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05화 고인물은시작한다.
며칠 후, 아바타 아이템을 처분한 시기가 다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소울리스가 리마스터 기념이라는 이유로 한정판매였던 아바타 아이템들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고를 쌓아 두던 유저들로서는 짜증이 나는 일이다. 나만 해도 하루만 늦게 처분했으면 백만 원 정도의 손해를 입었을 정도니까.
어쨌든 잠재적 고객이 많아지면 나쁠 일은 없지만, 당장의 문제는 안정적인 사냥터를 가지기란 힘들다는 점이다.
다크 게이머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길드들이 좋은 곳에 터를 잡고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남들이 기피하는 사냥터를 전전해도 머리를 비우고 사냥을 하면 생활비는 충분히 나왔다.
예전과 다른 점은 종종 외로움을 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설마 공사장에서 쌍욕을 해 대던 순간들이 그리워질 줄이야.
그래서 한 번씩 모르는 사람들과 파티를 짜고 던전을 돌기도 했다. 돈을 떠나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풀렸다.
두 달 만에 템을 서서히 맞추고 생활비를 벌 때, 희소식이 들려왔다.
소울리스가 엘리멘탈 소울2의 출시일을 앞당긴 것이다.
[소울리스, 두 번째 영혼을 앞당기다.]
[엘리멘탈 소울2의 달라진 점!]
관련기사도 속속들이 뜨기 시작했다.
커뮤니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소울리스컨 때문에 욕을 엄청 먹는다더니. 승부수인가."
일정을 늦춰서 발매해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 게임이다.
소울리스의 선택으로 후속작은 초기부터 각종 오류나 게임상의 버그가 난무할 가능성이 높다.
영리한 자는 이걸 놓치지 않을 것이다.
소울리스의 대처는 항상 허술하니 악용만 않는다면 계정이 정지될 일도 없다.
"나에게는 좋은 일이지."
마우스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소울리스는 관련 정보를 풀어냈다. 새로운 떡밥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먼저 후속작에서 기존의 직업체계를 유지하되 추가되는 것은 순례자뿐이라고 했다. 사실상 전작 그대로이니 게임의 볼륨이 작을 것이라는 말이 벌써 나왔다.
거기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RPG의 장점 중의 하나는 다양한 직업이다. 그걸 하나만 추가함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DLC로 추가직업 판매는 아니겠지?"
불현듯이 드는 생각에 등골이 싸하다.
유저가 생각하는 DLC의 의도는 완성된 게임에 추가적인 컨텐츠였다.
하지만 게임업계에서는 덜 완성된 게임을 DLC로 완성시켜서 팔아먹는다.
소울리스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유료 정액제가 아니라 게임의 편이성을 위해 결제를 유도하는 것이 지금의 그들이니까.
추가로 공개된 플레이 영상을 봤다.
직업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무덤가에서 언데드들을 사냥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뭐야. 게임 장르가 바뀐 거야?"
먼저 놀란 것은 화려하고 유려한 움직임이었다.
기존의 엘리멘탈 소울의 조작은 단순하다. 센서가 활용되는 것은 팔과 다리, 그리고 고글을 통한 시야뿐이다.
경직된 움직임이기에 답답하지만 초보자도 쉽게 플레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영상에서 붉게 강조하는 센서는 그때보다 더 늘어났다. 허리와 어깨와 목 등의 주요 관절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더 현실성이 생겼다.
과거부터 거론된 재미없는 전투와 부족한 액션성을 확실히 보충했다.
문제가 있다면 조작 난이도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난 상관이 없지만."
평생 엘리멘탈 소울만 했던 것은 아니다. 질릴 때마다 종종 다른 게임을 했었다.
VR로 즐기는 어드벤처나 FPS는 게이머로서 순수했던 시절로 만들어 줬으니까.
[본사는 엘리멘탈 소울의 문제점을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전통을 지키되 현재의 트렌디함을 갖추기 위해 플레이 상의 현실감을 더 높였습니다.]
"재밌겠네. 아주 재밌겠어."
더 리얼해진 그래픽과 조작으로 엘리멘탈 소울을 즐긴다. 그만큼 가슴이 두근거릴 수 없었다.
[후속작은 전작의 100년 후가 중심이며, 그 시작은 그간 봉인되어 왔던 알피온 대륙의 브라이크 지역이 될 것입니다.]
영상의 후반부에 펼쳐지는 광경 또한 이목을 사로잡았다.
알피온 대륙은 3대 대륙 중 하나다. 그중 브라이크 지역은 서북부로 끝없이 몬스터가 내려오는 황무지였다.
이때까지 유저가 접근할 수 없는 미지의 지역이었다.
"아하하! 지금 상위권 랭커들은 모두 불만을 쏟아내겠는데?"
나로서는 눈이 번뜩 뜨였다.
후속작이니 전작의 배경과 설정을 버리지 않지만, 전작에 개방이 되지 않는 지역이 시작이면 충분히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기존의 판이 흔들리면 나야 나쁠 것은 없지."
그래야 내가 비집고 올라갈 틈이 만들어진다.
엘리멘탈 소울 1과 2로 갈라져 이탈자가 생겨도 지금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게임만 재밌으면 따라올 사람들은 따라온다. 소울리스는 이때까지 그걸 증명했다.
[처음을 엘리멘탈 소울2로 시작하는 유저를 위한 여러 편의가 존재하겠지만, 계정연동을 통해 후속작을 플레이하는 유저 분들을 위해서는 특전도 있음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그걸 찾아보는 재미가 있으실 겁니다.]
마지막 부분이 어떤 의미일지 모른다.
모든 캐릭터를 최대레벨로 키운 나에게는 나쁠 것이 전혀 없었다.
"지금은 생활비만 벌자. 그거면 충분해."
들뜬 마음을 억눌렀다.
꿀꿀멍멍꿱꿱으로 복귀한 것이 아쉽지 않게 한 푼이라도 버는 것이 맞다.
* * *
또다시 한 달이 지났다.
드디어 후속작을 하루 남기게 되었다.
전날에는 기이하게 잠을 잘 수 없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 처음 치킨집을 열 때만 같았다.
"억지로 자서 뭐하겠어."
바닥에서 일어나 여러 커뮤니티를 들락날락 거렸다.
다들 엘리멘탈 소울2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을 보였지만, 어디에도 새로운 정보는 없었다.
[정기점검 안내.]
엘리멘탈의 숭고하신 영혼들이여 안녕하십니까.
금일 정기점검은 엘리멘탈 소울2를 위한 서버 확장을 위한 작업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점검예정시간 05:00~12:00.
엘리멘탈 소울1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설마 후속작 때문에 엘리멘탈 소울1까지 점검할 줄이야.
도저히 할 것이 없어 가까운 편의점에서 도시락 하나를 사왔다.
미뤄둔 영화나 보면서 점검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12시가 되고 엘리멘탈 소울2에 접속하는 순간.
[긴급점검 안내.]
엘리멘탈의 숭고하신 영혼들이여 안녕하십니까.
금일 엘리멘탈 소울2의 오픈을 위한 서버 안정화 작업에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기다려주신 숭고한 영혼분들께 다시 한 번 사과 말씀 드립니다.
점검예정시간 12:00~2:00
온라인 서비스에 4대 명검인 정기점검에 이어 연장점검이 뽑혔다.
남은 것은 임시점검과 긴급점검 뿐이다.
"설마 하루 종일 걸리는 것은 아니겠지."
서버 문제야 문외한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발 뻗고 기다려야만 할 뿐이다.
다시 드러누워 스마트폰이나 만지작거렸다.
각종 포털의 인기검색어는 모두 엘리멘탈 소울2에 관련된 것이었다.
엘리멘탈 소울2에 대한 화제성과 서버 문제로 점검이 늦어진 불만들로 점철된 상태였다.
어쨌든 1시50분이 되자 게임에 접속했다.
[서버 점검 중입니다.]
메인화면에서 뜬 메시지가 접속을 가로 막는다. 가끔 점검이 먼저 풀리는 경우가 있어서 잔뜩 기대를 했는데. 쳇.
내가 그런다고 포기할 것 같아?
오픈 전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대기열에 걸려서 몇 시간을 걸렸다가 겨우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소울리스의 과거 전적을 보면 무조건 그딴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게임을 껐다 키면서 자꾸 접속을 시도했다.
[서버가 혼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대기 순위 : 101.]
"벌써?"
정각이 되자마자 접속했는데 대기가 걸렸다. 당혹스러움과 함께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지금의 관심과 열기는 그대로 내 주머니에 향할 테니까.
까아아악! 까아아아악!
메인화면은 황무지다. 그 위로 까마귀들이 시체 위를 날아다니며 울고 있다.
엿 같지만 참는다.
소울리스. 이 병신 같은 놈들은 대기열을 기다리는 와중에도 인내심을 벅벅 긁고 있다.
[게임에 접속합니다.]
드디어 기다린 메시지가 뜬다.
접속화면은 이전과 달리 황무지가 배경이었다.
로그인을 하자마자 드러난 화면에는 비어 있는 캐릭터 슬롯들과 뒤에 펼쳐진 황무지가 보였다.
이번의 무대인 브라이크 지역일 것이다.
[엘리멘탈 소울1 계정 연동을 확인하였습니다.]
잠깐의 로딩과 함께 뜬 창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쿠웅! 쿠웅! 쿠웅!
캐릭터 슬롯 뒤에 하나씩 비석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개수는 총 21개였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모를 수 없었다.
"전작의 직업들이네."
엘리멘탈 소울1에서 직업군은 총 7가지로 거기서 파생된 최종 직업은 총 21개다.
딱 그만큼 추가가 된 것이다.
거기에 이번 2에서 새로 생긴 순례자까지 합한다면 총 22개의 직업이 되는 셈.
실제로 비석을 확대하면 내 캐릭터 명과 레벨이 새겨져 있었다.
"전작에서 직업군이 순례자만 추가되었는데……."
순례자를 택할까. 아니면 손에 익숙한 직업군을 택할까. 고민과 함께 캐릭터 생성을 누른 순간이었다.
[사용자께서는 필멸자의 굴레를 달성하였습니다. 보상으로 히든클래스 불사자의 생성이 가능합니다.]
[사용자께서는 칠대악룡의 살해자를 달성하였습니다. 캐릭터의 육성한계치가 해제됩니다.]
문제는 갑작스럽게 뜬 메시지창이었다.
"히든클래스? 육성한계치?"
갑작스럽게 들어온 정보가 생각을 더디게 한다.
엘리멘탈 소울2의 초기직업은 순례자를 포함해 총 8종이다.
그런데 나는 총 9개다.
순례자 뒤에 하나가 더 있는 것이다.
[불사자]
-그는 칠죄종의 근원인 악룡들을 쓰러트린 자입니다. 그는 필멸의 굴레를 벗어났으나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필멸자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과 축복을 버린 그는 불사자가 되어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직업특징 : 죽음 페널티가 없습니다. 모든 조작에 대한 보정수치가 사라집니다.
눈앞에 뜬 설명에 순간 벙졌다.
나만이 받은 이 특혜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다.
칠대악룡. 아니, 칠대선룡들이 한 말이 이런 뜻이었나!
왜 소울리스에서 그들을 버프 시킨 것인지 알 것 같다.
불사자라는 이 직업을 아무나 택할 수 있게 해서는 안 되지.
"뭐든지 할 수 있다라."
그 말은 유저의 선택에 따라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혼자서도 다양한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다는 것은 남의 도움이 없이도 사냥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죽음에 대한 페널티가 없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조작이 어떻게 되는 거지."
다만, 조작에 대한 보정치가 사라진 것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보정치가 0이라면 나는 실제 움직이는 것에 준하게 조작해야만 하는 걸까.
지금의 운동신경으로 그게 가능할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건, 모든 것에 제약을 받는다는 것인데."
결국 나만 잘하면 된다는 것인가. 도전의식이 들끓어 온몸이 근질거렸다.
"육성한계치가 없다는 것도 재밌네."
당장은 몸 쓰는 일이 익숙하니 근접캐릭터가 나을 것 같다. 어설프게 머리를 쓰는 마법은 건드리지 말자.
생각을 정리하고 본격적인 캐릭터 생성에 들어갔다.
다른 직업들과 달리 불사자는 아바타의 외형을 바꿀 수 없었다.
한때 지긋지긋할 정도로 봤던 모습이라 마냥 반갑지가 않았다.
"이거 ZI존짱짱맨인데."
이것도 페널티라고 생각하자.
누가 ZI존짱짱맨이냐고 물어보면 무조건 무시해야지.
어차피 캐릭터 이름이 다르면 못 알아볼 것 아냐. 겉모습이야 캐쉬템으로 대충 바꾸면 될 테니까.
MMORPG의 근본인 두 글자 한글 닉네임을 선점해서 팔까 싶었지만, 그럴 바에는 레벨업을 더 해서 아이템 하나라도 더 파는 것이 내 성미에 맞다.
닉은 썩이나감으로 정하고 결정지으려고 할 때.
[사용자님께서는 총 21개의 직업을 최대로 성장시켰습니다.]
[3개의 직업 특성을 소울로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또다른 메시지가 눈앞에 떴다.
"직업 특성? 소울?"
이건 또 무슨 말이지.
메시지를 끄자 눈앞에 21개의 직업 특성이 나열되었다.
"종족특성 같은 건가?"
엘리멘탈 소울의 종족은 인간, 오크, 엘프 드워프 등의 다른 판타지 게임에서 볼 법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종족의 특성이 다르기에 직업마다 궁합이 맞는 종족이 있었다.
오크 버서커라던가 엘프 퍼펙트 아쳐가 대표적인 예다.
"역시 이게 전작을 플레이한 유저에게 주는 특전이구나."
혹시나 싶어 커뮤니티를 살폈다.
캐릭터 생성에서 벌어진 일에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처럼 전 캐릭터를 플레이 혹은 만렙을 하나라도 찍은 유저는 특성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지만, 그게 아닌 유저는 주사위 굴리듯이 랜덤으로 정해야하는 것이었다.
"상자깡도 아니고 이렇게 먹인다고?"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뉴비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캐릭터를 선택은 할 수 있으니 알아서 하겠지.
"이 선택에 따라 캐릭터의 방향이 바뀌겠는데."
21개의 특성은 하나 같이 위력적이다. 잘 택한다면 선택에 따라 엄청난 딜러가 될 수도 있고 보스를 혼자 상대할 수 있는 탱커도 될 수 있다. 아니면 승리를 부르는 토템과 같은 힐러도 가능하다.
"불사자라는 단 하나뿐인 직업을 살릴 수 있어야 하는데."
어떤 조합이 좋을까.
21개의 직업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