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Chapter 41. 폭풍전야 (3)
“임무 지령은 읽어봤느냐?”
아마 말하는 뉘앙스로 보건대 시스템 창을 말하는 것 같았다.
민호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선인에게 기적을 전달하는 것과 그 아들을 시험하는 것까지요.”
“기본적인 내용은 숙지하고 있구나.”
현암이 만족스런 얼굴로 웃었다.
“그런데 네 대답에서 정정해야할 부분이 있느니라.”
“어떤 부분입니까?”
“그 선인의 아들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온전한 사람이 아니거든.”
현암의 말에 민호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사람이 아니란 말씀은······?”
민호가 조심스럽게 되묻자 현암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어디부터 설명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듯 했다. 잠시 후, 현암은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뜸 말을 꺼냈다.
“혹시 들어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렇게 운을 띄운 현암.
이어 그는 생각지도 못한 단어를 입 밖으로 꺼냈다.
“선인의 아들은 ‘불행의 씨앗’이라는 존재다.”
“부, 불행의 씨앗이요?!”
민호가 순간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입을 멍하니 벌린 모습이 상당히 놀란 모습이었다. 민호의 격한 반응에 현암은 흥미롭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호오, 반응을 보아하니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예. 이전에 비슷한 임무가 있었던 터라······.”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민호는 예전에 받았던 임무 하나를 떠올렸다.
어느 부부에게 시답잖은 이유로 파양당한 아이. 은호에 관한 임무였다. 당시를 떠올린 민호는 그가 겪었던 사실을 담담한 어조로 털어놓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민호의 이야기가 끝나자 현암은 대번에 얼굴을 구겼다.
“그 금수만도 못한 부부는 마지막 기회를 걷어 찬 게나 다름없구나. 만약 파양을 하지 않았다면 불행이 좀 더 일찍 끝났을 수도 있었건만. 쯧쯧!”
혀를 낮게 찬 현암이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화두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래. 네가 겪었던 것처럼 불행의 씨앗은 원래 그런 부부에게 내려지는 게 정상이지. 하지만 이번 것은 좀 다르다.”
이번에는 다르다?
그 말에 민호는 호기심이 깃든 눈으로 현암을 보았다.
“이 씨앗은 원래 스물두 살이 되던 해야 세상을 떴어야 하느니라. 명부에도 그렇게 적혀 있으니. 하지만 스물일곱 해를 넘기고도 아직까지 살아있지.”
현암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민호를 응시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임무대상, 아니 우수미 씨가 선인이라서 그런 건가요?”
질문을 들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바로 입 밖으로 냈다.
그리고 민호의 추측은 정답으로 변했다.
“영특한 아이구나. 네 말대로다.”
씨익 웃는 현암을 바라보며 민호도 미소로 대꾸했다.
그러고는 곧 의아한 기색을 띠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무엇이 이상하더냐?”
“그게 제가 알기로 불행의 씨앗은······.”
불행의 씨앗. 그것은 악인을 벌하기 위한 천계의 징벌이다.
민호는 율에게 그렇게 들었다.
현암 역시, 그의 말이 정답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알고 있는 게 맞다. 이 불행의 씨앗도 비슷한 이유로 생겨나게 된 거지.”
“하지만 씨앗의 모친은 선인인데요?”
현암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민호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은호의 양부모는 악인이었다. 거기에 양부는 거의 마인에 근접한 악인. 그렇기에 천계에서 징벌적인 불행의 씨앗을 받았다.
아들이라는 형태로서.
그것과 비교했을 때, 이번 임무는 사뭇 달랐다.
임무 대상인 우수미는 선인. 게다가 무려 기적을 받을 정도로 공덕이 높은 선인이다. 그런데 그녀의 아들이 어째서 불행의 씨앗일 수가 있단 말인가?
민호가 묻는 것은 바로 그것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에 현암은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어미는 그렇겠지. 그럼 아비는 어떠하냐?”
멈칫-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민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잠시 후, 그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질문했다.
“······설마 부친 쪽이 악인인가요?”
“흐음, 그건 내가 아니라 너희가 알아야할 문제인 것 같다만.”
현암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염탐하기를 좋아하는 신의 대리인, 관찰자들은 뭘 하고 있느냐?”
“아, 그게 임무를 방금 받아서······.”
민호가 머쓱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
그 모습에 현암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휴, 어쩔 수 없지. 이번만 내가 말해주마. 이번 한 번만.”
이번 한 번이라는 말을 유독 강조해서 말한 현암.
그는 시원한 헛기침과 함께 말을 이었다.
“크흠! 그래. 네 예상대로 아비 쪽은 악인이다.”
“하지만 그래도 우수미 씨는······.”
아비 쪽이 악인이라 해도 우수미가 선인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불행의 씨앗을 받는단 말인가?
민호는 그렇게 물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보다 현암이 대답이 조금 더 빨랐다.
“아니지. 정정하마. 너희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마인이 되겠구나.”
“······!”
민호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암은 연신 설명을 이어나갔다.
“뭐, 그렇게 강대한 마인은 아니다만. 그래도 여러 선인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게 했지. 그래서 거기에 대한 대가를 받은 게다.”
현암이 이만하면 대답이 되었냐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에 민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우우웅-
휴대폰이 가늘게 진동했다.
혜성에게서 도착한 문자였다.
[혜성]: 민호 형! 임무 받으셨죠?
[혜성]: 진하 삼촌이 바쁘셔서 제가 대신 알아왔어요. 헤헤.
[혜성]: 여기에 요약해뒀으니 참고해주세요!
그 내용에 민호는 혜성이 첨부한 파일을 터치했다.
그러자 곧 임무에 대한 내용이 화면에 떠올랐다.
-대상의 이름은 우수미.
-가족관계는 오래 전에 사망한 남편과 아들이 하나 있음.
-남편의 이름은 심현우.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남편은 사기꾼 출신이라고 해요. ‘거제 교회 사기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혜성이 추가로 달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문장.
이를 본 민호의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거제 교회 사기사건······.”
그 사건은 민호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났던 일이었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사건인 터라, 민호는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시골에서 노인들을 등쳐먹다가 큰 사기를 하나 치게 됨.
-거제 교회 사기사건. 공범이 있었지만 주모자는 심현우였음.
-그 일로 감옥신세를 지지만, 빼돌린 돈이 상당히 많다고 추정.
백여 명이 넘는 피해자를 만든 대규모 사기사건.
다행히 범인은 붙잡았지만 피해금액을 전부 회수하지는 못했다. 그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해자만 무려 일곱 명이었다. 반면 범인은 불과 5년의 형량만 살고 풀려나, 당시 많은 논란이 된 사건이었다.
혜성이 보내준 정보를 토대로 사기사건을 떠올린 민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불행의 씨앗이 내려온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갔던 탓이었다.
-5년 뒤, 출소해서 서울로 상경.
-이후 우수미를 만나 결혼. 2년 뒤, 아들 심정수를 얻음.
(*특이사항: 심정수는 ‘불행의 씨앗’이라는 존재래요!)
-그리고 풍족한 생활을 이어나가다 3년 뒤에 중병에 걸림.
-시름시름 앓다가 심정수가 열세 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남.
그때 바로 옆에서 현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 치 혀를 놀려 재산을 불렸지만 그 끝은 파국이니. 어찌 현세의 사람들은 내세를 생각하지 않는지. 개탄스러운 일이로다.”
현암이 안타깝다는 얼굴로 혀를 낮게 찼다.
민호는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후 가세는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
-어려운 형편에서도 우수미와 심정수는 별 탈 없이 큼.
-심정수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바로 취직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음.
-이후 만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군에 입대.
-하지만 1년 4개월 뒤, 군에서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에 빠짐.
-뇌사 판정을 받고 현재까지 입원 중.
(할머니께서는 이 사고가 불행의 씨앗이 회수되는 과정이라고 해요. 그치만 보통은 바로 회수되는 편인데, 이 경우는 장장 5년이 넘게 진행 중이라 이 점은 조금 더 조사해보겠다고 하셨어요.)
혜성의 사견을 마지막으로.
임무에 관련된 정보 기록이 끝났다.
“꼼꼼하게도 조사했구나. 꽤나 자질이 있는 아이야.”
현암이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어 민호에게로 시선을 돌린 현암은 돌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넌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느냐? 마치 벌레라도 씹은 것처럼.”
“······이해가 안 돼서요.”
“어떤 부분이?”
“불행의 씨앗을 받은 건 납득했습니다. 심현우는 희대의 사기꾼이었으니까요.”
수많은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린 죄.
불행의 씨앗을 받아 마땅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죄 없는 이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왜 선인인 우수미 씨까지 형벌을 받아야합니까?”
우수미는 사기사건에 가담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심현우가 사기꾼이었다는 걸 몰랐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남편과 함께 형벌을 감당해야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불행의 씨앗을 잉태하고, 출산하면서까지 말이다.
그런 민호의 의문에 현암은 무미건조한 어조로 대답했다.
“심현우가 가진 돈은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피로 이루어진 것. 그리고 우수미는 심현우와 함께 그 돈을 썼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죄가 된다.”
“남편이 사기꾼이라는 걸 몰랐다고 해도요?”
“무지하다고 해서 죄를 면하는 건 아니다. 적어도 천계는 그렇게 판단한 게지.”
“······.”
민호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많았다. 하지만 천계가 그렇다고 판단했다는 대답이 나온 이상, 마땅히 반박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잠시 입을 닫았던 현암이 재차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 당시, 우수미는 선인이 아니었단다.”
“예?”
“그저 공덕을 많이 쌓은 이였지. 일반인이었다는 소리다.”
“아······.”
이어진 현암의 대답에 민호는 그제야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당시 선인이 아니었다면 불행의 씨앗을 받아도 할 말이 없으리라. 설령 심현우가 사기꾼이라는 걸 몰랐다고 해도, 피해자들의 한이 어린 돈으로 풍족하게 생활했다는 사실은 변치 않으니 말이다.
“그럼 언제 선인이 된 건가요?”
그 당시엔 일반인이었다고 해도 지금은 선인이다. 그것도 기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선인. 그렇기에 민호는 우수미가 언제 선인이 됐는지를 물었다.
“어디보자. 지금으로부터 딱 5년 전 쯤이로구나.”
“5년 전이라면······.”
민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뭔가 기억이 날 듯 말듯 했다. 그러던 차에 잠자코 있던 수박이가 입을 열었다.
-어라? 그러고 보니 딱 그 무렵 아냐?
“뭐가?”
민호가 아리송한 얼굴로 묻자 수박이는 답답하다는 듯이 외쳤다.
-선인의 아들 말이야. 아까 그 아들이 뇌사 상태에 빠진 게 5년 전쯤이라고 했잖아.
“······!”
민호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듣고 보니 그랬다.
“그래. 딱 불행의 씨앗이 회수될 무렵이다.”
그때 현암이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전생과 현생에서 모은 공덕이 쌓여 비로소 선인의 자격을 손에 넣었다. 그런데 어미는 그 귀한 공덕을 자식을 위해 모조리 쏟아 부었지. 덕분에 불행의 씨앗은 회수되지 않고, 아직까지 현세에 남아있을 수 있던 게야.”
현암의 말이 이어질수록 민호의 눈은 점점 커져갔다.
“우리가 보기엔 한낱 불행의 씨앗에 불과하지만, 어미의 생각은 다른 게지. 짐승도 제 새끼는 끔찍이 아끼는데 사람이라고 오죽하겠느냐? 하물며 선인이니 말은 다 한 셈이지.”
현암의 중얼거림이 끝나자 민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불행의 씨앗이 내려왔는지.
불행의 씨앗은 왜 회수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들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그런 민호의 표정을 살피던 현암은 이제 됐냐는 듯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