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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136화 (136/182)

136화

Chapter 38. Hero Time (1)

왜애애애앵-!

사이렌 소리가 요란스럽게 거리를 물들였다.

이어 네 대의 소방차와 구급차 한 대가 도로를 질주했다. 앞을 가로막고 있던 차들이 하나둘씩 길을 터주자 소방차는 더욱 빠르게 달렸다.

-봉천사거리에서 마트 쪽입니다.

제일 선두에 선 소방차.

운전을 하고 있던 이가 상황실에서 들려온 무전을 받았다.

“해태 마트 말하는 거야?”

-맞습니다. 거기 맞은편에 있는 행복 요양병원이요!

“오케이.”

목적지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자 망설일 건 없었다.

한편 두 번째로 뒤따르는 소방차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의 소방관들이 타고 있었다. 화재사고는 처음 투입되는 신입들이었다.

그들은 잔뜩 굳은 얼굴로 연신 창밖을 응시했다.

“떨지 마.”

툭툭-

그때 누군가가 신입의 등을 두드렸다.

“긴장하면 사고 난다.”

동훈이었다.

아는 얼굴이 나타나서 안도감 들었던 탓일까?

아니면 이런 일을 많이 겪어본 베테랑 소방관의 무덤덤함 때문일까?

어떤 이유가 됐던 간에 신입은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풀기 위해 노력하던 그때.

또 다른 신입이 떨리는 입술을 달싹였다.

“또, 또 그놈 짓일까요?”

“그놈?”

“그 방화범이요. 노인들 있는 곳만 골라서 불 지른다는······.”

요즘 이슈인 방화범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는 금세 어둡게 가라앉았다.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며 불을 지르는 방화범이 두려운 탓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언론 때문이었다.

언론에선 아직까지 방화범을 잡지 못하는 경찰들의 무능함을 탓하면서 소방관들도 저격했다. 긴급 출동인데도 5분씩이나 걸린다는 것과 피구조자들을 구하는데 적극적이지 않다는 게 주된 저격 내용이었다.

“너무하지 않습니까? 5분이면 정말 빨리 온 건데······.”

“또 피구조자를 구조하는 것도······.”

참아왔던 분노가 터지듯이.

여기저기서 날선 외침이 들려왔다. 이에 동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 거에 일일이 신경 쓰지 마.”

“하지만······!”

“방화범 생각은 접어둬. 우리가 하는 일이 방화범 잡는 건 아니잖아?”

동훈의 말은 정론이었다.

그럼에도 신입들의 분노는 꺾이지 않았다.

“그, 그래도 기분이 영 좋진 않습니다.”

“맞습니다! 저희도 고생하고 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그게 좀 서운합니다.”

신입들의 불만을 마주한 동훈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고 있어.”

“예?”

“대체 누가······.”

“우리 모두. 서로 다들 알고 있잖아? 동료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어깨를 으쓱인 동훈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너희들은 누가 알아줬으면 해서 소방관이 된 거냐?”

“그, 그건······.”

“모르면 모르라고 해. 그런 거에 귀 기울일 여유가 있으면 그 시간에 한 명이라도 더 살려. 우리는 우리가 할 일만 하면 돼.”

그 말을 끝으로 동훈은 헬멧을 썼다.

저 멀리 시커먼 연기가 치솟는 광경을 봤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1분 뒤에 도착합니다!”

그때 운전석에 앉아있던 이가 소리쳤다.

이에 동훈은 신입 소방관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어깨를 다독였다.

“정 억울하면 한 번 보여주자.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어둡게 물든 분위기를 개선하듯 동훈은 씨익 웃었다.

“안전수칙 기억하고. 다들 다치지 마라. 가자!”

“······예!”

비장함이 깃든 대답이 흘러나왔다.

끼이익-

다섯 대의 소방차가 길가에 멈춰 섰다.

곧이어 차에서 내린 소방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젠장, 들었던 것보다 더 심각하잖아?!”

“빨리 움직여! 야! 거기 호스 꼬이게 하지 말고!”

화재 현장은 심각했다.

곳곳에 깨진 창문에선 불길이 치솟았고 건물 전체에 그을림이 퍼진 상태였다. 소방관들은 거세어지는 불길을 조금이라도 잡기 위해 소방호스를 풀기 시작했다.

“119에 신고하신 분! 신고자 분, 어디에 계십니까!”

뒤따라 도착한 구급차에서 내린 소방관이 최초 신고자를 찾았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신고자가 나타났다.

“여, 여기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간호사였다.

그녀는 아직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는지 얼굴엔 놀란 기색이 선명했다.

“괜찮으세요? 진정하시고 상황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가, 갑자기 1층에서 불이 나서······.”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녀는 이내 더듬거리는 말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동훈이 간호사에게 다가와 물었다.

“혹시 안에 계시는 분 있습니까?”

“저희 층, 그러니까 2층에는 없을 거예요. 다 데리고 나왔거든요.”

건물에 남은 사람이 없다.

그 말에 동훈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여기 위험물은 없습니까? 인화성 물질이나······.”

동훈이 다시 말을 이어나가려던 찰나!

퍼엉!

2층 부근에서 폭발음이 일어났다.

곧이어 미친 듯이 솟구치는 불길.

이에 최전방에 있던 소방관들은 얼굴을 구기며 뒤로 물러났다.

“이런 젠장!”

“모두, 물러서!”

“위험하니까 가까이 가지 말라고!”

소방관들이 거칠게 소리쳤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남아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에 동훈은 몸을 돌렸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화재 진압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때.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런데 3층은 잘 모르겠어요. 위로 올라갈 겨를이 없어서······.”

“3층이요? 거기 상주 인원이 몇 명입니까?”

“간호사 둘에 환자 네 명이요. 그 중에 한 분은 거동이 불편하세요.”

그 대답에 동훈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의 시선은 반사적으로 병원 3층을 향해 가 닿았다.

창문에는 연기만 날 뿐, 아직 불길이 보이진 않았다. 3층까지는 불이 번지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그러던 중 한 간호사 무리가 다가왔다.

“저, 저희 나왔어요!”

3층에 있던 간호사들처럼 보였다.

주변에는 환자복을 입은 노인들도 있었다. 그때 한 간호사가 의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순희 씨는?”

그 중얼거림과 함께.

몇몇 간호사들의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게, 화장실에 가셨던 것까진 확인했는데······.”

“서, 설마······.”

아무래도 안에 남겨진 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간호사들에게 자세한 정황을 들은 동훈은 즉각 센터장인 현준에게 달려갔다.

“센터장님, 안에 환자가 한 명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정확해?”

현준이 얼굴을 와락 구기며 물었다.

동훈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입해야하지 않습니까?”

“······힘들어. 내부 연소도 심하고, 위험물도 얼마나 더 있을지 몰라.”

현준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지금 들어가면 분명······.”

현준은 마저 말을 잇지 못했다.

미친 듯이 치솟는 불길.

저 안으로 뛰어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아니, 분명 다시 나오기 힘들리라.

하지만 그 말을 입에 담을 순 없었다.

그럼 남은 1명의 피구조자를 버리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센터장님.”

그때 동훈이 그의 발아래에 있는 휴대용 산소마스크를 집어 들었다. 그 행동에 현준은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다.

“야, 너 설마······.”

3년 전에 있었던 대규모 화재 참사.

동훈은 그때에도 지금과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이 있었다. 현준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동훈은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그러고는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병원을 향해 내달렸다.

그 모습에 현준은 재빨리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아슬아슬하게 동훈을 스치고 지나갔다. 동훈의 등이 점점 멀어지는 걸 보며, 현준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멈춰! 야! 저 새끼 잡아! 빨리!”

하지만 동훈을 잡을 수 있는 소방관은 없었다.

동훈이 한발 앞서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갔던 탓이었다. 마치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광경에 동료들은 멍하니 불길 속을 바라봤다.

“동훈아! 신동훈!”

남겨진 현준만이 애타게 동훈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더욱 거세어진 불길과 메케한 연기뿐이었다.

***

화륵! 화르륵!

여기저기서 불길이 치솟았다.

연기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동훈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계단을 찾아 위로 올라갔고, 혹시 몰라 2층도 조금 둘러봤다.

신입 때는 오금이 저렸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길을 보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무섭다.’였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언제부터인가 불이 무섭지 않게 됐다.

시기로 따지면 3년 전쯤부터였다.

봉천역 화재 참사.

수많은 인명피해를 냈던 그 사고에서 동훈은 맹활약을 펼쳤다. 소화기와 산소마스크를 들고 무작정 역사로 들어가 사람을 구하고 불을 껐다. 지시 불이행으로 인해 징계도 받았지만 대통령에게 표창도 받았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동훈은 불이 무섭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무섭지 않게 됐다.

조금만 마셔도 숨이 막히는 연기도 두렵지 않았다.

그에게 남은 두려움은 오직 하나.

불 속에 남은 생명을 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오직 그것뿐이었다.

‘3층, 화장실.’

이곳에 들어오기 전.

동훈은 간호사에게서 피구조자의 위치에 대해 들었다. 화재가 나기 10분 전에 화장실로 갔다고 했으니 화장실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다행히 계단을 오르자 제일 먼저 화장실이 보였다.

하지만 화장실 안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만에 하나를 대비해 남자 화장실도 열어봤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럼 3층 어딘가에 있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이순희씨! 어디에 계십니까!”

이에 동훈은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소리를 질렀다.

의식이 있다면 분명 대답해줄 거다. 피구조자의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길 바라며 동훈은 자욱한 연기 속을 헤집고 다녔다.

“구조대입니다! 구하러 왔습니다, 이순희씨!”

그러던 그때였다.

“콜록! 여, 여기요!”

구석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를 들은 순간, 동훈은 문득 의아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들려온 목소리가 너무 앳되었고, 또 남자의 목소리처럼 들렸던 탓이다.

잠시 후,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다가간 동훈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 있는 건 두 명.

70대 노인과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학생이었다.

이를 본 동훈은 손에 들린 산소마스크를 꽉 움켜쥐었다.

가지고 온 산소마스크는 하나.

하지만 눈앞에 있는 피구조자는 총 두 명이었다.

난감한 상황에 동훈이 입술을 깨물던 그때.

“쿨럭! 쿨럭!”

돌연 들려온 노파의 기침소리가 동훈의 상념을 일깨웠다.

빠르게 평정을 되찾은 동훈은 곧장 둘에게 다가갔다. 노파의 가슴팍에는 이순희라는 환자용 명찰이 있었다. 동훈은 그녀에게 이름을 확인하듯 물었다.

“이순희씨? 그런데 이쪽 학생은······.”

“내, 내 손자에요. 쿨럭! 이 늙은이를 보러 와서 괜히······. 콜록!”

듣자하니 부모 몰래 할머니 면회를 온 것처럼 보였다.

간호사에게도 알리지 않은 터라 파악된 인원에서 제외된 듯했다. 그때 남학생이 별안간 동훈의 다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아저씨!”

남학생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간절한 어조로 소리쳤다.

“저희 할머니 좀 살려주세요. 저는 상관없으니까 할머니부터······.”

“난 살만큼 살았으니 우리 손자, 손자부터 데리고 나가주시게. 쿨럭!”

노파도 이에 질 세라 간곡한 어조로 소리쳤다.

데리고 나가야할 사람은 둘. 산소마스크는 하나.

잠시 망설이던 동훈은 이내 두 눈을 부릅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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