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Chapter 50. 결착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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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원의 양초]: 발동
-남은 시간: 9분 5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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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나타난 짧은 메시지.
“······어?”
동시에 민호의 눈이 휘둥그레 변했다.
남은 시간?
촛불을 붙이자마자 소원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던가?
민호의 얼굴은 마치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스템 메시지는 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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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남은 시간 안에 촛불이 꺼지면, 양초는 소멸합니다.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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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메시지를 본 민호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젠장! 이런 말은 없었잖아!”
“오, 오빠?”
하영이 깜짝 놀라 물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재차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무슨 문제라도······?”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하영아.”
하영을 안심시키지는 못할망정, 왜 그가 위로를 받고 있단 말인가?
민호는 애써 평정을 회복하려 애썼다.
그는 뺨을 거세게 두드린 뒤, 양초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이곳보다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기 위함이었다.
후웅-
하지만 촛불이 이리저리 흔들리자 다시 양초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이동하는 건 너무 리스크가 컸다.
잠시 고민하던 민호는 곧 각오를 다졌다.
‘만약 강태진이 허튼 수작을 부린다면······.’
아까 그랬던 것처럼 무기를 던지거나 하는 등의 행동을 보인다거나, 촛불을 꺼뜨리려는 어떠한 행동을 한다면.
‘······내 몸을 던지는 한이 있더라도 막는다.’
설령 가슴에 칼이 박히는 한이 있더라도.
촛불이 꺼지는 것만큼은 막아내리라. 민호는 그렇게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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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남은 시간: 6분 5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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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분이 지나갔다.
지금까지 버틴 것에 두 배만큼만 더 버티면 된다. 민호는 희망을 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콰아아앙-!
“꺄악!”
근처에서 들려온 굉음에 하영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니, 거기에는 강태진이 있었다.
“끄흐으! 쿨럭, 쿨럭!”
강태진의 몰골은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왼팔은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뜯겨나갔고 양 다리도 기괴하게 뒤틀렸다. 벽을 부수던 괴물이 저런 꼴이 된 걸 보니, 괜스레 하이드가 얼마나 강자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후우, 이제야 몸이 다 풀렸군 그래.”
그때 강태진을 저 꼴로 만든 하이드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런데 하이드 역시 멀쩡하진 못했다. 귀가 반쯤 뜯겨나갔고, 얼굴과 가슴팍은 피투성이에, 어깨 한쪽은 탈골된 것처럼 보였다.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을 고스란히 몸에 담고 있었다.
“끄흐으······! 이, 이 빌어먹을 노인네······. 우웩!”
강태진이 피 한 줌을 토했다.
그의 얼굴에서 점점 핏기가 가셨다. 가망이 없어 보이는 모습.
점점 죽어가는 이를 앞에 두고 할 생각은 아니지만, 그 모습을 보자 묘하게 안심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만 포기하게나.”
“웃기지, 마라! 허억, 허억! 우욱!”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중상을 입었음에도 강태진은 강태진이었다.
사나운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그를 마주한 채, 하이드는 다시 말을 이었다.
“순순히 토벌을 받고 내세를 기약하게. 그럼 마지막은 고통 없이 보내줄 터이니.”
“큭, 큭큭! 마인에게 내세 따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물론 연옥에서 억겁의 시간을 보낸 다음의 일을 말하는 걸세. 그간 저지른 죗값을 치러야할 테니까.”
하이드가 몸을 풀었다.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는 모양새였다. 이를 본 강태진의 눈빛이 일순간 공허하게 변했다.
“그래. 연옥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 들리는 허탈한 목소리.
그러나 그의 눈빛만큼은 공허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의 두 눈이 마지막으로 숨 쉬는 불꽃처럼 활활 타올랐다.
“하지만 적어도 혼자 가진 않겠다!”
후웅-
강태진이 팔을 세차게 휘둘렀다.
하지만 그 순간, 남은 팔 한쪽마저 그대로 잘려나갔다.
“······내가 그런 걸 용납할 거라고 생각했나?”
하이드가 사납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강태진의 얼굴에 맺힌 것은 고통도 절망도 아닌, 환희의 미소였다. 그는 입가를 이죽거리며 기괴하게 웃었다.
“함께 가자, 민하영.”
강태진의 미소는 하영을 향해 가 닿았다.
그 순간, 잘려진 팔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정확히, 촛불을 향해서.
“안······!”
뒤늦게 이를 알아차린 민호가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보다 핏방울이 더욱 빨랐다.
앞으로 1분 남짓만 더 버티면 되는데, 그럼 소원을 이룰 수 있는데!
야속할 정도로 빠르게 떨어지는 핏방울을 보며 민호의 얼굴에 절망의 빛이 맺혔다.
그런데 그 순간!
휙-
허공에서 누군가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핏방울을 모조리 몸으로 받아낸 뒤, 바닥을 세차게 뒹굴었다.
“꺅!”
갑작스런 낯선 이의 등장에 하영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이어 바닥을 뒹굴었던 이가 얼굴을 찌푸렸다.
“후우, 아슬아슬했네.”
후드티를 입은 여성, 주효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지도 못한 도움에 민호는 멍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평정을 회복했다. 그러고는 촛불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다른 이들에게서 지키기 위해서였다.
“흐흐, 흐, 흐아하하하!”
그때 강태진의 웃음소리가 폐건물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어 그는 효진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흐으! 주효진. 또 날 방해하는 거냐?”
“난 보스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야. 원망하려거든 보스를 원망해.”
효진이 어깨를 으쓱이자 강태진은 풀썩 웃었다.
허탈함이 가득 담긴 웃음이었다.
“하여간 류화연, 처음 봤을 때부터 맘에 안 드는 년이었······.”
콰드득-!
강태진의 목이 그대로 돌아갔다.
뒷담화에 가까운 한 마디를 유언으로 남긴 채.
목이 돌아간 강태진이 바닥에 쓰러졌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새로운 마인, 주효진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민호가 효진을 경계하듯 노려보자 효진이 피식 웃었다.
“야, 쫄지 마. 내가 너 방해할 생각이었으면 왜 도와줬겠냐?”
“······.”
“긴장 풀어. 널 때를 생각은 없으니까······.”
효진이 어깨를 으쓱거리던 그때, 차가운 감촉이 그녀의 목에 닿았다.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없을 게다.”
어느새 다가온 하이드의 모습에 효진은 냉큼 입을 닫았다. 하이드는 민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괜찮나? 미스터 공.”
“예, 덕분에······.”
민호가 대답을 이어나가던 그때.
마지막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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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남은 시간: 5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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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남은 시간은 1분.
이에 하이드는 효진의 뒷덜미를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아! 아저씨, 아파요. 아야!”
“지금부턴 입도 벙긋하지 말게. 목이 달아날 수도 있으니.”
웃으면서 말했지만 협박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한 마디에 효진은 곧장 입을 닫았다. 그녀가 아는 하이드라면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남았기에.
한편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1분이랑 시간은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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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시간이 경과되었습니다.
-촛불이 대상을 환하게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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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민호의 얼굴에 긴장이 맺혔다.
50퍼센트의 확률. 높으면 높을 수도 있고 낮으면 낮은 가능성이었다. 민호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간절하게 소망했다.
그런데 그때, 돌연 하영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흑!”
“하영아!”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진 하영.
민호는 황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연신 말을 걸어봤지만 하영은 고통어린 신음을 내뱉을 뿐, 어떠한 대꾸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설마······.”
민호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리던 그때.
[저, 전달자님!]
비단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급하게 들리는 말투에 민호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걸 느꼈다.
하지만 이어진 대답은 환희와 기쁨이 깃든 목소리였다.
[방금 전에 임무가 완료되었어요!]
[5성급 임무요. 그것도 토벌이 아니라 구원의 임무예요!]
“······어?”
민호가 멍하니 되물었다.
그때 그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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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간절한 기원의 양초]가 세상을 환히 밝힙니다.
-대상(민하영)의 소원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대상에게 깃든 모든 악덕이 소멸합니다.
-대상이 부당하게 취한 모든 능력이 소멸합니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동안, 대상은 일시적으로 가사상태에 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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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한 마디를 보자마자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하, 하하······.”
바닥에 주저앉은 민호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때 하영의 몸 이것저곳에서 검은색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그 광경을 본 하이드는 재미있는 걸 본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살다가 악덕이 씻겨나가는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그러게요. 오래 살고 볼 일이네.”
그러던 중 누군가가 하이드의 곁에 와 섰다.
바로 차미래였다.
그녀는 온 몸에 마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피를 덕지덕지 묻힌 상태였다. 하영의 몸에서 악덕이 씻겨나가는 걸 잠자코 보던 중, 그녀의 시선이 반대편으로 향했다.
강태진의 시체가 있는 곳이었다.
“미안하구나. 원래는 네 몫을 남겨두고 싶었지만······.”
“뭐, 됐어요. 그럴 여유가 없었다는 것 정도는 저도 아니까.”
미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이드의 심각한 몰골을 보자 따질 힘도 사라졌던 탓이었다.
“그보다 아저씨가 이렇게 당할 줄은 몰랐는데. 혹시 방심이라도 했어요?”
“아니, 일반인에게 능력을 썼거든.”
“그렇구나. 엥? 아니, 뭐라고요? 일반인한테 능력을 썼어요?!”
미래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에 하이드는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그래. 그러다 보니까 중간에 조금씩 능력이 사라지더구나. 그나마 강태진을 쓰러뜨리고 나서 사라지기 시작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어. 하하.”
“아니, 웃을 일이 아니잖아요!”
미래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쿵쿵 쳤다.
그렇게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던 중, 하이드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나저나 저 아이 말이다.”
하영을 보던 하이드의 눈가가 가늘게 좁아졌다.
“문제가 좀 있어 보이기는 하구나.”
“그러게요. 저건 저도 예상지 못했는데······.”
“문제라구요?”
둘의 대화에 민호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이제야 간신히 모든 게 해결됐다 싶었는데 문제가 남아있다고 말한 탓이었다.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민호를 보며 미래는 굳어진 음성으로 대답했다.
“응, 악덕은 빠져나갔는데 원념까지 사라지진 않았어.”
“이만한 원한과 원념을 내버려두면 필시 문제가 생길 게야.”
하이드의 얼굴도 심각하게 변했다.
그러자 민호는 마음이 급박해졌다.
“어, 어떻게 하면 되죠?”
“흐음, 옛 기록에 따르면 덕을 굉장히 많이 쌓은 사제나 고승에게 부탁하면 해결할 수도 있다고는 하는데······.”
“요즘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있을 리가 없죠. 있다고 해도 찾기가 힘들고.”
미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말인즉슨 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다는 소리였다. 민호의 낯빛이 어둡게 물들어가던 중 돌연 하이드가 뭔가를 떠올렸는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아, 그러고 보니 방법이 하나 더 있네.”
“엥? 정말요?”
미래가 놀란 듯 묻자, 하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그의 대답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