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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176화 (176/182)

176화

Chapter 50. 결착 (4)

“저승사자에게 부탁하면 돼.”

“저승사자요?”

“그렇다네. 물론 거기에 합당한 공덕을 바쳐야하지만. 또 아무 저승사자한테 부탁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야. 최소 영(永)급 이상의 저승사자에게 부탁해야 되고, 그 저승사자가 부탁을 들어줘야만 가능하지.”

새로운 대책을 내놓았지만 하이드의 굳은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어둡게 물들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

“맞아요. 애초에 영급 저승사자를 어디서 찾아요? 차라리 고승을 찾는 게 빠르겠네.”

미래도 덩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일순간 눈을 번쩍 떴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던 탓이었다.

저승사자와 함께 임무를 해결했던 날.

초로의 노인은 인자한 미소와 함께 민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날 부르는 부적이다. 그걸 필요로 하는 순간이 올 때, 주저 없이 사용하거라.’

영(永)급의 저승사자, 현암.

민호는 지갑 속에 있는 부적 한 장을 꺼냈다.

부적을 받을 당시에는 설마 그를 다시 부를 만한 일이 있겠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현암은 이 모든 걸 알고 부적을 준 것 같았다.

실제로 부적을 줄 당시, 천기를 누설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던가?

“······어르신.”

부적을 꽉 쥔 민호가 작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백번이고 천 번이고 절을 해도 모자를 정도였다.

“괜찮아, 민호야.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협회를 통해 고승을 찾을 수 있도록 하겠네.”

한편 조용히 흐느끼는 민호의 모습에 미래와 하이드가 서둘러 그를 위로했다.

“맞아. 나도 최대한 도와줄 테니까 울지 말고······. 어?”

그러던 중 미래의 눈에 뭔가가 포착됐다.

“근데 그 부적은 뭐야?”

낯익은 모양의 부적.

미래가 눈을 가늘게 뜨자, 민호는 물기로 젖은 목소리로 답했다.

“저승사자를 부르는 부적이요. 영급의 저승사자를 부를 수 있는······.”

“뭐?”

깜짝 놀라 되묻는 미래.

반면 하이드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미스터 공. 마음은 이해하지만 영급 저승사자를 부를 수 있는 부적은 나조차도 본 적이 없다네. 물론 영급 저승사자를 두어 번인가 만나본적은 있지만, 그 꼬장꼬장한 늙은이들이 쉽사리 부적을 내어줄 리도 없고······.”

하이드가 안쓰러운 시선으로 민호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그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한편 민호에게서 부적을 받아든 미래는 표정이 요상하게 변했다. 잠시 후, 그녀의 얼굴은 시시각각 새하얗게 변했다가, 이윽고 새파랗게 물들었다.

“······아저씨.”

하이드를 부른 미래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제 눈이 잘못된 게 아니면 이거, 진짜 영급 저승사자를 부르는 부적 같은데요?”

“미래야. 이제 너까지 그런 농담을······.”

한숨을 내쉰 하이드는 미래가 내미는 부적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불과 10초 만에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미, 미스터 공. 이, 이, 이런 걸 어디서 얻었나?”

경악이 깃든 얼굴.

하이드는 여태까지 그가 보여준 얼굴 중에서 가장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민호는 침착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하자면 깁니다. 그보다 이걸 사용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죠?”

“앞면에 침을, 뒷면에 피를 발라. 그리고 불에 태우면 저승사자를 부를 수 있어.”

민호의 질문에 대답한 건 미래였다.

이에 민호는 그녀가 하라는 대로 했다.

잠시 후, 불이 붙은 부적이 잿더미가 되어 흩날렸지만 이상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하이드는 조금 안심이 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허허, 역시 내 착각이었나 보구먼. 하긴 영급 저승사자가 그리 쉽게 올 리가······.”

“쯧! 꼴 보기 싫은 놈들이 한가득 모여 있구나.”

하이드의 중얼거림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노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두루마기에 붉은색 곰방대를 든 노인. 낯익은 이의 등장에 민호는 반갑다는 듯이 소리쳤다.

“어르신!”

“흘흘, 그간 잘 지냈느냐?”

민호와 현암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나는 조손(祖孫)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서로 간단한 안부 인사를 주고 받은 뒤, 현암은 하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호오, 이건 조금 놀랍구나.”

“예? 어떤 게······.”

“이 아이를 말하는 게다. 악덕이 전부 사라져있지 않느냐.”

현암이 곰방대로 하영을 가리켰다.

그 말에 민호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잠시 후, 모든 이야기를 들은 현암은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흐음, 그렇군. 어디서 인과가 뒤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운명이 변했구나.”

“어,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

“민호야.”

그때 현암이 민호를 불렀다.

이어 그는 생각지도 못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내가 네게 부적을 준 건 이 아이를 데려가기 위함이란다.”

“······!?”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민호가 얼굴을 굳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갑게 대화를 나눴지만, 이제는 아니다. 하영을 데려갈 수도 있다는 소리에 민호는 경계의 빛이 서린 눈으로 현암을 쳐다봤다. 그러자 이를 본 현암은 돌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흘흘, 진정해라. 지금은 데려가지 않으니. 아니, 데려갈 수 없다는 말이 맞겠지.”

“네? 그게 무슨······.”

“이 아이는 오늘 명부에 들 예정이었다. 천기에 그렇게 적혀있었으니까. 천계가 직접 간섭하지 않고서는 바뀌지 않을 운명이었지. 허나······.”

하영은 본디 오늘 세상을 떠날 운명이었다.

만약 민호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강태진이 쓰러지지 않았다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을 운명.

하지만 기적적으로 상황이 잘 풀렸고 그 덕분에 운명이 변했다.

이에 민호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 말씀은, 운명이 변했으니 데려갈 수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현암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보면 이게 더 잘된 일이겠구나. 불쌍한 아이를 데려가는 걸 좋아하진 않으니까.”

하영을 바라보는 현암의 눈빛이 따뜻하게 물들었다.

이를 본 민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민호는 다시금 각오를 다잡았다. 어찌 보면 본론은 이제부터 시작이었으니까. 크게 심호흡을 한 민호는 현암을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저, 어르신. 제가 어르신을 뵙고자 했던 건······.”

“알고 있다. 원념을 거둬줬으면 해서겠지?”

그때 현암이 민호의 말을 끊었다.

그러자 그 순간, 민호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현암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공덕이 필요하면 전부 드리겠습니다. 모자라다면 평생 모아서라도 갚겠습니다. 대신 하영이만큼은, 이 아이만큼은 살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어르신.”

민호의 머리가 바닥에 가 닿았다.

구차하다고 해도 좋았다. 하영이만 무사할 수 있다면, 남은 공덕 정도는 전부 바칠 수 있었다. 모자라다면 이후 임무를 통해 받는 모든 공덕을 바칠 생각도 있었다.

민호는 간절하게 빌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리고 얼마 후, 현암의 입이 열렸다.

“됐다.”

피식 웃음을 터뜨린 현암.

그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웃었다.

“공덕이라면 이미 받았느니라.”

“······예?”

민호가 멍하니 되묻자, 현암은 하영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러자 그녀의 몸에서 회색빛 연기가 빠른 속도로 흘러나와 현암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와, 속도 장난 아닌데요?”

“역시 영급의 저승사자······.”

이를 보던 미래와 하이드가 감탄을 내뱉었다.

잠시 후, 하영의 몸에선 더 이상 회색 연기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창백했던 얼굴에는 핏기가 돌아왔고 거칠었던 숨소리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모든 원념과 원한을 흡수한 현암은 다시 민호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이 정도의 원념을 거둬가는 건 커피 한 잔의 공덕 정도면 충분하거든.”

“어르신······.”

민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현암의 호의에 감동한 탓이었다.

결국 민호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떨어뜨렸다. 현암은 그런 민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더니, 이내 미래와 하이드를 쳐다봤다.

“거기 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네? 저, 저희요?”

“말씀하십시오.”

당황하는 미래에 비해 하이드는 침착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에 현암은 곰방대로 저 멀리 있는 강태진을 가리켰다.

“저 원혼도 데려가도 되느냐? 이왕 온 김에 한꺼번에 처리했으면 하는구나.”

“물론입니다. 오히려 부탁드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사양 않고 받아가도록 하마.”

현암이 곰방대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렸다.

그러자 태진의 몸에서 시커먼 연기가 곰방대로 빨려 들어갔다. 한 줌의 연기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빨아들이자, 강태진의 몸은 퍼석거리더니 이내 잿더미로 변했다.

“아, 그래. 마지막으로 하나 더.”

강태진의 원혼까지 회수한 현암이 이번엔 전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가 닿은 곳에는 주효진이 있었다.

갑자기 저승사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효진은 놀란 듯 몸을 움츠러뜨렸다.

“저 아이는 어떻게 할 생각이더냐? 토벌할 생각이라면 기다려줄 용의도 있다만.”

“정말요? 하하, 그럼 1분만 기다려주세요.”

우득- 우드득-

미래가 손을 가볍게 풀었다.

이어 그녀는 차가운 미소와 함께 중얼거렸다.

“금방 포장해드릴게요.”

“자, 잠깐만! 타임!”

“마인 주제에 타임은 얼어 죽을 타임이야!”

그 말과 함께 미래가 달려들었다. 효진은 질색하며 미래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했다.

“허허, 나도 도와야하나?”

“아저씨는 가만히 있어! 얘는 내가 잡는다!”

미래가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그러던 그때였다.

뚜르르르-

효진의 손에 든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이를 본 효진의 얼굴에 일순간 화색이 맺혔다.

“우왓! 일단 이거부터 받아! 받고 얘기하자고!”

방금 전에 날아든 미래의 발차기를 피하면서 효진은 그녀에게 휴대폰을 던졌다. 반사적으로 이를 낚아챈 미래는 의아한 듯 휴대폰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이내 얼굴을 와락 구겼다.

영상통화로 걸려온 휴대폰 화면에 익숙한 얼굴이 있었으니까.

“······류화연.”

미래가 이를 아득 물었다.

그 한 마디에 민호는 물론이고, 하이드까지 다가와 화면을 응시했다.

-차미래. 그 아이를 놓아줘.

류화연의 첫 마디는 효진을 놓아달라는 말이었다.

이에 미래는 기가 차다는 듯이 웃었다.

“하! 무슨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펭귄]은 내가 민호를 지키기 위해서 보낸 거야. 실제로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민호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거고.

그건 그랬다. 만약 강태진의 발악을 막지 못했다면 현암이 데려가는 것은 하영이었을 지도 몰랐으니까. 어떻게 보면 주효진은 민호와 하영의 은인인 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인을 순순히 보내줄 거 같아?”

하지만 미래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미래가 뻔뻔하게 나오자, 류화연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틀 뒤. 카페 브란델에서 만나.

“뭐?”

-할 이야기가 있어.

“네가 어떻게 우리 카페의 존재를······.”

미래가 당황하며 말을 이었지만, 류화연은 시크한 작별인사를 고할 뿐이었다.

-용무는 이걸로 끝이야.

뚝!

“뭐? 여보세요? 여보세요! 야, 인마!”

자기 할 말만을 하고 전화가 끊어지자 미래는 성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때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던 주효진은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미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보스의 전언은 확실히 전했으니까 난 이만 실례할게.”

“웃기지 마. 내가 보내줄 것 같······.”

얼굴을 구긴 미래가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런데 그때, 효진이 주머니에서 부적 하나를 꺼냈다. 검은색 바탕에 하얀 글귀가 적힌 부적. 이를 발견한 미래는 황급히 지면을 박차고 효진에게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그보다 효진이 먼저 부적을 찢었다.

후웅-

미래의 주먹은 텅 빈 허공을 가로질렀다.

방금 전까지 효진이 있는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콰앙!

“이런 젠장!”

멍하니 있다가 효진까지 놓치게 되자 미래는 결국 분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했다. 마구 화를 내며 모든 걸 때려부수기 시작한 그녀의 모습에 현암은 미간을 찌푸렸다.

“보아하니 이놈만 데리고 돌아가야 할 것 같구나.”

그 말에 민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잠시 후, 곰방대를 품속에 넣은 현암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나도 이만 돌아가 보마. 갈 길이 멀구나.”

“감사합니다, 어르신.”

“감사는 무슨. 네가 쌓은 덕이 널 도운 것에 불과하거늘.”

현암의 주름진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맺혔다.

“그래도 천기를 거슬러 운명을 바꾸었으니, 앞으로도 선행을 베풀며 살 거라.”

“예, 명심할게요.”

“그래. 너라면 잘할 수 있겠지.”

민호의 머리를 쓰다듬은 것을 마지막으로.

현암은 이곳에 처음 등장했을 때와 같이 연기처럼 모습을 감췄다. 한편 미래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여전히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진하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이제 그만 진정해.”

“어떻게 진정해!? 눈앞에서 마인을 놓쳤는데!”

“이틀 뒤에 보자고 했잖아.”

진하의 담담한 목소리에 미래는 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자리에 가만히 서있던 그녀는 곧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여자가 했던 말, 거짓말이 아니었어.”

류화연이 했던 모든 말은 진실이었다.

미래의 말에 진하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까 우리도 대책을 세워야지.”

이틀 뒤. 류화연은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카페를 방문한다는 걸까?

모두의 얼굴에 짙은 의문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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