 포박을 풀었다.
"교주께서 보내주신 편지를 주십시오."
"여기있다."
"아아. 진짜로군요. 두 분이 운명이 여기에서 끝이 날 줄이야."
편지가 진품임을 확인하고는 청년은 펑펑 울었다.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뚝 그쳤다. 붉게 충혈되었지만 아까 전의 부드럽기만 하던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당신은 불사자이십니까?"
"불사자 썩이나감이다."
"전 데스티아 여신교의 견습신관 요한이라고 합니다."
드디어 청년의 머리에 요한이라는 두 글자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