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Chapter 49. D-DAY (3)
“그리고 그런 영화 보면 꼭 이런 곳에서 꼭 조폭 따까리들이 바글바글 거리곤 했던 거 같은데······.”
미래의 중얼거림이 끝나기가 무섭게!
철컹! 드르르륵-
컨테이너 박스에서 검은 마스크를 뒤집어쓴 남자들이 걸어 나왔다.
저마다 쇠몽둥이와 시퍼런 사시미 칼을 들고 있는 이들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수십여 명에 가까운 숫자에 미래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현실에서도 그러네?”
순식간에 셋을 에워싼 남자들.
미래와 진하, 민호는 서로 등을 맞댄 채 그들과 대치했다. 진하는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보기라도 한 것처럼 담담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우리가 목표인 것처럼 보이는군.”
“그래 보이네. 저것들, 전부 마인인 걸 보면.”
“마인이요?!”
“응, 강태진이 준비해뒀겠지.”
미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별안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그 새끼가 실수한 게 하나 있어.”
“실수라면······?”
“내가 강태진이었다면 마인과 악인을 적당히 섞어뒀을 거야. 토벌자들은 민간인한테 능력을 사용할 수 없으니까.”
그래, 예를 들면 영국의 토벌자를 체포했을 때처럼.
하지만 지금 주변을 에워싼 이들은 모두 마인이었다. 이에 미래는 섬뜩하게 웃었다.
“뭐 덕분에 마음껏 활개치고 돌아다닐 수 있겠네.”
그녀를 알고 있는 마인이 이 말을 들었다면 분명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으리라.
그러나 주변을 에워싼 마인들은 그녀를 잘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도 모두 악덕이 그리 많지 않은 초급, 중급 마인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이때 민호는 심안을 사용했다. 좀 더 정보를 모으기 위함이었다.
[쳇, 세 명 밖에 안 되네.]
[얼마 못 건져 가는 거 아냐?]
[안에 있는 새끼들한테는 말하지 말고, 우리끼리 처리해야겠어.]
‘얼마 못 건져가?’
뭔가 꿍꿍이가 있는 듯했다.
민호는 눈살을 찌푸린 채, 이번에는 오른쪽 귀를 가볍게 두드렸다. 여우귀가 발동하자, 순식간에 주변의 모든 대화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야, 저기 저 새끼, 형님이 말했던 새끼 아니냐?’
‘뭐? 누구?’
‘저 비실비실한 애 말이야. 사로잡으면 5억까지 쳐준다고 하던 애!’
‘그러고 보니 닮은 것도 같은데······.’
‘닮긴 개뿔, 완전 똑같이 생겼잖아!’
‘그럼 다른 놈들보다 저 놈을 먼저 잡아야겠네.’
듣다보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대충 감이 왔다. 여우 귀를 해제한 민호는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강태진이 저희들 목에 현상금을 내건 것 같네요.”
“엥? 그건 또 뭔 소리야?”
미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민호는 그가 보고 들었던 정보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잠시 후, 모든 이야기를 들은 진하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는 민호를 지키면 되는 건가?”
“그런 것 같네. 무려 5억짜리 목을 가지고 계시니까.”
“······이 상황에서 지금 농담이 나와요?”
민호가 황당한 얼굴로 대꾸했다.
풀썩 웃은 미래는 다시 마인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야! 너희들, 내가 누군지는 아냐?”
이어진 쩌렁쩌렁한 외침.
눈웃음을 지은 그녀는 건들거리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거기서 좀만 더 가까이 오면 후회하게 될 거야. 미리 경고했다?”
“흥, 주제에 협박은······.”
그때 한 마인이 그녀를 비웃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한 마디가 유언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콰아아아아앙-!
마인 하나가 컨테이너 박스에 그대로 처박혔다. 몸 이곳저곳이 우그러지고, 철제 컨테이너는 움푹 파였다.
엄청난 피를 쏟아내며 고개를 떨어뜨린 마인.
그의 앞에는 언제 달려 나갔는지 모를 미래가 서있었다.
“뭐, 경고가 아니더라도 전부 여기서 족칠 생각이었지만.”
미래가 상큼하게 웃었다.
그 미소를 기점으로 마인들은 일제히 무기를 빼들었다.
“한꺼번에 달려들어!”
“저 년부터 죽여 버려! 컥!”
미래의 선공으로 인해 시작된 전투.
수많은 마인들 사이에서도 그녀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듯이 마구 주먹을 휘둘러댔다.
그러자 이 틈을 노린 마인들도 있었다.
다섯 명 정도의 마인들이 진하와 민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사전에 이를 파악한 진하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그들에게 겨눴다.
철컥-
“가까이 오지 마라. 총 맞기 싫으면.”
진하가 담담한 어조로 경고했다.
하지만 마인들은 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흥! 우리가 그깟 장난감에 속을 줄 알았냐?”
“쫄지 말고 덤벼!”
“생사불문이니까 배때기만 쑤시면 끝나!”
날이 시퍼렇게 선 사시미 칼을 들이밀며 그들이 땅을 박찼다. 그때 진하의 총구에서도 불이 뿜었다.
타앙-!
“아악!”
제일 선두에 있던 마인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의 무릎에서 검붉은 피가 번져갔다.
“으아아악! 내, 내 다리! 아아악!”
바닥을 뒹굴며 비명을 질러대는 모습은 다른 마인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씨, 씨발. 뭐야?”
“진짜 초, 초, 총이었어?!”
뒤따라 달려들려던 마인들은 진하의 총구가 그들에게 향하자 몸을 움찔거렸다. 한편 진하의 곁에 있던 민호는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형, 그거 쏴도 괜찮은 거예요?”
“일단은 살고 봐야 되니까.”
진하는 단단히 결심을 하고 온 듯, 비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또 맞고 싶은 놈 있냐? 있으면 앞으로 나와.”
마인들은 주춤거릴 뿐, 쉽사리 달려들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멀리서 뭔가가 날아들었다.
쉐에에엑-!
콰앙!
“큭!”
평범한 돌멩이였다. 하지만 그 위력까지 평범하진 않았다.
철로 된 컨테이너 박스에 움푹 박힐 정도였으니.
잠시 후, 돌멩이가 날아든 곳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커다란 몸집을 가진 사십대 중반의 남성. 상태창을 통해 보이는 악덕으로 미루어봤을 때, 최소 상급 마인 이상이었다.
그는 진하를 보자마자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이거 오랜만에 뵙습니다, 강진하 형사님.”
“너, 너 어떻게······!”
반면 진하는 꽤 당황한 듯 말을 더듬거렸다.
아무래도 안면이 있는 사이인 것처럼 보였다. 한편 진하의 외침을 들은 남성은 입가를 뒤틀며 웃었다.
“크흐! 운보다 빽이 좋다는 말이 정말이었나 봅니다. 어떤 분이 걸어놓으신 개 같은 현상수배 때문에 맘 놓고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놈한테 이렇게 복수할 기회도 주고요.”
남성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히죽거렸다.
그 모습에 진하는 입술을 깨문 채로 말했다.
“······민호야. 뒤로 물러나 있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에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진하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만약 마인들이 덤벼온다면 가진 모든 능력을 써서라도 저항할 생각과 함께.
하지만 마인의 습격 중에선 대응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후웅- 쿵!
“컥!”
후두부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충격에 민호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이리저리 비틀거렸다.
뒤이어 뭔가에 맞아 부서진 벽돌 조각이 시야에 잡혔다. 뒤이어 민호는 깨달았다. 누군가가 그를 노리고 벽돌을 떨어뜨리거나 내던진 것이라고.
민호에겐 애초에 그걸 사전에 알아차리고 피할 반사 신경이 없었다.
‘여,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데······.’
속으론 그렇게 생각했지만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비틀거리던 민호는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때 저 멀리서 진하의 외침이 들려왔다.
“민호야! 정신 차려! 큭!”
“하하, 형사님은 저랑 이야기 좀 하시죠. 오랜만에 만났으니 서로 할 이야기가 많을 것 아닙니까?”
진하는 당장이라도 민호를 도우러 오려고 했다.
하지만 상급 마인을 상대하느라 여력이 없어보였다. 이에 민호는 멀리 보이는 진하와 미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미래 누나. 진하 형, 조심······.’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과 함께.
민호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불의의 기습에 당한 탓일까?
민호는 좀처럼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눈앞이 어둡게 변한 것처럼 그의 머릿속도 어두컴컴하게 물들었다. 싸우는 소리와 고함 소리도 이제는 들려오지 않았다. 바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파악하기 힘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도 민호는 점점 정신을 놓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을 완전히 놓으려던 순간!
비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달자님! 정신 차리세요! 전달자님!]
[어, 어떡해. 제가 천계에 도움을 요청해볼게요!]
[절대 정신 잃으시면 안 돼요! 절대요!]
뇌리를 웅웅 울리는 외침에 민호는 이를 악물었다.
‘······아직이야.’
아직 쓰러질 순 없었다.
쓰러져도 하영이를 구하고 쓰러져야만 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지금껏 수많은 동료들이 힘을 보태줬다. 그들의 협력을 무의미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민호는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으드득-!
그의 이빨이 입술을 사정없이 짓이겼다.
아릿한 고통에 조금이나마 정신이 들었다. 뿌옇지만 시야도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여긴 어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처음 보는 장소.
어느 건물의 내부처럼 보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곳에 도착한 직후 봤던 폐건물의 안처럼 보이기도 했다. 주변 풍경을 파악한 민호는 눈알을 옆으로 굴렸다.
‘몸이 왜 말을 안 듣나 싶었더니······.’
그의 두 손은 굵은 밧줄로 칭칭 묶여있었다.
민호가 쓰게 웃던 그때,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이제 눈을 뜬 건가?”
곧이어 들려온 능글맞은 말투.
익숙한 음성이 민호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곧이어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때는 미안했어. 어른스럽지 못하게 괜히 흥분해가지고.”
정장을 입은 남성이 히죽 웃었다.
강태진의 등장에 민호의 시야가 일순간 선명해졌다. 강태진은 혼자 있는 게 아니었다. 바깥에 있는 이들처럼 검은 마스크를 쓴 마인들을 대동한 채였다.
“이번에는 신사답게 대해줄 테니 안심해도 좋아. 아, 물론 이건 압수하겠지만.”
강태진이 손에 든 종이를 팔랑거렸다.
소환비서였다. 아마 민호의 주머니 속에서 찾아낸 것이리라.
이를 본 민호는 이를 으득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하영이는 어디에 있어?”
“걱정 마. 털끝하나 안 건드리고 얌전히 모셔뒀으니.”
강태진은 여유로운 태도로 대답했다.
“그럼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음료수 캔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더니 돌연 폐건물의 후문 쪽을 향해 거칠게 캔을 집어던졌다.
콰앙!
캔은 텅빈 허공을 날아가더니 인근의 벽에 그대로 박혔다.
잠시 후, 캔이 향했던 궤적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뭐하긴. 쥐새끼를 쫓아내려는 거지.”
“나는 그냥 얌전히 지켜보기만 할 거라고.”
후드티를 입은 이십대 후반의 여성, 주효진이 투덜거리듯이 대꾸했다.
하지만 강태진은 그 말을 믿을 정도로 순진하진 않았다.
“가서 처리해. 죽여도 상관없다.”
“예.”
그 말에 곁에 있던 네 명의 마인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던 중 이를 듣고 있던 주효진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 진짜! 동료끼리 이러기야?!”
주효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인들이 시퍼런 칼날을 들이밀었던 탓이었다. 결국 주효진은 얼굴을 마구 일그러뜨린 채 폐건물 밖으로 달아났고, 마인들도 그녀를 쫓아 모습을 감췄다.
고요하게 물든 분위기 속에서.
별안간 민호의 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전달자님! 천계에서 도움을 준다고 해요!]
[조금만 더 버티시면 도착할 거예요!]
[어, 그러니까 앞으로 10분 정도만 더요.]
천계에서 도움을 준다?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준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민호는 속으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소환비서까지 빼앗긴 현재, 기댈 곳은 천계에서 줄 도움밖에 없었기에.
그때 강태진이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하하, 너무 경계하지 마. 난 민하영을 어떻게 할 생각이 없으니까.”
웃기지도 않는 대답.
민호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로 대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