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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옷을 입지 않아-2화 (2/201)

제002화 고인물은다짐한다.

"어이. 오씨. 아가리 다물고 밥이나 먹어."

찬란했던 과거의 회고는 마지막 순간에서 결국 끊어졌다. 여기서부터 내가 그 돈을 어떻게 날려먹게 되었는지 나오는데 말이지.

방해꾼은 최용실 십장이었다. 언제나처럼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왜 또 시비입니까."

"아가리 닫고 밥 처먹으라고."

"쉬는 시간에 말도 못 합니까?"

누군가는 음담패설을 섞고, 누군가는 답도 나오지 않는 정치 이야기나 하고 있다.

나 또한 신세한탄일 뿐이다. 다만, 앞부분이 게임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왜 나한테만 시비지?

"지랄 맞은 게임 이야기 작작하라고. 너 같은 곰방이 옮길 시멘트가 한 트럭이니까. 저거 다 끝내야 겜방비로 쓸 것 아니냐."

최 십장은 혀를 차며 나를 아래위로 훑었다.

매번 느끼지만 저 단추구멍 같은 눈깔은 고등학교 때 학생주님을 떠올리게 한다.

다른 점이라면 최 십장은 머리가 덜 벗겨졌다는 정도일까.

무시하고 다시 수저를 들 때.

"뭐? 지존 어쩌구 뭐? 요즘에 너처럼 게임에만 미친놈들 때문에 나 같은 학부모들이 악몽을 꿔요. 악몽을!"

최 십장은 뭐가 그리 불만인지 틱틱 거린다. 그때마다 입안의 밥풀을 쏟아낸다.

몇 번이고 느끼지만 참 밥맛 떨어지는 모습이다.

"요새 애들이 말이야. 응? 어른이 집에 돌아오면 나와서 인사를 할 생각도 없고. 응? 방구석에 처박혀서 게임만 하고 나오지를 않아! 응? 공부라도 잘하면 이해를 하겠는데!"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저 목청도 지긋지긋하다.

모든 문제가 애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시선이 존재한다. 그걸 아이들이 문제라는 식으로 나오니 대화가 통할 리가 있나.

"십장님 닮아서 공부 못하나 보죠."

아. 실수로 속마음을 말했네.

최 십장이 도끼눈을 뜨고 노려본다.

"그렇게 유명한 게임폐인이 왜 닭 튀기다가 쫄딱 망해서 공사판에 오셨어. 응?"

"게임 머리랑 공부 머리가 같은 건 아니니까요."

"꼭 너처럼 입만 산 놈들이 이 바닥에서 그렇게 떠들지."

"내가 누구처럼 거짓말만 늘어놓는 줄 압니까?"

"흥! 이 바닥에 왕년의 교수랑 박사가 몇 명인지 아냐? 저기 건너편에 대기업 회장님이 시멘트 옮긴다!"

역시나 최 십장은 내 모든 이야기를 거짓이라 치부하고 있다.

공사판만이 아니라 어디를 가도 자신을 굉장히 부풀려서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이들과 다르다.

나는 진짜다.

"인증이라도 해 줘요?"

"그래. 인증해라. 기름 가져다 줄 테니까 치킨이나 튀겨 봐. 응?"

주머니에 꾸깃꾸깃한 만 원짜리 한 장을 바닥에 툭 던진다.

저 돈을 보는 순간에 모든 불만과 짜증이 확 가라앉았다.

"누가 만 원으로 치킨 사먹습니까? 배달비도 안 나오게. 십장이면 오만 원은 뿌려야지."

바닥에 떨어진 돈을 외면할 이유가 없지. 그걸 주워서 주머니에 넣자 최 십장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미안하지만 환불은 없다.

"저 새끼가 진짜……."

"그만해라. 석아."

"맞아. 십장이랑 말이 통하냐."

잠자코 있던 놈들이 슬쩍 옷깃을 잡아당긴다.

"알겠어요."

잡아챈 손길을 뿌리치고 남은 밥을 입게 구겨 넣었다. 입맛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입구멍에 밀어 넣어야 오늘을 산다.

어차피 나도 최용실 십장이랑 말싸움을 계속할 마음은 없었다.

십장 중에서도 실력이 있는 사람이고 짬도 높아서 현장소장이 제일 의지하니까.

그에 반해 나는 경력도 기술도 없다.

젊지만 허약한 몸뚱이로 할 수 있는 것은 잡일뿐이었다. 그중에서 시멘트나 타일 등의 자재를 나르는 곰방이 주된 일이었다.

지금도 그냥 지루하고 힘들기 짝이 없는 공사판에서의 소소한 낙이라 할 수 있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면서 지내니까.

숨 막히는 점심이 끝난 후.

"자. 다들 다치지 않게 일 마무리합시다."

현장소장의 말에 다들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곰방들은 여기로 와라."

높게 쌓인 시멘트 포대 앞에 최용실이 손짓을 한다. 그는 곰방들의 어깨에 실어줬다. 자칫하면 몸이 상할 수 있기에 실어주는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문제는 내 차례다.

쿠웅!

"어윽!"

씨발.

40kg짜리 시멘트 한 포대가 어깨가 아닌 목에 거칠게 얹어졌다. 순간 다리가 풀려서 엎어질 뻔했다.

가까스로 자세를 잡고 뒤를 본다.

최용실도 놀란 얼굴이다.

"괘, 괜찮냐? 나도 일부러 그런 것 아니다!"

"일부러 아니기는 무슨……."

감정 듬뿍 실린 것을 온몸으로 확인했구만.

시멘트를 시작으로 타일과 벽돌 등을 하루 종일 나르다가 어깨가 아파 일찍 퇴근했다.

손에는 저녁으로 먹을 컵라면 하나와 소주 한 병이 전부다.

나에게는 훌륭한 만찬이지.

"개새끼 같으니라고."

바닥에 앉자마자 최 십장 때문에 삐끗한 어깨가 아파왔다.

누가 파스라도 붙여 주면 얼마나 좋을까만, 혼자 사는 골방에 도와줄 사람은 없다.

바닥에 파스 두 장을 깔고 그 위에 눕고 등을 바닥에 비볐다. 몇 번이나 해서인지 제법 깔끔하게 붙었다.

"와. 뒤지겠네."

파스에서 느껴지는 후끈함보다 보일러를 틀어도 얼음장 같은 바닥에 이가 떨린다.

천장에 보이는 것은 거미줄과 먼지가 낀 백열등뿐이다.

이상하게도 반짝이는 필라멘트가 기름에 튀겨지는 치킨처럼 보였다.

"빌어먹을. 내가 망한 게 내 잘못이냐고."

최 십장이 한 말이 자꾸 아른거린다. 아이템을 판 돈을 묵혀두는 건데. 왜 그럴듯하게 보인다는 이유로 주식과 사업을 했을까.

삐이이이이!

주전자가 끓는 소리가 났다.

컵라면에 물을 붓는다. 입에는 병나발로 소주를 붓는다.

"게임하고 싶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 한다고 했던가. 예전에는 무시했을 말이 지금은 너무나 간절하다.

다시 게임을 하고 싶다.

지금처럼 공사장에서 욕을 먹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비웃어도 내가 잘하는 일로 먹고 살고 싶다.

빚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일하면 게임을 다시 할 자본 정도는 갖출 수 있지 않을까.

열불이 난 속은 소주로. 차갑게 느껴지는 미래는 라면으로 채웠다.

얼큰함에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이대로 눈을 감고 일어나면 공사장에 가겠지.

이번 공사 끝나면 차라리 공장이나 갈까.

2교대라고 하더라도 기숙사 제공이 되는 곳이면 여기보다는 좋은 곳에서 자겠지.

우우웅.

그때 머리맡에 둔 휴대폰에 진동이 왔다.

[아들이번설에는내려오니.엄마가네얼굴이너무보고싶다고하더라.]

누가 보냈는지 확인할 것도 없다. 그 흔한 SNS도 아닌 메시지다. 띄어쓰기 하나 없는 내용을 보낼 사람은 아버지뿐이다.

2주 뒤의 설날.

이 못난 놈이 보고 싶으신 걸까.

"언제 집에 내려갔더라."

제대 후, 군대 선임을 따라 서울에 상경한 후부터다.

그때 엘리멘탈 소울을 접했다. 대리로 만렙을 찍어서 돈도 벌어보고 이벤트로 나오는 아이템들을 묵혔다 팔면서 다크 게이머를 시작했었지.

그 이후로 내려간 적이 없다.

진짜 불타는 효자다.

"된장찌개 먹고 싶…으읍!"

갑자기 속이 울렁거린다. 욕지거리와 함께 일어나 변기에 머리를 처박았다.

붉은 토사물은 마치 피를 토한 것 같다.

그 몰골 그대로 세면대에 비추어진 내가 보인다.

"…이 꼴로 어떻게 내려가."

매일 땀과 먼지에 절은 옷과 몸뚱이. 희망과 의지를 잃은 눈빛은 그냥 알콜중독자다.

공사장을 전전하면서 늘어난 것은 세 가지다. 근육통과 굳은살. 그리고 입에 밴 상스러운 욕뿐이다.

물론 나아진 것은 있다.

소주랑 컵라면만 먹은 덕분에 식비를 기적적으로 아꼈다.

"내가 제일 빛날 때는 언제였지?"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희망에 차 있던 순간은 언제이던가.

"…게임."

공사장을 다니며 술에 찌든 폐인이 될 것이냐. 잠조차 쪼개며 게임에 미친 폐인이 될 것이냐.

폰을 들어 달력을 봤다.

사람다운 몰골로 부모님을 뵙고 싶다.

*       *       *

새벽의 추위는 살이 떨어질 정도로 지독하다.

공사장은 짙은 어둠 그 자체였다. 아무도 없는 건물 내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마치 귀곡성 같았다.

"흉가체험이 이런 거구나."

해가 뜨기도 전에 현장에 나오는 것이 얼마 만이더라.

드럼통에 장작으로 쓰기 위한 건설자재들을 넣고 불을 피웠다.

타닥. 타닥.

불이 피어오른다.

먼저 퍼지는 것은 빛이었다. 그 뒤에는 느껴진 것은 열기가 아닌 매캐한 연기였다.

"켁! 웬 생선비린내야!"

그 속에서 느껴지는 악취에 인상이 찌그러졌다.

어제 말라비틀어진 황천의 고등어구이가 나왔는데 누가 여기다가 버려둔 모양이다.

"아. 춥네. 씨벌."

냄새는 역하지만 추위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드럼통 앞에 바짝 붙어 파리처럼 두 손을 열심히 비볐다.

얼어붙은 손이 조금 녹을 무렵, 잠들어 있던 햇볕이 조금씩 떠오른다.

"겜돌이가 어쩐 일로 와 있는 거야?"

누군가가 말을 건다. 고개를 돌리니 최 십장이다.

"왜 이렇게 일찍 온 겁니까?"

"마누라가 밥 안 줘서 그냥 나왔다."

최 십장은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나 말고는 하소연할 사람이 없으니 집구석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자식 놈의 새끼 때문에 어쩔 줄 모르겠다라.

"정확하게 어떤데요."

"하루종일 방구석에 처박혀서 나오지를 않아. 게임밖에 하지 않고 대화도 안 하려고 한다니까?"

"말은 해 보셨고?"

"…욕부터 나오더라."

최 십장은 중얼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아아.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다. 나도 저럴 때가 분명히 있었지.

"계속 내버려두고 소리만 치면 저처럼 됩니다."

"그, 그건 안 돼!"

"……."

질색하는 꼴을 보니 갑자기 기분 나빠지네. 사람 앞에 두고 너무한 것 아닌가.

산업폐기물보고도 저런 반응은 안 하겠다. 이건 흡사 지나가던 여학생 무리들이 저기 네 남친 지나간다고 서로 떠넘기던 때 같다.

"십장님만 말하면 그건 대화가 아니에요. 그냥 참견이나 훈계 정도로 들릴걸요?"

"그래서 매일 일찍 나오는 거다. 나처럼 고생하면서 돈 벌기 싫다면 공부하라고."

"그러면 알아준답니까?"

"하루 종일 게임만 하니까 나 나가는 것 정도는 알겠지."

최 십장의 한숨은 옅지만, 무게는 가볍지 않다.

"몰라요. 게임하는 걸로 눈치를 주는 아빠가 가니까 더 좋아할걸요?"

"……."

내 경험을 듬뿍 담은 말이건만 왜 충격받은 눈치일까.

"대화라는 것이 한 명이 말하면, 다른 하나는 듣는 거니까 이번에는 들어주세요."

"개는 날 보면 대화를 안 한다니까? 눈도 안 마주쳐!"

"아이스크림이나 치킨 먹이면서 같이 있는 것에 익숙해지라니까요. 라떼는 어떻고 하면서 먼저 말하지 말고 편하게 말할 때까지 들어주시기만 하세요."

학창시절 때도 보면 부모님이랑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색해하던 아이들이 있다.

반면에 부모님과 친구처럼 서로 장난을 치던 화목한 가정도 있다.

결국 시작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을 당연하게 느껴야 한다.

"너 술 처마셨냐? 그게 아니면 이런 정상적인 대화는……."

도대체 나에 대한 인식이 어떤 거였지. 말만 게임폐인인 줄 알았더니 진짜 그렇게 생각한 건가.

드럼통의 불길이 조금씩 약해진다. 바닥의 자재를 더 모아 드럼통에 넣었다. 삐끗한 허리에 통증이 생겨 눈살이 찌푸려졌다.

"누구처럼 다른 사람 허리 아작 내지는 않습니다. 아으. 오지게 아프네."

"너 어제 다쳤냐?"

"당연히 다쳤죠. 가서 커피나 사 와요. 목마르니까."

"…알았다."

최 십장은 군말 없이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저 아저씨한테 뭘 시키는 것도 처음이네.

"밥이나 먹자."

최 십장의 손은 예상보다 많은 것이 들려 있었다. 편의점 도시락과 따스한 캔커피였다.

"병원 갈 정도였으면 절대 안 봐 드리는 건데. 합의금 잘 먹겠습니다."

시시비비를 가려서 좋을 것은 없지.

도시락을 깔끔히 비우고 캔커피를 마신다. 믹스커피에 설탕과 물을 더 탄 밍밍한 맛이지만, 식후커피는 존재만으로도 진리다.

"그보다 무슨 좋은 일이 있던 거냐."

"곧 설이잖아요."

"여기 설까지 일해야 하는데?"

"설까지 일할 겁니다. 그때까지는 미련 없이 해야죠."

이번 일을 깔끔하게 끝내야 빚을 완전히 갚을 거다.

최 십장은 더 의문을 표한다.

"…네가?"

뭐지. 그 같잖다는 표정은.

예전부터 사람들은 나를 저렇게 봤으니까. 그리고 그걸 뒤바꾸는 것이 나의 몫이었다.

언제나 그랬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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