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06화 고인물은선택한다.
불사자. 죽음에 대한 페널티가 없다. 그렇다면 죽을 때의 리스크는 극히 줄어든다.
조작에 대한 보정치도 사라져서 행동도 최대한 간단할수록 좋다.
부나방처럼 죽음에 뛰어들어도 문제는 없다. 페널티 없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스피어마스터의 소울]
-종류 : 링크 스킬.
-효과 : 10초 동안 일반 공격이 방어력을 무시한다.
-쿨타임 : 3분.
-마나 소모량 : 100.
먼저 택한 것은 전사 직업군의 최종직업 중 하나인 스피어마스터였다.
[건맨의 소울]
-종류 : 링크 스킬.
-효과 : 일반공격을 10%의 확률로 2회 적중시킨다.
두 번째 선택은 고민 끝에 택했다.
낮은 확률이지만 스피어마스터의 소울과 곁들여지면 충격은 막대할 것이다.
[버서커의 소울]
-종류 : 링크 스킬.
-효과 : 착용하는 장비가 적을수록 모든 공격력이 10%씩 증가.
이 선택은 죽어도 아무런 페널티가 없는 불사자만이 택할 수 있다.
누군가는 이의를 드러낼 수 있다. 공격력 하나만을 보고 나머지를 다 제거한 셈이니까.
미친 선택 같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엘리멘탈 소울의 장비 슬롯은 총 13개다. 그중에서 한손 무기만 쓴다면 무려 120%까지 모든 공격력이 이론적으로 상승한다.
링크스킬을 활용해 방어력을 무시하는 순수 데미지가 두 번씩 터진다면, 딜러로서 최상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지간한 던전은 한 손만 써서 다 깨 버릴 수도 있다.
[사용자께서는 불사자 직업을 플레이 가능합니다. 불사자 전용 소울이 추가됩니다.]
[불사자 전용 소울을 위해 링크 스킬을 추가로 선정하실 수 있습니다.]
뒤늦게 뜨는 메시지 창에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방금 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22번째 링크 스킬이 생겨났다.
[칠죄종의 소울]
-종류 : 링크 스킬.
-효과 : 칠죄종의 수치를 최대로 쌓을 때마다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해당하는 칠죄종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와?"
넋을 잃어버릴 것만 같다.
모든 능력치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때 모든 것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았을 엘리멘탈 소울이다. 오로지 나를 위한 특전이 존재한다는 것이 몸에 떨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면 버서커 소울은 무조건 가져가야지."
오로지 나만이 택할 수 있는 직업과 링크 스킬의 조합이다. 가슴의 두근거림을 멈출 수 없었다.
[불사자 썩이나감을 생성했습니다.]
눈앞의 화면이 바뀐다.
어두운 화면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쿠웅! 쿠웅!
캐릭터의 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콰드득!
몇 번의 주먹질에 무언가가 박살난다.
쏟아지는 흙과 모래가 온몸에 압력을 가했다. 비루한 손가락과 손톱으로 그걸 긁으며 육신을 천천히 일으켰다.
시야가 조금은 밝아졌다.
먹구름이 낀 우중충한 하늘. 천천히 떨어지는 빗방울이 떨어지며 가해지던 압력도 줄어든다.
배경은 공동묘지였다.
"뭐야. 저 사람 무덤에서 일어나지 않았어?"
"소울리스잖아. 버그겠지."
"맞아. 무덤속에서 시작이라니."
주변의 소란에 가슴이 뜨끔했다.
소울리스가 허점이 많은 회사라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릴 뿐이다.
[튜토리얼]
세상에 지친 불사자는 다시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왜 자신이 깨어난 것인지 이유를 찾아야만 합니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새로운 조작법에 대해 설명이 시작되었다.
이전보다 확실히 조작이 복잡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작보정치가 0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보정은 된다는 점이다.
"조작이 왜 이렇게 복잡해졌어?"
"너무 달라진 것 아니야?"
사방에서 불만이 나온다.
그래도 곧잘 움직이는 그들은 나에 비하면 양반이다. 오른팔과 발이 함께 움직이거나 걸을 때마다 상체가 뒤로 쏠리는 등 술 취한 사람처럼 허우적거리고 있어서다.
"저 사람 VR게임 처음하나 보네."
"와. 뉴비다. 뉴비야."
나를 향한 반응이 부담스럽다.
세상에 내가 뉴비 소리를 듣다니.
"…센서 탓인가?"
지금 설정은 엘리멘탈 소울1의 테이머에 맞추어져 있었다.
불사자는 조작보정치가 0인 것을 생각한다면 설정을 변경할 필요는 있다.
"보자. 다리랑 허리 쪽이……."
일일이 센서를 맞추며 몸을 움직였다.
10분을 투자한 결과 실제 움직이는 것처럼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아. 벌써부터 진이 빠진다.
다른 놈들은 이미 진도를 쭉쭉 빼고 있겠지?
[튜토리얼]
기본 조작은 매우 중요합니다. 납골당을 지나 당신을 깨운 사람을 찾으십시오.
화살표가 정해진 대로 걷는다. 개중에 유저 하나가 씩씩 거리며 납골당으로 달려갔다.
"개 같은 던전 같으니!"
"던전?"
뜬금없는 소리가 이해되지 않는다. 의문을 품고 납골당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낡은 경첩소리와 함께 로딩 화면이 떴다.
[이번 후속작은 고인물을 위한 난이도입니다. 그런데 설마 어렵다고 징징거리는 것은 아니겠죠? 소울리스 CEO 대니얼 올림.]
로딩 화면의 메시지부터 불쾌하다.
로딩이 끝나고 보이는 납골당은 사실상 텅 빈 창고와도 같았다. 무너진 천장에 빛이 들어와 흩날리는 먼지가 더 눈에 뜨였다.
발을 내딛는 순간.
[YOU DIED.]
갑자기 죽었다.
회색으로 변한 시야와 함께 붉은 글자에 어안이 벙벙하다.
"죽어? 내가?"
다시 화면이 바뀌며 일어난 곳은 공동묘지다. 비슷한 시기에 들어간 유저들 모두 씨익씨익 거리며 납골당으로 가고 있었다.
모두 나와 같은 피해자다.
"빡칠 만하네."
지금 나도 빡친다.
왜 죽었는지 이유도 모르는 것이 이렇게 답답할 수가!
또다시 납골당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까 전에 발을 내디딘 곳과 다른 쪽으로 발을 뻗었다.
끼이이익.
낡은 바닥이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벽에 손을 짚고 나아가려는데.
달그락.
손끝에 닿은 부분이 살짝 눌러졌다. 불안함에 곧바로 옆으로 피했다.
파바밧!
내가 있던 자리에서 창날 다섯 개가 솟구쳤다.
"함정? 아까는……."
지금은 처음 죽었던 위치에 서 있었다.
처음과 함정이 달라졌다.
"던전을 로그라이크처럼 했구나."
기본적으로 RPG게임의 던전은 규칙적이고 보상 또한 정해져 있다. 그래서 공략법을 한번 익힌다면 공략의 난이도는 대폭 낮아진다.
그러나 로그라이크의 특징은 랜덤성이다.
튜토리얼 장소조차도 함정이 매번 바뀌는 것이다.
엘리멘탈 소울2의 난이도가 이렇게 높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겪이다.
"어설프게 서두르면 또 죽으니까."
처음부터 어떤 패턴으로 던전이 바뀌는지 봐야만 한다. 그래서 세 번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어쩔 때는 납골당 중간까지 나아갔고, 또 어쩔 때는 돌입하자마자 죽기도 했다.
적당한 표본은 모였다.
내가 녹화한 영상들을 차례로 보며 비교분석했다.
"디자인이 바뀌네."
납골당에 함정이 설치된 곳은 미묘하게 색이 다르다. 또한 먼지나 거미줄이 얹어지지도 않았다.
함정은 바닥, 벽. 그리고 천장에 따라 달랐다.
바닥은 창날이 솟아오르냐 발목이 밑으로 빠지냐의 차이다.
벽은 화살이나 독침이 솟는 것 정도.
천장은 샹들리에나 지붕이 내려앉는 수준이다.
"앞으로도 이런 식이면 먹고 살기 힘든데."
고인물을 위한 선물은 개뿔. 나 같은 선량한 다크 게이머까지 말려 죽일 셈인가.
"난 더 시간을 끌면 안 된다고."
납골당에 시간을 너무 투자했다. 나보다 더 빨리 진행하는 이들을 쫓아 더 좋은 정보와 아이템을 선점해서 팔아야만 한다.
[어? 아직 못 깼네? 소울리스 CEO 대니얼 올림.]
로딩 중의 저 불쾌한 메시지를 계속 띄워주는 건 무슨 심보지?
컵라면 뚜껑에 괴상한 문구를 집어넣는 라면 회사가 떠오른다.
소울리스도 이딴 짓을 하다가 매출이 떨어져야 정신 차릴 텐데.
여섯 번째 납골당은 느리지만 꼼꼼하게 나아갔다. 함정들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보이는 것은 출구 앞에 놓인 해골 하나다.
[튜토리얼.]
엘리멘탈 소울 블랙은 몬스터와의 전투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무기를 쥐고 싸울 준비를 하십시오.
다시 뜬 메시지에 벽을 봤다.
방패와 목검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알아차리지 못할까 봐 PICK UP이라는 친절한 문구도 함께하고 있군.
목검을 쥐고 방패를 잡았다.
보정치가 사라져 무게감이 반영된다. 아까와 달리 두 팔의 감도가 느려진다. 이건 능력치를 높이거나 센서 민감도를 조절하면 될 문제다.
[튜토리얼.]
사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스태미너가 소모가 됩니다. 큰 동작은 강한 위력을 동반하며 그만큼 많은 스태미나를 요구합니다. 스태미나를 모두 사용하면 탈진 상태가 되어 움직임에 제약이 걸립니다.
아직 설명이 이어진다. 저걸 몸에 새기기 위한 적이 나타날 때인데.
달그락. 달그락.
친절하게도 설명을 다 읽자 LV1 해골이 성큼성큼 다가와 주먹을 내지른다.
[튜토리얼.]
적의 공격에 맞추어 무기 혹은 방어구를 맞추십시오. 튕겨내기로 적의 공격을 아무런 충격 없이 무효화시키고 경직상태에 빠트립니다.
갑자기 화면이 느려진다. 해골의 주먹과 내 방패의 중앙부가 은은하게 빛난다.
설명대로 부딪치려고 할 때.
퍼억!
"……에?"
방패를 다 뻗기 전에 해골의 주먹이 내 육신을 가격했다. 충격에 뒷걸음을 치며 방패가 맥없이 허공을 가른다.
체력은 무려 30%나 깎였다.
뒤이은 주먹도 튕겨내기를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쿠웅!
뒤이은 공격은 다행히 방패를 내밀어 막았다. 방어에 성공해 체력은 고작 10%만 감소했다.
흔들리는 화면과 가늘게 떨리는 팔과 다리. 그 미세한 표현에서 오는 현실감이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누군가와 정말로 싸우는 느낌이 든다.
후웅! 후웅!
해골은 주폭처럼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그때마다 묘하게 동작이 달라져서 튜토리얼이 제시하는 정확한 타이밍을 맞추기 힘들었다.
조작보정치가 없다. 그 말이 어떤 뜻인지 다시금 뼈저리게 느낀다.
고작 튜토리얼에서 이렇게 고생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타이밍 맞추기 겁나 힘드네!"
해골의 저 앙상한 주먹과 방패의 중심점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이 끝이 아니다. 그 상태에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밀어야만 튕겨내기가 성립했다.
거리를 벌리며 조심스럽게 시도하기를 열 번째.
해골의 주먹이 머리까지 높게 올라갔다가 떨어진다. 그래. 정확하게 이걸 노렸다!
터허엉!
튕겨내기는 정확했다.
방패에서 지금과 다른 무게감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쾌감을 준다.
팔이 뒤로 젖혀진 해골은 가슴이 활짝 열려져 있다. 저길 검으로 누르면 끝이지만.
[스피어마스터의 소울을 사용합니다.]
"한번 시험해 봐야지."
기껏 찍은 스킬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UI 하단에 작은 아이콘이 뜬다. 깎여 나가는 시간만큼 묘하게 검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콰드드드득!
우측상단에서 좌측하단으로 검을 길게 휘둘렀다.
살얼음이 부서지는 것만 같은 충격과 함께 해골은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전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좋아."
겨우 시작단계지만 장족의 발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쨌든 튜토리얼대로 튕겨내기와 공격을 훌륭히 소모를 했으니까.
해골에게서 회수한 것이 고작 1동화인 것은 아쉬운 일이다.
[튜토리얼]
게임에 대한 더 자세한 궁금증은 물음표 표시를 눌러서 확인하세요.
그리고 튜토리얼은 마지막을 고한다.
거기서 잠시 고민했다.
바깥의 난이도는 더 높을 것이 분명하다. 불사자의 컨셉을 잘 살리려면 기본적인 움직임을 아예 몸에 새겨야만 한다.
그걸 위해서는 뭘 해야만 할까.
내 답은 간단했다.
"또 하지 뭐."
이 장소에서 게임의 모든 것에 익숙해질 때까지 리셋이다.
목표는 해골의 공격들을 모두 튕겨내기로 반응하기. 그리고 방어를 하나도 하지 않고 공격에 성공시키기.
해골이 가장 패턴이 조잡하고 나약한 몬스터라는 것을 가정한다면 이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내 돈을 위해서."
조금 늦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기본도 갖추지 않고 쌓아올린다면 어느 순간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러니 피했던 함정을 밟고 죽음을 맞이했다.
[YOU DIED]
회색 화면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죽으면 기본적으로 경험치와 내구도가 깎인다. 그리고 너무 재수가 없으면 아이템을 드랍한다.
다시 일어난 나는 아이템의 내구도를 살폈다.
불사자는 역시 거기에서 예외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