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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165화 (165/182)

165화

Chapter 47. 작전 (2)

매년 여름.

예종대학교에서는 특별한 축제가 열린다.

통칭 여름 축제라고 불리는 이 축제는 재학생, 그리고 지역 내의 소상공인들이 대거 참여하는 지역 출제로도 유명했다.

봄이나 가을에 하는 축제와 조금 차이가 있다면 유명 가수나 아이돌 그룹을 부르지 않는다는 점. 그야말로 그저 먹거리와 놀 거리만으로 이루어진 축제였다.

그럼에도 축제는 사람으로 붐볐다.

민호가 하영과 함께 인파 사이를 걷던 그때.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 상황은 순조로워 보이네. A팀은 어때?]

[아직 특별해 보이는 건 없다.]

진하가 무뚝뚝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와 혜성으로 구성된 A팀의 목적은 한유선의 추적.

혜성이 카페에서 지시를 내리면 진하가 직접 한유선을 미행하고, 또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임무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그래? 강태진은?]

[없는 것 같다. 탐지기에도 파악이 되지 않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

[알겠다.]

진하의 짧은 대답을 끝으로.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하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오빠! 저기 봐요!”

“응?”

“저기요. 닭똥집 볶음밥 팔고 있는 곳이요!”

하영이 두 눈을 반짝거렸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그녀는 추억에 빠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옛날 생각나네요. 예전에도 하굣길에 종종 사먹었잖아요.”

“맞아. 그랬지.”

“하아, 그때 진짜 맛있었는데.”

하영이 추억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새천사 보육원에서 함께 살던 시절. 민호와 하영은 같은 재단의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친해진 이후부터는 곧잘 함께 보육원으로 가곤 했다.

그리고 당시 하굣길에는 다소 특이한 군것질거리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소 염통 꼬치라거나 곱창볶음과 같은, 어린애들 입맛과는 거리가 먼 군것질거리였다.

그 중에서 하영이 제일 좋아했던 게 바로 닭똥집 볶음밥이었다.

“그럼 오랜만에 하나 사먹어 볼까?”

“좋아요!”

민호의 제안에 하영이 단번에 미소를 지었다.

좀 특이한 메뉴 때문일까? 닭똥집 볶음밥을 파는 가게는 다른 곳에 비해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민호와 하영은 별 기다림 없이 바로 메뉴를 주문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지금 주문되나요?”

하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잠시 후, 가게에서는 앳된 얼굴의 소녀가 나타났다.

교복을 입은 무표정한 얼굴의 소녀. 바로 혜진이었다.

“어서 오세요. 어떤 걸로 드릴까요?”

“닭똥집 볶음밥 2인분이요!”

“10분 정도 걸리니 여기 앉아서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혜진이 그늘 막 아래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푹신한 방석이 깔린 두 개의 의자. 민호와 하영은 뜨거운 햇볕을 피해자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가게에 있던 혜진의 눈이 반짝였다.

[여기는 B팀. 대상이 목표 지점에 안착했습니다.]

귓가를 울리는 혜진의 목소리를 들으며 민호는 그에게 주어진 임무를 상기했다.

하영을 이곳으로 오게 만드는 것.

그것이 민호에게 주어진 1차 목표였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민호는 하영이 추억에 빠질만한 음식을 선정한 뒤, 이를 판매하는 가게를 부랴부랴 냈다.

[그럼 보물을 발동하겠습니다.]

혜진의 한 마디가 끝나기가 무섭게.

하영이 깔고 앉은 방석이 일순간 반짝거리며 빛났다.

[정화의 방석]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방석은 미래에게서 받은 보물이었다. 대상이 소지하고 있는 귀물의 힘을 일시적으로 약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방석.

민호가 하영을 이곳으로 이끈 이유는 오직 이 방석에 앉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 방금 생각났는데.]

그러던 중 돌연 미래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이제 막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생각해보니 한 20분은 앉아 있어야 될 거 같아.]

[네? 왜요?]

[미옥 아줌마가 넉넉하게 2시간 정도 필요하다고 했거든.]

정화의 방석의 효과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최소 10분 이상은 앉아 있어야했다.

그래야 효과가 1시간은 지속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래는 이제 와서 10분을 더 추가했다. 이에 혜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어쩔 수 없네요. 그럼 플랜B를 가동하겠습니다.]

[플랜B? 그런 게 있었나?]

미래가 의아하듯 묻던 그때.

주방에 있던 혜진이 민호와 하영에게로 다가왔다.

“죄송해요. 오시기 조금 전에 단체 주문이 들어와서······.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마실 것 좀 드릴게요.”

“아, 네. 알겠어요.”

들어온 적도 없는 단체 주문을 핑계로, 혜진은 10분을 추가로 확보했다.

이어 민호와 시선을 교환한 그녀는 미리 준비해둔 것처럼 보이는 노트 하나를 건넸다.

“커피랑 녹차, 메밀차가 있습니다.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혜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영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물었다.

“메밀차요? 혹시 시원하게······.”

“네, 가능합니다.”

“그럼 그걸로 부탁드릴게요. 두 잔이요.”

“네.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고개를 끄덕인 혜진이 주방으로 사라져갔다.

잠시 후, 얼음이 듬뿍 담긴 메밀차 두 잔이 하영과 민호의 앞에 놓였다. 새하얀 손으로 메밀차를 감싸 안아든 하영은 아련한 눈빛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또 옛날 생각이 나네요.”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은 날, 엄마가 메밀차를 끓여줬었지.”

“맞아요. 오늘처럼 얼음 타서 먹었던 기억이 나요.”

하영이 배시시 웃었다.

이후 둘은 메밀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추억 이야기에 빠졌다.

옛날이야기를 나누자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어느덧 20분이 다 되자, 혜진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B팀,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역시 내 제자. 잘했어!]

[뒷정리 후, 본부로 복귀하겠습니다.]

앞으로 두 시간 동안은 귀물이 효능이 약화되리라.

목표를 달성한 혜진은 미리 준비해둔 닭똥집 볶음밥을 가져왔다.

달그락-

“주문하신 닭똥집 볶음밥 나왔습니다.”

큼직한 닭똥집이 그대로 들어간 볶음밥.

달짝지근한 간장소스 냄새에 하영은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다.

“와, 진짜 옛날이랑 너무 똑같다. 그쵸 오빠?”

“그러게. 맛도 똑같을라나?”

“얼른 먹어봐요! 잘 먹겠습니다.”

하영이 볶음밥을 크게 한술 떴다.

잠시 후, 그녀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세상에, 어떻게 그때 그 맛이랑 똑같을 수가 있죠?!”

그야 당연했다.

왜냐면 민호가 [요리사의 손] 능력을 사용해 당시의 맛을 재현해냈으니까. 하지만 이를 모르는 하영은 연신 감탄하며 분주히 숟가락을 놀렸다.

“하아, 이건 정말······.”

당시의 추억이 떠오른 걸까?

하영은 두 눈을 감은 채 볶음밥의 맛을 음미했다. 민호 역시 추억을 더듬어가며 식사를 마쳤다.

맛있는 식사와 추억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자 하영은 좀 더 활발하게 변했다.

“오빠! 저희 저기도 가 봐요.”

“아하하! 엄청 웃겨요. 사진 찍어야지.”

“와, 진짜 신기하다. 그쵸?”

이어폰에서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으니 좀 더 데이트다워졌다.

하지만 민호의 얼굴에는 묘한 긴장감이 맺혀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2차 임무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이어폰에서 지직거리는 소음이 들렸다.

[A팀, 중간보고.]

곧이어 들려온 건 진하의 목소리.

그는 평소보다도 훨씬 굳어진 말투로 말을 이었다.

[······강태진이 등장했다.]

[뭐? 진짜?]

[일단 후퇴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강태진이라는 이름 석 자에 미래와 혜진이 놀라 외쳤다.

그런데 정작 현장에 있는 진하는 담담했다.

[괜찮아.]

[이럴 줄 알고 공덕을 전부 털어서 보물을 샀으니까.]

이번 임무를 위해서 진하는 그간 모았던 공덕을 전부 털었다.

거기에 공덕 상점에서 미행과 잠복임무에 특화된 보물 하나를 샀다. 민호가 가진 햇볕으로 짠 비단망토보다 훨씬 좋은 능력의 보물.

게다가 진하는 관찰자에게만 주어지는 도깨비감투도 가지고 있었다.

어지간해선 들킬 일이 없으리라.

[그래도 만에 하나를 위해 좀 더 거리를 벌리겠다.]

[응응! 그래. 몸조심하고!]

진하와 미래의 대화를 들으며, 민호는 돌연 자리에 멈춰 섰다.

뒤이어 미옥의 목소리가 들려온 탓이었다.

[여긴 C팀. 방금 세팅이 끝났어.]

[민호야, 지금 바로 와도 돼.]

미옥이 있는 장소로 가는 것.

이게 민호에게 주어진 2차 임무였다.

마침 미옥이 있는 근처를 지나는 중이었기에 민호는 저만치 앞서가는 하영을 불러세웠다.

“하영아.”

“네?”

“우리 저기나 한 번 가볼래?”

하영의 시선이 민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으로 따라 움직였다.

그곳에 있는 것은 아담한 천막 하나. 그 앞에 놓인 간판을 본 하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주랑 손금 카페요?”

“응, 예전부터 좀 궁금했거든. 재물운이나 연애운 같은 거 있잖아?”

민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영이 깜짝 놀라 외쳤다.

“여, 여, 연애운이요?!”

“으응. 뭐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지.”

생각보다 격한 반응에 민호는 멋쩍게 웃었다.

이에 하영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오, 오빠만 괜찮으시다면 저는 좋아요······.”

“그래? 그럼 이참에 한 번 봐보자.”

“헤헤, 네!”

하영이 방긋 웃었다.

이어 미옥이 있는 천막으로 향하던 도중, 미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추파를 던지듯이 경박한 휘파람 소리와 함께 미래는 말을 이었다.

[여기는 센터. 뭔가 분위기가 달달하니 좋아 보이는 게, 그린 라이트로 보인다.]

[······쓸데없는 말하지 말고 진지하게 임해.]

[뭐가 쓸데없는 말이야! 우리 민호의 연애사가 걸린 일인데!]

[사부, 놀지 말고 일하세요.]

그냥 흘려들어도 좋은 말이었다.

나직이 한숨을 내쉰 민호는 이윽고 천막 앞에 당도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바깥과는 달리 시원한 공기가 몸을 휘감았다.

“호호, 어서들 와요.”

나긋한 웃음소리와 함께 어느 중년 여성이 둘을 맞이했다.

마녀 복장을 하고 있는 그녀. 바로 미옥이었다.

“실례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민호와 하영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이에 미옥은 입가 가득히 미소를 띤 채 질문을 던졌다.

“그래, 우리 젊은이들이 뭐가 궁금해서 왔나?”

“음, 그게······.”

그 질문을 듣기가 무섭게, 민호는 곧장 본론을 꺼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보다 하영의 말이 좀 더 빨랐다.

“여기 이거요. 재물운이랑, 건강, 그리고 여, 연애운이요.”

이건 대본에 없던 행동이다.

민호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미옥은 조금도 티를 내지 않았다. 갑작스런 변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유롭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후후, 그래요. 그럼 우선 재물운부터 봐드릴까?”

“네!”

“흠흠, 어디보자. 일단 손금부터 한 번······.”

미옥이 하영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민호는 그에게 주어진 2차 목표를 떠올렸다.

미옥에게는 대상과의 신체접촉을 통해 대상에 관한 정보를 얻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선 최소 1시간 이상, 대상과 접촉해 있어야하며 또 대상에게 귀물이 있어선 안 됐다.

그래서 미래는 미옥의 능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이런 작전을 짰다.

또 하영의 의심을 최소화하고, 또 강태진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하영은 의심하기는커녕 축제를 한껏 즐기고 있었고 강태진 역시 한유선과 만나느라 하영을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민호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무렵, 어느덧 결과가 나왔다.

“······마지막으로 연애운은 아주 좋은 편이네.”

“정말요?”

하영이 반색하며 되묻자 미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손금으로도 잘 맞고 사주로 봐도 괜찮은 편이야. 분명 서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미옥이 미소를 지었다.

반면 하영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졌다.

“아, 서로······.”

서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다.

그 한 마디에 하영의 얼굴이 어둡게 물들었다.

그 갑작스런 변화에 미옥은 헛기침을 거세게 했다.

“크흠흠! 그, 그래도 역시 멀리서 새로운 사랑을 찾는 것보단 가까운 곳에서 찾는 게 낫지. 그래, 예를 든다면······.”

잠시 말을 흐린 미옥이 하영의 눈치를 살폈다.

“둘이서 한 번 진지하게 만나 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

“오, 오, 오빠랑 저요?”

하영이 당황한 듯 말을 더듬거렸다.

그런데도 방금 전보다는 훨씬 표정이 밝아졌다. 이를 본 미옥은 입을 가린 채 웃었다.

“응. 잘 어울려 보여서. 호호, 미안해요. 나도 참 주책이지.”

“아, 아니에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영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손금과 사주풀이가 끝나자 미옥은 민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보다 총각은 뭐 궁금한 거 없나?”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신호다.

미옥의 말에 민호는 두 눈을 빛냈다. 그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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