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4화 (4/201)

제004화 고인물은놀랐다.

"……."

내가 뭘 본 거지?

이건 그저 충격과 공포였다.

도대체 어떤 정신머리로 저딴 엔딩으로 끝을 낸다는 말인가.

술병에 걸려 끙끙 앓을 때와는 다른 의미로 식은땀이 나는 듯했다.

"병신들인가?"

왜 저딴 식으로 마무리를 한 걸까.

이번 소울리스콘은 조목조목 뜯어본다면 사실 성공적인 발표였다.

처음에 나온 엘리멘탈 소울의 리마스터만 엄청난 변화였다.

플레이 영상을 보면 입일 떡 벌어질 정도였다. 이건 4컷 개그 만화를 영화 포스터로 만든 격이었다.

뒤이어 공개된 엘리멘탈 소울 후속작은 놀라울 정도다.

이건 신의 한 수였다.

엘리멘탈 소울의 약점은 오래된 게임의 특징 중 하나인 고여 버린 유저층이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처절한 그래픽은 물론 가장 큰 약점을 보완했다.

바로 타격감과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전투였다.

"후속작은 어떻게 진행될까."

소통이라고는 전혀 되지 않는 소울리스지만, 게임 하나는 기똥차게 만들지 않았던가.

여러모로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마지막에 모바일로 개판 낼 줄은 몰랐지만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뒷부분이었다.

왜 모바일 발표가 대미를 장식한 것인가. 그리고 왜 사태 수습이 아닌 더 키우는 말을 한 것일까.

"소울리스의 병신력은 변하지 않네."

게임업계에서 모바일 시장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

기업 입장에서는 엘리멘탈 소울이라는 IP를 적극 활용해 수익을 내려는 것도 이해는 된다.

문제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는 거다.

엘리멘탈 소울 모바일은 처음에 나왔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둔 탓에 엘리멘탈 소울2가 마치 모바일을 위한 것으로 보일 정도다.

이번 일은 소울리스가 자신의 고객들이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여러 커뮤니티를 봐도 반응은 같다.

후속작과 리마스터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4라면 마지막 모바일에 대한 불만이 6이었다.

국내만이 아니라 국외도 같았다.

"당분간 합성짤만 나오겠네."

후속작은 내 비루한 인생에 수혈을 받은 것과도 같다. 물 한 모금을 머금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문제는 공사장에서 살았기에 새벽이 되자 눈이 자동으로 떠진 것이다.

"보자. 지금 남은 돈이……."

곧 들어올 공사대금이면 빚을 완납한다.

남는 금액은 백만 원 정도다. 중간중간에 아르바이트를 나가면 생활비 정도는 충당할  수 있다.

"VR 기기는 중고로 사야겠네."

마음 같아서는 신품으로 사고 싶지만 수중의 돈으로는 불가능하다.

이틀 뒤에 구매한 중고 VR 기기가 왔다.

안마의자 같은 외관은 보기에도 편해 보인다. 비교적 신품이기에 센서도 다양하게 탑재되어 있다.

문제라면 내 좁은 골방이다.

저 VR 기기 하나가 3분의 1을 차지한다.

"그래도 대낮에 게임을 하는 것이 얼마 만이냐!"

온몸을 쥐어짜서 빚도 다 갚았다.

안마의자와 같은 외관은 보기에 편해 보였다. 몸을 눕히자 푹신한 느낌과 역겨운 담배냄새가 났다.

"…고생 좀 하겠네."

사업도 망하면서 바닥까지 떨어진 인생이었지만 담배는 피지 않았다.

섬유탈취제 같은 거라도 사서 뿌리면 좀 덜하려나.

게임에 접속하려니 뭔가 첫사랑과 다시 마주하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접속화면은 예전과 똑같다. 변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캐릭터 슬롯은 여전히 21개였다. 그리고 그 슬롯들은 모두 차있다.

난 엘리멘탈 소울에 존재하는 21개의 직업을 모두 만렙까지 키웠다.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ZI존짱짱맨이다.

내 인생을 바꾸게 해 준 캐릭터. 그 알몸을 보니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칠대악룡 세트만이 아니라 당시 착용한 아이템을 모두 팔았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거적데기라도 입혀 둘 것을 그랬다.

"어쩌면 영원히 못 쓰겠지. 아마."

나름대로 업계의 전설이 된 나다. 만약 이 캐릭터로 복귀하면 바로 날파리들이 달라붙을 것이다.

칠대악룡 사냥법이라던가 판매금액에 대한 것 등등 귀찮을 것투성이란 말이지.

빈털터리가 된 나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캐릭터는 봉인이다.

"어떤 걸로 하지."

21개의 캐릭터 중에서 하나를 지워야할까. 그러면 다시 만렙을 찍고 템을 갖추는 것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조건은 두 가지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캐릭터일 것. 그리고 빈털터리 상태에서 빠르게 사냥할 경쟁력이 있을 것.

그래야 다시 아이템 팔면서 월세라도 벌지.

"결국 이건가."

내가 택한 것은 맨 마지막 캐릭터다.

갈색의 다부진 체격의 오크. 왼쪽 다리에는 거대한 늑대 하나가 몸을 붙이고 있고 오른쪽 어깨에는 독수리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사육사 계열의 최종직업 중 하나인 테이머였다.

주어진 조건에 이보다 최적은 없다.

"그래픽은 그대로네."

눈을 뜬 장소는 영광의 홀이었다.

후속작 소식 덕분인지 신규유저도 여럿 보였다. 그들은 NPC에게 퀘스트를 받고 그곳을 바로 나갔다.

"칠대악룡이나 다시 잡아 볼까."

테이머로 가장 상대하기 쉬운 것이 누구더라.

"시기의 엔비겠지."

놈은 칠대악룡 중에서는 덩치가 작은 편이다. 수하인 와이번 무리들을 종종 부르는데 놈들을 줄이면 왜 자신을 무시하냐는 대화와 함께 달려드는 놈이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호전적인 놈이다.

테이머가 잡기에는 그나마 쉬운 상대다.

"보자. 지금은 어떤 장비면 되려나."

예전 기준으로 장비를 챙기면 될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략사이트들을 찾아봤다.

내가 없던 2년 동안에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다.

신규지역과 보스도 생겼지만, 역시나 칠대악룡이 최고의 공략대상인 셈이다.

문제라면 내가 업계를 떠난 이후 성공한 공략이 없다는 점이다.

"난이도가 올랐나? 어떻게 된 거지?"

공략 게시판에는 칠대악룡 도전기만 있을 뿐이다. 그나마 끝까지 간 것이 칠대악룡을 사 갔던 시공의폭풍 길드였다.

"내가 알던 패턴이랑 다른데? 난이도가 엄청 올라갔잖아."

같이 첨부된 동영상만 봐도 혀가 내둘러질 정도다.

내가 알던 칠대악룡들의 패턴이 모조리 변했다. 거기다가 괴물 같던 스펙들도 더 업그레이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칠대악룡 장비 착용자가 버티지 못하고 녹아 버리는 걸 보니 그걸 실감해 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소울리스가 어떤 대대적인 패치를 한 것인가.

[용산던전주인 : 템팔이 새끼 진짜 민폐 오진다.]

[이태원글라스 : 그놈 핵 쓴 것 아냐? 솔까 말이 안 되잖아.]

[깻가루톡 : 개한테 템 산 놈들도 똑같아. 게임을 돈으로 하냐?]

[어둠의다크 : 진짜 죽이고 싶다. 그 놈. 크크큭.]

공략글에 달린 댓글들만 봐도 흉흉하다.

이다지라고 이게 다 ZI존짱짱맨 때문이다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일 줄이야.

ZI존짱짱맨으로 접속하면 진짜 현피라도 뜨자고 하겠는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ZI존짱짱맨을 검색하니 식물키위에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ZI존짱짱맨.]

1.개요

엘리멘탈 소울의 유명 다크 게이머. 칠대악룡을 홀로 잡아 모든 게임 난이도를 올린 희대의 쓰레기.

처음부터 대놓고 쓰레기라고 할 줄은 몰랐다. 기분이 상하는 것은 잠깐이다.

나에 대한 항목들을 천천히 훑는다. 활동과 평가에서는 예전 고객들과 업계 동료들이 적었는지 꽤나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동해고등어와 주로 거래를 했다는 것과 그들의 배신으로 아이템을 전부 처분하고 은퇴하는 것까지 깔끔하다.

문제는 그 뒤였다.

4.은퇴 후의 영향.

혼자서 칠대악룡 레이드를 성공했다는 것은 며칠 동안 우스갯소리로 알려졌었다. 버프 이전의 칠대악룡도 10대 길드가 어쩌다가 한 번 정도 잡는 수준이었기 때문.

그런데 그가 모습을 감춘 뒤, 칠대악룡의 모든 버프가 결정되었다!

예전에는 간혹 잡는 모습이 나왔지만, 이제는 유수의 길드가 전력을 투입해도 못 잡을 정도다.

한 번은 칠대악룡 아이템을 가진 이들 전원이 투입되었는데도 분노의 라스의 피 절반도 빼지 못하고 녹는 모습이 나오는 충격적인 상황이 드러나며 ZI존짱짱맨은 컨트롤의 신이자 평범한 유저들의 재앙이 되고야 말았다. 그래서 어려운 난이도를 겪거나 몬스터에게 죽으면 나온 말이 이모ZI라고 한다.(이 모든 것이 ZI존짱짱맨 때문이다.)

나로 인한 여파가 엄청난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누구도 잡지 못할 정도로 강하게 패치가 되었을 줄이야.

"확실히 본캐로는 접속 못 하겠네."

ZI존짱짱맨으로 접속하면 온갖 어그로를 다 끌게 될 것 같다. 언젠가는 몰라도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겠지.

"그래도 직접 확인해 볼까."

칠대악룡이 얼마나 강해졌을까. 공략하기 어려울수록 내게 떨어지는 이득은 클 테니까.

공략불가면 어쩔 수 없이 하위티어를 잡아야 하겠지만.

"돈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해야지 않겠어?

곧바로 시기의 엔비가 있는 곳으로 간다.

동해 길드가 바람잡이로 길드전을 일으키기 전에는 수많은 이들이 찾아오는 곳이었다.

그 기억이 어색할 정도로 유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쏴아아아!

"어?"

문제는 내가 엔비의 영역에 들어설 때다.

갑자기 주변이 변한다. 황무지와 같던 척박함이 사라진다. 봄과 같은 따사로움과 상그러움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후우우웅!

그리고 광풍이 인다.

시야를 가리는 흙먼지에 질끈 두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때는 짙은 그림자만이 보일 뿐이다.

[오랜만이다. 칠죄종의 시련을 이겨낸 자여.]

"에?"

그림자의 시작점으로 고개를 든다. 보이는 것은 칠대악룡과 흡사한 크기의 용이었다.

"…시련의 엔비?"

보자마자 떠오른 것은 내 사냥대상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붉고 시커멓던 육신이 연분홍에 하얗게 변한 것 정도일까.

[친절의 카이네스.]

"에?"

[지금의 내 이름이다.]

"……."

지금의 이름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나는 칠죄종의 엔비였다. 필멸자여. 그대에게 죽음으로서 정반대의 모습으로 돌아왔지.]

"어……."

내가 생각했던 흐름과 너무나 다른데.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리는 사이에 카이네스가 설명을 잇는다.

[칠죄종은 세계의 어둠을 가두는 그림자였다. 필멸자여. 그대가 그걸 부쉈기에 우리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그럼으로서 세상은 우리가 억누른 어둠에 휩쓸릴 것이다. 필멸자가 아닌 불멸자로서 그대의 세상을 지키라.]

카이네스는 그 말과 함께 거대한 날개를 휘저었다. 다시 시야가 황무지로 바뀌면서 코앞에 있던 카이네스가 사라졌다.

"칠죄종? 설마……."

내가 놈들을 모두 죽였기 때문인가. 혹시나 싶어 번역기를 돌리며 해외 사이트도 뒤져봤지만, 이런 현상은 없었다.

"후속작의 실마리?"

누가 봐도 다음 이야기를 위한 떡밥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칠대악룡을 찾아갔다.

엔비가 카이네스가 된 것처럼 다른 용들도 변화했다.

물론 나에 한정된 경우다.

다른 사람은 그대로 칠대악룡으로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그때까지 돈만 벌면 되겠네."

엘리멘탈 소울2까지 뭘 대비하고 할 것도 없다.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템을 팔아야 한다.

VR 기기에 투자를 한 만큼, 생활고에 시달린 셈이니까.

오랜만의 게임이니 곧바로 파티를 꾸려서 던전에 갈 엄두도 못 낸다.

필드사냥으로 감각을 회복하며, 좋은 아이템이 떨어지는 곳으로 서서히 사냥터를 옮겼다.

새로운 사냥터로 갈수록 조작으로는 매울 수 없는 차이를 느꼈다.

다른 유저들이 빠르게 사냥을 하고 지나간 탓에 나는 남은 찌꺼기만 잡은 것이다.

"이걸로는 무리인데."

테이머가 폭딜이 부족해 사냥시간이 걸리지만, 몰이사냥에는 특화되어 있다.

2년의 시간이 지났기에 내가 갖췄던 장비는 시대에 뒤떨어졌다. 그래서 새로 갖춘 것도 자금의 압박으로 가성비로 맞췄다.

"이대로도 생활비는 문제가 없겠지만."

계속해서 생활고로 빠듯한 생활이 이어질 것이다. 최소한 비자금이 이백만 원은 있어야 숨통이라도 트이지 않을까.

그런 부분에서 엘리멘탈 소울에게 감사한 점이 있다. 서비스는 개판이라고 하더라도 유저는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이템에 대한 수요가 높다.

특히 예전에 꿍쳐 놨던 보잘 것 없는 아바타 아이템이 무려 현금 30만원에 육박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큰 이득이었다.

"아바타는 관심 없으니까."

쓸데없는 치장품을 하나씩 팔자 수중에는 오백만 원에 달하는 현금이 생겼다.

이거면 후속작 출시 전까지 삼시세끼 제대로 챙겨먹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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