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Chapter 48. 그의 목적 (2)
“몸을 옮기는 것.”
“네?”
“뭐라고요?”
황당한 대답에 민호는 물론이고 혜진까지 깜짝 놀랐다.
미래는 그런 둘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것처럼 씨익 웃었다.
“그 교주는 엄청 늙었었거든. 백 살을 훌쩍 넘겼으니 말은 다 한 셈이지. 근데 부와 권력을 놓은 채로 이승을 하직하기가 싫었던 모양인지, 몸을 옮기려고 했다네?”
다소 황당한 이야기였지만 미래는 농담을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그게 악덕을 이식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니?”
“그게 조건이었대요.”
“조건이요?”
혜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제물은 술자와 비교했을 때, 최소 1할 이상의 악덕이 쌓여야한다고 해. 자세한 이유까진 모르겠지만. 뭐 그래서 금지된 귀물들을 사용해서 제물의 몸에 악덕을 이식했었지.”
이어 미래는 좀 더 설명을 보탰다.
“또 듣기로는 악덕이 높으면 높을수록 효과가 좋다고 해. 근데 그 영감탱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 거지. 아무리 이식된 악덕이라고 해도 일정 수치를 넘기면 천계에서 임무가 내려온다는 걸 말이야.”
미래가 차갑게 웃었다.
혜진이 흥미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했어.”
어깨를 으쓱인 미래가 샐쭉 웃었다.
“일단 교주는 몸을 갈아타는데 성공했어. 하지만 그 몸에 적응하기도 전에 하이드 아저씨가 도착해서 목을 날려버렸지.”
미래는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혜진이 이의를 제기했다.
“어? 그럼 결과적으로 성공한 게 아닌가요?”
비록 초기 진압을 실패했지만 어쨌든 교주는 하이드에 의해 토벌됐다. 그럼 전부 해결된 게 아닌가? 그런 혜진의 질문에 미래는 단칼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지. 제물이었던 소녀를 구하지 못했잖아.”
“아······.”
혜진이 뒤늦게 깨달은 듯 고개를 숙였다.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미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가볍게 헛기침을 한 미래.
곧이어 그녀는 딱딱하게 굳은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 하영이란 애가 수단에서 봤던 그 ‘제물’이랑 신체구조가 상당히 흡사했다는 것.”
“······.”
일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미옥의 조사 결과. 그리고 미래가 털어놓은 옛날이야기.
이 둘을 함께 두고 생각하자 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말씀은······.”
“누가 하영이의 육체를 노리고 있던 소립니까? 그 사이비 교주처럼이요?”
민호가 혜진의 말을 끊고 질문을 던졌다. 다소 창백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경험으로 짐작해보면 그렇지.”
미래의 말이 끝나자 민호는 입술을 거세게 깨물었다.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하영을 찾아가야 하나? 그런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오를 무렵, 미옥이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그래도 그 말은 조금······.”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너무 허황된 소리다.
미옥은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 미래의 말이 한 발 앞섰다.
“아, 깜박 잊고 말하지 못한 게 하나 있는데.”
미래가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그러고는 굳은 한 마디를 씹어내듯 내뱉었다.
“수단 사이비교주의 토벌임무, 지휘관 중 하나가 강태진이었어.”
“······!”
그 말에 미옥을 비롯한 모든 일행의 얼굴이 굳었다.
미래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당시 강태진은 노인의 계획을 매우 흥미롭게 생각했어. 그리고 수단에서 임무를 완료하고 한국에 돌아온 직후, 악행을 저질러서 마인이 됐지. 다른 변절자보다 훨씬 일찍 마인이 된 케이스야.”
그녀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퍼즐 조각이 하나둘씩 들어맞았다.
민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킨 뒤,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 그때가 정확히 언제였나요?”
“꽤 옛날이야. 10년 전까진 아니고, 한 8년 전쯤이었나?”
강태진은 8년 전에 마인이 됐다.
그리고 하영이 입양된 시점도 8년 전이다.
그 교묘한 공통점에 민호는 저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설마······!”
“그래, 내 생각도 비슷해.”
미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기와 조사결과, 몇 가지 증거와 미래의 경험으로 보면 강태진의 목적은 뻔했다.
수단의 사이비교주가 했던 그 행위를 재현하려고 하는 것이리라.
“근데 조금 이상합니다.”
그때 혜진이 이의를 제기했다.
“강태진이란 사람은 아직 젊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 공을 들여서, 그것도 성별을 바꾸면서까지 이런 일을 벌일 이유가 있습니까?”
“끄응, 나도 거기까진 모르겠어.”
혜진의 지적에 미래가 처음으로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게 강태진은 모든 게 완벽한 마인이었다. 최강의 신체 능력을 가진데다가 귀물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어째서 육체를 바꾸려고 할까? 그것도 아무런 힘도 없는 소녀의 육체로.
“그 사이코패스가 뭘 생각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미래가 짜증나는 얼굴로 머리를 북북 긁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거기에 대해선 내가 대답해줄 수 있을 것 같군.”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낯익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이어 모습을 드러낸 이는 다름 아닌 진하. 꽤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걸어온 그는 미래의 곁에 걸터앉으며 지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모습에 미래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 설마 지금까지 잠복해있던 거야?”
“잠복근무는 형사의 일상이니까.”
진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러고는 다시 일행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강태진이 그런 짓을 하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해. 몸이 생각보다 좋지 않거든.”
“······네?”
혜진이 멍하니 되물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래와 민호도 뭔 소리를 하냐는 눈으로 진하를 쳐다봤다.
“엥? 그건 또 뭔 소리야? 그 인간 몸이 뭐가 안 좋아?”
“맞아요. 주먹으로 콘크리트 벽도 부수는 사람인데······.”
“그 몸이 아니라 여기를 말하는 거다.”
진하가 엄지로 명치를 툭툭 건드렸다.
그때 그의 앞에 주스 한 잔이 놓였다. 단숨에 주스를 들이켠 진하는 미옥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 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미래는 잘 알고 있겠지만 8년 전, 강태진은 토벌자들의 캡틴이자, 한국의 신의 대리인들을 이끌던 지부장이었다. 정신적인 지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
진하가 추억을 떠올리듯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래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거 다 가면이었잖아. 결국엔 자기 이득 보려고 계획하고 그랬던 거였고.”
“지금과는 많이 달랐나 봐요?”
“엄청 달랐어. 성격도 좋고 사람도 좋아보였으니까. 그래 딱 반장님처럼······.”
맹창식이 나오자 단번에 이해가 갔다.
“아무튼 그때 강태진과 술을 몇 잔 나눴던 적이 있는데, 그때 얼핏 지병이 있단 얘기를 들은 거 같았다.”
“거짓말이겠지. 아니면 잘못 들었다거나.”
하지만 미래는 진하의 말을 신용하지 않았다. 아니, 믿을 마음조차 없어보였다.
그 반응에 진하는 풀썩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한유선을 미행하면서 확신을 가졌지.”
진하에게 주어졌던 임무.
그 임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미래가 눈을 반짝였다.
“어, 맞아. 그러고 보니 어떻게 됐어? 뭐 건진 거라도 있어?”
“말하면 안 믿을까봐 찍어왔다.”
진하가 테이블 위로 휴대폰을 올려뒀다.
그 철두철미함에 미래는 감탄을 연발했다.
“크! 역시 우리 진하. 아주 믿음직스러워.”
“······시끄러워. 조용히 하고 보기나 해라.”
진하가 휴대폰 화면을 터치했다.
세 개의 영상 중에서 우선 첫 번째 녹화 영상이 재생됐다.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강태진이 한유선을 맞이하는 영상이었다.
-어머님 오셨어요?
-뭘 새삼스럽게. 둘만 있는데 예전처럼 불러.
-하하, 알겠어요. 누님.
둘은 무척이나 오래 알고 지낸 것처럼 보였다.
아니, 단순히 알고 지낸 것 이상으로 친근하게 보였다. 왜냐면 태진에게로 다가간 한유선이 대뜸 그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버렸으니까.
거기에 서로를 부르는 호칭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내가 우리 자기를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그럼요. 그래서 저도 이렇게 달려왔잖아요.
-후후, 역시 우리는 마음이 통한다니까.
강태진과 팔짱을 낀 한유선이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 광경에 혜진은 질겁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 분위기가······.”
“진하야, 이거 혜진이가 봐도 되는 거니?”
“네. 이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아마도.”
마지막에 들려온 ‘아마도’라는 말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무턱대고 보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미옥은 입을 닫았다. 하지만 진하의 대답이 무색하게 둘 사이의 분위기는 더욱 요상 야릇하게 변해갔다.
“잠깐, 일단 이건 우리 어른들끼리 먼저 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참다못한 미옥이 다시 말을 꺼내던 그때.
한참을 끈적거리게 붙어있던 둘이 거리를 벌렸다.
-아, 잠깐만요. 저 이것 좀 먹을게요.
강태진이 가방에서 보온병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그대로 보온병 안의 액체를 들이켰다.
생수 한 병 정도의 양이 모조리 사라지자 강태진의 얼굴에도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한유선은 그런 태진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봤다.
-요즘도 영 안 좋나봐? 점점 양이 늘어나는 거 같네.
-뭐 그렇죠. 그래도 조만간 괜찮아질 거예요.
-그럼 다행이긴 한데······.
한유선의 말을 마지막으로 첫 번째 녹화영상이 끝났다.
그러자 미래는 참았던 질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
“저거 그거 맞지? 너랑 예전에 같이 봤던 그거.”
“중국에서 본 걸 말하는 거라면 맞다.”
진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미옥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응? 저게 뭔데?”
“일종의 마약이에요.”
“마, 마약이요?!”
“응. 고통을 잊게 해주고 신체 컨디션을 회복시켜주는 귀물이야.”
미래가 눈을 가늘게 좁힌 채 보온병을 노려봤다.
이때 혜진이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그런데 능력만 들어서는 귀물처럼 보이진 않는데요?”
“그렇지. 효과만 보면 그렇지.”
미래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핏 듣기에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효능이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귀물들은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저게 은근히 중독성이 심한데다가 마시면 마실수록 효과가 줄어서 양을 늘려야 되거든. 최초 투여는 혀에 한 방울만 묻혀도 되지만 쟤는 거의 물마시듯 마시잖아? 저건 그냥 중독자라고 봐야 돼.”
미래의 대답에 혜진은 납득한 듯 입을 닫았다.
그때 두 번째 영상이 재생됐다.
-그래도 이렇게 자기랑 같이 있으니 마음이 좀 편하다.
-그래요?
-응. 하영이 걔는 영 마음에 안 들어. 아주 볼 때마다 열불 터져서 죽겠어.
별안간 언급된 하영의 이름.
민호는 귀를 쫑긋거리며 영상에 집중했다.
-또 왜요?
-아니, 한국 왔으면 다음 연주회를 위해서 레슨 시간도 늘리고 그래야 되는데 허구한 날 밖으로만 싸돌아다니잖아.
-그 나이 대 애들이 다 그렇죠 뭐.
-어렸을 때는 몇 대 때리면 해결됐는데 요새는 머리 좀 컸다고 바락바락 대들기나 하고······. 휴우, 요즘 스트레스 받아서 죽겠다니까?
콰앙-!
한유선의 말이 끝나자마자 민호의 주먹이 테이블을 강타했다.
몇 번 때리면 해결됐다는 말에 분을 이기지 못한 탓이었다. 매서운 눈빛으로 영상 속의 유선을 노려보던 민호는 금세 평정을 되찾고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욱해서 그만······.”
“괜찮아.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하니까.”
미래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멈췄던 영상이 다시 재생됐다.
-재능도 많이 만들어줬는데 고마워할 줄은 모르고.
-하여간 볼 때마다 짜증나죽겠어.
이어진 한유선의 말에 미옥이 눈살을 찌푸렸다.
“재능을 만들어줬다고?”
“사부, 저게 무슨 소리······.”
궁금한 부분이 나오자 혜진은 미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껏 으레 그랬던 것처럼 질문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미래의 표정은 마치 듣지 말아야할 것을 들은 것처럼.
잔뜩 일그러져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