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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163화 (163/182)

163화

Chapter 46. 교차로 (2)

“지금 뭘 하려고 했던 거지?”

얼음장보다도 차가운 목소리에 민호는 몸을 흠칫 떨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그녀의 시선이 향해 있는 곳이 민호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대답해.”

재차 이어지는 추궁.

이에 태진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더니 별안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큭! 젠장!”

그때 태진의 팔과 다리가 순간적으로 붉게 물들었다.

꽈드득-!

몸을 낮게 숙인 태진.

당장이라도 민호에게 달려들 것처럼 보이던 그때!

태진은 지면을 힘차게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도무지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는 점프력이었다. 그 광경을 끝으로 태진은 삽시간에 모습을 감췄다.

“뭐······.”

그 모습에 민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이었던 탓이었다.

콘크리트 바닥을 두부처럼 짓밟고 철문을 뜯어내는 괴물이, 평범해 보이는 소녀의 등장에 꼬리를 말고 도망을 친다는 것이.

한편 강태진이 도망친 뒤. 창우와 효진은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죄송해요, 대장.”

“면목이 없습니다, 보스.”

마치 태진을 제때 막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류화연은 둘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여전히 차디찬 음성으로 말했다.

“강태진을 찾아. 그리고 제거해.”

“네?”

“진심이십니까?”

효진과 창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처음 세운 계획에 의하면 [용]은 아직 처분할 때가······.”

창우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류화연의 명령을 반박했다. 그러나 그는 마저 말을 잇지는 못했다. 류화연이 사납게 눈을 빛내며 으르렁거렸으니까.

“두 번 말하게 만들지 마.”

“······알겠습니다. 동지들에게 전하겠습니다.”

뭐라고 반박을 하려던 창우가 즉각 입을 닫았다.

말 한 마디로 마인을 수족 부리듯 다루는 모습을 보아하니, 과연 <백야>의 보스이긴 한 모양이었다.

새삼스럽게 소녀가 류화연임을 확인하자 민호는 본능적으로 발을 뒤로 뺐다. 무슨 일에선지 류화연은 강태진이라는 커다란 위협에서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

그럼에도 민호는 안심할 수 없었다.

왜냐면 상대는 미래가 증오하는 변절자들의 대장이자, 말 한 마디로 강태진을 도망치게 만든 괴물이었기에. 이에 민호는 류화연의 자그마한 등을 노려보며 품속에 손을 넣었다.

‘여차하면······.’

혼란을 틈 타 율에게서 받아놓은 게 있었다.

바로 소환 비서였다. 그가 알고 있는 이를 불러낼 수 있는 보물. 지금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이는 민호가 알기로 오직 한 명밖에 없었다.

‘하이드 씨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일전에 하이드가 영국으로 귀국하던 때.

하이드는 민호의 부탁 하나를 들어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당시 민호는 하이드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언젠가 딱 한 번, 내가 당신이 와주길 바랄 때 망설임 없이 바로 부름에 응해달라고.

강태진과 대치했을 때는 소환 비서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쓰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후우.”

그러던 중 류화연이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하늘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몸을 돌렸다.

또각또각-

이어 그녀는 민호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민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한 손으로는 품속의 소환 비서를 만지작거렸다. 여차하면 언제든지 바로 하이드를 소환할 수 있게.

우뚝-

세 걸음 정도를 사이에 두고.

류화연이 자리에 멈췄다.

잠시 후, 그녀의 입에선 방금 전까지 주변을 압도했던 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괜찮아?”

“······어?”

“다친 곳은 없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민호를 바라보는 류화연.

그 이질적인 모습에 민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이내 표정을 굳히며 쭈뼛쭈뼛 뒷걸음질을 쳤다. 류화연의 등 뒤로 보이는 창우와 효진이 그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그러자 민호가 경계하는 이유를 눈치챈 걸까?

류화연이 몸을 돌렸다.

“둘 다 내려가 있어.”

“대장. 그치만······.”

효진은 그럴 수 없다는 것처럼 대답하려고 했다.

이에 류화연은 아까 전, 창우의 입을 다물게 했던 것처럼 눈빛을 매섭게 번뜩였다. 그 모습에 효진과 창우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한 채 계단으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둘의 기척은 이제 아예 느껴지지 않을 무렵이 되어서야 류화연은 다시 민호를 바라봤다.

“미안해.”

뒤이어 그녀는 민호에게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런 행동에 민호가 당황하자, 류화연은 눈썹을 처연하게 늘어뜨린 채 말했다.

“이번 일은 내 실책이었어. 무서웠다면 사과할게.”

“······.”

“율이한테도 미안하네. 오랜만에 보는 건데 이런 식으로 보게 돼서.”

이어진 말에 민호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류화연은 마치 예전에도 율을 본 적이 있다는 듯이 말한 탓이었다.

이에 율도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엑!? 저, 저를 아세요?”

“그럼. 널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네 덕분에 나는······.”

옅은 미소와 함께 류화연은 말을 흐렸다.

한편 민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대로 멍하니 있다간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들기만 할 뿐이었다. 평정을 되찾은 그는 몸을 비스듬히 돌렸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연고를 꺼내 이마에 조금 발랐다.

[주시자의 눈]을 활성화시키기 위함이었다.

==

[주시자의 눈]이 생성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대상이 보는 광경을 보거나 녹화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현재 시청자: 1명(차미래)

-남은 시청시간: 29분 45초

==

미래가 이 광경을 보고 있다!

의도치 않은 희소식에 민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라면 분명 민호의 위치를 찾을 수 있으리라. 이에 민호는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류화연을 돌아봤다.

“왜 나를 구해준 거지?”

우선 지금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그가 알기로 류화연과 강태진은 동료였다. 그런데 방금 전에는 동료사이라고 하긴 너무나 적대적으로 보였다. 이에 민호는 의문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서.

류화연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당연히 너이기에 구해준 거지. 내 소중한 사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녀가 싱긋 웃었다.

언젠가 그녀에게 이와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처음 임무를 실패한 날. 비가 내리는 공원에서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역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답다고.

당시를 떠올린 민호는 의아한 듯이 되물었다.

“대체 왜 나를 그런 식으로 부르는 거······.”

“민호야.”

그때 류화연이 민호의 말을 끊었다.

그녀는 두 눈을 반짝거렸다. 그 눈빛은 다른 마인들을 대할 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류화연은 두 눈 가득히 별빛을 담은 채로 말을 이었다.

“네게 소원 하나가 있다고 하자. 아주 오랫동안 빌어 왔던 소원이야. 그런데 어느 날, 그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어떤 생각을 할 거 같아?”

그야 물론.

굉장히 기쁠 거다. 그리고 사랑스러워 보여서 어쩔 줄을 모르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 민호는 자연스럽게 류화연이 뭘 말하고 싶은지 깨달았다.

“네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나라는 소리야?”

“맞아. 오직 너만이 내 소원을 이뤄줄 수 있어.”

“대체 소원이 뭐기에······.”

민호가 얼떨떨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

그 말에 류화연은 다시 입을 열어 대답했다.

“모든 선인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이다. 분명 류화연의 ‘대의’라는 것이 이와 비슷했다.

민호는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꼈다.

질문을 하면 대답이 돌아오긴 하는데, 대답을 들으면 들을수록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래서 민호는 한숨을 내쉬며 복잡한 머릿속을 일거에 털어버렸다.

그러고는 다른 질문을 하기로 했다. 그래. 이를테면 ‘열쇠’가 무엇인지 라거나?

하지만 그때, 류화연이 한 발 먼저 입술을 달싹였다.

“너와 나는 같아.”

“엉?”

뜬금없는 말에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류화연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너는 선인들에게 기적을 전해주는 게 좋아서 전달자로 살고 있어. 그리고 나는 모든 선인들을 위해 <백야>를 만들었지. 우리는 서로 가는 길은 다르지만, 목적지는 같다고 볼 수 있는 거야.”

류화연이 배시시 웃었다.

순진무구한 미소와 함께 그녀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는 길에는 교차로가 하나 있어. 여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지.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되거든.”

“그건 또 무슨 헛소리······.”

수수께끼처럼 들리는 말에 민호가 눈살을 찌푸리던 그때.

별안간 류화연이 낯빛을 굳혔다.

“민하영, 알고 있지?”

“······!”

그러자 민호의 얼굴도 덩달아 굳어졌다.

설마 그녀의 입에서 하영의 이름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민호가 놀란 표정을 짓자, 류화연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니,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웃기는 일이네. 네게 있어 그녀는 무척이나 소중한 사람이니까. 설령 천계에서 내려온 임무라고 해도 말이야. 그렇지?”

류화연은 5성급 임무가 내려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임무가 두 가지라는 것도. 또 그 중 하나가 토벌 임무라는 것도. 전부 다.

“나도 잘 알고 있어. 민하영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온 동생이라는 걸. 네 가족과 다름없는 존재라는 걸. 하지만 민호야. 그 여자만큼은 안 돼.”

“뭐?”

“민하영은 사라져야 돼. 그게 옳은 길이야.”

류화연은 명령하듯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민호는 이를 악물었다.

뿌드득-!

“······네가 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하나같이 하영이를 노린다.

왜 그 착한 아이를 이토록 못살게 군단 말인가?

민호가 두 눈을 매섭게 번뜩거렸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라는 걸 알면서 나더러 하영이를 포기하라고? 네가 뭔데? 어디서 마인 따위가 감히······!”

강태진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던 그다.

민호는 으르렁거리며 류화연을 노려봤다. 그럼에도 류화연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민호의 눈빛을 가볍게 받아넘긴 그녀는 당당히 대답했다.

“난 민하영을 없앨 거야. 그래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으니까.”

그 발언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강한 결의와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류화연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 여자가 살아있으면 모든 게 물거품으로 돌아가. 내 소원도, 또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선인들도 모두 어둠 속으로 떨어지고 말거야.”

“······.”

“너도 전달자라면, 모든 선인을 사랑한다면 내 뜻을 따라주길 바라. 난 네게 절대 해가 되는 짓은 하지 않을 거야. 넌 나의 소원을 들어줄 소중한 열쇠이니까.”

마지막 말을 마친 류화연이 빙그레 웃었다.

이에 민호는 반박하고 싶었다. 그녀의 말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따지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걸

그럼에도 민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마인 따위가 하는 말은 믿을 수 없어.”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었기에.

그러자 류화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그럴 수밖에 없을 거야. 내가 아무리 말해도, 넌 그런 사람이니까.”

이어 류화연이 손을 뻗었다.

그 행동에 민호는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가 민호를 공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까치발을 든 채 민호의 머리를 쓰다듬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알아줘.”

옅은 미소와 함께.

류화연이 말했다.

“난 지금까지 네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 정 의심이 차미래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겠다. 지금 [주시자의 눈]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을 테니까.”

“······!”

그녀는 처음부터 전부 다 알고 있었다.

민호의 얼굴에 당황어린 기색이 맺히는 걸 바라보면서 류화연은 몸을 돌렸다.

“부탁할게. 모든 선인들을 위해서 부디 옳은 결정을 해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류화연은 옥상을 내려갔다.

홀로 남겨진 민호는 멍하니 서있었다.

그녀를 붙잡을 생각도, 시간을 벌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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