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을 전해드립니다-155화 (155/182)

155화

Chapter 43. 맹창식 (5)

“그야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

류화연이 옅게 웃었다.

이어 그녀는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사흘만 고생해주렴.”

“네?”

류화연의 말에 효진은 일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먼저 입을 연 이가 있었다.

“보스, 그 말씀은······?”

“사흘 뒤가 결행 예정일이거든.”

이어진 대답에 이번엔 창우도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민망함을 느낀 걸까?

류화연은 머쓱하게 웃었다.

“미안해, 늦게 말해줘서.”

“아, 아닙니다. 이 정도면 예상보다 훨씬 일찍 알게 된 편이죠.”

“맞아요. 예전에 결행 3시간 전에 말해준 거에 비하면 훨씬 빠른 거······.”

효진이 맞장구를 치며 말을 하던 그때, 창우가 그녀를 흘겨봤다. 이에 효진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고 류화연은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류화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승현이도 잘 하고 있니?”

“아, 그게······.”

승현이라는 이름에 효진이 미간을 찡그렸다.

“고 계집애가 제 연락은 씹, 아니 받질 않아서요. 아무래도 아저씨나 대장이 직접 연락해보셔야 될 거 같습니다.”

그런데 효진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우웅-

류화연의 손에 들린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인은 방금 전까지 나눴던 이야기의 주인공, 서승현이었다.

류화연은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화면이 뒤바뀌었다. 영상통화로 전환되더니, 이내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니! 저 찾으셨어요?

오리 캐릭터가 그려진 잠옷을 입은 소녀.

류화연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지만, 승현은 그녀에게 존대를 했다.

“응, 딱 맞게 전화했네?”

-헤헤, 그럼요! 전 24시간 동안 언니만 보고 있는걸요?

승현이 부끄럽다는 듯이 몸을 배배 꼬았다.

그 모습에 효진은 질색하듯 얼굴을 구겼다.

“윽, 미친 완전 스토커잖아?”

-야, 지금 뭐랬냐?

“야? 이 계집애가 미쳤나? 지금 나한테 야라고 한 거야?”

-그럼 거기에 너 말고 누가 있는데?

티격태격하는 둘을 보며 창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둘 다 그만해라. 보스 앞이라는 걸 잊은 거냐?”

-아, 맞아. 죄송해요, 언니.

소란이 진정되자 류화연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보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임무를 물어보고 싶으신 거라면 완벽히 수행하고 있어요! 지금도 채팅을 하고 있거든요. 조만간 한국에 오는데, 도착하면 같이 커피나 한 잔 하기로 했죠. 사실 전 언니 말고 다른 사람들은 안 만나는데 이번엔 특별히······.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대답에 류화연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래. 승현이도 한 일주일 정도만 더 수고해줘.”

-언니 부탁이라면 평생 지켜봐도 상관없어요! 저는 언니 말이라면 지옥 불구덩이도······.

또 말이 길게 이어질 것처럼 보이자 류화연은 대뜸 통화 종료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창우와 효진을 돌아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승현이도 잘 하고 있는 모양이네.”

“아까 들으셨잖아요? 걘 대장 말이라면 불구덩이에도 뛰어들 애라니까.”

효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던 중 잠자코 있던 창우가 입을 열었다.

“보스. 외람된 말이지만 정말 괜찮겠습니까?”

창우가 몸을 숙인 채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 아가씨를 저희 쪽으로 영입하면 향후 대의를 위해서라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만······.”

“신창우.”

그때 류화연이 나직한 어조로 그를 불렀다.

무표정한 얼굴. 그녀의 모습에 창우는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아까 했던 말 기억해?”

“······예. 도구가 때론 흉기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맹창식에 한정해서야. 그리고 이 경우에는······.”

잠시 말을 흐린 류화연.

그녀의 시선이 휴대폰 화면으로 향했다.

“흉기를 떠나서 모든 걸 물거품으로 만들 폭탄이지.”

그곳에 있는 건 어느 여성의 사진.

이십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류화연은 화면 위에 떠오른 여성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예전에 말했듯이 이번 일은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야.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대의를 이어갈 수 있을지, 그만둬야할지가 결정돼.”

류화연의 말과 함께 창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저희가 할 선택은······.”

“이 여자를 없애는 것.”

류화연이 단호하게 읊조렸다.

그녀는 화면 속의 여성을 노려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민하영은 살아있어선 안 돼. 절대로.”

***

그로부터 약 이틀이 지났다.

미래는 맹창식과 함께 장소를 옮겨가며 대부분의 정보를 캐냈다. 그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정보란 정보는 모두 얻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물론 소득은 많았지만, 정작 얻고 싶어 했던 정보는 별로 알아내지 못했기에 미래는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아저씨도 열쇠가 뭔지는 모른다 이거지?”

미래가 인상을 찌푸린 채 물었다.

얼마 전, 그녀는 민호에게 접근한 정체불명의 소녀가 류화연이라는 걸 알아냈다. 창식이 그렇게 자백했으니까. 그래서 미래는 류화연이 민호에게 접근한 이유에 대해 물었고, 거기에 대해선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공민호는 대의에 필요한 열쇠다.’라는 대답이.

하지만 문제는 그 열쇠가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하며 대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래. 계속 말했다시피 기억이 지워졌거든.”

창식이 속편한 얼굴로 대답하자 미래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에휴, 알겠어. 그럼 이건 우리 쪽에서 알아서 해야지 뭐.”

미래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 모습을 보며 창식은 허허 웃었다.

“그럼 이제 놔주는 건가?”

“놔주기는 개뿔, 지워진 기억을 되살리는 법을 알아낼 거야.”

눈을 가늘게 좁힌 미래가 창식을 흘겨봤다.

이어 그녀는 재차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일단 그러기 위해선······.”

미래의 시선이 창식의 곁으로 돌아갔다. 그곳에 있는 건 이안과 메리.

한편 미래의 시선을 받은 이안은 씨익 웃었다. 자신만만한 미소였다.

“걱정 마세요. 안전하게 배달하고 오겠습니다.”

맹창식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얻은 뒤.

미래는 그의 뒤처리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금방 결론을 내렸다.

바로 영국에 있는 신의 대리인 협회 본부로 보내는 것. 협회 본부라면 지워진 기억을 되살릴 수도 있을 거라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또 굳이 영국까지 보내는 이유는 하나가 더 있었다.

“내게 있어선 놔주는 것보다 더 좋군. 적어도 거긴 안전할 게 아닌가?”

창식이 여유로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미래는 창식을 빤히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아저씨는 진짜 진하한테 고마워해야 돼. 걔 부탁만 아니었으면 그냥 바로 여기서 기억을 싹 날려버렸을 거야. 그 다음엔 아저씨가 어떻게 되던 내 알바 아니고.”

미래는 마인을 극도로 증오했다. 이는 마인 후보자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민호는 일전에 미래가 신은미의 기억을 무작정 날려버렸던 걸 떠올렸다. 그 탓에 신은미는 이전에 잠깐 교제했던 남자친구에 대한 기억도, 대학에 들어와서 쌓았던 수개월 간의 기억을 모조리 잃어버렸다.

과거 전적으로 미루어봤을 때, 미래는 이번에도 그때와 똑같이 행동했으리라.

다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건 진하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다. 하다못해 강태진을 잡을 때까지 만이라도 기억을 지우는 걸 유예해달라고 말했다.

결국 마음이 약해진 미래는 창식의 기억을 지우는 대신, 그를 영국으로 보내는 걸 택했고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딸도 영국으로 불렀다고 했지?”

그때 미래가 잊고 있던 걸 떠올린 듯이 물었다.

그 말에 창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편이 더 안전할 것 같으니까.”

“현명한 판단이야. 일본은 아무래도 좀 불안하지. 거기 신의 대리인들 질이 꽤 좋다고 해도 아직은 햇병아리들만 있으니까.”

미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던 중 시계를 보던 이안이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응, 조심해서 가.”

미래가 손을 흔들며 배웅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메리가 입을 열었다.

‘너야말로 조심해. 괜히 무리하다가 저번처럼 다치지 말고.’

“괜찮아. 나 회복 빠른 거 알잖아?”

‘······아니, 애초에 다치지 말라는 소리잖아.’

메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간단한 작별인사를 끝낸 그녀는 이번엔 민호를 돌아봤다.

‘민호도 조심하고. 아마 다시 돌아왔을 때는 나도 6급으로 승급해 있을 거야.’

“그래, 나중에 또 보자.”

민호가 웃는 얼굴로 둘을 배웅했다.

이후 공항으로 가는 택시가 도착했다. 민호와 미래는 가만히 서서 택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광경을 지켜봤다.

***

둘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우웅-

민호의 휴대폰이 연달아 진동했다.

문자가 도착한 것.

그런데 모르는 번호였다.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자를 펼쳤다.

잠시 후, 민호는 문자의 발신인지 누구인지 금세 깨달았다.

-민호 청년.

-아까 말하지 못했던 게 있어서 전해둘게.

-뭐, 기억이 지워져서 정확할지는 모르겠지만. 하하.

맹창식이었다.

아마 다른 이의 휴대폰을 빌려 문자를 보내는 듯했다.

원래 그가 가지고 있던 휴대폰은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미래가 박살내버렸으니까.

-사실 아까 말했다간 그 아가씨한테 한 소리를 들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이렇게 문자로 전하네.

어떤 말을 하려고 하기에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민호는 호기심이 깃든 눈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다시 문자가 도착했다.

-난 많은 죄를 지었어.

-그래서 솔직히 난 심판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지.

-내가 듣기로 차미래라는 토벌자는 성격이 불같다고 했으니까.

문자의 시작은 담담한 고백이었다.

맹창식은 <백야>와 함께 하는 동안, 수많은 악행을 곁에서 지켜봤다. 어쩔 때는 그의 과거 신분을 이용해 범죄를 덮어주기도 했다. 물론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았다고는 하나, 그의 행동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창식은 담담한 말투로 스스로의 죄를 고했다.

-악행에 가담하진 않았지만 방관했지.

-범죄를 알았지만 말리기만 할뿐, 간섭하진 않았어.

-무수한 죽음을 그저 보기만 했다.

-그렇기에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네.

언젠가는 벌을 받을 거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창식의 고해가 끝났다. 잠시 후, 그의 독백이 다시 이어졌다.

-하지만 류화연은 달라.

-그녀는 어떻게 보면 불쌍하다고 볼 수 있지.

이어진 문자에 민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확실히······.”

미래가 있을 땐 하지 못했을 이야기다.

류화연이 불쌍하다고 말한 순간, 자칫하면 주먹이 날아갈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민호는 어깨를 으쓱인 뒤, 다시 문자를 읽어 내려갔다.

-아니, 확실하게 말하지.

-류화연은 불쌍한 사람이야.

-대의를 위해서 모든 걸 바친 사람이거든. 그래서 더 무서운 사람이기도 하고.

-그녀에게 있어서 대의라는 건 이미 인생 그 자체가 됐으니까.

-대의를 앞에 둔 류화연은 분명 물불가리지 않고 덤빌 테지.

창식은 대의가 무엇인지 말하진 않았다.

애초에 기억이 사라져버렸으니 모를 터였다. 그럼에도 류화연이 대의를 위해 어떤 걸 바쳤는지 만큼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듯했다.

-잡설이 길어져서 미안하네.

-자네에게 해두고 싶은 말은 딱 하나야.

이제야 드디어 본론이 나올 모양이다.

민호는 가만히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잠시 후, 다시 진동이 느껴졌고 화면 속에는 생각지도 못한 한 마디가 적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