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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138화 (138/182)

138화

Chapter 38. Hero Time (3)

병원 내부의 상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일단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시커먼 연기와 불길만 보였다.

잠시 후, 시야를 좁힌 채로 집중하자 바닥에 쓰러진 동훈이 보였다.

그는 철제 사물함에 깔린 채,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목소리로 소리치는 중이었다.

‘영수야, 가. 얼른, 가······!’

‘아저씨!’

‘어르신 모시고······. 빨리!’

‘안 보여요, 아저씨. 눈이, 눈이 안 보여요!’

오가는 대화만 들어도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동훈은 움직일 수가 없었고, 피구조자로 보이는 학생과 노파도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사이 불길은 더욱 거세져갔다.

이를 보며 민호는 발을 동동 굴렀다.

‘제발, 제발······.’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도뿐이었다.

일어나라고. 빨리 일어나서 다 함께 나오라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다.

그때 동훈이 뭔가를 중얼거렸다.

자세히 들어보니 그것은 기도문이었다.

‘······신이시여.’

‘저를 거둬 가실지언정, 눈앞의 생명들까지 거두진 마시옵소서.’

‘제게 힘을 주소서. 저들을 구할 힘을, 두려움과 싸울 힘과 용기를 주소서.’

‘그러시면 저는 기쁘게 웃으며 당신의 뜻에 따르겠나이다.’

마치 유언처럼 들리는 기도문.

그런데 그 순간,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

[NOTICE]

-[염원의 씨앗]이 완전히 싹을 틔웠습니다.

-[염원의 싹]을 확인하시겠습니까?

-YES /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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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호의 눈이 깜짝 놀라 떠졌다.

드디어 피어난 염원의 싹. 동시에 이변이 일어났다.

기적이라는 이름의 이변이었다.

와르르-

바로 동훈이 몸을 일으킨 것.

그는 성인 남성 두세 명이 달라붙어야 간신히 들 수 있을 것 같았던 철제 보관함을 혼자 힘으로 밀어냈다. 그러고는 그대로 몸을 움직여 두 명의 피구조자를 양쪽에 들었다.

실로 놀라운 힘이었다.

‘저, 저거······.’

민호는 큼지막하게 뜬 눈으로 멍하니 이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 비친 동훈은 흡사 슈퍼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처럼 보였다. 위기의 순간, 모든 위협을 물리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구해내는 영웅.

그런데 그때, 2층의 일부가 와르르 무너졌다.

하지만 그조차도 동훈을 막진 못했다.

피구조자들을 몸으로 감싼 그는 비틀거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화마를 몰아내고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어? 어어어!”

“센터장님! 저, 저기······!”

전방에 있던 소방관들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불길을 헤치고 동훈이 나타났다.

양쪽에 두 명의 피구조자를 낀 채로.

그 모습에 현준은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갈 기세로 소리쳤다.

“동훈아!”

“가시면 안 됩니다! 위험······.”

“이거 놔, 인마! 내 새끼 마중하러 가는 거니까!”

현준을 포함한 몇몇 동료들이 황급히 동훈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화마가 덮치기 전에 동훈과 피구조자를 부축해 바깥으로 끄집어냈다.

그러던 그때였다.

쿵! 콰르르르-

“무, 물러나! 무너진다!”

“뒤로 물러나! 서둘러!”

요란스러운 굉음과 함께 병원 입구 부근이 와르르 무너졌다.

간발의 차였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건물 잔해와 함께 묻혔으리라. 현준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때, 동훈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찔렀다.

“······센터장님.”

새하얗게 질린 얼굴.

동훈은 비틀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피구조자 두 명, 구조 완료했습······.”

하지만 말을 마저 잇지는 못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걸까. 아니면 의식을 놓은 걸까?

동훈은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도, 동훈아! 야, 인마!”

화들짝 놀란 현준이 동훈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그러고는 구급차가 있는 방향을 향해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의료팀! 빨리 들것 가져와! 빨리!”

분주히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민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오른쪽 눈을 두 번 깜빡거렸다.

마지막으로 싹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특이한 광경이 민호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건······?’

염원의 씨앗에서 돋아난 싹.

새하얀 싹은 흡사 말라비틀어진 고목처럼 생겼다.

그리고 싹의 끝자락에서는 이슬이 뚝뚝 떨어졌다. 마치 제 몸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양분삼아 자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특이한 모습에 신기해하던 그때.

싹이 가진 능력이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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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타임(Hero Time)]

*등급: 을(乙)

*자기희생의 마음가짐을 가질 때, 자동으로 발동한다.

*짧은 시간 동안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다.

*모든 종류의 고통에 면역된다.

*모든 신체 능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한다.

*지속시간: 300초

*쿨타임: 24시간

*소모수명: 100시간

(단, 지속시간이 끝나면 탈진한다.)

==

싹의 능력을 본 순간.

민호는 동훈이 무사히 빠져나온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렇구나.’

그리고 하나 더.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대상은, 동훈씨가 가장 바라던 것은······.’

돈이 풍족해지는 것도, 가정형편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동훈은 소방관이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의 목숨을 불태워서라도 사람을 구하고 싶어 했다.

그것이 그의 염원이었다.

그때 관찰자의 렌즈의 지속시간이 끝났다.

현실로 돌아온 민호는 들것이 실려 가는 동훈을 바라봤다.

먼 거리라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동훈은 분명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소 띤 얼굴을 보며 민호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Hero Time]이라는 능력과 어울리는 남자에게 바치는 존경의 인사였다.

***

그로부터 몇 시간 전.

후드를 뒤집어 쓴 한 남자가 뒤뚱뒤뚱 걸음을 옮겼다.

푸짐한 살을 가진 남자는 바로 남유석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뒤를 돌아볼 만큼 비대하게 살이 찐 그였지만 이상하게도 그를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푸흐흐. 이걸로 준비는 끝났고.”

음침하게 웃음을 흘린 유석.

이어 병원을 나선 그는 길 건너편에 있는 한 모텔로 향했다. 이어 유석은 곳곳에 배치된 CCTV들을 보더니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백날 찍어봐라. 내가 찍히나.”

유석은 끔찍할 정도로 자기 몸을 아끼는 이였다.

그렇기에 그가 가진 귀물들 역시, 모두 방어용, 혹은 도피용이 대부분이었다. CCTV에 찍히지 않는 것도 유석이 가진 귀물 중 하나의 능력이었다.

“흐음, 여기가 좋겠다.”

적당한 방 하나를 고른 유석이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은 뒤, 그는 맞은편 커튼을 열어젖혔다.

창 밖에 비친 건 행복 요양병원. 유석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히죽 웃었다.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

따악-

그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로부터 얼마 후, 요양 병원건물 이곳저곳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나기 시작했다.

그가 사전에 설치해둔 발화장치가 작동한 것.

이것이 어느 마인에게서 빼앗은 [방화]능력이었다.

“아아, 역시 넌 이번에도 아름답구나.”

그 광경을 보며 유석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던 불길은 차츰 세력을 넓혀갔고, 곧 건물 전체를 휘감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 전부 불태워. 전부! 모두 다!”

흥분한 얼굴로 소리치는 유석.

그런데 그때, 수많은 간호사와 환자들이 병원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뭐야? 재미없게 벌써부터 나오지 말라고.”

예상보다 빠른 대피에 유석은 얼굴을 구겼다.

“하긴 이럴 줄 알고 미리 장치를 해두긴 했지만.”

그가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겼다.

퍼어엉!

2차 폭발이 일어나며 일부 유리창이 깨졌다.

이걸로 2층에도 불길이 번졌을 터였다. 이 정도면 전부 빠져나오긴 힘들 테리라.

“어디보자. 미끼가 얼마나 되는 거지?”

유석이 가방에서 꺼낸 것은 검은색 선글라스.

이를 쓰고 건물을 보자, 마치 적외선 고글처럼 사람의 형제가 보였다.

1층과 2층에는 없었고, 3층 한 구석에만 둘이 있었다. 대피를 하려다가 2층에 갑자기 불길이 치솟는 바람에 다시 구석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쯧! 두 마리로는 좀 부족한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혀를 차는 유석.

때마침 소방차들이 줄줄이 도착했다. 수많은 소방관들이 불길을 잡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유석이 아니었다.

“흥! 내 불꽃은 함부로 끌 수 없다고.”

그가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폭발이 일어났다.

화마가 거세어질수록 소방관들은 섣불리 다가서지 못했다.

“크히히! 겁쟁이들. 겁쟁이 새끼들! 하하하!”

그 모습을 보며 비웃던 그때.

어느 소방관 하나가 건물 속으로 들어왔다. 동훈이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유석은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그래! 너라면 들어올 줄 알았다! 와라. 어서 와! 어서, 어서! 빨리!”

유석의 입가를 타고 침이 줄줄 흘러나왔다.

불에 휩싸인 건물에 들어온 이상, 그는 독 안에 든 쥐였다.

유석은 멀리서 병원의 내부를 샅샅이 살펴볼 수 있었고 또 여기저기 설치해둔 트랩을 작동시켜 피해를 극대화시킬 수 있었으니까.

한편 동훈은 빠르게 3층에 도착했다. 그리고 피구조자가 두 명이라는 걸 알게 되자마자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흥미로운 상황이지? 자, 넌 누구를 구할까? 노인? 아니면 아이?”

사전에 모든 상황을 알고 있던 유석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동훈의 행동을 지켜봤다. 잠시 후, 그가 산소마스크를 벗는 모습에 유석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푸흐흐! 소방관다운 선택이야. 그리고 아주 멍청한 선택이기도 하지.”

동훈은 피구조자를 데리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그가 2층에 도달했을 때.

“이걸로 끝이다.”

유석이 손가락을 튕겼다.

폭발과 함께 철제 보관함이 동훈을 덮쳤다. 설상가상으로 영수의 눈까지 유리조각에 찔리면서 셋은 순식간에 고립됐다.

“잘 가라, 멍청아.”

그런 동훈을 비웃던 그 순간.

별안간 이변이 일어났다.

“······어?”

유석의 눈썹이 씰룩였다.

누워있던 동훈이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어떻게 일어난 거야?!”

2층 입구에 있던 철제 보관함은 절대 성인 한 명이서 움직일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사전에 병원을 방문한 유석이었기에, 그 사실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런데 어떻게 저걸 치우고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젠장! 아직 하나 더 남았어!”

얼굴을 와락 구긴 유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2층 일부가 무너졌다.

“······!?”

그러나 그 마저도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다.

계획이 틀어지자 유석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젠장! 젠장! 젠자아앙!”

원하던 일이 되지 않아서 성을 내는 어린아이처럼.

유석은 분노를 토해냈다.

“뭐야! 대체 뭐냐고! 그새 다른 전달자가 기적을 전한 것도 아닐······.”

“딩동댕.”

그러던 그 순간!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석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있는 건 짧은 머리카락을 한 여성과 청바지를 입은 소녀.

둘 중에서 단발머리의 여성은 낯이 익은 이였다.

“오랜만이네. 못 보던 사이에 살이 아주 더 쪘어.”

“차, 차미래! 컥!”

유석이 비명을 지르듯 외치던 그때.

“우리가 말을 놓을 정도로 친하진 않았잖아? 그치?”

미래가 유석의 목을 꽉 움켜잡았다.

이에 유석은 양 발을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수, 숨이! 커헉! 숨이······.”

“내가 말이야. 강태진한테 쳐 맞으면서 깨달은 게 있거든? 그게 뭔지 알아?”

꾸득!

미래가 손아귀에 힘을 꽉 줬다.

뼈가 이상하게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유석의 몸이 축 늘어졌다. 미래는 그를 침대 위로 휙 던져놓은 채 차가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절대 방심하지 말자는 거야.”

“사부, 방금 말은 못 들었을 거 같은데요?”

“괜찮아. 어차피 얘 들으라고 한 말 아니니까.”

혜진의 딴죽에 미래는 씨익 웃는 걸로 대답했다.

그러고는 이내 유석을 어깨에 들쳐 업었다.

그 모습은 흡사 멧돼지를 잡은 사냥꾼이 그를 등에 들쳐 업고 가는 모습처럼 보여, 혜진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씨, 더럽게 무겁네. 얘는 내가 챙길 테니까 여기 수상한 거 있으면 싹 모아서 와.”

“알겠습니다, 사부.”

시원스런 대답과 함께 혜진은 방 안에 있던 물건들을 모조리 가방에 쑤셔 담았다.

잠시 후, 방 안은 적막감에 휩싸였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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