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Chapter 43. 맹창식 (2)
“7년 전쯤이다. 내가 막 순경으로 부임했을 때지.”
신나라파의 두목, 서지혁.
그는 조폭치고는 머리가 좀 돌아가는 이였다.
젊었을 적에는 힘이 없는 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보호세를 명목으로 돈을 빼앗았다. 시간이 흘러 조직의 규모가 조금씩 커지자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며 급속도로 세를 넓혀나가던 그때.
그의 앞길을 막아서는 이가 나타났다.
바로 맹창식이었다.
“반장님은 그때부터 집요하게 서지혁을 쫓았지.”
창식은 지독하다고 말할 정도로 끈질기게 서지혁에 대한 모든 걸 파헤쳤다. 그리고 1년 반이 넘는 장기간의 추적 끝에 창식은 서지혁을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서지혁을 체포한 건 순전히 반장님의 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또 당시는 대대적으로 조폭들을 때려잡던 시기여서 반장님은 그 공으로 진급까지 했었어.”
나쁜 놈도 체포하고 보상도 두둑이 받았다.
그러나 당시를 추억하는 진하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하지만 그 놈과의 악연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진하가 자초지종을 입에 담았다.
서지혁은 불과 5년 만에 출소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체포한 맹창식에게 원한을 품었다. 허나 창식은 형사였다. 그것도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있는, 꽤 잘나가는 형사.
그런 이를 함부로 노렸다간 되로 당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서지혁은 선택했다.
“리스크가 높은 반장님 대신, 반장님의 가족을 노리기로.”
“······.”
가족을 노린다는 대목에서 주변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이안과 제임스의 얼굴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미래는 계속 말하라는 듯이 턱을 끄덕거렸고, 진하는 다시 입술을 달싹였다.
“미래에게 들어서 알겠지만 반장님께 가족은 따님뿐이다. 그래서 그놈은 반장님의 따님을 노렸어. 조선족들을 써서 납치를 시도했는데 다행히 미수에 그쳤지.”
형사의 가족이 납치될 뻔했다.
그것도 하나밖에 없는 딸이. 맹창식은 당연히 눈이 뒤집혔다. 그리고 범인을 찾는데 혈안이 됐다. 이는 창식의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눈에 불을 켜고 원흉을 찾았다. 아니, 사실 원흉이 누구인지 반쯤 예상은 했지. 최근 사건 중에서 반장님께 원한을 품고, 이를 행동으로 옮길만한 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까.”
당시의 일을 떠올린 진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증거가 없었어. CCTV도, 목격자도 없었지. 그러던 차에 반장님에게 익명의 편지 하나가 도착했다. 그리고 편지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지.”
짙은 한숨과 함께 진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언제 어디에서 네 딸을 납치하겠다. 죽이겠다는 내용이.”
살인을 예고하는 편지.
진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임스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설마 그 조폭 두목이라는 놈이 보낸 건가?”
“당시엔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 물론 실제로도 그랬지만.”
실제로도 그랬다는 대답에 제임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마 서지혁의 행위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던 중 민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예고장을 보낸 거면 그냥 기다렸다가 체포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제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한들, 형사들이 떼로 덤비면 조폭 두목이라고 해도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진하는 민호의 예상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 그래서 우리도 모두 현장에서 잠복했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바로 지원을 부를 준비까지 마쳐뒀어. 그런데······.”
잠시 말을 흐린 진하.
곧이어 그는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놈은 오지 않았다.”
“네?”
생각지 못한 대답을 들어서일까?
민호가 멍하니 되물었다.
“그 다음날도 편지가 왔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지.”
또 다시 오지 않았다.
그 순간 민호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설마 일부러······.”
문득 잔인한 생각 하나가 떠올렸다.
민호의 눈이 점점 커다랗게 변하던 순간, 진하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놈은 일부러 반장님을 가지고 논 거다. 반장님의 마음을 뒤흔들어서 정신적으로 타격을 주려던 속셈이었지. 그리고 놈의 계획은 성공했다. 실제로 반장님은 편지가 도착할 때마다 점점 피폐해지셨으니까.”
으드득-!
당시를 떠올린 진하가 이를 악 물었다.
비겁하기 짝이 없는 행동에 다른 토벌자들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 건 진하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나서부터였다.
“······여섯 통의 편지를 보내는 동안, 놈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방심을 했던 날이 있었는데, 그 날은 조선족 몇몇이 따님에게 접근했던 적이 있다. 물론 대로변이라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반장님께 스트레스를 주긴 충분했었지.”
서지혁은 생각보다 훨씬 비열한 놈이었다.
그는 직접적인 복수를 행하는 것보단 맹창식을 서서히 말려 죽이는 걸 택했다. 긴장이 풀려서 경계가 느슨해질 때쯤이면 조선족들을 이용해서 다시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맹창식은 점점 야위어갔다.
참다못한 진하는 관찰자의 능력까지 사용하면서 범인을 쫓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범인을 찾을 순 없었다.
모두가 지쳐서 반쯤 포기하던 그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어느 날, 반장님이 멀쩡한 얼굴로 출근하신 적이 있었다.”
불과 엊그제만 해도 얼굴이 검게 죽었던 창식.
하지만 이틀 만에 창식의 얼굴은 밝게 물들었다.
목소리에는 활기까지 넘쳤다.
“반장님은 우리들더러 그간 고생했다고, 이제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하시며 웃었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지. 그랬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딸이 곧 일본으로 유학을 갈 예정이라고······.”
마지막 말은 민호도 들은 적이 있어 알고 있었다.
창식과 함께 봉사활동을 했을 때, 그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 자랑을 한가득 했으니까.
당시를 떠올리던 중 민호는 문득 의아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아뇨, 저라면 오히려 더 걱정이 될 것 같은데······.”
딸을 다른 곳으로 피신시키는 건 현명한 선택이다.
하지만 일본은 좀 아니었다.
제 아무리 타국이라고 해도, 서지혁은 조폭 두목이다. 맘만 먹으면 몰래 들어가서 사람 하나를 납치하는 건 일도 아닐지도 모른다.
그때 잠자코 있던 이안도 민호의 의견을 지지했다.
“맞습니다. 타국으로 가면 곁에서 지킬 수도 없잖습니까?”
“너희들 말이 옳다. 왜냐면 나도 똑같이 생각했으니까.”
옅은 미소를 지은 뒤.
진하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반장님은 진짜 괜찮다며 웃으셨어. 정말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한 것처럼 홀가분해보여서 우린 더 말을 못 붙였지.”
본인이 괜찮다는데 거기다 대고 안 괜찮다고 말할 순 없는 노릇.
게다가 창식이 말라가는 모습을 봤던 터라 부정적인 이야기는 꺼낼 수조차 없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진하는 찝찝한 마음을 가슴에 품고 창식과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다음날, 반장님은 경찰을 그만두셨다.”
“······.”
갑작스런 대답에 카페 안은 정적으로 물들었다.
이어 들려온 건 진하의 목소리뿐이었다.
“당시엔 서지혁에게 협박을 당해서 경찰을 그만두신 줄 알았다. 그래서 무작정 서지혁을 찾았지.”
진하의 가설은 이랬다.
이미 창식의 딸을 납치한 서지혁이 경찰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딸을 죽이겠노라 협박했을 것이라는 것. 당연히 팀원들에게도 알리면 안 된다는 조건이 붙었으리라. 그래서 창식이 갑작스레 경찰을 그만뒀을 것이라는 추측.
억측에 가까운 추측이었지만 어느 정도 일리도 있었다.
그런데 결과부터 말하면 진하의 추측은 틀렸다.
왜냐하면······.
“하지만 서지혁도 없어졌다.”
“없어져요?”
“그래.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또 조선족들을 제 손발처럼 다루던 놈도 하나 있었는데, 그 놈도 같이 없어졌어.”
진하의 말이 끝나자마자.
순간 민호는 며칠 전에 있던 일이 떠올랐다.
미래가 유석을 심문하던 당시. 유석은 창식이 <백야>에 협력하게 된 계기를 말하며 이런 말을 했었다.
‘사건 해결을 위해 사라져줘야 할 이는 모두 두 명이었습니다.’
맹창식을 위협하던 이는 두 명.
그리고 진하에게서 들은 주범도 두 명이었다.
여기서 민호는 직감적으로 진하가 말하는 주범이, 유석이 말했던 ‘위험’이라고 추측했다.
“반장님께 다시 연락이 온 건 그로부터 한 달 뒤였다.”
창식은 그간 딸과 함께 일본에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이제 딸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답도 덧붙였다.
“든든한 조력자를 구하셨다면서 말이야. 설마 그 든든한 조력자가 마인 집단일 줄은 생각도 못했지만······.”
진하가 씁쓸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
이를 끝으로 진하의 이야기가 모두 끝났다.
그러자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미래가 손뼉을 쳤다.
짝짝-
“어때? 아귀가 대충 맞아 떨어지지?”
유석에게서 얻어냈던 자백.
그리고 진하에게서 들은 이야기.
이 둘을 비교해보니 마치 퍼즐조각처럼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이안과 제임스, 민호가 차례대로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냐?”
진하가 미래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 질문에 미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연한 걸 왜 물어? 아까 말한 대로 할 거야.”
“아까 말한 거요?”
“그게 뭡니까?”
민호와 이안이 동시에 되물었다.
“음, 간단하게 요약하면······.”
도톰한 입술을 모은 미래가 싱긋 웃었다.
“미끼로 맹창식을 유인해서 사로잡을 거야.”
***
미래가 세운 계획은 단순했다.
술자리를 마련한 뒤, 그곳으로 맹창식을 끌어내는 것.
그 다음엔 토벌자들이 모두 협공해서 창식을 사로잡는 것.
이게 전부였다.
작전이라고 말하기도 허술한 이 계획이 실패하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단순명료한 대답이었다.
이어 미래는 창식을 불러낼 미끼를 지목했다.
“······그래서 저희가 미끼가 되는 건가요?”
민호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현재 민호와 진하는 봉천동에 위치한 작은 포차에 앉아있었다.
[한별이네 포차]라는 친숙한 이름의 포차.
맛 좋은 안주를 싸고 푸짐하게 대접하는 곳이라 원래 하루 일을 끝낸 손님들로 북적여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둘 뿐이었다.
왜냐면 미래가 오늘 하루, 포차 전체를 임대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반장님과 직접 대면한 건 우리 둘 뿐이잖아.”
창식과 안면이 있는 건 민호와 진하뿐.
창식을 꾀어낼 미끼로 딱 적합했다. 하지만 민호는 미끼로 선택받은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유가 있는 한숨이었다.
“설마 강태진이 따라오진 않겠죠?”
민호가 살짝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 함정임을 눈치 챈 창식이 강태진을 데려오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아마 그러진 않을 거다. 반장님은 모르는 사람을 데려온 적이 없거든.”
한편 민호의 걱정에 진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민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 포차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째깍째깍-
시계바늘이 내는 규칙적인 소음만이 들려오던 그때.
민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