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Chapter 39. 중요한 정보 (3)
“아, 그리고 민호는 잠깐 나 좀 보자.”
“엥? 왜요?”
갑작스레 들려온 미래의 목소리.
자리에 우뚝 멈춰 선 민호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왜는 무슨 왜요야. 오늘 나랑 데이트하기로 한 거 잊었어?”
“아······.”
그녀의 말에 민호는 순간 입을 살짝 벌렸다.
언젠가 미래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들어선 안 되는 이야기를 할 때는 데이트를 구실로 불러낼 거라고. 이를 떠올린 민호는 잠자코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평소였다면 분명 맞받아쳤을 그가 순순히 미래의 말을 들은 게 신기했던 걸까?
혜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편 혜진은 뭔가 짐작이 가는 게 있었던 듯, 미간을 살며시 좁힌 채 미래를 응시했다.
“사부, 설마 이런 시기에 술을······.”
“에이, 가볍게 한 잔만 하는데 뭐 어때?”
미래가 넉살 좋게 대답했다.
이에 혜진이 얼굴을 찌푸리자, 미래는 민호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씨익 웃었다.
“후후, 너도 어른이 되면 공감할 수 있을 거야.”
“······사부 같은 어른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드는데요.”
“뭐가 어째?!”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래가 혜진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두 사제가 투닥거리는 꼴을 구경하던 진하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흐아암. 얘기 끝났다면 난 이만 가보마.”
“응, 수고해!”
미래가 상큼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치 얼른 가보라는 것처럼. 서운할 법도 하건만 진하는 개의치 않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기던 그때.
우뚝-
진하는 뭔가가 생각난 듯 걸음을 멈췄다.
“아, 맞아.”
몸을 돌린 그가 미래를 쳐다봤다.
“남유석은 오늘 새벽쯤에 받으러 가면 되냐?”
얻을만한 정보를 모두 얻어내면 경찰에 넘기기로 되어 있었다. 바로 연옥으로 보내도 시원찮을 마인이었지만 죗값은 치르고 가야하니까.
이를 들은 미래는 잠시 고민하더니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으음, 아직 조금만 더. 내가 나중에 문자해줄게.”
“오케이. 수고해라.”
미래의 대답에 진하는 더 이상은 볼일이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딸랑-
카페 브란델의 문이 닫혔다.
동시에 미래는 혜진과 투닥거리는 걸 멈췄다.
그러고는 민호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우리도 가볼까?”
***
민호는 미래와 함께 카페를 나섰다.
둘이 향한 곳은 건대에 있는 어느 바(Bar).
대학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바였기 때문일까? 저녁 무렵이 되었음에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홀에 울려 퍼지는 부드러운 클래식을 들으면서, 미래와 민호는 웨이터를 따라 예약된 룸에 도착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고개를 숙여 인사한 웨이터가 자리를 떴다.
잠시 후, 문이 닫히자 미래는 제일 푹신해 보이는 소파에 엉덩이를 걸쳤다.
“뭐해? 서있지 말고 앉아.”
미래가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민호에게 손을 까닥였다.
이에 민호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고는 애매모호한 얼굴로 물었다.
“누나, 아까 전엔 데이트라고······.”
“응? 맞아. 그래서 데이트하고 있잖아?”
“아니, 비밀스럽게 할 얘기가 있다는 소리잖아요.”
민호가 황당한 듯이 묻자 미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할 얘기가 있긴 하지.”
미래가 다리를 꼬았다.
곧이어 그녀의 눈빛이 점점 차갑게 식었다.
“이제부터 나올 얘기는 진하가 들어선 안 되는 이야기니까.”
“······.”
진하에게 비밀로 해야 하는 이야기.
민호가 알기로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하나뿐이었다. 바로 맹창식에 관한 것이리라.
“근데 아직 사람이 다 안 모였어.”
“또 올 사람이 있나요?”
“그럼. 정보를 가지고 있는 중요한 사람이지.”
미래의 대답에 민호는 ‘올 사람’이 누군지 깨달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맹창식의 뒤를 미행했던 이.
똑똑-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정장을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웨이터였다.
“손님. 죄송하지만 일행 분이 있으십니까?”
“네. 외국인 셋이요.”
“그게, 외국인은 맞지만 두 분만 오셨는데······.”
“엥? 그래요? 어, 뭐 일단 들여보내 주세요.”
미래의 대답이 끝나고 얼마 후.
셔츠를 입은 외국인 둘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친숙한 이였다.
“먼저 와계셨군요.”
바로 이안이었다.
미래와 민호를 발견한 그는 싱긋 웃었다.
“응, 근데 스미스였나? 그 동생은 왜 안 왔어?”
“그게 사정이 좀 있어서요. 이따가 설명하겠습니다.”
이안이 어색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어 이안은 민호의 옆에, 그와 함께 온 갈색머리의 남자는 미래의 옆에 착석했다.
“근데 저 분은 누구······?”
“아, 민호 형은 처음 보겠네요.”
이안이 뒤늦게 깨달은 듯, 어색하게 웃었다.
“이쪽은 제임스입니다. 영국의 6급 토벌자에요.”
일전에 메리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협회의 지원은 기대하기 힘들겠지만, 대신 이안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토벌자들이 지원을 와줄 거라고.
제임스도 분명 그 토벌자 중에 하나이리라.
“안녕하세요. 공민호입니다.”
“제임스.”
서글서글한 민호의 인사와 다르게, 제임스는 자신의 이름만 딱 이야기했다.
“하하, 무뚝뚝하지만 착한 녀석입니다.”
분위기가 썰렁해지자 이안은 땀을 뻘뻘 흘렸다. 다행히 민호는 이런 쪽을 크게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분위기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보다 술은 맥주로 괜찮지?”
“예. 긴 이야기에는 맥주가 잘 어울리는 법이죠.”
이안의 대답이 끝나고 얼마 후.
테이블 위에 병맥주와 레몬, 그리고 간단한 안주가 세팅됐다.
날이 더웠던 탓인지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맥주로 목을 축였다.
잠시 후, 맥주 한 병을 전부 비운 이안이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걸 어디부터 얘기해야할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하나도 빼놓지 말고.”
미래가 눈을 번뜩였다.
그 모습에 이안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첫날부터 차례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동시에 그의 보고가 시작됐다.
사실 첫째 날은 이렇다 할 게 없었다. 오후 늦게 집에서 나온 창식은 사우나에 갔다가 저녁에는 친구를 만나 막걸리를 들이마셨다. 물론 그 친구는 마인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일반인이었다.
첫날만 보면 그냥 평범한 아저씨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둘째 날부터 수상한 부분이 느껴졌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집을 나와 사우나를 갔다가 다시 막걸리를 걸치러 간 창식. 어제와는 다른 친구를 만나 막걸리를 기울였는데, 문제는 이 친구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 남자는 마인이었습니다. 이제 막 마인이 된 것처럼 보였어요.”
마인. 그 말에 미래의 낯빛이 굳어졌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스미스가 추적했습니다만 놓쳤습니다. 사실 더 쫓으면 잡을 수도 있겠지만 목표가 경계심을 가지고 잠적하면 안 되니까 내버려둔 것도 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에 미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셋째 날.
창식은 또다시 집을 나섰다. 이번에 그가 만난 이는 웬 20대 여성. 공덕이나 악덕은 일반인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었다. 즉, 마인은 아니었다는 소리었다.
“하지만 그건 저희들의 착각이었죠.”
이안이 쓰게 웃었다.
그녀는 후드를 깊게 눌러쓴 채로 창식과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창식과 헤어질 무렵, 우연히 후드 안에 있는 여성의 얼굴을 목격했다.
“그녀는 몽타주에 있던 마인이었습니다.”
“뭐? 누군데?”
“그게 이름이······.”
미래가 놀라 물었지만 이안은 이름이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 듯했다.
그때 여태껏 가만히 있던 제임스가 입을 열었다.
“주효진. 분명 그런 이름이었다.”
“주효진이라면······!”
이번엔 민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대 토벌자였던 변절자. 그리고 민호가 실제로 목격한 적이 있던 존재였던 탓이었다.
“그래서 바로 스미스가 뒤를 쫓았습니다. 하지만······.”
이안의 얼굴이 어둡게 물들었다. 제임스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심상치 않은 둘의 반응에 미래는 혹시나 하는 얼굴로 물었다.
“설마 스미스가 불참한 이유가 주효진이랑 관련이 있는 거야?”
“······예. 추적이 발각돼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스미스는 6급 토벌자였다.
가지고 있는 능력도 전투에 특화된 능력이었다. 그래서 초반엔 우세를 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상황은 거꾸로 뒤집혔다. 주효진이 귀물을 사용하면서부터였다.
그 결과, 스미스는 부상을 입었고 주효진은 즉시 자리를 피했다.
여기까지 들은 미래는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많이 다치진 않았고?”
“심각하진 않습니다. 한 열흘은 침대 신세를 져야겠지만요.”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말하는 걸 보니, 그렇게까지 심각한 부상은 아닌 듯했다.
이에 민호와 미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 저는 제임스와 함께 다시 목표의 미행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주효진과의 전투가 귀에 들어간 탓일까?
창식은 좀처럼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그렇게 사흘째 되는 날까지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한 이안은 미행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창식이 집을 나섰다.
이어 그가 향한 곳은 의외의 장소. 바로 행복 요양병원이었다.
“그 날은 화재사건이 터지기 바로 전날이었습니다.”
이안의 말에 민호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벌써부터 수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기에.
“목표는 후드를 쓴 누군가와 접촉했습니다. 굉장히 비대한 몸집을 가진 남자였습니다. 상태창은 평범했지만 저희는 유심하게 그 남자를 관찰했죠.”
귀물이 있는 한, 상태창만으로는 마인과 일반인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다행히 그 남자는 둔한 것 같았습니다. 주효진과는 다르게요.”
이안이 씨익 웃었다.
곧이어 그는 자신의 휴대폰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가까이 접근해서 둘의 대화를 녹음해왔습니다.”
“······!”
녹음이란 말에 미래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이어 이안은 녹음본 재생 버튼을 터치했다.
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두 남자의 대화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 중에서 제일 먼저 들려온 건 잔뜩 성이 난 것처럼 들리는 창식의 목소리였다.
-왜 또 이런 짓을 한 거냐! 내가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에이, 이번이 마지막이야. 진짜 마지막.
뒤이어 들려온 능글맞은 목소리.
이를 들은 민호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이 목소리는······.”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강태진의 명함을 매개체로 그의 사념을 읽었을 당시.
변호사 사무실에서 강태진과 대화를 나눴던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어차피 보스한테는 말하지 않을 거잖아?
-뭐?
-그렇다고 들었는데? 형님한테서. 아니야?
-이 빌어먹을 새끼가······.
감정이 격해진 걸까?
창식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자 상대는 넉살좋은 말투로 대꾸했다.
-영감, 우리 서로 욕은 하지 맙시다. 동료잖아요, 동료.
-뭐? 동료?
-적은 아니니까. 그럼 동료지 뭐.
-나참, 기가 막혀서······.
-또 나도 그렇고 영감도 그렇고, 피차 비슷하잖수?
곧이어 상대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깃들었다.
차가운 비웃음이었다.
-거 왜 마인이 된 이유 말이요.
-너 따위 방화광이랑 동급으로 취급하지 마라!
창식이 격분한 듯이 으르렁거렸다.
한편 두 남자의 대화를 듣던 민호는 상대가 누군지 짐작했다.
‘남유석이구나.’
잔뜩 굳은 미래의 얼굴.
무엇보다 방화광이라는 단어가 결정적이었다.
-흥, 방화나 청부살인이나.
-난 그딴 짓을 한 적이 없어!
-결과는 비슷하잖수. 흐흐, 형님한테 다 들었다고.
남유석의 음침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창식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번 건을 그냥 넘길 순 없다.
-그럼 뭐 어쩌시게? 보스한테 말하기라도 하시게?
-강태진에게 말하겠다.
익숙한 이름이 들리기가 무섭게.
미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민호도 미간을 찌푸렸다.
“강태진······.”
이걸로 이제야 확실해졌다.
맹창식은 어떤 식으로든 마인과 관련이 있었다.
무거운 침묵이 테이블 주변에 내리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