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Chapter 39. 중요한 정보 (2)
미래의 한 마디에 카페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고요하게 변한 분위기 속에서.
민호가 가만히 입술을 달싹거렸다.
“······류화연.”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는 전달자.
민호의 중얼거림을 신호로 다시 미래의 입술이 달싹였다.
“애석하지만 새로운 정보는 거의 없어.”
미래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는 희고 고운 손을 뻗어 불규칙적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나마 얻어낸 정보는 근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잠적해있던 류화연이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류화연이 10대 후반의 소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게 전부야.”
“10대 후반의 소녀라고?”
그때 진하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에 미래는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이상하지?”
“그야 당연하지. 저번에 네가 말했잖아? 류화연은······.”
“전전세대의 전달자라고 말했지?”
진하가 하려던 말을 가로챈 미래.
이어 그녀는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도 처음엔 거짓말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
“네? 그 말은······.”
“남유석의 말이 진실이라는 소리야.”
미래의 미간이 좁아졌다.
난해한 문제에 직면한 것처럼 보이는 얼굴이었다.
모두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때.
민호 혼자서만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방금 전, 류화연이 10대 후반의 소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들은 순간부터 줄곧 생각에 잠겨 있었다.
민호는 최근에 낯선 소녀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어쩌면 혹시······?’
민호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억측에 가까웠다. 민호가 만난 소녀와 미래에게 들은 류화연의 접점은 10대 후반의 소녀라는 점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수상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상태창을 볼 수 없다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잠시 고민하던 민호는 이내 고개를 들어 미래를 쳐다봤다. 어차피 그녀와 상의하려고 했던 문제다. 이 자리에서 밝혀도 무방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곧바로 미래를 불렀다.
“······누나.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보여주고 싶은 거? 뭔데?”
뜬금없는 말에 미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민호는 그녀와 눈을 마주한 채, 이안전안을 발동했다.
그러고는 꽤 예전의 풍경을 떠올렸다.
임무에 실패해 낙담해하던 무렵.
비가 오던 날. 공원에서 만난 낯선 소녀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잠시 후, 민호가 봤던 풍경이 생생하게 재생됐다. 그리고 그 풍경은 미래의 눈동자에도 그대로 맺혔다.
십여 초라는 짧은 시간이 지난 뒤.
능력의 발동이 끝나자 민호가 곧장 입을 열었다.
“보셨어요?”
“응, 웬 여자애 말하는 거지?”
“네. 제가 이걸 왜 보여드렸냐면······.”
이어 민호는 그간 겪었던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얼마 전, 우연히 만났던 적까지 전부. 상태창이 보이지 않는 것도, 심안 능력이 발동하지 않는 사실까지 털어놨다.
그러자 혜성과 혜진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상태창이 보이지 않는다고요?”
“그런 경우도 있습니까?”
그런 둘의 시선은 미래에게 향했다.
이 질문에 대해 답변해줄만한 이가 그녀뿐이었던 탓이다.
미래는 으쓱거린 뒤,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 아주 드문 경우는 아니야. 죽음을 앞두고 있는 경우에는 안 보일 수도 있거든.”
미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마치 그런 일을 겪은 사람처럼.
“그래도 아까 걔는 그렇게 보이진 않았는데······.”
미래가 미간을 찌푸렸다.
방금 전, 민호의 이안전안을 통해 본 광경.
그 안에서 본 소녀는 얼마 뒤에 죽을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미래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민호가 속마음에 있던 생각을 밖으로 내뱉었다.
“혹시 그 여자애가 ‘류화연’이 아닐까요?”
“흐음, 가능성이 있긴 해. 근데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단 말이지.”
“뭔데요?”
“그게 말이야. 만약 그 애가 류화연이었다면······.”
잠시 말을 흐린 미래.
그녀의 두 눈이 민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굳이 널 찾아갔을까?”
미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라? 그러고 보니······.”
“그도 그러네요. 선배는 이제 막 전달자가 된 참이잖습니까?”
여기저기서 의문이 터져 나왔다.
이에 민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모릅니다. 알면 제가 먼저 대답했겠죠.”
“뭐, 그렇겠지. 나도 굳이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어.”
미래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화제를 본론으로 돌렸다.
“그보다 방금 보여준 게 처음 만났을 때라고?”
“아, 네.”
“그럼 두 번째 만났을 때를 보여줘. 이번엔 좀 더 자세히 살펴볼게.”
미래가 눈을 반짝거렸다.
그 모습에 민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죄송한데 이게 쿨타임이 있어서요.”
“쿨? 얼마나?”
“3시간이요.”
“그 정도야 뭐.”
미래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그 정도는 문제도 아니라는 것처럼.
잠시 후, 미래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노란색 사탕이었다.
“자, 이거 먹어. 그럼 해결돼.”
민호가 사탕을 받아들자, 자그마한 메시지창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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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모래시계 사탕]
*등급: 정(丁)
*종류: 소모품
*섭취하면 능력의 쿨타임이 다소 감소한다.
*이름과는 달리, 레몬맛이 나므로 안심해도 좋다.
*사용조건: 신의 대리인
*사용자격: 7급 이상
*쿨타임 감소량: 4시간 감소
(단, 연속해서 섭취하면 쉽게 피곤해지니 주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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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의 효능은 놀라웠다.
이를 본 민호는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와우, 이런 것도 있군요.”
“응. 공덕 상점에서 팔아. 하나에 300원 정도 하던가?”
시답잖은 대화를 끝으로.
민호는 다시 한 번 이안전안 능력을 사용했다.
그러고는 얼마 전에 있던 그 날을 떠올렸다.
해가 뉘엿뉘엿 지던 저녁 무렵, 소녀와 만났던 날을.
얼마 후, 지속시간이 경과하자 민호는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뭐 알아낸 것 좀 있으세요?”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미래를 바라보니 어딘가 조금 이상했다.
잔뜩 굳은 얼굴. 커다랗게 변한 동공.
흡사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모습에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나?”
“······한 번만 더 보자.”
“네?”
민호가 되물었다.
이에 미래는 조금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이상한 게 보였어. 그 장소에 있어선 안 될······.”
미래의 반응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미래의 반응에 민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사탕을 입에 넣었다. 새콤달콤한 레몬 맛과 함께 사탕은 빠르게 녹아들었다.
잠시 후, 민호는 세 번째 ‘이안전안’을 사용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후우, 대체 뭘 보셨기에 그래요?”
민호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이에 한동안 말이 없던 미래의 입이 달싹였다.
“민호야.”
가만히 그를 부른 미래.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네 추측이 맞는 거 같아.”
“네? 그 말씀은······.”
“그 여자애가 류화연일 가능성이 높아졌어. 아주 많이.”
미래가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거의 확신이 맺힌 음성이었다.
한편 180도 달라진 그녀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던 걸까?
“사부, 그런데 갑자기 왜 말을 바꾼 거예요?”
“대체 뭘 본 거야?”
혜진과 진하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이에 미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대 관찰자 대장.”
“뭐?”
“신창우가 있었어. 그 여자애 뒤에 있는 수풀에 숨어 있더라고.”
“······!”
진하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찌나 놀랐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정도였다.
그리고 놀란 건 민호도 마찬가지였다.
“저, 정말요? 근데 저는 전혀······.”
“몰랐을 거야. 네 시선은 그 여자애한테 고정되어 있었으니까.”
미래의 말에도 민호의 놀란 가슴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민호는 인식하지 못했다고 해도 신창우라는 변절자가 그의 시야 안에 있었다는 소리였으니까.
민호가 팔에 돋아난 소름을 매만지던 그때.
진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왜 신창우가······.”
“이유는 나도 몰라. 그래도 이걸로 범위가 상당히 좁혀졌네.”
류화연은 안개와도 같았다.
단서는 병아리 손톱만큼도 없었고, 의문만 많았다. 그런데 민호의 제보와 미래가 찾아낸 결정적인 단서로 인해 조금씩 그 형체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또 언제 보자고 했다고?”
“저도 몰라요. 애초에 늘 저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오는 터라······.”
미래의 질문에 민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언제쯤 나타나는지도 모르고?”
“네. 이제 두 번 만났는데요. 뭐.”
“흐음, 그러면······.”
미래는 눈가를 찌푸린 채 잠시 고민하더니 가방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뭔가를 꺼내 곧장 민호에게 건넸다.
“이거 받아.”
“이게 뭔데요?”
미래가 건넨 것은 상처 났을 때나 쓸법한 연고였다.
“한 번 살펴봐봐.”
아무래도 이것도 보물인 모양이다.
민호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러자 곧 연고의 능력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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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험한 염탐꾼의 연고]
*등급: 병(丙)
*종류: 소모품
*이마에 바르면 ‘주시자의 눈’이 생성된다.
*주시자의 눈은 만들어진 순간부터 술자가 본 풍경을 녹화한다.
*녹화시간: 30분
*저장경로: 최초 소유자(차미래)의 휴대폰
(인체에 무해하니 걱정하지 말고 바를 것.)
==
심플해 보이는 능력이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어떻게 보면 이안전안의 상위 호환 보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음에 류화연을 만나면 이마에 그걸 발라.”
“······뜬금없이 연고를 바르라고요?”
“뒤돌아서 적당히 바르면 돼. 어차피 무색무취니까 쉽게 들키진 않을 거야.”
그 말에 민호는 연고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봤다.
정말로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색도 투명했다. 미래가 말한 것처럼 이 정도라면 부자연스럽지 않게 바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좀 궁금하긴 하네요.”
그때 혜성이 가만히 중얼거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고, 혜성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 사람이요. 정말 류화연이면 왜 민호 형한테 접촉했을까요?”
아까 전에도 나왔던 의문.
하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땐 그 여자애가 류화연이 맞는지가 불확실했지만, 지금은 거의 확실해졌으니까.
“혹시 전대 신의 대리인들처럼 회유를 하려는 건······.”
그러던 중 혜진이 그럴싸한 추측을 내놓았다.
동시에 미래가 모든 의문과 추측을 봉쇄했다.
“아직 속단할 순 없어. 일단 좀 더 정보를 모으고 행동하자.”
여기서 더 떠들어봐야 의미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모으는 것. 그러기 위해선 그 여자애가 다시 한 번 민호에게 접촉해야만 했다.
미래는 민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민호도 나중에 그 애를 만나게 되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하나도 빼먹지 말고 기억해줘. 이왕이면 녹음해오면 더 좋고.”
민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미래의 얼굴이 그제야 좀 밝아졌다.
“정보 공유는 여기서 끝! 자자, 이제 다들 할 거해.”
미래의 말이 끝나자 카페 안의 분위기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혜성은 눈을 감은 채, 고유능력인 [천리안]을 발동시켰다. 혜진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고, 진하는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민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여기 있어봐야 마땅히 할 게 없다고 판단한 탓이었다.
그런데 민호가 발을 옮기려던 찰나!
그를 잡아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