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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174화 (174/182)

174화

Chapter 50. 결착 (2)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새끼가!”

퍼억!

“큭!”

강태진의 발이 민호의 허리를 강타했다.

“차미래를 부르려고? 오냐, 불러봐! 모두 한꺼번에 죽여줄 테니!”

그는 머리끝까지 열이 받은 듯,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이어 [골든타임]의 효과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민호는 밀려드는 고통을 느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마지막까지 반항할 생각으로 비장한 표정을 짓던 그때!

번쩍-

찢겨나간 소환비서가 눈부시게 반짝였다.

동시에 강태진의 주먹이 빛 무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어 들려온 것은 둔탁한 충격음이었다.

파앗-!

빛 무리에서 나타난 누군가가 강태진의 주먹을 쳐낸 것이었다. 잠시 후, 빛이 점차 옅어지자 거구의 몸집을 가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허.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격하게 반겨주다니, 이거 기쁘구먼.”

중후한 인상을 가진 노신사.

그의 등장에 민호는 낯빛에 화색을 떠올렸다.

그도 그럴 게 노신사는 민호가 알기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토벌자였으니까.

“하이드 님!”

1급 토벌자, 하이드 제르코펜.

그는 민호를 돌아보며 방긋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일세, 미스터 공. 그리고······.”

하이드의 시선이 강태진에게 가 닿았다. 그는 눈가를 가늘게 좁힌 채 말을 걸었다.

“마인이 된 이후로는 처음 보는구먼. 그렇지?”

그 말에 강태진은 잔뜩 굳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이드 제르코펜.”

“호오,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나?”

“그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당신과 함께 했던 작전이 몇 개였는데.”

“그렇다면 이야기가 쉽겠군. 이제부터 어떻게 할 텐가?”

하이드가 팔짱을 낀 채 물었다.

그러자 강태진은 돌연 풀썩 웃음을 터뜨렸다.

“8년이다. 무려 8년을 기다렸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서.”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린 채, 흐흐거리며 웃는 강태진.

이어 그의 두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그 정도의 목적을, 당신이라면 헛되이 버릴 수 있겠나?”

“안타깝군. 마인이 되면서 머리가 이상해진 모양이야. 날 상대로 싸움을 걸다니.”

“물론 그냥 덤비면 승산이 없을 테니 준비해둔 게 있긴 해.”

따악-!

강태진이 손가락을 튕겼다.

잠시 후, 사방에서 마인들이 걸어 나왔다. 바깥과는 달리, 하나같이 중급 이상의 마인들 뿐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뭔가 이변을 알아차린 하이드는 눈썹을 씰룩거리며 히죽 웃었다.

“제법 머리를 썼어. 일반인을 섞어둔 건가?”

“원래는 차미래를 대비해서 준비했지만.”

강태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고는 눈을 사납게 뜬 채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잘 됐어. 걔는 가끔 미쳐 날뛰면 일반인이고 뭐고 주먹부터 휘두르거든. 반면 당신은 마인이 아닌 자에게 약하잖아. 그렇지?”

“후후. 글쎄. 과연 어떨까?”

하이드의 웃음 섞인 중얼거림을 끝으로.

강태진을 비롯한 마인 무리가 하이드를 향해 쇄도했다.

한편 그 격돌의 현장을 바라보며 민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이드는 그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그렇다면 민호 역시 해야할 일을 다 해야 할 터.

민호는 하이드를 마음속으로 응원한 뒤, 저 멀리 있는 하영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고는 하영을 향해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하영아. 괜찮아?”

“그, 그건 제가 할 소리에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왜 강 변호사님이 오빠를, 그리고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건지 도통 알 수가······.”

하영이 새하얗게 물든 얼굴로 횡설수설 거렸다.

그야 당황할 만도 하겠지. 패닉에 빠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이에 민호는 하영에게 다가가 대뜸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오빠······?”

“······넌 내가 지켜줄게.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민호가 이를 악문 채, 결의에 가득 찬 각오를 내뱉었다.

그러자 거세게 요동치던 하영의 심장소리가 차츰 규칙적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어느 정도 진정됐다고 판단이 들자 민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진정하고 들어줘. 물론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들을게요. 말씀해주세요.”

하영은 어떤 말이든 들을 각오가 됐다는 듯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크게 심호흡을 한 민호는 빠르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녀가 현재 처한 이야기부터 강태진의 목적까지. 줄이고 또 줄였지만 민호의 이야기는 장장 5분 동안이나 계속됐다. 그리고 하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민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렇게 길었던 설명이 끝나고.

“믿기지 않을 거야.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니까.”

민호는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모든 이야기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래도 무슨 소원을 빌어야하는지 정도만 이해해준다면 반은 성공이었다.

민호는 간절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믿어야 돼. 그래야만 너를······.”

그때 하영이 입을 열었다.

“믿어요.”

“뭐?”

담담하게 이어진 대답에 민호가 멍하니 되물었다.

그러자 하영은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오빠가 이렇게 되면서까지 한 말이잖아요. 어떻게 안 믿을 수 있겠어요?”

이어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한숨이 흘러나왔다.

“······물론 전부 이해한 건 아니에요. 그래도 이것만큼은 이해했어요.”

하영의 두 눈이 밝게 빛났다.

곧이어 그녀는 민호가 바라던 한 마디를 입 밖으로 꺼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뭐든 말해주세요.”

그 한 마디에 민호는 일순간 몸을 비틀거렸다.

팽팽한 긴장감이 일거에 해소되면서 몸에 힘이 풀린 탓이었다. 하지만 꼴사납게 넘어질 순 없었기에 다리에 힘을 주어 버텼다.

“우선 네 소원부터 생각해야 돼.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소원을.”

“모든 걸 해결할 소원······.”

하영이 민호의 말을 곱씹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던 그때였다.

“민하영!”

멈칫-

갑작스레 들려온 강태진의 외침에 하영은 물론이고 민호도 몸이 굳었다. 그가 내지른 외침에는 무시무시한 분노와 살기가 담겨 있던 탓이었다.

강태진은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계속해서 저주를 퍼부었다.

“그 소원을 비는 순간, 넌 네가 가진 모든 걸 잃게 될 거다. 피아노로 쌓은 명예도, 실력도, 네가 바랐던 가족도! 친구들까지 모두 네게서 등을 돌릴 거야. 모두 다!”

“강태진······!”

“모든 걸 잃고 혼자가 되는 걸, 네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피아노로 모든 걸 이뤄온 네가? 절대 못해! 절대! 절대로! 넌 소원을 빌 수 없어! 크헉!”

악을 쓰던 그때, 강태진이 구석에 처박혔다.

그때 하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허, 감히 날 상대로 한눈을 파는 겐가?”

“크흐!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뿌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가운데, 강태진이 벼락처럼 하이드를 향해 쇄도했다. 현존하는 최강의 토벌자와 마인의 일전을 뒤로한 채, 민호는 황급히 하영을 돌아봤다.

“하영아. 그게 그러니까······.”

분명 방금 전 강태진의 저주에 동요하고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그가 안심을 시켜줘야만 했다.

“괜찮아요, 오빠.”

하지만 하영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제 것이 아니었던 것들이니까요. 사라져도 괜찮아요.”

“하영아······.”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 아니, 분명 모든 걸 잃을 터다.

그간 쌓아온 악덕을 씻어내려면 그간 부당하게 얻은 능력들도 모조리 사라질 테니. 그럼에도 하영은 그녀가 가졌던 것들에 미련이 없어보였다.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럽게 보여, 민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런데 그때, 하영이 다시 말을 꺼냈다.

“대신 하나만 남아있으면 돼요.”

“하나만?”

“네. 제가 제일 먼저 가졌던 거요.”

대답을 이어나가던 하영의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그녀가 제일 먼저 가진 것.

그 한 마디에 민호는 오늘 아침에 있던 일을 떠올렸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에 혜란과 함께 사진을 보며 떠올렸던 옛 추억을 떠올렸다.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깨닫자 입가에 미소가 새겨졌다. 다른 건 보장할 수 없지만 그것 하나만큼은 확신을 담아 말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민호는 진지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그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야.”

“정말요?”

“그래. 내가 8년 전에 대답했던 것처럼.”

민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영의 눈이 차츰 커다랗게 변했다.

잠시 후, 그녀의 눈가에 투명한 이슬이 맺혔다. 눈에는 울음이 맺혔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낸 하영은 다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아까 말했던 대로 소원을 생각해줘. 그 다음엔 내가 알아서 할게.”

어떤 소원을 빌라고 자세하게 강요할 순 없었다.

그랬다가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왜냐면 그렇게 되면 그 소원은 결국 하영이 빈 게 아니라 민호의 소원이 되니 말이다. 그래서 민호는 방향성 정도만 제시했다.

나머지는 전부 하영의 몫이었다.

민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녀가 소원을 결정하길 기다렸다.

수년과도 같은 몇 분의 시간이 지난 뒤, 하영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했어요.”

“좋아, 그럼 시작할게.”

민호가 품속에서 양초를 꺼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그를 향해 날카로운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

미처 대처를 할 틈도 없었다.

그것은 민호의 심장을 정확히 노리고 날아들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검은 그림자 하나가 민호의 앞을 가로막았다.

푸욱-

날카로운 칼날 하나가 누군가의 팔을 관통했다.

붉은 피가 옷 위로 꽃처럼 번져갔다. 이를 본 민호의 눈이 점점 크게 변했다.

“하, 하이드님!?”

“후우, 오랜만에 움직여서 그런지 영 예전 같지 않군 그래.”

피가 잔뜩 묻은 칼날을 빼낸 하이드가 털털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민호는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괘, 괜찮으십니까?! 어서 지혈부터······!”

“미스터 공.”

그때 하이드가 민호를 불렀다.

주름진 눈가 사이에 있는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그대가 해야 할 일을 하게.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날 부른 게 아니던가?”

그렇게 말한 하이드는 어느새 지혈을 끝냈다.

그는 칼날을 바닥에 내던지며 씨익 웃었다.

“마인을 상대하는 건 응당 토벌자의 몫이지. 그대는 전달자답게 제대로 기적을 전달하게.”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민호가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멀리서 괴성이 들려왔다.

“크아악! 하이드으으으!”

강태진이 울부짖었다.

회심의 기습이 실패로 돌아간 것에 대한 분노였다.

어느새 다른 마인들은 모두 바닥에 고꾸라져있었다. 심지어 강태진이 데려온 일반인들도 마인들과 비슷한 꼴이었다.

“네놈, 일반인에게 무력을 휘두르고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하하, 마인 따위가 누구를 걱정하는가? 자네 걱정이나 하게나.”

하이드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린 뒤, 다시 강태진을 향해 덤벼들었다.

치열한 접전이 오가던 중, 민호는 품속에서 조심스럽게 양초를 꺼냈다. 그러고는 눈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하영을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하영아.”

“네, 오빠.”

민호가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러고는 굳은 결의를 입 밖으로 냈다.

“네 소원은 내가 들어줄게.”

“헤헤, 오빠만 믿을게요.”

하영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바라보며 민호는 라이터를 꺼냈다.

이어 양초에 불을 붙이자, 시스템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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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간절한 기원의 양초]에 불을 붙였습니다.

-사용 조건을 검토합니다.

-검토 완료

-사용 조건을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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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조건은 만족했다.

이제 성공확률은 50퍼센트.

민호는 피가 배어나오는 입술을 꽉 문채로 간절히 소망했다.

부디 하영이 소원을 이룰 수 있기를,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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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소원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50퍼센트입니다.

-소원을 이루지 못할 경우, 양초는 사라집니다.

-그래도 진행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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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물러날 수 있는 길은 없었어.”

민호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뒤이어 나타난 메시지는 생각지도 못한 내용을 함께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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