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01화 프롤로그.
쿠우우웅!
칠대악룡 중 하나.
분노의 라스의 거구가 하늘에서 떨어진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이 깨진다. 일어난 바람에 뒤섞인 모래가 내 몸을 휘감았다.
"…잡았다."
금이 가버린 검을 지팡이처럼 짚으며 일어났다.
지친 육신에 활력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도 한 걸음씩 내딛는다.
그 거구에 가까워진다. 아직 놈의 몸은 간헐적으로 꿈틀거렸다.
아직 살아 있는 걸까? 혹시 놈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그 전에 죽여야만 한다.
헐떡이는 숨을 참는다. 시야는 점점 색을 잃어 흑백이 되어 가고 있다.
[인간이여. 나를 죽이는 죄를 범하려는가.]
놈의 사념이 머리를 울린다.
존재의 격이 다르다는 것을 다시 실감한다. 예전이라면 감히 맞설 생각도 못했겠지. 새삼 지금의 내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그게 죄라면 기꺼이."
두렵지 않다. 무섭지도 않다. 한계를 벗어 넘기고 있다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으니까.
[칠대악룡의 시련을 감당할 수 있는가.]
죽기 직전이지만 라스는 자신의 위엄을 감추지 않았다. 저런 자신감에는 마땅한 근거가 있다.
칠대악룡은 이 세상에 업과 함께 태어났다. 존재 자체가 생명의 근원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게 칠죄종이다.
교만, 인색, 시기, 분노, 음욕, 식탐, 나태.
필멸자로서는 감히 피할 수 없는 죄. 이걸 이겨낸다면 그건 불멸자라고 봐야만 할 것이다.
그 시련에는 조건이 있다.
칠대악룡을 홀로 쓰러트리는 것이다. 이 말도 되지 않는 도전을 성공한 이는 없었다.
"이미 여섯을 감당했다."
[뭣? 네놈 설마……!]
"네가 최후의 칠죄종이다."
바로 나를 제외하고.
이 세상에서 오로지 나만이 칠대악룡을 홀로 쓰러트렸다.
개체 당 한 달의 시간을 들여 조사를 하고, 사냥을 할 때마다 무려 칠 주야를 잠조차 자지 않는 강행군을 치렀다.
[…말도 안 된다. 홀로 모든 칠대악룡을 죽인 것인가.]
라스의 당혹스러움이 그대로 느껴진다.
다른 칠대악룡도 그랬지. 내가 자신들의 숨통을 끊기 전까지 믿지 못했었다.
[필멸자여. 너는 불멸로 가려는가. 그 길에는 아무도 없다. 누구도 해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려 달라고?"
여섯을 죽였고 남은 마지막 하나. 그런데 여기서 멈추라는 건가?
웃기는 소리.
그 끝이 파멸이라고 해도 가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잊지 마라. 신성이 없는 필멸은 불멸이 될 수 없으니.]
"그것까지는 관심 없어. 너의 목을 원하니까."
그 이외의 모든 것이 부가적일 뿐이다.
라스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저 멍한 눈으로 볼 뿐이다.
그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강물이 되어 무릎까지 차오를 정도로 가까워졌다.
가슴까지 핏물이 차오를 정도까지 되어서야 다다랐다.
가죽과 살이 갈라져 훤히 드러나는 가슴뼈. 그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라스의 심장.
거기에 검을 깊게 찔러 넣었다.
[도전과제, 분노의 라스 살해자를 달성하였습니다.]
[도전과제, 칠대악룡의 살해자를 달성하였습니다.]
[도전과제, 필멸자의 굴레를 달성하였습니다.]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업적이 눈앞에 떠올랐다.
"푸하하하!"
10대 길드에서 하루 날을 잡고 레이드를 해도 번번이 실패를 하는 것이 칠대악룡이다.
난 그걸 혼자서 일곱이나 제거했다.
"가죽과 뼈. 혈액. 심장. 그리고……."
칠대악룡은 드래곤 종족이지만 반신의 판정을 받는다. 그래서 이 부산물은 하나당 백만 원을 훌쩍 넘는 재료였다.
진짜는 따로 있다.
바로 칠대악룡에게서 획득이 가능한 아이템!
[라스의 목걸이.]
-등급 : 유니크.
-방어력 : 5327
-효과 :
피격 시 체력의 10% 방어막 획득.
가격 시 모든 공격력 및 속도 30% 증가.
체력 50% 이하일 시 버서커 모드 발동.
-설명 : 칠대악룡 중 하나. 분노의 라스의 영혼이 남아든 목걸이다.
-칠대악룡 세트 효과 :
모든 능력 50% 증가.
모든 스킬 쿨타임 30% 감소.
모든 저항력 30% 증가.
가격 대상에 랜덤의 상태 이상.
착용한 칠대악룡 장비 수량만큼 죽음 방지(24시간 기준).
현재 적용 세트 효과 7/7
봐라! 이 압도적인 능력치를!
정말 압도적인 능력치가 아닐 수 없다.
라스의 목걸이 하나만으로도 어지간한 공격은 무시할 정도다.
거기다 내가 보유한 칠대악룡의 세트효과로 인해 24시간 동안 7번의 죽음을 피할 수 있다.
"이건 팔아야지. 무조건!"
강화를 하지 않은 순정인데도 칠대악룡 장비들은 부르는 것이 가격이다.
비공식적으로 한 개에 일억을 넘게 벌었다는 말도 있었다.
내가 칠대악룡을 사냥하는 동안에 다른 길드가 얼씬도 못하게 도와준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자 귓속말을 했다.
[ZI존짱짱맨 : 나스 솔플 성공했습니다.]
[동해고등어 : 진짜? 그걸 해냈다고?]
[ZI존짱짱맨 : 물론이죠. 길드전하느라 고생하셨어요.]
동해고등어는 10대 길드 중 하나인 동해의 길드장이다. 이 녀석이 다른 길드와 공선전을 강하게 해 준 덕분에 칠대악룡 쪽으로 누구도 얼씬조차 못하게 했다.
[동해고등어 : 너라서 해낸 거야. 진짜 대단해. 그러면 지금 혼자지?]
[ZI존짱짱맨 : 예. 회복하고 매물 정리해야죠.]
[동해고등어 : 어떤 아이템 나왔어? 매물은 먼저 보여주는 것 잊지 말라고.]
[ZI존짱짱맨 : 서비스로 뼈랑 가죽 같은 먼저 줄 수 있는데. 지금 드릴까요?]
난 아이템을 팔아 먹고사는 다크 게이머였기에 랭커들에게 좋은 평가를 듣지 못했다.
그랬기에 동해고등어를 통한 고객확보는 꽤나 쏠쏠했다.
[동해고등어 : 내가 거기로 바로 갈게.]
동해고등어는 텔레포트를 타고 이곳으로 왔다. 문제는 그 혼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딸린 식구가 좀 많다?"
이때까지 동해고등어와는 일대일로 만났다. 어쩌다가 한 명이나 두 명을 대동할 뿐이다.
이번에는 무려 스무 명이 한꺼번에 왔다.
모두 동해길드가 자랑하는 정예다.
"매물 좀 보러 왔어. 눈앞에 칠대악룡 세트가 있는데 전부 가져야 하지 않겠어?"
"…들켰네."
난 칠대악룡의 사냥에 대해 거짓말로 일관했다. 본캐로 성공한 것은 두 개고 나머지는 실패했다고 한 것이다. 그것만하여도 아무나 거둘 수 없는 성과이기에 의심을 받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왜 그걸 들켰나.
그 이유는 생각보다 찾기 쉬웠다.
자세히 보니 동해 길드원이 아닌 자들이 몇 명 있었다.
맨 뒤의 네 명은 다들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다크 게이머들이었다.
"ZI존짱짱맨 님이 우리를 바로 알아보는데?"
"혼자 다 처먹을 셈이야?"
"칠대악룡 몇 개 모은 거야? 소스 좀 주지 그랬어."
"우리도 좀 떼 줄 거지?"
문제는 칠대악룡을 사냥하기 위한 장비들을 저들에게서 샀다는 거다.
동해고등어와 불편한 관계로 알고 있어서 선택했는데 뒤에서 작업을 할 줄이야.
"업계불문율을 어기려는 거냐?"
다크 게이머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그건 서로 정당하게 얻은 물건을 탈취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얻은 장물은 시장에 풀려도 사지 않는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관련된 자들의 평판은 바닥까지 떨어진다. 기껏 쌓은 신용을 내던지겠다는 건가?
"공정거래를 하자는 거지. 네가 칠대악룡을 사냥할 수 있던 것은 전적으로 내 도움이 있었지 않아? 그 지분을 요구하는 거다."
"독점계약도 아닌데 무슨 소리야. 애초에 그런 계약도 없었는데?"
"너의 계약의 70퍼센트가 나한테 나와. 먹고살게 해 주는 사람한테 이렇게 나오면 안 되지."
동해고등어의 뻔뻔함에 혀를 찰 수밖에 없다.
칠대악룡을 사냥하면서 얻은 부산물 따위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거지?
"싫은데."
"그러면 내 소유권이 있는 장물을 받아가야지. 모두."
동해고등어가 손을 들어 올렸다. 백 명의 적들이 내 주변을 포위하고 있다.
"아니면 적정가에 팔던가."
"……."
동해고등어가 중요한 고객이기는 하지만 그는 단골이라는 것을 핑계로 자꾸 DC를 하는 놈이다. 기분이 좋아서 웃돈을 더 얹어주는 큰손까지는 아니다.
칠대악룡 아이템이 시장에 나온 것도 극히 드물 뿐더러, 세트 전체가 시장에 나온 적이 없다. 이걸 한꺼번에 판다면 수도권에 아파트 하나 정도는 마련하고도 남는다.
미안하지만 여기서 로그아웃만 하면 그만이다.
메뉴를 여는 순간.
콰앙!
동해고등어의 스킬이 내 손목을 쳤다. 게임종료를 누르려던 손이 뒤로 튕기며 메뉴가 꺼진다.
PK 가능지역에서 공격을 받으면 생기는 현상이다.
PK를 당하면 낮은 확률로 아이템을 떨어트린다. 착용아이템이 개중에 확률이 더 낮다. 그래서 칠대악룡 세트를 전부 착용했다.
"저 새끼 로그아웃 못하게 죽여!"
동해고등어의 외침과 함께 적들이 달려든다.
그때마다 날아오는 공격은 아찔하다. 지독할 정도로 두 손만을 노려온다. 이러다가 부위파괴라도 당할 지경이다.
두꺼비집이라도 내리고 싶지만, PK 가능지역의 두 번째 단점은 강제로 로그아웃하면 일정시간동안 캐릭터가 필드에 남는다는 점이다.
모험을 각오하고 죽어도 부활지점으로 삼은 곳이 하필 동해 길드 소유다.
반드시 이곳을 두 발로 벗어나야만 한다.
"절대 안 되지."
세트 아이템의 효력은 모두 가진 사람만이 확인 가능하다. 그러니 저들은 내가 다시 부활할 걸 알 수 없다. 이를 악물고 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어? 블레이드 마스터 아냐?"
"빠르다! 뭐야!"
칠대악룡 아이템 각각이 가지고 있는 능력 덕분에 딜러인 내가 어지간한 탱커보다 더 튼튼해졌다.
콰과과과광!
순간 버퍼가 걸릴 정도로 많은 스킬들이 나에게 쏟아졌다.
어지간한 보스 몬스터도 일격에 녹을 정도의 화력이다. 그러나 체력은 절반 정도밖에 안 깎였다.
"저놈을 잡아! 절대로 보내지마!"
PK를 각오한 동해고등어는 필사적이다. 놈을 죽이고 싶지만 무시한다. 최고의 복수는 아이템 팔고 한몫 단단히 챙기는 거다.
적들이 퇴로를 막은 탓에 몸으로 비집고 나가야만 한다.
한 발자국 떼는 순간 무차별적인 공격이 쏟아진다. 블레이드 마스터가 생존기가 다소 부족한 탓에 맞으면서 나가는 수밖에 없다.
"절대 안 놓친다!"
"놈은 결국 혼자야!"
적들은 앞에서 나를 밀고 뒤에서 잡아당겼다.
"제길!"
억지로 스킬을 쓰며 놈들을 뿌리친다. 스킬 쿨타임 탓에 결국 놈들에게 잡힌다.
"죽였다!"
"아이템 뒤져!"
눈앞이 회색으로 변하고 내 다리가 무너진다. 잡아당기는 손길은 시체를 물어뜯는 하이에나 같다.
[칠대악룡의 효과가 발휘합니다.]
"죽어? 누가."
나는 일곱 번의 죽음도 가능하다.
두 번을 죽고 세 번째까지.
죽고 또 죽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다.
나를 옭아매는 적들은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그 혼란에 길이 열린다.
"빌어먹을! 잡아! 잡으란 말이야!"
동해고등어에게 직선으로 달린다.
"죽어라. 비린내 나는 썩은 생선 새끼야."
블레이드 마스터의 최종스킬.
신의 검.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다.
콰르르릉!
벼락을 대신해 빛으로 이루어진 한 자루의 검이 동해고등어를 꿰뚫었다.
"크…윽!"
동해고등어는 체력의 7할을 상실했다. 뒤로 물러나며 포션을 마시려는 놈을 쫓았다.
미안하지만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다.
연계스킬 운명을 쫓는 검으로 놈을 추격해 목을 베었다.
"네놈들의 길마가 죽었다.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눈앞에는 원거리 딜러들만이 있다. 이들은 물리적으로 나를 잡아챌 수 없다.
칠대악룡 세트로 2티어 보스에 준하는 탱킹력을 갖춘 나다. 또한 높아진 저항력 때문에 상태이상이나 너프마법은 나에게 큰 문제를 주지 못하고 있다.
"콩 반쪽이라도 나눠먹어야지?"
"ZI존 사장! 이러기야?"
뒤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다크 게이머들이 달라붙었다. 그들의 장비는 아까와 사뭇 다르다.
누군가는 롱기누스의 창을. 그리고 누군가는 호수요정의 성검을 들고 있다.
저들은 걸어 다니는 보고다.
예전이라면 감히 도망갈 엄두도 내지 못하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직 네 개의 목숨이 더 있다.
놈들을 피해 텔레포트로 마을에 도망갈 시기는 충분하다.
"왜, 왜 안 죽는 거야!"
"도대체 목숨이 몇 개인 거냐!"
다크 게이머들은 가닥을 잘 잡았다.
지금 나에게는 고정피해를 주는 아이템이 답이다. 다만, 고정피해로 죽이기에는 내 체력이 너무나 막대하다.
맞을 때마다 방어막이 생성되고 괴물같은 체력회복속도가 죽음을 늦춘다.
그들의 장비가 고정피해로는 1티어가 아닌 탓이다.
"난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고 떠난다. 잘 있어라. 개새끼들아!"
결국 다크 게이머들까지 뿌리치고 도주에 성공했다. 참을 수 없는 희열과 함께 뒤를 보며 엿을 날렸다.
"안 돼에에에에!"
멀리서 적들의 절규가 들려온다. 그 절규는 시작에 불과했다.
PK를 시도하는 적은 24시간 동안 모든 유저와 NPC들에게 적대된다. 몬스터 취급을 받기 때문에 죽으면 상대에게 높은 경험치와 보상을 주게 된다.
내가 동해와 적대한 길드들 위주로 칠대악룡의 아이템을 처분하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끝이다.
모든 것을 날릴 뻔한 위험에서 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은 것이다.
나는 안전한 장소에 숨으며 게임을 종료했다.
"푸하하하하!"
VR 게임기에서 벗어난 나는 미친놈처럼 웃었다. 땀과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텅 빈 두 손에 잡힌 것은 황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