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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171화 (171/182)

171화

Chapter 49. D-DAY (2)

뚜르르르- 뚝!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벌써 다섯 번째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응답뿐. 거리를 달리던 민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젠장!”

어쩐지 아침부터 느낌이 안 좋더라니.

한참을 달리던 민호는 골목을 지나 대로(大路)까지 나왔다. 이어 그가 도착한 곳은 버스정류장. 조금 전, 미래가 이곳으로 오라고 지시했던 탓이었다.

“후우, 후우!”

턱까지 차오른 숨을 진정시키던 그때.

끼이이이익-!

오토바이 한 대가 미끄러지듯이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꺅!”

“와씨! 뭐, 뭐야?!”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오토바이에 탄 이는 사과 한 마디 없이 대뜸 보조 헬멧을 집어 들었다.

“민호야! 이거 쓰고 얼른 타!”

툭-

오토바이에 탄 이는 다름 아닌 미래였다.

민호는 그녀의 지시에 따라 헬멧을 쓰고 뒷좌석에 올라탔다.

“허리 꽉 잡아! 간다!”

요란스러운 굉음과 함께, 민호를 태운 오토바이가 도로를 질주했다.

세찬 바람을 맞으며 미래는 재차 질문을 던졌다.

“민하영은? 연락 돼?”

“······아니요. 휴대폰이 꺼져 있다고 나옵니다.”

“후우. 강태진 이 새끼,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미래가 이를 으득거리며 갈았다.

중간마다 빨간 불이 켜졌지만 미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렸다. 평소였다면 민호가 제지했겠지만 지금 민호에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영국 토벌자들은 왜 경찰에 체포된 겁니까?”

“마약 관련 혐의로 긴급 체포됐어.”

“마약이요?!”

민호가 깜짝 놀라 되묻자, 미래는 그리 큰 일이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명분일거야. 강태진이 한유선한테 부탁했던 거 기억해?”

물론 기억한다.

시댁의 힘을 이용해서 공권력을 움직여달라는 부탁. 민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미래는 굳은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원칙적으로 토벌자들은 민간인한테 무력을 휘두를 수 없어. 그랬다간 페널티를 받고, 심할 경우에는 신의 대리인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거든.”

마인이라면 모를까, 민간인인 경찰들에게는 힘을 휘두를 수 없었으리라. 그래서 순순히 체포를 당한 것일테고.

“그래도 걔들 걱정은 안 해도 돼. 협회에서 대사관을 통해 바로 항의를 한다고 하니까.”

미래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씨익 웃었다.

그러던 중 그녀의 휴대폰에서 요란스러운 벨소리가 들려왔다. 미옥에게서 걸려온 전화. 미래는 재빨리 손을 들어 휴대폰을 터치했다. 그러자 다소 다급해 보이는 미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흘러나왔다.

-미래야! 큰일 났다!

“네? 또 무슨 큰일이······.”

미래가 얼굴을 구기며 묻던 그때.

민호를 부르는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전달자님]

[저, 바쁘신데 죄송하지만 임무가 내려왔어요.]

비단의 목소리.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번에도 공동임무인데······.]

[바쁘시면 간단히 구두로 설명해드릴게요.]

“구두로 부탁할게.”

지금은 한가롭게 임무창을 볼 여유가 없다.

민호의 대답에 비단은 힘찬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네! 일단 내려온 임무는 총 다섯 개에요.]

[앗, 방금 일곱 개로 늘어났어요. 죄송해요.]

[전부 마인 토벌과 관련된 공동임무입니다.]

[그리고 일곱 개 모두 마감시간이······.]

무려 일곱 개에 달하는 협동임무.

그 말에 민호는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닫았다. 한편 미래 쪽도 상황은 마찬가지처럼 보였다.

-······그래서 토벌 임무가 계속 내려오고 있어.

“칫, 강태진. 이 새끼가 또 개수작을 부리네.”

미옥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벌써 일곱 개를 넘겼단다. 거기에 마감시간이 꽤 촉박한 것도 있어서······. 어머? 얘. 잠깐만, 지금 내가 통화하고 있······.

그때 별안간 수화기 너머에 소란이 일었다.

잠시 후, 미옥 대신 새로운 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안입니다.

“이안?”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미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이안은 예의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이쪽은 문제없습니다. 원래 계획대로 가주세요.

“괜찮겠어? 지금 임무창이 터지려고 하는데?”

-예, 상관없습니다.

그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한 자신감이 깃든 목소리가 미래의 귓가를 울렸다.

-고작 이 정도도 하지 못해서야 어떻게 하이드 제르코펜의 제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야, 얼마 못 본 사이에 꽤 믿음직스러워졌는데?”

자신만만한 태도에 미래는 씨익 웃었다.

그러던 중 이안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그리고 옆에서 혜진이 ‘차미래의 제자도 이 정도야 눈감고 식은 죽 먹기’라고 전해달라고 하는군요.

그 한 마디에 미래는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한참동안 웃음을 터뜨리던 미래는 이내 미소를 띤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 그럼 토벌 임무는 전부 맡길게.”

-예. 그쪽도 행운을 빌겠습니다.

뚝!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끊겼다.

이에 미래는 민호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뒤를 맡길 수 있다는 동료가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야. 그렇지?”

민호는 무언으로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고는 비단을 향해 말을 걸었다.

“비단아, 나도 이번 임무는 동료들한테 맡길게.”

[네, 알겠어요. 그렇게 전할게요.]

[아, 그리고 전달자님.]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저도 최선을 다해서 도울게요!]

“응, 고마워.”

민호의 대답을 끝으로 더 이상 비단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강태진이 세운 계략을 눈 깜박할 사이에 해결한 직후. 민호는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곧장 미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근데 누나.”

“엉?”

“저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예요?”

“어디긴. 그야 당연히 강태진이 있는 곳이지.”

“그건 어떻게 알고······.”

“민하영에게 붙여둔 눈은 체포당했지만, 강태진한테 붙여둔 눈은 붙잡히지 않았으니까.”

물론 강태진을 감시하던 토벌자들도 끝까지 그를 쫓진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향하던 방향 정도는 파악했다. 거기에 혜성과 미옥이 모든 힘을 쏟아 부어서 강태진을 추적하고 있으니, 그의 뒤를 잡는 건 시간문제이리라.

의문이 해결되자 민호는 고개를 끄덕인 뒤, 정면을 응시했다.

그런데 그때, 두 번째 난관이 둘을 맞이했다.

-앞에 오토바이, 갓길에 정차하세요. 반복합니다. 전방에 오토바이······.

바로 뒤에 경찰차 한 대가 따라붙은 것.

이를 확인한 민호는 당황한 듯이 소리쳤다.

“누, 누나? 경찰이 쫓아오는데요?”

“무시해도 돼. 강태진이 보낸 놈들일 게 뻔해.”

미래에게서 시크한 대답이 돌아왔다.

미래는 경찰차의 경고를 따르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속력을 높였다. 그러자 경찰차가 갑자기 사이렌을 요란스럽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서울 3381, 정차하세요. 경고합니다. 3381, 빨리 정차하세요.

“흥, 내가 미쳤다고 세울 거 같아?”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쯤에서 세웠겠지만 미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신기에 가까울 정도의 운전 실력을 뽐내며 경찰차를 요리조리 따돌렸다. 그러나 그녀의 질주는 얼마 가지 못했다.

“누나! 앞이요!”

“아, 이런 씨······.”

경찰차 하나가 차선을 차단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탓에 차도 제법 밀려 있어서 멈추지 않고서는 도무지 피할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끼이이익-

결국 미래는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앞 경찰차에 타고 있던 경찰관 둘이 미래와 민호에게 총을 겨눴다.

“내려서 엎드려!”

“손 위로 향하고, 허튼 짓하지 마! 빨리 움직여!”

마치 강력범을 다루는 것처럼 거친 목소리.

그때 미래를 뒤쫓던 경찰자에서도 형사 하나가 내렸다.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다가온 그녀는 수갑 두 개를 꺼내들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너희를 마약 사범 및 밀수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너희는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서, 선배님?!”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수갑을 낚아챘다.

“그만해.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인거 알잖아?”

“그, 그래도 보는 눈이 많으니······.”

“됐어. 내가 책임질 테니까 그만해.”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살짝 들어 앞을 보니, 목소리만큼이나 낯이 익은 이가 있었다.

“진하 형!”

“엥? 뭐야? 우리 쫓아오던 게 너였어?”

민호의 외침에 미래도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둘의 반응을 본 진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위에서 지시가 떨어졌다. 너랑 민호, 그리고 미옥 누님까지 체포하라고.”

“와, 강태진. 이 치사한 새끼가 미옥 아줌마까지 엮어?”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 한나절만 어울려줘라.”

진하가 미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미래는 한숨을 내쉬며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아, 진짜로 이렇게 나오기야?”

“나도 사정이 있으니까 좀 봐줘.”

마치 모든 걸 체념한 것처럼 보이는 모습에 민호는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미래가 눈을 찡긋거리며 웃었다. 나서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 민호는 뭔가 꿍꿍이가 있음을 직감하고는 이내 입을 닫았다.

“아, 거기 말고 여기에 타. 저 차는 기름이 간당간당하거든.”

그때 진하가 도로를 가로막은 경찰차를 가리켰다. 이어 뒷문을 열어 미래와 민호를 들여보낸 뒤, 긴장한 얼굴로 서있는 두 경찰관을 바라봤다.

“미안하지만 저 차에 기름 좀 넣고 와줘. 나중에 비용처리 해줄게.”

“예, 알겠습니다!”

절도 있는 경례를 끝으로 두 경찰관은 후방에 있는 경찰차를 몰고 사라졌다. 이에 진하는 운전석으로 들어가 앉았다. 그러자 이 모습을 본 여 형사가 의아한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선배님이 직접 운전하실 겁니까?”

“왜? 그럼 안 되냐?”

“아뇨, 그건 아니지만······.”

철컥-

그때 문이 잠겼다.

그러자 아직 차에 타지 못한 여 형사가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선배님, 저 아직 안 탔는데······.”

그때 진하가 창문을 살짝 내렸다. 그러고는 담담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세정아.”

“예?”

“미안한데 시간 좀 벌어줘라.”

“선배님? 그게 무슨······.”

하지만 세정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진하가 대뜸 시동을 걸더니, 그녀만 남겨둔 채 훌쩍 떠나버린 탓이었다.

“서, 서, 선배님? 선배님! 야! 강진하, 이 개새······!”

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진 터라 뒷말은 마저 듣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말이었는지 예상이 갔기에 진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뒷좌석에 있던 미래가 대뜸 입을 열었다.

“네 말대로 하긴 했지만, 진짜 괜찮겠어?”

“상관없다.”

진하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어진 미래의 말에 따르면 이건 전부 계획된 일이었다고 했다.

상부에서 내려올 지시를 사전에 파악한 진하가 지시문에서 자신의 이름만 쏙 빼놓고 검거작전에 참가한 것. 그리고 추격을 최대한 피하게 상황을 조작한 다음, 지금처럼 유유히 빠져나오는 것까지.

전부 진하가 세운 계획이었다.

하지만 직접 눈앞에서 그가 사고를 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걱정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징계라도 먹으면 어떡해?”

“그럼 옷 벗고 여행이라도 다니지, 뭐.”

진하가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렸다. 그 모습은 정말로 경찰 자리에 미련이 없는 것처럼 보였기에 미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죄송해요, 형. 괜히 저 때문에······.”

“아니야.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다. 신경 쓰지 마.”

민호가 사과하자 진하는 괜찮다며 손을 흔들었다.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 강태진의 말에 휘둘리는 윗대가리들도 그렇고, 이 거지같은 상황도 그렇고. 그래서 다 깨부수고 싶었을 뿐이야.”

진하의 솔직한 대답에 민호 역시 솔직한 감상을 내놓았다.

“형, 방금 엄청 미래누나 같았어요.”

“······후우, 민호야. 아무리 그래도 우리끼리 욕은 하지 말자.”

“네, 죄송해요. 형.”

“아니, 저기요. 지금 나 여기서 다 듣고 있거든?!”

미래가 황당한 목소리로 외쳤다.

진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올해 들었던 욕 중에서 가장 심한 욕인 것 같아.”

“무시하지 마!”

미래가 운전석을 흔들며 소리쳤다.

불안한 기분을 애써 날려 버리려는 듯, 셋은 그렇게 시답잖은 말을 던져가며 강태진의 뒤를 쫓았다.

***

그로부터 얼마 후.

셋은 경기도 오남읍에 위치한 어느 야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광경과 마주했다.

“하! 누가 사이코 아니랄까봐 취향 한 번 독특하네.”

경찰차에서 내린 미래가 눈앞의 풍경을 보자마자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 내린 민호도 조금 당황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어, 보통 이런 곳은 항구 같은 곳에 있지 않나요?”

“그러니까 취향이 독특하다는 거야. 누가 야산에 컨테이너 박스를 이렇게 쌓아두겠어?”

미래의 말처럼, 눈앞의 장소는 꽤나 독특한 풍경을 자랑했다.

수십여 개에 달하는 컨테이너 박스가 이곳저곳에 놓여 있었던 것. 거기에 길의 끝자락에는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3층짜리 폐건물이 있었다.

제일 마지막에 차에서 내린 진하는 솔직담백한 감상평을 내뱉었다.

“B급 액션영화에나 나올 법한 곳 같네.”

“그러게 말이야.”

미래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저 멀리 컨테이너 박스를 가리키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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