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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142화 (142/182)

142화

Chapter 40. 난입 (1)

“······.”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녹음파일에서 흘러나오는 대화가 방 안을 울렸다.

-혀, 형님한테?

창식이 강태진을 언급하기가 무섭게.

남유석은 격하게 당황한 듯 말을 더듬거렸다.

-그래. 강태진이라면 알 권리가 있겠지.

-그 녀석은 네 상관이니까.

날이 잔뜩 선 창식의 말에 유석은 황급히 그를 만류했다.

-영감, 우리 진정하고 차근차근 오해를······.

-인간이기를 포기한 괴물과 풀 오해 따윈 없다.

-여, 영감! 어이! 영가아암!

점점 멀어지는 발소리.

이후 지직- 거리는 잡음을 끝으로 녹음파일의 재생이 멈췄다.

휴대폰을 회수한 이안은 미래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더 이상 보고가 필요할까요?”

“······아니, 이걸로 충분해보이네.”

강태진이라는 이름이 언급된 순간부터 이야기는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중 잠자코 있던 제임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상한 게 있었다.”

“이상한 거?”

“그 남자는 마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귀물도 없어보였고.”

악덕을 숨기고 있다거나 하는 게 아니다.

창식은 그냥 일반인처럼 보였다. 토벌자의 직감이었다.

제임스가 그렇게 밝히자, 미래는 별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대꾸했다.

“그럼 협력자겠지. 영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지 않았었나?”

“있었습니다. 지독한 사건이었죠.”

이안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몸서리를 쳤다.

토벌자들이 말하는 '협력자'는 일반인이면서 마인에게 협력을 하는 이를 뜻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마인이 아니었기에 토벌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골칫덩이이기도 했다.

“다행히 스승님께서 나서주신 덕분에 잘 해결됐지만요.”

“하하, 역시 하이드 아저씨는 만능이라니까.”

미래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민호가 넌지시 물었다.

“누나,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창식이 뒤집어쓰고 있던 거죽을 어느 정도 벗겨냈다.

여기서 선택지는 둘로 나뉜다.

진하에게 이를 알리고, 창식을 붙잡아 정보를 캐낼 것인가.

아니면 좀 더 정보를 모아서 신중하게 움직일 것인가.

그리고 미래의 선택은 후자였다.

“좀 더 정보를 캐봐야지. 우리한텐 노다지가 있으니까.”

그녀가 싸늘하게 웃었다.

그 모습만 봐도 ‘노다지’가 뭘 뜻하는 건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

터벅터벅-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발소리의 주인은 미래를 포함한 네 명의 남녀.

“조심히 내려와. 아, 거기 문턱 있으니까 조심하고.”

미래는 곧장 남유석이 구금되어 있는 곳으로 향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안과 제임스, 그리고 민호도 그녀와 동행을 자처했다. 셋 모두 창식과 관련이 있는 이들이었기에 미래는 흔쾌히 동행을 수락했다.

잠시 후, 미래가 도착한 곳은 지하 3층.

그녀의 사비를 지불하고 정당하게 임대한 곳이었다. 이곳에 오기까지 미래와 일행은 쇠사슬과 자물쇠로 굳게 잠긴 문을 지났다.

그것도 무려 네 개씩이나.

이어 나타난 마지막 문은 철문이었다.

“좋아, 도착했다.”

미래의 중얼거림과 함께, 민호는 철문을 멍하니 바라봤다.

조금 특별해보이는 철문. 천장부터 바닥까지에는 각종 부적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 수가 무려 수십 장에 이르렀기에 절로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그때.

뒤늦게 철문을 본 이안과 제임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맙소사.”

“와, 엄청나네요. 이 정도의 방어 결계는 처음 봅니다.”

“그래? 하이드 아저씨는 이런 거 안 해두나?”

미래가 의아한 듯이 묻자 이안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스승님께선 오가는 마인은 막지 않는 주의시라······.”

“하긴, 어떤 미친 마인이 그 아저씨 사는 곳에 쳐들어가겠어?”

“하, 하하······.”

이안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그를 뒤로 하고, 미래는 몸을 돌렸다.

“민호야.”

“네?”

“마지막으로 묻는데 정말 괜찮겠어?”

미래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이곳에 오기 전, 그녀는 민호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썩 유쾌하지 못한 광경을 보게 될 거라고. 각종 유혈사태에 적응한 토벌자들이라면 상관없지만 민호는 전달자였다.

그렇기에 미래는 민호가 트라우마를 겪지 않을까 걱정했다.

“괜찮습니다. 나름 각오는 했으니까요.”

하지만 민호는 씨익 웃는 걸로 대답했다.

시원스러워 보이는 모습에 미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그럼 하다못해 이거라도 써.”

미래가 건넨 건 검은색 마스크였다.

민호가 마스크를 쓰자, 미래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문 열게.”

철컹! 끼이이익-

듣기 싫은 소음과 함께 철문이 서서히 열렸다.

잠시 후, 지하실 너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역겨울 정도로. 하지만 미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이안과 제임스도 무덤덤한 얼굴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잠시 망설이던 민호는 이내 셋을 따라 지하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민호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곳엔 B급 고어 영화에서나 볼법한 광경이 펼쳐져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사슬에 양팔과 다리가 결박된 채 앉아있었다. 남자의 주변에는 그의 것으로 보이는 살점들이 사방에 널려있었고, 썩은 분뇨냄새가 코를 찔렀다.

“······우욱!”

참다못한 민호가 헛구역질을 했다.

그나마 이곳에 오기 전, 먹은 게 맥주밖에 없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뭐라도 먹었다면 전부 게워냈을 테니까.

한편 남자에게 다가간 미래는 방긋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안녕?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

“······.”

남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멍하니 바닥을 바라볼 뿐.

기절한 걸까?

민호가 그렇게 추측하던 그때!

별안간 미래가 각목으로 남자의 머리를 후려쳤다.

퍼억!

“끄아아악!”

퍽! 퍼억! 퍽퍽퍽!

무자비한 폭력이 이어지자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끄흑! 마, 말로 해. 말로 하라고! 아아악!”

“말이 짧다? 마인주제에 어디서 건방지게.”

그 이후로도 폭력은 계속됐다.

결박된 남자, 남유석이 흐느끼며 애원할 무렵이 돼서야 폭력은 멈췄다.

“말로, 말로 하세요. 흐윽! 뭐든, 뭐든 얘기할 테니까······.”

폭력 앞에선 마인도 별 수 없었던 듯했다.

각목을 던져버린 미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유석을 내려다봤다.

“맹창식. 아는 대로 뱉어봐.”

그녀의 말에 유석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미래가 다시 각목을 집어 들자 유석이 황급히 외쳤다.

“그, 그 사람은 마인이 아닙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에요!”

“그래, 내 눈도 그렇게 말하네.”

미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입가를 위로 비틀어 올렸다.

“근데 모르는 사람이라고는 안 하네?”

“······!”

유석의 얼굴에 아차 싶은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미래는 이를 놓치지 않고 그에게 다가갔다.

“알고 있는 거 다 불어.”

“그, 그게······.”

그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갔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미래는 근처에 굴러다니는 송곳 하나를 집어 들더니, 돌연 유석을 향해 내던졌다.

쇄애애액! 콰직!

“끄아아악!”

송곳은 유석의 볼을 긁고 그대로 벽에 박혔다.

곧이어 미래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 살찐 눈알 파버리기 전에 빨리 말하지? 내 인내심이 짧다는 건 네가 더 잘 알잖아?”

미래는 한다면 정말 하는 인물이었다.

지난 사흘 동안, 유석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냉큼 입을 털었다.

“매, 맹창식. 여, 영감은 우리 동료입니다.”

“자세히.”

“그러니까 그게······.”

유석이 덜덜 떨며 그가 알고 있는 걸 술술 불었다.

맹창식. 올해로 53세가 되는 그는 미래의 추측대로 마인의 협력자였다.

그것도 평범한 협력자가 아닌, 무려 마인집단 <백야>의 협력자.

이 부분에서 미래는 눈을 살며시 감았다.

“후우. 더 말해봐.”

“여, 영감이 조직에 협력하기 시작한 건 약 1년 전부터입니다.”

비교적 최근이다.

의외의 대답에 미래는 잠자코 유석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협력 이유는 따, 딸과 연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딸이라고?”

미래가 눈살을 찌푸린 채 되물었다.

“예, 예. 딸을 위해서 청부살인도 할 만큼······.”

“그 부분, 자세하게 말해봐.”

청부살인이라는 말과 함께, 미래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동시에 유석의 말이 나직하게 이어졌다.

맹창식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공부도 잘하는 착실한 딸. 엄마도 없이 혼자서 잘 자라 온 기특한 딸이었다. 대학도 좋은 곳에 입학했고, 교우관계도 원만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제가 생겼다.

딸에게 위험이 도래한 것. 그것이 어떤 종류의 위험인지는 유석도 알지 못했다.

그가 알고 있는 건, 창식의 딸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한 일이 생겼다는 것과, 창식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백야>와 접촉했다는 것 정도였을 뿐.

“저, 정확히 말하면 조직보다는 형님한테 접근했지만요.”

“강태진한테?”

“예, 그리고 그 위험한 사건도 형님이 직접 해결했습니다.”

딸에게 닥친 위험을 없애기 위해선 누군가를 죽여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 창식은 형사였다.

그리고 직업을 떠나, 현대사회에서 살인은 그 어떤 경우에도 용서받을 수 없는 중범죄였다. 만약 창식이 딸을 위해 제 손에 피를 묻혔다 해도, 세상은 창식과 그의 딸을 살인자와 살인자의 딸로 기억할 터다.

그렇기에 창식은 딜레마에 빠졌다.

딸을 위한 일이지만, 이를 해결할 경우 딸에게 피해가 가기에.

그때 나선 이가 바로 강태진이었다.

“사건 해결을 위해 사라져 줘야할 이는 두 명이었습니다. 그, 그리고 형님은······.”

아주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다.

대상을 제거하고, 흔적을 지우는 일까지는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강태진이 한 일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형님은 영감의 딸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부수적인 위험이 도래했을 때,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위험을 배제하기 위해서요.”

유석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후, 떨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진실은······.”

“인질로 잡았구나. 맹창식을 이용하기 위해서.”

미래가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석은 정답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미래는 한숨을 내쉬었다.

“······쓰레기 짓은 여전하네.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그녀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잠시 후, 고개를 든 미래는 이 부분에서 생긴 의문 하나를 입에 담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한 거지?”

“예?”

“맹창식이 대체 뭐라고? 무슨 특별한 능력이라고 갖고 있나?”

그녀의 중얼거림에 유석은 어깨를 움찔 떨었다.

찰나였다. 그래서일까?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았다.

“경, 경찰이었으니까요. 경찰을 같은 편으로 두면 편하니까······.”

유석은 재빨리 대답을 이었다.

그러자 미래는 미묘한 얼굴로 유석을 응시했다.

납득한 것도, 의문도 담겨 있지 않은 묘한 눈빛이었다.

“······누나.”

그때 잠자코 있던 민호가 미래의 옷깃을 잡아챘다.

잔인한 광경을 본 탓이었을까?

민호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목소리가 떨리거나 하진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미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 마인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나한테 말해. 대신 물어봐줄게.”

그 말에 민호는 미래의 귓가에 대고 속삭임을 전했다.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이던 미래가 이내 씨익 웃었다.

“아, 그거구나. 알겠어. 나도 신경 쓰였던 거거든.”

그 대답과 함께.

미래는 유석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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