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Chapter 43. 맹창식 (3)
“그 아저씨, 아니 반장님은 어디까지 알고 계실까요?”
마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백야>의 협력자다.
거기에 강태진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자다.
또 남유석 만큼이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남유석이 모르는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다.
민호는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거렸다. 반면 진하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되도록 아는 게 없으셨으면 한다. 만약 아는 게 많은데 억지로 숨겼다가는 미래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마인이 아닌데도요?”
“걔가 불물 가리는 애처럼 보이냐?”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눈이 제대로 돌아간 미래는 마인이든, 일반인이든 가리지 않았으니까.
“안 그래도 미래에게는 부탁해뒀다. 되도록 폭력은 쓰지 말라고.”
창식은 <백야>의 협력자임과 동시에 진하와는 상당히 각별한 사이였다. 그런 이가 남유석처럼 끔찍하게 고문당하는 모습은 차마 볼 수 없으리라.
그렇기에 진하는 창식이 최대한 <백야>와 관련이 없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삐걱-
낡은 문소리와 함께 포차를 찾은 이가 있었다.
연 노란색 반팔 셔츠를 입은 중년 남성.
동시에 이번 계획의 포획 목표이기도 한 맹창식이었다.
“오, 먼저 와있었네?”
민호와 진하를 발견한 창식은 시원스레 웃었다.
“근데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아직 영업전이라 그런가?”
“뭐, 그렇죠. 아직 다섯 시도 안 됐잖아요.”
민호가 넉살좋게 대꾸했다.
그에 비해 진하는 얼굴을 좀처럼 펴지 못했다. 이를 눈치 챈 창식이 피식 웃으며 진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인마, 너 표정이 왜 그러냐? 휴가 끝나고 복귀하는 이등병마냥.”
“······반장님.”
그때 진하가 굳게 닫힌 입술을 열었다.
고개를 든 그는 표정만큼이나 굳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죄송한데 소개시켜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혹시 합석해도 괜찮을까요?”
“뭐? 소개?”
갑작스런 소리에 창식은 의아한 듯 되물었다.
하지만 진하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출입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호호, 안녕하세요.”
발랄한 웃음소리와 함께 나타난 여성.
단발머리와 짧은 청바지를 입은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와 진하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밝은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진하 친구인 차미래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어······.”
창식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 미래의 등장에 당황한 건 창식뿐만이 아니었다.
민호와 진하 역시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나오기로 약속했던 시간보다 훨씬 일찍 나왔으니까.
하지만 이미 엎질러버린 물이었기에 뭐라도 말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때 먼저 입을 연 이가 있었다.
“아이구, 반가워요. 맹창식입니다.”
창식이었다.
푸근한 미소로 미래를 반긴 그는 이내 진하를 돌아보며 웃었다.
“하하. 진하 이 자식, 어디에다가 이런 참한 아가씨를 숨겨두고 있었냐?”
너털웃음을 터뜨린 창식.
그를 지그시 바라보며 미래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합석해서 많이 놀라셨죠?”
“좀 놀라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뭐, 이런 날도 있는 법이죠.”
창식은 넉살좋게 대꾸했다.
오히려 민호나 진하보다도 먼저 평정을 회복했다. 그는 미래의 앞에 놓인 잔에 막걸리를 꽉꽉 눌러 담은 뒤, 잔을 높이 들어올렸다.
“자자, 그럼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건배합시다.”
창식의 말이 끝나자마자.
네 사람의 잔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꿀꺽 꿀꺽-
“크흐! 역시 이 브랜드 막걸리가 제일 맛있다니까.”
막걸리 한 사발을 그대로 들이부은 창식이 씨익 웃었다.
이어 그는 막걸리가 가득 들어있는 주전자로 시선을 돌렸다.
“마음 같아선 취할 때까지 먹고 싶지만 오늘은 안 되겠어.”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는 창식.
그 모습에 미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머, 왜요? 더 드셔도 돼요.”
“하하, 아니에요. 오늘은 여기까지 마셔야겠습니다.”
담백한 미소와 함께 창식은 그렇게 대답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게 민호가 알기로 창식은 엄청난 애주가였으니까. 하지만 오늘 창식은 정말로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듯 잔까지 거꾸로 엎어버렸다.
“진하야.”
창식이 나직한 목소리로 진하를 불렀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조금 이상했다. 웃는 듯, 우는 듯처럼 보이는 표정.
잠시 후, 창식은 진하에게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그동안 미안했다.”
“네?”
진하가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되묻던 그때.
창식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 시선이 향한 곳은 미래였다.
“이제 연기는 그만해도 돼요, 아가씨.”
연기라는 단어에 미래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다.
곧이어 창식의 입술을 비집고 충격적인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아니면 2급 토벌자 차미래라고 불러드려야 하나?”
“······.”
포차 안의 공기가 일순간 싸늘하게 식었다.
그건 창식이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그는 몰랐어야만 했다. 왜냐면 미래는 지금 [도깨비가면]을 착용한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창식은 미래를 알아봤다.
쫘아아악-!
미래가 가면을 벗어던졌다.
정체를 들킨 이상, 계속 쓰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기에.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창식은 더 이상 존대를 하지 않았다.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특유의 긴장감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진하가 전화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어진 대답은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창식은 한술 더 떠, 허풍처럼 들리는 말을 내뱉었다.
“실은 어제부터 알고 있었다고 해도 맞는 말이겠군. 혹은 그 전부터라고 해도 맞고.”
입가를 이죽이며 대답하는 창식의 모습은 흡사 미래를 도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진하가 즉각 자리를 박차고 미래를 막아섰다.
그가 아는 미래라면 이쯤에서 창식의 면상을 후려갈길 테니까.
“차미래, 조금 진정하고······.”
진하가 안절부절 못하며 말을 흐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미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대신 두 눈동자가 격하게 움직였다.
“어떻게······.”
그런 미래의 모습을 보자마자 민호는 직감했다.
창식의 대답 중에서 거짓말은 어느 하나도 없다는 것을.
“흐아아암! 시간 아까우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그때 창식이 늘어지게 하품을 내뱉었다.
이어 그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궁금한 게 있다면 뭐든 물어봐. 내가 아는 건 전부 대답해주마.”
***
철컥-
오늘 한별이네 포차는 문을 닫았다.
영업을 접었다는 뜻도 되겠지만 모든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는 말도 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점집에 온 것처럼 출입문과 창문 여기저기에 노란 부적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뒷문도 다 붙였어?”
“예. 주신 건 전부 붙였습니다.”
이안의 미래의 물음에 대답했다.
이를 들은 미래가 만족스런 미소를 짓던 그때.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근처에서 능글맞은 음성이 들려왔다.
창식의 목소리였다.
“강태진은 오지 않을 거다.”
그 말은 진실이었다.
왜냐면 미래가 가진 [진위를 판별하는 눈]이 반응하지 않았으니까.
“······기본적으로 마인의 말은 믿지 않는 주의라서.”
“나는 마인이 아니다만.”
“아저씨, 마인 후보라고 해도 난 마인으로 취급해.”
미래의 대꾸와 함께 민호는 창식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그의 상태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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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맹창식
*나이: 53세
*공덕: 1,197
*악덕: 561
*성향: 소악(小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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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본 상태창과는 확연히 다른 수치.
물론 그 사이에 쌓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왜냐면 저 수치는 미래가 창식이 가지고 있던 라이터를 빼앗자마자 나타났으니까.
아마 그 라이터가 악덕 수치를 숨겨주는 귀물이였으리라.
한편 계속 대꾸하는 창식이 얄미웠던 걸까?
“그러니까 입 좀 닫고 있어. 주먹 날아가기 전에.”
미래가 얼굴을 와락 구긴 채 으르렁거렸다.
그 위협적인 모습에 창식은 그저 말없이 웃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부적을 붙이러 갔던 이안과 제임스가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자 미래는 창식의 맞은편으로 의자를 끌어 앉은 뒤, 입을 열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엄청 많은데 일단 이거 먼저 물어볼게.”
미래가 두 눈을 차갑게 빛냈다.
“아저씨, 남유석 알고 있지?”
미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창식의 낯빛이 굳어졌다.
속내를 들켜서가 아니었다. 그는 딱딱한 말투로 되물었다.
“······지금 협박하는 건가?”
“엉?”
난데없는 대답에 미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창식은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남유석처럼 토벌당하고 싶지 않으면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하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었나?”
“뭐?”
“걱정마라. 아까 전에도 그랬듯이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생각······.”
“아니, 아니 잠깐만.”
그때 미래가 손을 내저었다. 이어 그녀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방금 전에 뭐라고? 남유석이 토벌됐다고 한 거야?”
“네가 토벌해놓고선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창식의 대꾸에 미래는 황당하다는 듯이 외쳤다.
“뭔 소리야? 강태진이 난입해서 데리고 갔잖아!”
“뭐라고?”
이번엔 창식이 놀랄 차례였다.
잠시 후, 창식은 뭔가 눈치 챈 듯 눈을 부릅떴다.
“설마 강태진 이 새끼가······.”
창식은 얼굴을 와락 구겼다. 미래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강태진의 짓이 틀림없었다. 분명 그가 남유석을 처분하고 미래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리라.
창식은 강태진이 유석을 죽였다는 점에서, 미래는 강태진이 자신을 핑계거리로 삼은 것에 대해 분개했다.
둘이 진정된 건 그로부터 십여 분이 지난 후였다.
“후우, 이야기가 잠깐 다른 곳으로 샜었네.”
한숨을 내쉰 미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내가 예전에 남유석한테 듣다가 만 이야기가 있거든?”
“그 입 싼 놈이 뭘 불던가?”
“아저씨 능력에 관한 거. 그래서 말인데, 아저씨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말해줄 수 있어? 어디서 얻었는지도 말해주면 더 좋고.”
미래가 눈을 반짝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창식은 미래에게 거짓을 말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래서 이 질문에도 순순히 대답해줄 거라고 미래는 생각했다.
그리고 미래의 예상은 적중했다.
“어렸을 때였지 아마? 어느 스님께 시주를 하고 엿가락 하나를 받은 적이 있어. 그걸 먹은 다음부터 간혹 이상한 사람들이 보이더라고.”
창식은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기 시작했다.
“여기가 이렇게 빛나는 사람들이었지. 그래, 지금 내 눈앞에도 다섯 명이나 있군.”
“신의 대리인을 말하는 거야?”
“맞아. 선인들도 포함한다면 말이지만.”
창식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어 그는 스스로의 두 눈을 가리켰다.
“그리고 반대로 눈이 붉은 이들도 보였어. 그 녀석들은 형사생활을 하면서 더 많이 보게 됐지. 누굴 말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형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이는 범죄자들이리라.
그 말은 붉은 눈을 가진 이들은 악인, 혹은 마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이 능력은 점점 강해졌어. 아니, 범위가 넓어졌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다.”
“범위가 넓어져?”
“그래. 눈을 감고 조금만 집중하면 꽤 멀리 있는 이들의 위치도 알 수 있거든.”
“어느 정도나?”
“음, 예를 들면······.”
창식이 두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